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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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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클리닉]남자와 여자 무엇이 다른가?
lhyunsik

[가정클리닉]남자와 여자 무엇이 다른가? 추부길 쇼핑갈 때마다 싸우는 부부 “우리 부부는 백화점갈 때마다 싸웁니다. 남편은 저더러 뭐 쓸데없이 그렇게 시간 보내느냐면서 짜증을 냅니다. 그럴 때마다 화가 얼마나 나는지요. 오랜만에 이런데 왔으면 함께 시간 보내면 얼마나 좋습니까? 나는 도대체 남편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쇼핑갈 때마다 싸운다고 그러면서 하소연하는 이 부부. 쇼핑 때문에 싸우는 부부는 이 부부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부부들이 갖는 공통적인 싸움 주제중의 하나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싸울까? 한마디로 쇼핑에 대한 남녀의 개념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남자는 쇼핑이라는 것이 사야할 물건을 사러가는 행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물건만 빨리 빨리 사면 더 이상 그 백화점에 머무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TV도 보고 쉴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렇다. 곧 남자에게 있어서 쉰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인데, 쇼핑하는 것도 일이고 집에서 TV나 보면서 그냥 퍼져서 누어있는 것이 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자는 그렇지 않다. 우선 쇼핑이라는 것 자체가 단지 물건 사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다. 쇼핑이라는 것은 아이 쇼핑(Eye Shopping)도 당연히 포함되고, 더불어 백화점 자체를 즐기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쇼핑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물건만 사고 그것을 떠나려고 하는 남편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여자는 물건도 사지만 여기 저기 구경하고 돌아다니는 것을 너무나도 좋아한다. 요즘 옷들은 어떤 것들이 유행인가, 또 요즘 식탁이나 주방기구들은 어떤 것들이 나왔나, 저런 것들이 우리 집에 이렇게 설치하고 저렇게 놓아보면 참 좋을 것 같다든지 온갖 행복한 상상을 하며 돌아다니는 것을 너무나도 행복하게 생각한다. 그뿐인가? 사지도 않을 것이며, 살 돈도 없지만 이 옷도 입어보고, 저 옷도 입어 보면서 동화속의 공주, 드라마 속의 신데렐라가 잠시라도 되어 본다는 것 자체가 신나고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도 자신 혼자 즐기기 보다는 그러한 행복에 남편도 동행해 주기를 원하고 그러한 행복을 남편하고 함께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자신이 그런 신데렐라가 된 것처럼 남편도 인정해 주고 동의를 해 주기를 간절히 소망해 보는 것이다. 그래서 사지도 않을 옷이지만 아내가 백화점에 걸린 옷을 한번 입어 보았을 때 “역시 당신은 예쁘다, 탤런트 누구보다도 더 예쁜 걸.”하는 칭찬을 엄청나게 고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남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사지도 않을 옷을 뭐하러 입어봐? 백화점 직원들 미안하지도 않아?”하면서 힐난하는 소리나 해댄다. 그런 남편의 모습에 아내는 열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과 아내가 백화점에 갈 때 싸우지 않는 방법은 딱 하나가 있다고 말한다. 곧 입구에서 찢어진 다음에 한 시간 후쯤에 만나자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찢어지면 남편은 당연히 자신이 관심이 많은 전자 제품이나 운동기구 코너를 돌아본다든지 지나가는 여자들 흘낏 흘낏 쳐다보는 재미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찢어진다는 것은 평생 서로에 대해 모르고 살겠다는 무지한 결정이라 할 것이다.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아내는 가능한 한 쇼핑 시간을 줄이고 남자는 아내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시간을 내어 주고 아내하고 함께 감정을 느껴준다는 생각을 하면 된다. 그것이 간단한 헌신이지만 부부에게는 엄청난 행복으로 다가 올 수 있다. 그렇게 서로가 배려를 해 줄 수만 있다면 부부는 날마다 깨가 쏟아지는 행복 가운데로 걸어갈 수 있는 것이다. 알아야 면장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지도 때문에 마음이 상하는 부부 “남편이 운전하고 가다가 저보고 지도를 봐달라고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마음이 상합니다. 사실 저는 지도를 잘 읽을 줄 모릅니다. 그렇다고 대학까지 나온 여자가 지도도 못 본다고 짜증내는 남편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제가 왜 이렇게 무시당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습니다.” 많은 부부들이 지도 때문에 싸운다. 아니 지도 때문에 이혼 위기까지 가는 부부도 있다. 남편이 운전을 하고 가다가 아내에게 지도책을 봐 달라고 한다. 지금 우리가 몇 번 국도로 가고 있는지, 얼마쯤 더 가야 어디가 나오는지 물어 본다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지도에 대해 까막눈인 아내는 이리 돌려보고 저리도 돌려 보지만 그 지도가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쩔쩔 맬 수밖에…. 그럴 때마다 남편의 무시가 아내의 가슴을 찌른다는 것이다. 원래 하나님이 남녀를 창조하실 때부터 공간 지각력에 차이가 있도록 만드셨다. 남자는 뛰어난 공간 지각력 때문에 차 두 대 사이의 좁은 공간에도 T자 주체를 쉽게 해 낸다. 그러나 여자들은 보통 대여섯 번 정도는 왔다 갔다 해야 겨우 집어넣고 그것도 삐딱하게 세워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것을 보면서 남편은 말한다. “당신은 왜 그렇게 운전을 잘 못하느냐, 좌측으로 핸들을 돌리라니까, 아냐, 우측으로…. 정말 짜증나네….” 아내가 그렇게 주차를 잘못하는 것은 이 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 모든 여자들의 공통적인 문제 중의 하나이다. 지도책을 볼 때도 그렇다. 관광지에 가보면 남자들은 지도책을 보면서 금방 여기가 어디인지, 우리가 어디로 가야할 것인지를 식별해 낸다. 그러나 여자들은 지도책을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 보지만, 심지어 엎어 보기도 하지만 여기가 어디인지, 저기가 어느 것인지 분별해 내기가 쉽지 않다. 그러면서 어쩔 줄 몰라 한다. 그것이 여자이다. 그러니 쇼핑센터의 넓은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는 어디에 주차를 했는지 자주 헷갈리는 것이 여자의 속성이라는 것이다. 연구에 의하면 여자들의 공간 지각 능력이 남자의 그것과 비슷한 사람은 10%도 채 안될 정도라고 하니 그 차이로 인한 부부갈등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러니 기술 분야에 남자들의 취업이 많은 것이다. 