CA
ON
캐나다 공인 컨설턴트 - 한인크레딧 컨설팅
전화: 416-897-8438
1 High Meadow Place, Unit 2 North York, ON
스마트 디지탈 프린팅 - 인쇄 및 디자인
전화: 416-909-7070
4065 chesswood dr. Toronto, ON
행복부동산 -수잔정 Home Standards Brickstone Real
전화: 647-866-7878
180 Steeles Ave W Unit 30, Thornhill, ON
토론토 기쁨이 충만한 교회
전화: 416-663-9191
1100 Petrolia Rd Toronto, ON
토론토 민박 전문집
전화: 416-802-5560
Steeles & Bathurst ( Yonge) Toronto, ON
고려 오창우 한의원
전화: 416-226-2624
77 Finch Ave W #302, North York Toronto, ON
K-포차 ...미시사가(만두향프라자)
전화: 905-824-2141
169 DUNDAS ST. E. #7 Mississauga, ON
한인 시니어 탁구협회
전화: 647-209-8933
1100 Petrolia Rd Toronto, ON
골프 싱글로 가는길
전화: 647-291-2020
115 York Blvd Richmond Hill Toronto, ON
싸인건설
전화: 416-909-7070
4065 Chesswood Dr. North York, ON
1004열쇠
전화: 416-895-1004
4 Blakeley Rd. Toronto, ON
럭키 여행사
전화: 416-938-8323
4699 keele st.suite 218 toronto Ontario M3J 2N8 toronto, ON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40 전체: 198,526 )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채 태어났다 ]제25장 십자가와 방법
lhyunsik
2007-08-28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채 태어났다
제25장
십자가와 방법
Philip E. Howald, Jr.
십자가가 방법이다
필자의 친구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 '이교도들을 교육시켜 점진적으로 그들을 얻기 원하는' 계획에 근거해서 선교사역이 진행되었던 그런 지역에서 선구자 역할을 하였던 한 은퇴한 선교사에 따르면 이 지역의 사역 초기 모든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파할 것인지 아니면 학교를 세워서 자라나는 세대를 키워 그 학생중 그리스도를 만나게된 학생들을 통해 그 나라를 복음화할 것인지를 놓고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 후자를 선택하기로 결정이 났다고 한다. 이 은퇴한 선교사는 이렇게 고백했다 : 오늘날 와서 보니 너무 늦긴 했어도 우리의 결정이 잘못되었음을 알게되었다. 그결과로 그 나라에서는 복음이 묶이고 말았다. 첫 번째 계획을 따랐더라면 박해가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피흘림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렇게 했더라면 지금쯤은 구름이 걷히고 복음이 자유롭게 전파되었을 것이다
이 사실은 우리의 메시지는 물론 우리의 방법에 있어서도 십자가가 중심이 되어야만 한다는 위대한 원칙을 분명히 해준다. 메세지에 관해서 정통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방법에 있어서는 십자가를 부인하기란 너무도 용이하다. 우리는 타락한 영웅의무덤가에서 열정적이고 먼지를 뒤집어쓴 선교사와 함께 서서 "성공을 보장해주는 모든 계획들 중 가장 확실한 것은 그리스도 자신의 것으로 한알의 밀알이 되어 땅에 떨어져 죽는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간절하게 "주여, 주님이여, 우리로 위대한 밀알되신 분과 일치하여 그리스도에 관한 메시지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분을 제시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사람들에게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분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해 주소서"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전파한다"고 말했다.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증거하는 자들의 임무야말로 엄청난 것이다. 옛 스코틀랜드 출신의 한 신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 "그리스도와 자기자신을 동시에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 누구도 자기 자신이 똑똑하다는 것과 그리스도께서 구원을 주실 수 있는 능력있는 분이시라는 인상을 동시에 줄 수는 없다 우리의 최고의 임무는 전심으로 복종하고 순복하는 자세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이슈를 창조해 내야만 한다. 우리는 사람들로 어떤 결단을 내리도록 이끌어야 한다. 우리는 그들로 하여금 생명과 죽음, 하늘과 지옥을 보도록 해야한다. 그들의 답변은 긍정(Yes)이든 부정(No)이든 나와야한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을 중립적 입장이 아닌 어느 한 결정이든 내리도록 촉구해야 한다.
