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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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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독립교회의 성직 책임자
lhyunsik

출처 : 서울 중앙침레교회 목사: 독립교회의 성직 책임자 [성경적인 교리, 교회관을 위한 글] The Bible Baptist Church 목사의 칭호 목사(pastor), 장로(elder), 감독(bishop)은 교회에서 동일한 직분으로 한 사람이 수행하지만, 그 직분 측면은 각각 다르다. 목사는 목회 책임자를 의미하며, 신도에게 설교하고 신도를 육성하며 보호하는 직분을 수행한다. '목사(pastor)'란 단어는 헬라어 포이맨(poimen)에서 유래되었다. 신약성경에서는 16차례나 '목자(shepherd)'로 번역되었다(마 9:36, 25:32, 26:31, 막 6:34, 14:27, 눅 2:8, 15, 18, 20, 요 10:2, 11, 12, 14, 16, 히 13:20). 헬라어 신약성경의 '무리에게 먹인다(행 20:28, 벧전 5:2)'란 구절을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무리를 친다'란 뜻이 되며, '목사(pastor)'와 '목자(shepherd)'의 어근은 동일하다. 장로(elder)란 말은 교회 지도자의 성숙함과 책임감을 의미하며, 장로는 교회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감독(bishop)'이란 말은 교회 지도자의 권위를 의미하며, 감독은 교회를 다스려야 한다는 뜻이다. '감독(bishop)'에 해당하는 헬라어에는 '감독하다(oversee)'라는 뜻으로 기록되어 있다(행 20:28, 벧전 5:2). 이러한 용어들이 동일한 교회 업무를 가리킨다는 사실은 다음 용법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디도서 1:5, 7에서는 '장로(elder)'와 '감독(bishop)'이란 용어를 호환하여 사용하고 있다. 사도행전 20장에서는 위의 3가지 용어가 모두 동일한 직분에 적용되고 있다. 17절에서는 목회자를 '장로(elder)'라고 했다. 28절에서는 '감독(bishop)'과 '목사(pastor)'에 해당하는 그리스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베드로전서 5장에서도 이 용어들을 동일한 교회 직분을 가리키는 데 사용하고 있다. 시편 1장에서는 '장로(elder)'에 대해 언급했지만, 2장에서는 이 장로들을 '감독자(overseer: bishop)'와 '목자(shepherd)'로 표현했다. 이 용어들을 호환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주 중요하다. 목사는 장로요 감독이다. 그 직분은 서로 구분될 수 없는 것이다. 목사의 소명 다음 성경 시험을 해 보면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목사가 되도록 소명을 내렸는지 확인해 볼 수 있으며, 또한 목사가 되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교회에서 검토해 볼 수 있다. (1)부르심에 관한 시험(딤전 3:1) 이 구절은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이라고도 해석해 볼 수 있다. 이는 강렬하면서 의무적인 원함을 말해준다. 바울은 그런 의무성에 대해 고린도전서 9:16에서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라고 했다. 장막(帳幕)을 건축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일을 하려고 마음에 원하는 자들(출 36:2)"이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교회를 인도하려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 큰 일을 하려고 마음에 원하는 자여야 한다. 이런 원함은 단순한 관심이나 흥미 이상이어야 한다. 정열적이면서도 강렬하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직분을 수행해야 한다. 어느 누가 설교 임무나 목회직을 쉽사리 그만둘 수 있으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하는 말도 일리가 있다. 그런 직분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강렬하면서도 오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사례는 선지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렘 1)과 사도들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행 9)에서 볼 수 있다. 요나가 잠시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거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부르심을 잘못 이해하거나 가볍게 여기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 스펄젼(C.H. Spurgeon)은 신학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이 강의실의 어느 학생이 신문사 편집장, 채소상, 농부, 의사, 변호사, 국회의원, 임금이 되기를 원한다면 하늘과 땅의 이름으로 그렇게 하도록 해야 한다. 