실제로 보면 집에서 남자들은 그 쉽다고 생각하고 아이들도 척척해내는 비디오 조작하기도 여자들은 참 어려워하고 아예 만지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남자들은 여자들을 무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여자들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우쭐대는 남자들도 참 많다. 그러나 이 모두가 참으로 어리석은 남자들의 전형이다. 남자가 공간 지각력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것은 그런 일들을 남자들이 주로 하라는 창조자의 뜻이 아니겠는가? 여자들은 다른 부분에 할 일이 많으니까 그런 일들은 당연히 남자가 해야 한다는 것이다. 포인트 맨(첨병)의 역할은 당연히 남자가 해야 한다. 기계를 만지는 일도 당연히 남자 몫이다. 그렇다면 아내에게 그런 일을 시키거나 부탁한 것 자체를 미안해하는 남편이 정상적이지, 그런 일 못했다고 아내를 무시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남자들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여자는 그런 일에 익숙지 못하다고 생각한다면 당연히 남자들이 내가 먼저 솔선하고 내가 조금 더 고생하면 된다는 생각만 가져도 그만큼 싸우고 갈등할 소지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창조주의 뜻이라는 것이다. 남자들이여, 잘난 체 하지 마라. 오히려 그 일을 내가 해 주지 못한 것을 미안해하라. 그것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가정클리닉]남자와 여자 무엇이 다른가? 2 추부길 어디 갈 때마다 꼭 한번씩 싸워요! “남편이 운전하고 가는데 길이 아무래도 이상해서 그 길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더니 남편이 마구 화를 냅니다. 하도 내가 어이가 없어서 그랬습니다. 아니 내가 길을 가르쳐 준 것이 뭐가 잘못했냐, 그렇게 화를 낼 필요가 무엇이냐? 결국 그 날 서로 얼굴만 붉히고 약속 장소에 가지도 않고 집으로 돌아오고야 말았습니다.” 운전하다가 부부간에 싸울 일들이 참 많이 일어난다. 친구네 집에 집들이를 가는데 남편이 약도대로 운전하고 있다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이상해서 아내가 말을 툭 던졌다. “여보, 저기 저 남자한테 물어 보고 가면 안 될까?” 그러자 남편이 열을 내면서 말을 한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이 길이 분명히 맞아!” 머쓱해진 아내가 이내 입을 닫았지만 남편이 찾아간 길은 결코 분명 맞는 길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내가 또 이렇게 말을 했다. “여보, 내 생각에는 저 쪽에서 좌회전 했어야 하는 것 아니야?” 그랬더니 남편이 발끈한다. “에이, 씨.. 그렇게 길을 잘 알면 당신이 운전해!” 어이가 없어진 아내가 다시 말을 받는다. “아니, 왜 그렇게 화를 내? 그 길이 맞지 않냐고 말을 했는데 왜 그렇게 화를 내?” 열을 엄청 받은 남편이 또 이렇게 대꾸를 한다. “그냥 집에 가면 될 것 아냐?” 객관적으로 아무 말도 아니고 화를 낼 일도 아닌 상황이지만 남자가 이렇게 열을 내는 대는 다 이유가 있다. 우선 남자들은 아내가 자기 가정의 일을 다른 남자에게 부탁한다는 것을 참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 부부가 가야할 길을 다른 남자에게 물어 본다는 것은 자신의 자존심을 엄청나게 상하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내가 길을 가는 다른 남자에게 “여기 저기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라고 묻게 되는데, 이 말은 남편은 이렇게 받아들인다. “우리 남편이 무식해서 잘 몰라서 그러는데요, 길 좀 가르쳐 주실래요?” 그러니 남편이 열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남자들은 운전하고 가다가 절대 길을 물어 보지 않는다. 물론 자기 혼자만 있을 때는 물어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자가 있을 때는 절대 물어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자가 운전할 때는 아무데서나 차를 세우고 아무 남자나 붙들고 길을 물어 보는 습성이 있다. 그것이 남녀의 차이이다. 뿐만 아니다. 남자들은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살아간다고 말한다. 그런데 아내가 자신에게 뭔가 충고를 하거나 권면의 말을 할 때 객관적으로 보면 아주 좋은 말인데도 남자들은 그것을 잔소리라고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아내가 자신을 믿지 못하고 온전히 의지하지 않는다고 일방적으로 생각해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들은 아내가 무슨 말만 하면 화를 내고 오히려 청개구리같이 반대의 길을 가 버린다. 운전하고 가다가 남편이 길을 헤 맬 때 “여보, 좌회전 하라니까!” 하고 아내가 말을 하면 그리 안 해도 좌회전 하려고 했던 남편은 나중에 어떻게 되든지 간에 절대 좌회전 하지 않는다. 일단은 우회전부터 해 보고 나서 생각한다. 그것이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또 싸우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쪽으로, 저쪽으로”라고 말하는 아내의 잔소리가 듣기 싫게 되는 것이고 괜히 혼자서 열 받아서 그냥 집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이런 남자들의 속성을 반영하는 재미있는 유머가 있다. 왜 모세가 광야에서 40년을 방황했을까? 그것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남자들이여, 웃으면서 정신 차리기 바란다. 남자는 왜 물건 찾는 것을 어려워할까? “제 남편은 물건을 그렇게도 못 찾아요. 바로 옆에 있는 물건도 못 찾아서 꼭 나를 불러요. 냉장고에 있는 물건 좀 갖다 달라 그랬을 때 제대로 찾아 준 적이 거의 없어요. 정신을 어디에다 두기에 그렇게 물건을 못 찾는지 모르겠어요. 애정이 식어서 그런 것은 아닌가요?” 많은 아내들의 호소중의 하나가 남편들이 물건을 잘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남편이 정성을 다하지 않고 대충 대충 자신의 말을 듣고 행동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하게 되고 그럴 때마다 섭섭해진다고 호소하기도 한다. 정말 남편이 그렇게 정성을 다하지 않기 때문에 바로 옆에 있는 물건도 잘 찾지 못하는 것일까? 남자가 물건을 잘 찾지 못하는 데는 정성이나 사랑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우선 여자들은 태초에 둥지를 지키는 사명을 가지고 창조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은 시야가 아주 넓다. 어느 정도 넓은가 하면 코를 중심으로 해서 좌로 45도, 우로 45도, 위로 45도, 아래로 45도 정도는 그냥 한 눈에 다 들어오게 되어 있다. 그러니 냉장고 문을 열게 되면 무슨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금방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남자는 그렇지 않다. 원래부터 남자는 시야가 좁다. 남자는 원래 창조 시부터 안구(눈동자)가 여자보다 훨씬 크다. 그렇기 때문에 먼 거리를 쳐다 볼 수 있는 터널 시야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멀리 있는 것을 보는데 훨씬 적합하다. 꼭 망원경과 비슷하다. 망원경은 멀리 있는 것은 잘 볼 수 있지만 대신 주변 근처는 보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직선으로 코앞에 보이는 것만 잘 볼 수가 있다. 당연히 물건을 찾을 때도 눈이라는 레이더를 통해 한 눈에 파악한 다음 물건을 찾는 것이 아니라 바로 코앞에 있는 물건만 잘 보기 때문에 결국 눈을 물건에 맞추어야만 한다. 