우리의 구원의 대장께서는 "너희는 가서"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분이 부여받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다. 오늘날 복음은 이 권세를 잃어버린 듯하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박힌 손에 의해 사명을 받았다는 사실을 우리가 분명히 인식만 한다면 이 문제는 해결된다. 우리는 복음의 대사로서 우리가 지닌 권위를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의 복음이 영혼을 사로잡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타협적인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영은 전적으로 타협하지 않는 사람만을 기름 부으실 수 있다. 한 나이든 군인이 이렇게 말했다 : "나는 어떤 유보적인 자세를 지닌 채로 나에게 오는 사람은 원치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않는 군인들을 전쟁에 보내고 싶다."
두가지의 강력한 동기
꺼지지 않는 열심을 갖도록 해주는 두가지 강력한 동기에 대해 그 위대한 사도는 이렇게 말하였다 : "주님의 두려우심을 알기에 우리는 사람들을 설득하노라...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바로 이것이 사도적이며 성경적이며 신성한 순서이다. 바울은 멸망하고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는데 있어 두려움과 연민에 의해 행동했다. 오늘날도 바로 이와 같은 순서가 다시 확립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들의 설교는 너무도 "사랑스럽다." 우리의 설교는 그저 두려워 않는 이 세대의 겉만 핥고 있는 셈이다. 노아의 날들과 동일한 이 세대는 더 이상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아는 자신과 가족을 도피시키기 위해 "두려움"에 의해 행동했다. 우리는 매년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앙케이트조사를 실시한 결과 사람들로 구원의 필요성을 깨닫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동기들 가운데 "두려움"이 무려 60-75%로 나타났다. 나머지 동기들로는 평화, 기쁨, 안식, 해방을 얻기 위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5-10%정도가 사랑이 동기가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의 조사에 따르면 100명의 대상중 단 한명도 사랑 때문에 구원받았다고 고백하지 않았다. 이번 조사에서도 66%는 두려움 때문에 구원을 받게되었다고 고백하였다. 영혼을 구원시키고자하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사실에 근거해서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이다. 20세기의 감상주의에 입각해 "사랑"만을 외쳐대서는 안된다.
바울은 또한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라"고 권고한다. 여기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순서를 엿볼 수 있다. 우리가 중시해야할 첫 번째 것은 사랑스럽게 혹은 사랑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고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영어로 보면 Speaking the truth in love 임을 염두에 둘 것) 진리를 말하되 "사랑"으로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마귀는 이 순서를 뒤바꿔버린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기 전에 먼저 우리의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를 말해야만 한다. 그리고 나서 두 번째 계명을 지키기 위해 "사랑"으로 말해야 한다. 이웃을 사랑한답시고 하나님을 화나게 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아울러 눈물어림, 다정함 이 두 가지가 초대교회들로 하여금 "저 세상"에서 온 "침입자"들처럼 강력한 주님의 군사가 될 수있게 만든 것이다. 이들은 이 두 가지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님께로 이끌었다. 그들은 주님께서 "내가 살기 때문에 너희도 살 것이라" 고 하신 말씀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그들은 성령의 능력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두려움의 영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건전한 생각의 영"을 갖고 있었기에 능력으로 두려움 없이 진리를 말하였으며 사랑으로, 건전한 영으로 진리를 말하였다.이와 같은 영으로 제시된 십자가에 못박히신 분의 모습은 얼마나 놀라운 것이었겠는가? 그들이 로마제국을 뒤집어 엎고 역사의 흐름을 뒤바꾸게 한 것은 놀랄 일이 못된다. 이는 주님의 "침입자"들에 대해 A.J.고든(Gordon)박사가 증언한 바를 들어보자 :
이들은 세상으로부터의 도움과, 통치자들의 후원과, 재정적인 채무와 세상적인 방법을 철저히 거부하였다. 이는 그들의 왕을 세상과 타협시키지 않기 위함이었다. 이들 침입자들은 보이지 않는 기지로부터 유지되고 있었고 로마제국의 도움보다는 보이지 않는 사령관의 리더쉽을 더 신뢰하였다. 이것은 이교도들을 매우 당황케 하였고 화가 나도록 만들었다. 사실 이들 이교도들은 자신들의 신들을 내버리지 않은 채로 그리스도인들과 친구가 되고자 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와 같이 그리스도를 제시하고자 한다면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과 자기성찰이 있어야 한다. 십자가를 수용하고, 불평을 아니하며, 타협을 아니하고 담대하고 철저하게 "자아"라고 하는 우상을 거부해야만 한다. 우리는 우리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
그리스도와 함께하지 않은 고통
다시 한번 권면하며 동시에 경고하거니와 독자 여러분들중에는 육신적인 방법을 버리기 위해서 수많은 죽음으로 여러분을 이끌고 갈 고뇌와 내적 고통을 통과해야만 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당신은 "방법"을 사용함에 있어 여러 위원회의 결정들을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거의 인식하고 있지 못할지도 모른다. 혹은 자기자랑, 으스대기, 혹은 자기선전 등에 빠져 결국에는 십자가가 삶에 적용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마는 경우도 있다.그러나 당신의 회중들의 세속적인 모습 뒤에 십자가를 적용하기 전에 당신 자신부터 먼저 "육신에 대한 신뢰"를 전부 포기하여야만 한다.