반면에 동서양의 온갖 재화가 보장되는데도 목회직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 임무라는 하나님의 소명을 저버리지 못하고, 또한 감히 저버리지 못한다면, 그밖의 별다른 변수가 없는 한 충분히 이 사도의 직분을 수행할 증거가 된다고 하겠다." (2)삶에 관한 시험(딤전 3, 딛 1) 부르심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개인의 삶도 역시 신약성경에서 목회직에 관해 요구하고 있는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목사, 집사, 전도사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하나님의 소명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 일을 하도록 부르고 있다고 믿지만, 분명히 하나님은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 하나님은 장로와 집사의 기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도 않을 것이거니와 하나님 자신의 기준도 저버리지 않을 것이며 자격이 없는 사람들을 부르지도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여인이 하나님께서 목사나 집사가 되도록 자신을 부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잘못이다. 성경에서는 그 일이 남성의 직분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남성이라고 할지라도 지역사회에서 평판이 좋지 않거나, 음주를 즐기거나, 화를 잘 내고 호전적인 기질이거나, 재물을 탐내거나, 가정에 충실하지 못하고 친자식 외의 자식을 두거나, 부인을 여러 명씩 둔다면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 사람이 목회직에 있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전도 직분에 관한 부르심이 목회 직분에 관한 부르심과 반드시 같다고는 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전도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목회자가 되지 않아도 고속도로, 샛길, 감옥, 탁아소, 거리 등에서, 또는 버스 안에서나 가정을 방문하면서 전도할 수 있다. 목회자나 집사가 될 자격이 없는 사람들도 예수 그리스도에게 충실하기만 하다면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도할 수 있다. (3)능력에 관한 시험(딛 1:9-11, 딤전 3:5, 벧전 5:2)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에는 능력을 주신다. 어떤 사람에게 그만한 능력을 주시지 않고는 절대로 부르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주 하나님께서 모세 시절에 장막(帳幕)을 건축하길 바라셨을 때에는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준비시켜 주셨다. "내가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사렐을 지명하여 부르고 하나님의 신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로(출 31:2-3)." 우리는 여기서 특별한 직분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여러 주요 측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그 부르심은 개인적인 부르심이었다. 둘째, 그 부르심은 특정한 일에 대한 부르심이었다. 셋째,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직무를 완성할 능력이 따르게 된다. 분명히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 이 세상의 약한 것들을 사용하려고 한다. 따라서 인간의 평범한 기준으로 볼 때는 그렇게 하지 못할 것 같은 사람들에게도 전도 활동을 하도록 부르신다. 그러나 목회 직분을 수행하지 못할 것 같은 사람을 목사가 되도록 부르시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목회자가 될 사람은 성경을 가르치고 기독교가 잘못되지 않도록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 사람은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충분히 공부해야 한다. 특정한 교의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하며, 양들을 보호하고 감독할 수 있어야 한다. 죄나 잘못에 맞설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목회직을 강렬히 원하고 기독교적인 생활을 하며 증언을 한다고 하더라도 목사가 될 수 없다. (4)인증 시험(행 13:1-3, 16:1-3) 하나님께서 바울과 바나바에게 특정 전도 임무를 수행하도록 소명을 내리셨을 때에는 교회에서 그 부르심을 기꺼이 인정했다. 이는 아주 중요한 시험이다. 