그래서 남자들은 물건을 찾을 때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찾고자하는 물건과 남자의 눈이 바로 앞에 마주치지 아니하면, 다시 말해서 조금이라도 각도가 빗나가면 그 물건의 존재를 찾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내들은 물건을 잘 찾지 못하는 남자들의 답답함을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 바로 코앞에 넥타이를 두고서도 “여보, 넥타이 어디 있어?”라고 묻는 것이 남자이다. 그럴 때 대부분의 여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아니, 바로 앞에 있는 물건도 그렇게 못 찾아요? 당신 두 눈을 어디다 두고 사는 거예요?” 그럴 때 남자는 또 한 번 비참해진다. 아내들이여! 남자들이 정신을 어디다 두기 때문에 물건을 못 찾는 것이 아니다. 더불어 내 남편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남자들의 공통적인 특성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얼마 전의 일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새로 입을 바지를 찾느라고 옷방을 다 뒤져도 내가 찾고자 하는 바지를 찾지 못했다. 무려 10여 분을 투자했음에도 말이다. 그래서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그 바지 어디 둔지 몰라? 혹시 세탁소에서 안 찾아 온 것 아니야?”그런데 그 말을 듣고 옷방으로 들어간 아내는 단 30초도 안되어서 그 바지를 찾아 가지고 왔다. 그리고 하는 말. “나는 왜 쉽게 찾는데 당신은 그렇게 못 찾을까?” 나는 그 날 아침 할 말이 없었다. 그것이 남자이다. [가정클리닉]남자와 여자 무엇이 다른가? 3 추부길 남자는 왜 한눈파는 것을 자주 들킬까? “요즘 내 남편이 이상해요. 지난번에도 백화점 갔을 때 자꾸 지나가는 여자들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거예요. 저하고 팔짱끼고 길을 가다가도 괜찮은 여자들만 지나가면 또 한 눈을 팝니다. 그 순간 옆에 서 있는 제가 얼마나 비참해지는지 몰라요.” 부부간에 자주 싸우는 주제 중의 하나가 남편이 자주 한눈을 판다는 것이다. 그럴 때 마다 아내 스스로 자신의 존재 자체가 비참해지면서 대판 싸우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한 눈을 팔았던 남편은 억울하다는 표정이고 그렇다고 내가 바람 피운 것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자신을 무시해도 되냐고 하소연한다. 한번은 백화점 안에서 아내가 소리소리 지르면서 “어디다 눈깔을 팔아?”하고 소동을 지르는 바람에 창피하여 혼났다고 말하는 남편도 있었다. 왜 남자들은 이렇게 한 눈 파는 것을 아내에게 자주 들키는 것일까? 또 그렇게 한 눈 파는 것이 영적인 면하고 관계가 있을까? 곧 새벽기도를 안했기 때문에(?) 그러는 것일까? 우선 남자들은 저 멀리 있는 것은 잘 찾지만 직선거리 앞에 있는 것 밖에 보지를 못한다. 그만큼 주변 시야가 좁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자들에게는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물건을 잘 못 찾는 것도 그렇고 또 멋있는 여자가 지나가게 되면 남자는 반드시 고개를 돌려야만 그 여자가 지나가는 것을 다 볼 수가 있다. 그러니까 그 여자가 자신의 시야를 벗어나기 까지 고개를 45도 내지는 90도 정도까지 돌려야만 그 여자를 자신의 눈에 담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아내에게 어떻게 안 들킬 수가 있겠는가? 아내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옆에 있음에도 그렇게 한 눈을 파는데 자신이 없을 때는 얼마나 여자들에게 홀려서 침을 흘리게 될까를 생각하니까 한심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한 것이다. 아내가 노발대발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남편의 입장에서도 억울하고 분하다. 자신이 뭐 외도를 한 것도 아니고 단지 한번 쳐다봤을 뿐인데 타락한 남자로 취급하니 속 터지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한 눈 판 것을 잘했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속으로만 이렇게 다짐한다. “두고 보자!” 그렇지만 여자들이여! 사실 한 눈은 여자들이 더 많이 팔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사실이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들에게 들키지 않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여자들은 좌우상하 45도뿐만이 아니라 180도까지 시야에 들어오는 광폭의 눈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남자들하고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그래서 여자들은 멋있는 남자가 지나가도 고개를 구태여 돌릴 필요가 없다. 그저 앞만 쳐다보고 있는 듯 하지만 지나가는 남자를 끝까지 쳐다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남편에게 들킬 염려가 없다. 그런데 남자들은 자신이 고개를 돌리니까 아내도 당연히 그럴 거라고만 생각한다. 당연히 고개를 돌리지 않는 아내를 의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여자들이여! 남자들이 한 눈 파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라. 남자들이 그렇게 한 눈을 파는 것은 단지 본능적인 행동일 뿐이다. 그 여자와 어떻게 해 볼까하는 그러한 음흉함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여유를 가지라. 이렇게 해 보면 어떨까? 남편이 지나가는 여자에게 고개를 돌려가며 쳐다보고 있다. 그리고 다시 고개가 정면으로 돌아오는 그때까지 아내는 인내를 가지고 그저 기다리라. 그리고 나서 이렇게 말하라. “다 봤어요? 이제 갑시다!” 이렇게 자신감 있고 여유 있는 아내가 멋있는 여인이다. 운전하면서 립스틱을 바르는 여자 “얼마 전 아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친구네 집에 가는데 아니 운전하면서 버젓이 립스틱을 바르는 게 아닙니까? 제가 깜짝 놀라서 그러다가 사고 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고 야단 쳤더니 자신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나요! 아내의 운전 습관이 잘못된 것 아닙니까?” 참 별 일로 다 싸운다고 그럴지 모르지만 남자들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이다. 아내의 그러한 행동이 걱정되기도 하고 염려가 되기 때문에 그럴 것이리라. 그러나 남편들이여! 안심을 하라. 남자들은 담배 피우다가 사고를 내는 경우가 가끔 있지만 여자들은 립스틱 바르면서 운전을 해도 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것이 남자와 여자의 차이이다. 남자는 좌뇌와 우뇌 사이를 연결하는 조직(뇌량)이 여자들보다 훨씬 더 가늘다. 곧 여자들의 그것이 남자들보다 10% 이상 두껍다. 한마디로 양쪽의 뇌 사이를 연결하는 광통신이 남자들보다 훨씬 발달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양 쪽 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남자들보다 30% 이상 원활하다. 당연히 여자들은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하는데 있어서 별로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곧 여자들은 요리를 하면서도 동시에 친구들과 수다를 아주 잘 떤다. 그러나 똑같은 상황이라면 남자들은 요리를 잠시 멈추든지, 전화를 나중에 하던지 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만 한다. 