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부길 며칠전 미국 집회를 갔을 때, 이민 생활을 30년 넘게 하셨다는 목사님의 말씀이 귀에 쟁쟁하다. 처음 미국 땅에 도착했을 때는 ‘이제 이 곳이 나의 고향이 될 것이다’고 생각을 하고 열심히 살아왔는데,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나는 미국 사람이 아니라 한국 사람’이라는 생각이 더욱 가슴을 지배하며 날이 갈수록 묘하게도 한국 땅을 그리워하는 향수병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렇게 오래 살았으면 이제 미국 땅이 고향이 될 만도 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고향은 역시 한국이라는 것이다.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라나는 교포 2세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자라나면서부터 완전한 미국인으로 자라난다. 생각도, 삶의 스타일도 완전한 미국인이다. 그런데 성인이 되면서 자신은 완벽한 미국인은 아니라는 것을 서서히 깨달아가게 되고 한번이라도 모국 방문을 하고 나면서부터는 자신의 뿌리를 마음 깊이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도 알 수 없는 고향을 향한 마음이 찾아든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인간의 마음에 원천적으로 남아 있는 본향을 향하는 그리움은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뿌리깊이 남아서 나의 마음을 자극한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 보았다. 마찬가지이다.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알게 모르게 본향을 향한 향수가 있다. 그러나 그 향수를 인정하고 그 본향을 드러내 놓고 사모한다면 그 향수가 인간의 삶을 기름지게 할 수 있지만 그 정체를 알지 못한다면 그 향수가 인생을 그르치게 만든다. 자신을 감싸는 외로움, 왠지 모르는 공허와 빈 마음이 사람을 사로잡아서 우울함을 불러오고 그 휑한 마음을 대체하기 위해 무엇인가에 탐닉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본향이 무엇인가? 인간은 회귀본능을 가지고 있다고 말을 한다. 가장 어린 시절의 기억을 좇아 그 모습, 그 감동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잠을 잘 때에도 대자로 누웠던 사람도 어느 순간엔가 모르게 모태 시절의 그 모습, 다시 말해서 구부러진 잠자리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본향을 향하는 그 마음도 바로 이러한 회귀본능의 하나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어디에서 태어났는가?’, ‘나의 기원은 어디로부터 비롯된 것인가?’하는 그 원천적 마음이 자신도 모르게 온 몸을 감싸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본향은 어디인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 곳이 바로 하늘나라임을 안다.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땅을 살아가면서도 ‘이곳이 나의 정착지’라는 생각보다는 ‘나그네 길’임을 알고 ‘나그네다운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죄 된 인간의 본성은 항상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천년 만년이라도 살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그래서 이 땅에서 성을 쌓으려고 한다. 이런 연유로 미련을 갖게되고, 그 미련은 인생을 함몰의 웅덩이로 몰고 가게 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매일 죽노라.’ 우리는 이 땅을 살면서도 매일 죽는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하나님이 나의 생명을 언제 거두어 가실지 모른다. 천년 만년이라도 살 것 같은 마음은 하나님의 존재를 잊혀지게 만든다. 그러다 보니 세상 적인 것들이 자신의 마음을 차지하게 되고 돈이나 명예, 부귀 영화가 우상으로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이 땅이 좋사오니…’하는 어리석은 마음이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인생은 나그네길이다. 세상 사람들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우리들은 그 본향을 알기 때문에 세상사람들과는 구별된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나그네의 본성은 하루하루 잠을 자야하는 그 곳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 어차피 떠나야 할 곳이기에 보따리도 완전히 풀지 않는다. 언제든지 하나님이 부르시면 그 품안으로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당연히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갈 수밖에 없다. 사랑도 최선을 다해 한다. 기쁨도 최선을 다해 나눈다. 기도도 그저 최선을 다한다. 그러니 그 가정이 풍요로워질 수밖에 없다. 요즘 위기를 만나고 그로 인해 어두움 가운데 살아가는 가정들이 많다. 갈등이 그 가정을 지배하고 있다면 근본적으로 이러한 ‘본향을 향하는 마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배우자를 대할 때도 자신의 욕심만 가득해지는 것이요, 심지어 자녀를 양육할 때도 이기적인 충동만이 그 집안을 메우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이러한 본향을 향한 마음을 잃게 되는 그 순간부터 그 마음 가운데는 죄악의 마음이 점점 자리잡게 된다. 세상 속에 안주하려는 그러한 마음들이 서서히 자리잡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요즘 많은 가정들과 교회들을 보면서 그 속에 속한 소위 ‘그리스도인’들이 본향이 아닌 세상을 향하고 있는 모습을 수없이 발견하게 된다.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본향을 잃어버린 인생은 가야할 바를 알지 못하고 날고 있는 비행기와 같다. 언제 추락할지 모른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래서 ‘푯대를 향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우리의 푯대는 세상이 아니다. 그렇기에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본향을 아는 사람은 인간은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본향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 세상이 삶의 전부인 것으로 착각을 한다. 생각해 보라! 오늘 내가 죽는다고 생각한다면 어찌 관계 속에 살아가는 가까운 이웃들에게 아픔을 주고 상처를 줄 수 있겠는가? 어찌 세상 적인 것들에 빠져들 수가 있겠는가? 아침에 눈을 뜨면서도 그저 오늘도 새로운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고, 조금 좋지 않은 일을 당하게 될 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지켜 주신 것’을 또 감사하지 않겠는가? 잠자리에 들 때에도 내일 또 생명을 이어주실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살아 온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본향을 향하는 마음이다. ‘인생은 작은 배’이다. 이 일엽편주 같은 작은 배에는 그저 사랑을 담기에도 부족하다. 그런데 이 작은 배에다가 슬픔과 분노, 그리고 세상 적인 욕심들을 담고 살아간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젠 내 가운데 있는 사랑의 마음 외에는 다 잊어 버리자. 이 ‘작은 배’ 가운데 엉뚱한 것들이 자리잡고 있다면 이제 다 내어버리자. 그리하여 그 ‘작은 배’에 감사의 마음이 충만하게 하자. 그것이 바로 본향을 향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이다. (추부길/목사로 한국가정사역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