좀더 담대하게 말해보도록 하자. 솔직히 말해 나는 평범한 사역자들을 괴롭히는 비극적인 문제에 대해 몹시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노선을 걷고 있다. 실로 가장 비참하기 그지없다. 누군가가 이렇게말했다 : 우리는 많은 고통을 당하지만 그리스도와 함께 당하는 고통은 거의 없다. 우리는 많은 일을 했으나 남는 것이 거의 없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그리스도를 알았고 그분의 강력한 사랑에 너무도 효과적으로 우리의 마음문을 닫아버려 다른 모든 사람들 위에 그분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주시고자 하였던 그 사랑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은 당신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근심과 불안을 가져다주었다. 당신은 사울처럼 자신의 왕국을 구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십자가를 붙든 사역자보다 실제로는 더 큰 고통을 당했다. 당신은 당신의 생명을 구했을 지는 모르지만 실제로는 이 세상에서마저 그 생명을 잃은 셈이다. 왜냐하면 육신의 에너지는 하나님의 일을 망칠 뿐 아니라 당신의 생명과 평안도 망치기 때문이다.
당신의 문제는 당신의 유일한 영감으로 그리고 당신의 유일한 매력으로서의 십자가를 붙드는 대신 당신의 목표에 모든 것을 바쳐왔다는 사실이다. 당신은 당신의 사역을 일으키는데 야심을 품었을 것이다. 부끄럽게도 당신은 예수그리스도를 이용했던 것이다. 당신의 육신적인 야심과 육신적인 계략들을 잘라내려고 결심해보라. 그러면 당신은너무도 두려워 온몸이 마비되는 것같을 것이다. 그때부터 당신은 달라진다. 당신은 바보와 광신자로간주될 것이다. 당신의 성도들, 주일학교 학생들, 당신을 아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당신을 낮출 때 당신이 겪게 될 수치는 작은 것이 결코 아니다. 동료 사역자들앞에서당하게 될 경멸은 또 어떠한지... 나는 그와 같은 상황에 있는 당신을 어떻게 위로해줄지 알고 있다. 자 힘을 내라.
일단 당신이 하나님의 용광로의 불안에서 빚어지게 되면 당신은 당신의 종교적인 자아의 냄새를 더 이상 풍기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형식주의, 냉랭함, 육신적 완고함과 같은 것들에는 더 이상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옛 가죽에다 새포도주를 담기란 어렵다. 그러므로 진지하게 죽음을 맞이하라. 무엇보다도 더 이상 "죽은 것들, 쓸모 없는 것들, 겉치레들"을 주님께 바치는 것을 거룩한 마음으로 중단하라. 모든 두려움을 물리치라. "효과적인 독특함이 비효과적인 평이함보다 천배나 낫다"(D.M.Thornton) 온전하지 못하고 반쯤 품은 사랑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계산된 사랑이야말로 교회의 수치요, 하늘의 슬픔이며 지옥의 경멸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와같은 것들은 받지 않으신다. "내가 내 입에서 너를 토해 내치리라."
아직도 부서지지 않는 의지
아직도 부서지지 않고, 완강한 마음과 자기 의지로 가득 차있다면 T.C.Uphan 교주의 충고를 듣기 바란다 : (그는 지난 세기에 살았던 사역자요 신학자였다.) 그들은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배우는데 게을렀고 마땅히 순복하기를 꺼려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그분의 것이 되기를 원하셨고 의도하셨으나 그들의 내적인 구속의 때는 아직 이르지 않았고 그들은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였다. 그들은 우선 한가지에 대해 그들의 마음을 주었으며 그 다음에는 또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겼다. 아마 그들은 하나님을 그들의 유업으로 갖고 싶어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이외에 뭔가를 더 갖고 있음에 틀림없다.