그만큼 양 쪽 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자들은 운전을 하면서도 여우같이 화장을 잘한다. 거기에다가 운전대 위의 거울까지 쳐다보면서 말이다. 곁에 있는 남편이 불안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남자들은 핸드폰 받다보면 좌회전, 우회전을 깜박하고 지나칠 때가 한 두 번이 아닌데 그것을 생각하면 여자들의 그러한 행동을 보면서 아찔해 지는 것이다. 그러한 남편의 단점은 집안에서 자주 일어난다. 남편들은 신문을 쳐다보고 있으면 아내가 옆에서 무슨 말을 해도 건성 건성으로 대답은 할지라도 무슨 말을 들었는지 기억을 해내지 못한다. 오직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내들은 속이 상한다. TV보는 남편에게 이것저것 부탁을 하고 다짐도 받았지만 도대체 그러한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내가 항의를 한다. “여보, 왜 그것 안 해 주세요?” 그럴 때 남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언제 당신이 나한테 그런 말을 했어?” 그러니 어찌 여자들이 속 터지지 아니하겠는가? 이것이 불행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남자들의 두뇌는 각각의 능력에 따라 구획이 정해져 있다. 그래서 한 번에 딱 한 가지 일 밖에 할 줄을 모른다. TV보는 남편에게 이것저것 부탁해 보라! 남편은 당연히 화를 내게 될 것이다. 지금 남편이 화를 내는 이유는 간단하다. 아내가 옆에서 잔소리를 하니까 TV 내용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내는 그런 남편의 속도 모르고 더 소리를 크게 지르면서 뭐라고 잔소리를 한다. 그러니 싸우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렇지만 남편들이여! 그렇게 양쪽 뇌가 원활한 아내들도 단점이 있다. 양 쪽 뇌를 동시에 쓰다보니까 실수를 많이 한다. 머리로는 좌회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입으로는 ‘우회전’하고 외친다. 그래서 남자들에게 핀잔을 자주 듣게 되는 것이다. 아내들이여! 핀잔을 들었는가? 그래서 남편에게 복수하고 싶으면 이렇게 해 보라! 남편에게 못을 박아 달라고 그런 다음 한참 망치를 두들기고 있을 때 갑자기 말을 걸어 보라! 그러면 틀림없이 그 망치로 남편은 손을 치게 될 것이다. 면도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아니, 그렇게 좋은 방법이.....(?) 제 5화 말 싸움하면 이길 수가 없어요! “아내하고 말싸움을 하다보면 갑자기 내가 궁색해 지기도 하고 어쩐지 손해 보는 느낌을 가진 적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싸움을 시작할 때는 분명히 내가 명분도 있고 당당했는데 시간이 길어질수록 어쩐지 내가 지고 있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까 ‘그만해’ 그러면서 나 스스로 싸움을 중단시킬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 말싸움해서 아내를 이길 수 있는 남자가 있다면 그 남자는 인간문화재에 등재될 자격이 충분히 있는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말은 곧 말로 여자를 이길 수 있는 남자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말이다. 아무리 말을 잘 하는 남자가 있다 할지라도 여자들의 달변과 끊임없는 수다에는 이길 장사가 없다. 그래서 남자들은 아내하고 싸우다가 말이 막히면 몸으로 말을 하려고 한다. 그것이 바로 폭력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왜 그럴까? 남자와 여자의 뇌 구조를 알게 되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남자들의 경우에는 감정 기능이 오른 쪽 뇌에 있는데, 그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기능은 정반대인 왼쪽 뇌에 있다. 그런데 그 양쪽 뇌를 연결하는 뇌량(이른바 광통신으로 비유하면 좋을 것이다)이 여자의 그것보다 가늘기 때문에 서로의 정보교환이 대단히 제한적이다. 그래서 감정을 수시로 표현하기에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감정 표현에 서툴 수밖에 없다. 반면에 여자들은 감정을 다루는 영역이 양쪽 대뇌에 고루 퍼져 있다. 그러니까 당연히 이야기하면서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뇌량의 두께도 더 굵다 보니까 양쪽 뇌의 정보 교환이 남자들보다 훨씬 빠른 것이다. 당연히 남자보다 더 감정적이고 자신의 의사도 훨씬 부드럽고 자유스럽게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남자가 당할 수 있으랴! 우리나라에도 남자들 가운데 말 잘하는 선수들이 여럿 있다. 정말 구수하고 재미있게 말 잘하는 분들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 남자들을 보고 칭찬하는 것은 남자들 가운데 말 잘하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지 진짜 여자 말 잘하는 사람을 보고 나면 역시 여자가 낫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여자들 가운데 말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숨도 안 쉬고 줄줄줄 너무너무 재미있는 말들을 쏟아 낸다. 내가 들어도 그저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만큼 말하는 데 있어서는 남자들과 비교가 안되기 때문에 그 주특기를 여자들은 실컷 써 먹으려고 그런다. 물론 힘으로는 남자를 이길 수가 없기 때문에 말이라는 무기라도 제대로 활용해야 남자와 대등하게 서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자들이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자신의 비장의 무기를 너무 함부로 쓰다보면 그 순간부터 비장의 무기는 힘을 잃고 만다는 것이다. 비장의 무기는 항상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말은 곧 남편과 싸울 때마다 그저 말싸움으로 남편을 제압하려 한다면 어느 순간부터 남편은 입을 다물고야 만다는 사실이다. 남편이 침묵으로 맞대응할 때 아내는 더욱 열 받을 수밖에 없고 스트레스의 융단폭격을 받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비밀을 안다면 여자는 말하기를 절제해야 한다. 남편을 즐겁게 하기 위한 말이라면 몰라도 남편을 잡기 위해 말로써 말을 한다면 그 말은 힘을 잃게 된다. 하나님께서 여자들에게 그러한 능력을 주신 것은 말로 남자를 대응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감정 기능이 그렇게 활발한 것은 그러한 기능으로 이 세상을 부드럽고 화평하게 만들기 위해 주신 것이다. 원래 여자는 감정에 사로잡혀 사랑을 꿈꾼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눈물섞인 감동의 언어에 남자들은 항복하고야 마는 것이다. 그러한 능력을 남편과 자녀와의 관계에 활용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 아내로 인해 가정의 분위기가 따스하고 화목하게, 그리고 분위기 있게 변해가는 것이다. 잊지 말라. 세상은 남자가 지배하지만 그 남자는 여자가 만든다는 사실을... “함부로 내뱉는 말은 비수 같아서 사람의 속마음을 깊숙히 찌르나, 슬기로운 이는 하는 말마다 고통속에 헤매는 이의 용기를 북돋운다.(잠언 12장 18절, 현대인의 성경)” 제 6화 존재 자체에 대한 칭찬을 좋아하는 남편 “생전 부엌에도 들어가지 않던 남편이 어느 날 식사를 다한 다음 밥그릇을 싱크대에 갖다 놓더라구요. 그래서 당신의 그런 행동이 너무너무 고맙다고 그랬더니 그 다음 날은 식탁을 다 치워 주는 게 아니겠어요? 그때 제가 깨달았던 것이 있습니다. 남편을 변화시키는 방법은 잔소리가 아니라 칭찬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남자들은 이 세상에 태어 날 때부터 인정받고 격려받기 위한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말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남자들은 자신이 훌륭하지도 못하고 무능력한 존재로 여겨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힘과 능력을 키우는데 인생의 목적을 둔다고 말을 한다. 당연히 남들에게서 최고라고 인정받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그래야 존재 자체의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남자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존재 자체의 인정은 가정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남자들은 우선 자기 집안에서 자기가 너무나도 소중하고 쓸모가 있는 존재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인정받고 싶어 한다. 특별히 아내로부터 그러한 인정을 받고 싶은 본능적 욕구가 있다. 남편은 아내로부터 이 세상 최고의 남자가 되기를 원한다. 이것은 경제적인 것 뿐만이 아니라 성(性)적인 부분, 가정에서의 위치 등등 모든 부분에서 아내에게 최고의 남자로 여김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내가 엄지 손가락을 내 밀면서 “당신이 최고”라고 말해주면 흐뭇해 하는 것이다. 부부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성생활을 하고 나서 아내가 “당신 때문에 내가 너무 행복하다”고 말하면 그 순간 남편들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끼면서 흐뭇해한다. 그런데 아내가 아무 말도 없으면 자신의 가치를 확인받고 싶어서 아내에게 묻는다. “어땠어?” 남편들의 그 질문에 대한 의미를 아내들은 아는가? ‘당신이 최고’라는 말을 구걸받고 싶은 남편들의 그 간절함을 아내들은 과연 아느냐는 것이다. 남편은 아내로부터 최고라고 인정받으면 그 순간부터 자신의 몸을 던지게 된다. 그래서 아내에게 더 많은 것을 주고 싶어하고 자신의 가슴을 쫙 벌려 아내를 품에 안으려고 한다. 그런데 아내가 시큰둥하면 그 순간 아내로부터 사랑을 거두어 버린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 주는 여자를 찾아 다닌다. 그래서 문제가 생겨나는 것이다. 여자들은 이 점을 이해해야 한다. 남자들은 아내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게 되면 그저 어떤 일에 대해 인정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삶의 의미, 존재의 의미까지 잃어버린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엄청난 비밀을 안다면 아내들은 그 비밀의 열쇠를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남자들을 변화시키는 방법은 아주 단순하다. 그것은 내가 변화시키고자 하는 남자를 칭찬해 주면 된다는 것이다. 아내가 제일 못마땅해 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부엌 근처에는 아예 들어오지 않고 투정만 하는 남편이 있다고 치자. 이 남편을 변화시키는 방법은 간단하다. 어쩌다가 남편이 부엌 근처라도 오면 그 순간 즉각 아내가 반응하면 된다. “당신이 부엌에서 나와 함께 있다니, 내가 너무나도 행복해요.” 그 말을 들은 남편은 그 다음부터 부엌에 자주 나타나게 될 것이다. 어쩌다가 숟가락을 들어서 뭔가를 해 주면 또 다시 집중적으로 칭찬하라. 아내가 좋아하는 것을 본 남편은 스스로에 대한 가치감과 존재감을 느끼면서 세상을 살아갈 에너지를 얻게 될 것이다. 잊지 말라. 남자는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 주는 사람에게 목숨을 건다는 사실을.... 9화 : 예쁘다고 말해주면 어쩔 줄 모르는 아내 “아내가 미장원에 다녀왔길래 ‘어, 예쁘네. 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얼마나 호들갑을 떠는지요. 그러면서 무엇을 먹고 싶냐? 저녁 식탁을 신경 좀 써야하는데…하면서 너무나도 좋아하더라고요.” 남자들이 존재 자체에 대한 칭찬을 좋아한다. 그러면 여자들은 특별히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자신의 마음 문을 확 열게 된다. 그래서 아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도록 만들어 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남편들이 착각을 한다. 자신이 아내를 사랑하고 있으니까 당연히 아내도 그렇게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천만의 말씀이다. 중요한 것은 진정으로 아내가 그러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동안의 많은 경험을 보면 남편들은 당연하게 생각하는 반면, 많은 아내들은 남편이 제대로 사랑해 주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특별히 남자들은 아내들의 그러한 욕구에 대해 너무나도 무관심하다. 그래서 잘 채워주지를 못한다. 그렇게 정서적 욕구가 메말라 있으니까 중년기의 우울증도 찾아오게 되는 것이다. 아내들은 이렇다. 남편이 함께 시간을 보내 주면서 대화하는 것을 너무나도 좋아한다. 특별히 아내들은 남편이 자신의 생김새나 입는 옷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면 너무나도 행복해한다. 문제는 남자들은 그러한 면에 대해 너무나도 둔감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남자들은 이웃 집 여자들의 머리 모양새가 바뀐 것은 얼른 알아채지만 자신의 아내가 뭐가 바뀐 것에 대해 너무나도 둔감하다는 것이다. 아내가 오랜만에 미장원에 가서 머리 손질을 하고 왔다. 지금 아내가 바라는 것은 딱 한가지이다. 집에 들어 온 남편이 자신을 바라보면서 “어, 머리 모양이 바뀌었네. 예쁘네!” 그 말을 고대했지만 집에 들어 온 남편은 한번 힐끗 보더니 이내 거실로 들어가 버린다. 그리고 TV 리모컨을 들고 여느 때처럼 쿡쿡 누르는 데 여념이 없다. 그 모습을 본 아내가 서서히 열을 받는다. 그래서 남편 앞에서 머리를 흔들어 본다. 제발 내 머리 좀 봐달라는 신호이다. 그런데 남편은 정작 이 여자가 왜 여기서 머리를 흔드는지 모른다. 그래서 남편은 이렇게 말을 한다. “이봐, 안 보여! 저리 비켜!” 아내가 열을 받을 수 받게 없도록 만든다. 그 날 저녁 분위기는 얼음덩어리처럼 차가워진다. 남편들이여! 아내들을 칭찬하라! 그것도 남자와 같이 존재에 대해서라기보다는 사소한 것에 칭찬을 아끼지 말라는 것이다. 밥을 먹으면서도 당신이 해주는 밥이 제일 맛있다고 말하라! 그러면 그 다음 날 식탁은 더욱 진보된다. 나이가 먹어가면서 얼굴에 기미도 끼고 주름살도 늘어가지만 그러한 얼굴을 보면서 남편이 이렇게 말해 주라! “당신 얼굴은 나이가 들면서 더욱 성숙해 보여! 멋있어!” 나이가 들어가는데 얼굴이 뭐가 멋있겠는가마는 남편의 그러한 말 한마디에 날마다 거울 보면서 우울해하는 아내의 가슴을 펴게 만든다. 뱃살 때문에 걱정하는 아내가 있는가? 그래서 다이어트 해야 한다고 고민하는 아내가 있는가? 그렇다면 이렇게 말해주라! “나는 몸매가 약간은 통통한 여자가 훨씬 좋아! 살 빼지마. 나는 당신의 지금 그대로가 좋아!” 그 말 한마디에 아내의 마음은 그저 행복해 진다. 나는 그래서 나의 아내에게 자주 칭찬해 준다. 가끔 쓰는 말이 바로 이것이다. “당신 뭘 믿고 그렇게 예뻐?” 아내의 입이 찢어진다. 그러면서 이렇게 대꾸한다. “당신 믿고….” 이 말을 들어 봤는가? “여자를 칭찬하면 죽은 여자의 심장도 뛴다.” 10화 : 아내의 변신에 대해 둔감한 남편 “남편은 도대체 나한테는 관심이 없어요. 마리가 바뀌었는지, 옷이 새것인지 아닌지 전혀 몰라요. 칭찬 좀 해 주면 어디가 덧나나요? 아마도 애정이 식어서 그런 것이겠지요. 그런 남편하고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나도 한심해요.” 결혼하고 2-3년만 지나면 아내들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대표적인 하소연 중의 하나이다. 