다시 말해 그들은 하나님과 자신들의 우상들을 동시에 갖고 싶어하는데 이는 헛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잠시동안 그런 상태로 머물러 꼼짝달싹 아니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랑하신다. 따라서그들이 친절한 방식으로 배우기를 원치 아니한다면 그들은 두려운 방식으로 배울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섭리의 칼, 성령의 칼이 그들과 세상을 묶어놓은 모든 줄을 다 끊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들의 재산, 그들의 건강, 그들의 친구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손길 앞에 추락하고 말 것이다. 소망과 기쁨으로 짜여진 내적 사람, 자기사랑과 교만으로 살진 속사람은 먼지처럼 안팎으로 떨어버리게 될 것이다. 불로 태워지고, 물에 휩쓸리며 깎여지고, 다듬어지고, 부서지는 과정을 통해 인내를 배우게 될 것이고 이 두려운 침례를 통해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경배하고 사랑하는 것을 포기하게 되어 하나님께서만이 참되시고 유일한 주권자이심을 배우게 될 것이다."
불같은 시련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불같은 시련을 통해 그분의 영적 지도자들을 선택하신다. 이와 같은 지도자들은 어떤 인간이나 인간 집단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어떤 공회도, 대회도, 노회도, 학교도 그들을 만들어 낼 수 없다. 오직 하나님께서 그들을 빚으신다. 이것은 사역자들 뿐 아니라 일만 성도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도들이 진리의 전위대로서 영적지도자가 되어야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다.
우리는 단순하고, 진지하며, 심령이 가난한 영혼들에게 권면코자한다. 포위된 가운데서 혹은 전장터에서 승리를 쟁취하려고 하는 군인들처럼 영적인 자유를 갈구하라. 성령의 능력이 당신의 것이 될 것을 온 마음을 다해서 믿으라. 앉아서 대가를 계산해보라. 당신의 삶과 당신이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날카로운 날이 느껴지게 될 것을 분명히 확신하라.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오늘날 가장 부족한 것은 거룩한 해방을 가져다준 내적인 십자가처형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강력한 해방이다. 이 영적 해방이 없는 큰 자나 작은 자앞에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주저 없이 말씀을 전파할 수가 없다(그런데 오늘날에는 이와 같은 영적인 해방대신 육신적인 경박함만이 난무하고 있다).
고난에도 불구하고
초기 시대의 기독교회가 전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심한 박해를 받았을 당시(행4장)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의 담대함에 충격을 받았다. 이들의 영적 담대함이란 다름 아닌 주저 없는 복음전파였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다. 이들 어부들에게는십자가가 실제적이고 신선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못박혔고 결국 자아로부터 해방을 받았던 것이다. 그들은 자유롭게 입을 열었고 담대하게 말씀을 전파했다. 종교인들은 진노했으나 이들 그리스도의 포로들은 자유로웠다.
그들이 세상의 그 어떤 육체에게도 아첨하지 않았고 그 어떤 육체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초기의 무시무시한 위협 속에서 초대교회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다. 그들은 위선자들의 회심을위해 기도한 것도 아니고 자신들이 조심하여 더 부드럽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서는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더욱 담대히" 그리스도를 제시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그렇게 되면 자신들의생명은 더욱 위험스러운 지경에 빠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기도에 몹시 기뻐하셨고 (그들의 기도는 담대함과 비타협적인 영으로 드려졌다.) 이에 온 회중앞에서 집이 진동하도록 하심으로써 응답하셨다. 그들은 자신을 돌보지 않았고 자신들의 목표도 주장도 없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살아계신 머리셨다. 그들에게는 성공도 실패도 안중에 없었다. 그분은 최고로 나약함 가운데서 죽으셨고 그들은 그분과 함께 죽었다. 그 결과가 무엇이 되든 간에 그들은 사람대신 하나님께 복종하였다. 그들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늘에 그들의 운명을 맡겼고 그들이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서 전파했을 때 십자가의 말씀이 양날선 칼처럼 그들의 "마음을 찔러왔던 것이다."
날카롭고 천상의 기질을 지닌 양날선 칼.
그 상처 또한 이중적이로다.
이 칼날이 번쩍이는 곳에는
죄에 대해 탄식하는 모든 자에게
죄에 대한 죽음과 생명이 있도다.