연애할 때는 머리 모양이나 심지어 립스틱 색깔까지도 그렇게 관심이 많던 남편이 결혼하면서부터 그저 무관심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그러니 열 받지 않을 아내가 어디 있겠냐고 말한다. 그런데 아내들이여! 그 점에 대한 남자들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 그것이 위안이 될지, 아니면 더 화나게 될지 모르겠다. 실은 이렇다. 한마디로 남자들은 이웃 집 여자의 머리 모양 바뀐 것은 금방 아는데 자신의 아내가 변신하는 것에 대해서만 유독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아내들이여! 열 받지 않는가? 아니, 이 세상에서 가장 관심을 가져 주어야 할 아내에게는 정작 무관심하고 왜 이웃 집 여자들에게는 관심이 있는 것일까? 왜 그럴까? 예를 들어 보자. 아내가 오랜만에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하고 왔다. 이 아내가 가장 바라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아내가 그리는 남편의 모습은 이렇다. 남편이 귀가하면서 아내를 힐끗 본다. 그러면서 얼굴에 미소를 띠운다. 그리고 칭찬을 해 준다. “야, 머리 멋있는데…. 당신 그러고 나가면 미혼인지 알겠다.” 바로 이런 상상을 하면서 괜히 즐거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밤늦게 들어 온 남편의 리얼한 모습은 이렇다. 일단 한번 힐끗 본다. 그때 아내는 남편의 행복한 반응을 기대한다. 그러나 남편은 자신의 머리를 봤는지 못 봤는지는 모르나 아무 말 없이 거실로 간다. 양복을 휙 벗어 재끼더니 아주 자연스럽게 리모컨을 치켜들고 TV를 보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아예 넋을 잃는다. 약간 열이 나기 시작한 아내가 TV보는 남편 앞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TV를 적당히 가리도록 앉는다. 아내는 다시 한 번 내 머리를 봐 달라는 적극적인 의사표시였다. 그러나 남편은 그 아내의 마음도 모른 채 이렇게 말을 한다. “어이, 머리 비켜, 텔레비전 안 보여!” 이 말에 아내의 심장은 부글부글 끓게 된다. 좀 더 아내들 속 터지는 소리를 한번 해 볼까? 의외로 많은 남편들이 10년 넘게 산 아내의 구체적인 얼굴 모양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면 실감이 나는가? 연애할 때는 그렇게도 뚫어지게 쳐다봤지만 막상 결혼하게 되면 별 관심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매일 보는 얼굴이지만 그저 대충 보고 산다는 것이다. 남자들은 그렇게도 이미 자기 것(?)이 된 아내에 대해 무관심해진다는 것이다. 내 남편만 그러는 게 아니라 세상의 거의 모든 남편들의 공통적인 현상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그렇다면 남자들은 왜 그럴까? 왜 자기 것(?)에 대해서는 그렇게 무관심하고 남의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질까? 다시 한 번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지만 아내를 그토록 서운하게 만드는 남편의 본성 중의 하나가 성취 지향적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아내를 위로하기 위한 설명을 한다면 이미 아내는 성취가 된 존재이고, 그 외의 모든 여자들은 자신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불어 남편은 이미 다른 목표를 향해 돌진하고 있기 때문에 성취 대상에 온 에너지를 쏟아 버림으로 인해 그 나머지 것들에 대해서는 대충 대충 보고 살아간다는 점이다. 그 성취 대상이 승진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인생에 있어서 다른 정복 목표일 수도 있다. 거기에 올 인하고 있으니 어찌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 올 수 있으랴! 남편들이여! 아무리 남자의 본성이 그렇다 할지라도 제발 자기 것에만 관심을 쓰라! 그렇게 하도록 노력을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남의 것에 더 이상 눈 돌리지 말라! 아내의 피눈물을 보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아내들이여! 아직 기분이 풀리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다음에 이어질 글을 기대해 보라! 제11화 결혼하고는 변해 버린 남편 “결혼 전만 해도 그렇게 무드 있던 남편이 결혼하고는 완전 딴판 이예요. 왜 이렇게 변해 버렸는지 모르겠어요. 결혼 전에는 생일날 정말 황홀하게 해 주었는데 지금은 케이크 하나 달랑 사다주고는 끝 이예요. 벌써 애정이 식은 것일까요?” 남자는 결혼 전에는 그야말로 저돌적인 황소같다. 그래서 사랑하는 연인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전혀 교회에 나가지 않는 남자라도 사랑하는 연인이 40일 새벽 기도회에 빠지지 않고 나온다면 결혼해 주겠다고 했다 치자. 이 남자는 그야말로 코피를 쏟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거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교회에 열심이던 남자가 결혼한 후에도 그렇게 뜨거운 신앙을 보여줄 수 있을까? 대답은 이러하다. 전혀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왜 그럴까? 이 남자가 40일 새벽기도에 하루도 빠지지 않은 이유는 그 여자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이지 결코 하나님을 믿는 신앙 때문에 그러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나 일단 결혼하고 나면 남자는 태도를 180도 바꾸어 버린다. 한마디로 이미 내 것이 된 순간부터는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는 또 다른 성취 목표를 향해 돌진해 가는 그 남자들의 속성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남자들의 가장 중요한 특성 중의 하나가 성취 지향적이라는 점이다. 남자는 성취 목표가 있어야 세상을 사는 맛을 느낀다. 그 성취 지향을 향해 달려갈 때같이 흥분되고 신나는 일은 없다. 어떻게 보면 그 목표가 있기에 인생도 사는 의미를 갖게 된다고 할 정도이다. 문제는 사랑도 그 범주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다. 남자는 성취 목표를 소유하기 위해 온 몸을 던진다. 그리고 온갖 것으로 자신을 포장한다. 그래서 자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평소에 차를 마셔도 분위기라고는 전혀 없던 사람이 연애를 할 때 되면 모두가 시인이 되고 센티멘털한 감성 청년이 된다. 음악을 들어도 분위기 있고 감정이 있는 그런 것만 골라 듣는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어찌 그리 이 가사가 자신의 마음과 같은지 모르겠다고 말이다. 문제는 그러한 감성적 접근에 여자들은 마음을 빼앗겨 버린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되면 평생 분위기 있는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는 분위기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다. 아무데서나 코를 탁탁 풀고 커피도 ‘다방 커피’ 일색이다. 종이 컵 하나면 족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내는 속았다는 느낌도 들고 자신의 인생이 한심하게 느껴진다. 왜 그럴까? 한마디로 결혼하기 전의 남자는 제 정신이 아니다. 