칼이 번쩍이자 싸움은 가라앉았고
전쟁이 있었으나 그 속은 화평이로다.
육신을 자랑하고 모두가 능력을 경배하는 요즘 세대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무기는 의인화된 "어리석음"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인간보다 더 지혜로운 것이다." 바울을 이렇게 말했다 :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혜로운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시고, 하나님께서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시며, 하나님께서 있는 것들을가치 없게 하시려고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시고 참으로 없는 것들을 택하셨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그분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하심이라."(고전1:27-29). 바로 이것이 Charles Fox(찰스 폭스)가 "인간의 나약함을 줄이는 하나님의 "나약한" 부대" 라고 불렀던 바로 그것이다. 이 군대에 입대하려면 다음과 같은 자격을 갖추기만 하면 된다.
지혜를 얻기 위해 그분을 의지할 만큼 충분히 어리석다면
그분의 능력으로 덧입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나약하다면
하나님의 명예 이외의 그 어떤 명예도 갖고있지 않을 만큼
충분히 낮아져 있다면
그분의 발밑에 머물러 있을 만큼 충분히 멸시를 받는다면
그분께 모든 것이 되기 위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격려가 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우리는 복음을 전해 받은 "가난한 자들"에 속해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않으며, 강한자가 많지 아니하며 고귀한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하나님께서는 경멸받기에 조차도 합당치 않은 그런 미천한 자들을 택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가난함, 어리석음, 무의미함, 심지어는 덧없음을 결코 멸시하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 이모든 것들은 장애물이라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실 때 중요하게 간주하신 요소들이다. 자, 그렇다면 우리의 아무것도 아님을 하나님의 숨겨진 전능하심에 내어 맡김으로써 그분께서 주신 기회를 붙들어야 할 것이다.
작은 자의 능력
성경에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역사가 미미한 것들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예가 많이 있다. 이, 메뚜기, 파리와 같은 미물은 이집트를 괴롭혔다. 시리아의장군 나아만을 치유하고 재생토록 하는데 쓰임받은 하녀를 생각해보라. 물맷돌로 무장한 어린 소년이 민족을 구원한 것을 기억하라. 손바닥크기만한 자그마한 구름이 엄청난 비를 가져왔다. 여리코성은 믿음의 외침과 나팔소리에 무너져내렸다. 성육신하신 하나님께서는 어린아기로서 이 세상에 오셨으나 그 아이 안에는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와 능력이 숨겨져 있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덩이가 수많은 사람을 먹였으며 기드온의 300명의 용사가 135,000명 되는 군인들을 나팔과 등불과 항아리로 멸망시켰다. 이 모든 것과 그밖에 수많은 일들이 "그분의 임재앞에서 그 어떤 육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하심이라."
하나님의 등불을 위한 항아리들-
들으라! 외침이 뻗어간다.
만드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깨질 준비가 되어있는 그 자세가
주님의 도구들의 특징이니
빛나는 말씀을 운반하기에 합당한 도구로구나.
빛나는 말씀을 운반하기에 합당한 주님의 도구중의 한 사람은 마틴 루터였다. 그는 하나님의 저항할 수 없는 능력이 "십자가의 숨겨진 말씀"안에 담겨져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의 담대한 진리 선포는 로마의 우쭐했던 종교를 당혹케 만들었고 생명과 빛과 자유의 흐름에 불을 당김으로써 오늘날까지도 모든 교황을 괴롭히고 있다. 보잘것없는 한 수도승이었던 그는 하나님의 승리를 이렇게 설명한다 : 나의 올바른 주장 옆에는 교황에게 치명타를 가했던 나의 비천함과 나의 보잘 것 없음이 놓여있었다. 왜냐하면 교황은 '한낱 일개 수도사에 불과한 녀석이 감히 나에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이 장을 끝마치면서 모든 사역자, 선교사, 주일학교 선생님, 그리고 그리스도의 증인들 모두에게-우리 중 그리스도의 증인이 아닌 사람이 누구란 말인가?-꼭 한마디 하고 싶다. 그것은 우리 모두 우리 스스로 아무것도 아님과, 아무짝에도 쓸모 없음과, 아무것도 아님을 인정함으로 십자가의 무한한 능력을 충만히 받아서 이 불신의 시대에서 오히려 이와 같은 우리의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하나님을 위한 강력한 군대가 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