그저 멋있고 화려하게만 보이려고 애를 쓰는 가면 족이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다 남자의 낭만은 결혼을 위한 낭만이지 그 사람의 본성이 낭만적이어서 그런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남자는 결혼하게 되면 그 즉시로 현실로 돌아간다. 다시 말해서 제 정신이 들게 된다는 것이다. 그 날로부터 구름 위에서 내려와서 땅바닥을 걷게 된다는 점이다. 그것이 남자이다. 남자가 결혼 전과 결혼 후가 그렇게 다른 중요한 이유가 바로 성취 지향적이라는데 원인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여자들은 좀 더 자극적인 말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이 말이다. “이미 잡은 물고기에는 더 이상 미끼를 주지 않는다.” 성취 지향적인 남자들은 이미 성취를 한 자신의 여자에게는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고 이제는 새로운 성취 대상을 향해 온 몸을 던진다. 그래서 직장에서, 아니면 인간관계에서, 아니면 또 다른 세상의 무엇에서 자신의 새로운 인생의 의미를 찾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그러한 남자의 변심은 우리 집 남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세상 모든 남자들의 공통적인 특성 가운데 하나라는 점이다. 그래서 여자들은 전혀 동의하고 싶지는 않겠지만 다음의 말로 마무리를 하려고 한다. “남자의 변심은 무죄이다!” 제12화 남편만 변했나요? 아내도 변했어요! “아니 나만 변했습니까? 이 여자도 변했다구요. 결혼 전에는 등산도 따라 다니고 야구장도 곧장 놀러 갔던 아내가 요즘에는 꿈쩍도 안합니다. 모두가 귀찮다는 겁니다. 아니, 벌써 아줌마가 다 된 것인지… 나 원 참.” 결혼 전과 후. 남자만 그렇게 변심하는 것일까? 그 질문에 대해서는 ‘아니다’가 정답이다. 여자도 결혼 전과 후가 확연히 구별된다. 결혼 전의 사랑에 빠진 여자는 그 이가 가자는 데는 어디든지 따라간다. 야구의 ‘야’자도 모르면서 야구장에 기꺼이 동행한다. 세 시간 가까이 야구를 본다는 것은 전혀 모르는 언어의 영화를 세 시간 보는 것만큼이나 고역이겠지만 이 여자는 끄떡없이 함께 앉아 있다. 낚시? 사랑하는 그이가 가자고 그러면 두말 않고 따라 나선다. 시간 죽이는 게 대수인가? 등산? 하이힐 신고도 따라 나선다. 지금 발이 아픈 게 대수인가? 발이 아프면 나중에는 하이힐을 들고 맨발로 걸어 다니면 되는 것이고 그것도 정 안되면 사랑하는 그 이가 어떻게 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충만하다. 그랬던 여자가 결혼하고부터는 너무나도 변해 버린다. 남편이 쉬는 날, 야구장 가자고 그런다. 그럴 때 아내는 이렇게 답변한다. “저녁에 뉴스에 다 나올 텐데 뭐 하러 그런 데를 가? 하나도 재미없는데….” 등산 가자고 말하는 남편에게 아내는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어차피 내려올 것. 뭐 하러 올라가? 다리 아프게?” 그 말을 들은 남편은 속이 확 뒤집힌다. “아니, 이 여자가 이렇게 변해도 되는 거야? 결혼하기 전에는 그렇게 열심히 따라다니더구만….” 남편들이여! 괜히 열 받지 말라. 열 받아 봤자 손해 보는 것이 바로 그대들이다. 열 받기 전에 여자들이 왜 그런지 원인부터 분석을 해 보자. 한마디로 여자들이 결혼 전에 전국 어디든지 남자를 따라다녔던 이유는 등산이 좋고 낚시나 야구가 좋았던 것이 아니다. 그저 단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사랑하는 남자하고 함께 있고 싶어서 그렇게 따라 다녔던 것이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어도 배가 불렀다. 그냥 행복했다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팔짱까지 끼고 가끔은 손도 잡고 그러니 그 얼마나 행복했겠는가?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이미 결혼을 했다. 그 말은 곧 지금부터는 구태여 남편을 따라 다니지 않아도 날마다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제 남편이 된 그 사람은 내가 그렇게 여기저기를 쫓아다니지 않아도 언제든지 둥지로 확실하게 돌아 온다. 그 얼마나 위안을 주는 일인가? 여자들은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과 둥지를 틀었다는 것이 엄청난 위로와 함께 평안을 가져다준다. 이런 상황에 야구장에는 뭐 하러 가겠는가? 등산? 그저 지겨운 단어일 뿐이다. 그래서 여자들은 결혼하게 되면 남편과 여가를 함께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남편들은 그렇게 변한 아내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생각한다. “이 여자가 벌써 아줌마의 근성을 닮아가고 있구나! 그저 퍼져 집에 눌러 앉아 있다니…. 참으로 한심한지고….” 문제는 그런 아내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제 이 여자에게서 싱싱한 모습, 풋풋한 모습은 사라졌구나!”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아내들이여! 남편만 변한 게 아니다. 그 대들도 변한 것이 많다. 그 점을 잊지 말라! 더불어 남편들을 실망시키지 않고 싶은가? 그렇다면 결혼 후에도 남편과 여가 시간에 자주 동행하라. 자칫 배드민턴 치고 등산 자주 하다가 우연히 만나는 사람이 성취 목표로 변해 버린다면 그것은 참으로 골치 아픈 일이 아닌가? 자기 것을 확실히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남편이 가자고 하면 무조건 따라 나서는 것이다. 그냥 생각을 바꿔서 나도 남편의 여가를 즐기겠다고 생각하면 만사가 OK이다. 세상의 남자들은 마음만큼은 항상 20대인 아내를 원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13화 여자는 분위기에 약하다구요? “퇴근해서 집에 갔더니 아내가 갑자기 차 한 잔을 하자고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차는 무슨 차? 밥이나 먹자’고 그랬더니 아내가 그러는 겁니다. ‘당신은 도대체가 분위기가 없어! 당신하고 차 한잔 하자고 말한 내가 잘못이지!’ 그러는 겁니다. 이 여자가 갑자기 왜 그러는거지요?.” 남자들이 정말 모르는 것 중의 하나가 여자의 마음이다. 특별히 여자의 감성은 도대체 이해하기 힘든 대목중의 하나이다. 여자 나이 50이 넘어도 그 마음 속에는 18살의 청춘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을 알 턱이 없다. 그러니까 소녀적의 가슴 부푼 시절, 세상이 모두 자기 것 같고 꽃 망울을 보면 어쩐지 시가 금방 입에서 터져 나올 것 같기고 하며, 사랑하는 님의 얼굴을 보면서 차를 한 잔 하고 싶은 그 낭만. 중년의 남자가 어찌 그 마음을 알랴? 아내는 연애 시절에 남편이 아주 분위기가 있었던 것을 평생 잊지 못한다. 그래서 나이가 먹어도 그렇게 분위기를 찾을 것으로 생각을 한다. 그런데 그것은 대단한 착각이었다는 것을 아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연애 시절의 남자 모습은 그 남자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 가면을 쓴 허구라는 것을 여자들은 결혼후 2-3년이 지나면 다 알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의 로맨스적 분위기를 다시한번 맛보고 싶은 충동이 자주 일어나는 것을 억제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에게 또한번 시도를 해 보지만 이번에도 역시 분위기만 썰렁해지고 마는 것이다. 형광등 다 끄고 촛불 켜 놓고 집에서 분위기를 살려 차 한 잔 하자고 그러면 남자들은 우선 그 분위기를 아주 어색해 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됐다. 밥이나 먹자!” 그럴 때 아내는 또한번 절망에 빠진다. 그렇다면 남자는 왜 이렇게 무드를 모를까? 남자는 감정 기능의 뇌가 오른쪽에 위치해 있는데 반해 말로 감정을 표현하는 기능은 정 반대인 왼쪽 뇌에 있다. 그런데 이 양쪽 뇌를 연결하는 뇌량이 여자보다 훨씬 가늘다. 그러다보니까 정보 교환이 원활치가 못하다. 그래서 남자들은 논쟁을 하더라도 감정적으로 잘 흥분되지 않고, 다른 사람의 고민을 들어주더라도 감정적으로 공감하기보다는 이성적으로 해결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당연히 남자들은 분위기를 찾는 아내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꼭 그렇게 해야만 대화가 되고 마음 문을 연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자들은 감정을 다루는 영역이 양쪽 뇌에 다 펴져 있기 때문에 감정 표현이 능수능란하고 수시로 감정 모드로 들어가기가 쉬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갑자기 흩날리는 꽃잎을 보면서 마음이 슬퍼지기도 하고, 비가 오는 모습을 보면서 우울에 빠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그런 연고로 감정적 표현도 잘하고, 감정에 사로 잡혀 사랑을 꿈꾸게 되는 것이다. 그만큼 양쪽 뇌의 정보교환이 남자들보다 훨씬 더 잘되기 때문에 자유자재로 언어 구사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대화를 해도 여자는 감정적 대화를 많이 하지만 남자들은 큰 차, 최신의 컴퓨터, 그리고 명예와 부 같은 현실적인 대화를 더 많이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정말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 갔다. 여자들은 일단 그 분위기에 취해 있다. 그럴 때 남편이 따스한 감성의 언어를 말해주면 여자들은 너무나도 행복해 하게 된다. 이를테면 “오늘따라 당신의 얼굴이 소녀다워 보인다”든지, “당신하고 이렇게 앉아 있으니까 옛날 데이트하던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는 등의 말을 해 주면 그지없이 좋을 것이다. 그런데 남자들은 그러한 말을 잘 할지 모른다. 자신의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에게 작업을 할 때는 그런 말이 술술 나오지만 자기의 여자에게는 전혀 그렇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기껏 한다는 말이 그렇다. “어때? 이 집은 값이 좀 비싼 집이야! 내가 큰 맘 먹었다.” 남자는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는데 초점이 있지 아내의 감성적 분위기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돈 쓰고도 별 칭찬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남자들이여! 가끔은 분위기 있는 남자가 되어주면 어떠할까? 아내를 사랑한다면 이성적인 자신의 모습을 죽이고 무드파로 변신할 수도 있지 않을까? 좀 쉬운 방법을 하나 전수해 드린다면 이렇다. 아내를 자기의 여자라고 생각하지 말고 오늘 처음보는 여자라고 생각해 보라! 그리고 오늘 작업 들어간다고 생각해 보라! 그러면 놀랍게도 자신이 분위기파로 변신해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아내 역시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게 된다는 사실이다. 한번 시도해 보고 싶지 아니한가? 14화 아내마저도 경쟁상대로 여기는 남자 “아이들 노는 것을 보면 어찌 그리 남자와 여자가 다른지 모르겠어요. 남자들은 맨날 전쟁 놀이에 게임을 좋아하는데 여자애들은 병원놀이나 줄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한 것도 타고나는 것일까요?” 정말 신기한 것중의 하나가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어린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면 남자와 여자가 확연하게 구분된다는 점이다. 남자들은 혼자서 놀기보다는 팀을 형성하는 놀이를 즐기고 장난을 해도 승패가 있는 장난을 한다.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가에 대해 깊은 관심이 있다. 또 팀을 형성하게 되면 먼저 대장이 누구이고 누가 부하인가를 잘 따지게 된다. 혼자서 인터넷을 하더라도 게임하는 것을 보면 가상의 적을 만들어 놓고 누군가와 이기고 지는 게임을 즐겨한다. 그렇지만 여자들은 그렇지 않다. 여자들은 대체적으로 짝꿍끼리 작은 그룹 안에서 놀고 승패와는 상관이 없는 놀이를 한다. 그래서 줄넘기나 집짓기, 병원 놀이들을 즐기는 것이다. 그뿐 아니다. 위계질서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들끼리 명령하지 아니한다. 단지 친구일 뿐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성향이 어린 시절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나이 먹은 어른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흔적은 쉽게 발견된다. 남자들이 스포츠에 열광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그 곳에 승패가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남자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팀과 동일시되어 그 팀이 이기면 그저 어쩔 줄을 모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자들이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까? 사실은 그 동기가 약간 다르다. 남자들이 승패라는 요인이 스포츠에 빠지는 중요한 동기라면 여자들은 경기장의 분위기, 응원장의 분위기 자체에 쉽게 빠지게 된다. 그러니까 승패 그 자체보다는 열광하고 환호하며 쉽게 하나가 되는 그 분위기에 쉽게 빠져든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여자들은 TV의 스포츠 중계를 혼자 앉아서 보지는 않는다. 길거리 응원이든지 아니면 경기장에 직접 가서 즐긴다. 그러나 남자들은 혼자서 주먹도 불끈 쥐기도 하고 혼자서 관전 평도 하고 감독도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남녀의 차이라는 것이다. 그뿐 아니다. 혹시 아침에 남자와 여자들이 운동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남자들은 몇 명이 팀을 이루어서 하는 운동을 참 좋아한다. 그래서 축구를 하고 배드민턴을 해도 팀을 이루어 대항 경기를 하자고 그런다. 그런 연고로 남자들은 동호회를 만들려고 애를 쓴다. 그 동호회 안에서 또 다른 작은 팀을 만들고 대항 경기를 하려고 한다. 그 안에 여자들도 끼어 넣으려고 한다. 또 하나의 특성이 있다. 그렇게 뭔가를 만들면 반드시 회장과 총무를 뽑는다. 그런데 여자들은 남자들의 그러한 행동과는 상당히 다르다. 그저 혼자서 하는 놀이를 좋아하거나 기껏해야 둘이서 즐기는 놀이를 좋아한다. 배드민턴이나 테니스를 치더라도 남자들은 ‘몇 대 몇’을 자주 외치지만 여자들은 ‘몇 대 몇’은 별로 관심이 없다, 그냥 지금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좋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상대방은 나와 함께 운동을 즐기는 동료이지 경쟁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자들은 운동을 하는 상대자는 그저 경쟁자일 뿐이다. 거기에다가 ‘몇 대 몇’이라는 게임이 이루어져야 남자들은 운동하는 것도 신이 난다. 그리고 승부욕이 생기면서 운동에 더욱 깊게 빠져드는 것이다. 그런 마음을 어찌 여자들이 이해를 할까? 부부가 배드민턴을 한다. 거기서도 남자들은 아내하고 ‘몇 대 몇’을 찾는다. 그러면서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마누라한테 질 수는 없지!”. 자기 아내에게 배드민턴 이겨서 무슨 좋은 일이 있을까마는 남자들은 아내마저도 경쟁 상대로 삼는다. 그리고는 아내를 이겼다고 혼자서 신나한다. 그런 모습을 보는 아내의 마음이 과연 어떠할까? “아이구, 이 남자는 언제 철이 들까?” (추부길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