교회를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나 육욕적인 사람이 지배하면서 그릇된 판단을 내릴 경우도 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특정 임무를 수행하도록 소명을 내렸지만, 교회는 그 부르심이나 도움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던 사례도 있다. 사실 성경에 그런 실례가 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에게 영접받지 못했다(요1:11). 바울은 갈리디아 사람들이나 고린도 교회의 일부 사람들에게 영접받지 못했다(갈 4:15-17, 고전 9:1, 고후 6:11-12, 3:1). 요한과 그밖의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부심이 강한 디오드레베에게서 접대받지 못했다(요한삼서 9-10). 그러나 정상적인 성경의 흐름으로 볼 때에는 개인의 소명과 직무가 그 사람을 잘 알고 있는 교회 신도들에게 인정받고 있다. "하나님께 가까이 있는 관중들의 판단에 상당한 비중을 두어야 한다. 대체로 그 사람들의 판단에는 잘못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호소는 궁극적이지도 않거니와 오류가 없는 것도 아니므로, 자문 상대의 지성과 신앙심에 따라서 평가받아야만 한다. 필자는 지금까지 만났던 가운데 가장 거룩한 기독교 부인의 영향을 받아 몹시 낙담하고 설교하지 못했던 적이 있다. 필자는 그 부인이 제시한 의견의 가치를 솔직하고 인내심 있게 평가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더욱 경험이 많은 사람들의 판단에 따라 그 생각이 바뀌었다. 그러므로 여러분, 신사 여러분, 학생 여러분은 인간으로서 서로 평가하는 데 있어 좀처럼 잘못이 없다고 하겠다. 전반적으로 살펴보아도 한 형제에 관해 대학 전체의 의견이 잘못되었던 경우는 거의 없었다. 여러분이 학급에서나, 기도회에서나, 대화 장소에서나 기타 여러 종교 행사장에서 만나게 되면 서로 평가를 하게 된다. 이때 현명한 사람이라면 학교의 판결을 급속히 제쳐놓지는 않을 것이다." (C.H. Spurgeon, 「학생들에게 드리는 강연」) (5)입증 시험(딤전 3:10, 고후 8:22) 성경에서는 교회가 목사안수에 대해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안수받을 사람은 안수받은 다음이 아니라 안수에 앞서 열정과 믿음을 보여 주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경고했다.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지 말고 네 자신을 지켜 정결케 하라(딤전 5:22)." 바꾸어 말하면 디모데는 목회의 직분을 안수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는 경고를 받은 것이다. 디모데전서 5:17-26에서는 교회 지도자들에 관해 말하고 있다. 안수하는 사람들은 안수를 함으로써 하나님께서 그 사람이 안수받도록 해 주셨음을 확신한다고 공공연하게 입증하는 셈이다. 따라서 안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인정하는 행위이다. 안수하는 사람은 자신을 안수받는 사람과 동일하게 본다. 교회가 성급히 굴거나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사람을 입증하지 못하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른다면 잘못 안수받은 사람의 죄에 가담하는 셈이 된다. 목사의 자격 "영원한 교회 지도자를 잘못 선택하면 좀처럼 취소하지 못하며 가장 암울한 결과를 빚게 된다(R.B.C. Howell)." 하나님께서는 교회 지도자의 자격을 인간의 사고대로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고, 디모데전서 3장과 디도서 1장에 열거해 놓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이끌 사람에게 언제나 엄한 기준을 요구하고 있으므로 이는 예상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인에 대한 판단(출 18:21), 레위인에 대한 판단(레 10:8-10), 열왕에 대한 판단(신 17:14-20)에서도 그랬다. 교회 지도자에 대한 주님의 기준은 신약성경에 나오는 지도자들에 대한 기준보다 더 엄격하다. 교회 지도자에 대한 기준이 엄격한 이유 (1)지도자의 자질에 대해서는 기준이 엄격하다(고후 6:3). 목회자들에게 결점이 있으면 그 신도들과 전체 교회가 명성과 축복을 잃을 것이다. (2)사탄의 행위에 대해서도 기준이 엄격해야 한다(딤전 3:7). 사탄은 끊임없이 교회 지도자를 파멸시키려 한다. 목회자에게 결점이 있고 영적이지 못하면 악마의 덫에 빠져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3)성숙함에 대한 요구 조건도 엄격해야 한다. 신약성경의 기준에 따르면 그리스도에 대한 인간의 엄격함을 인식할 수 있다. (4)목사의 행위도 기준이 엄격해야 한다(벧전 5:3, 딤전 4:12, 딛 2:7). 어느 누가 하나님 말씀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어떻게 장로가 될 수 있고, 목회자가 될 수 있으며, 무리에 대한 모범이 될 수 있겠는가? "인간의 삶은 그 말보다 더 강력하다. 사람들이 인간에 대해 평가할 때에는 그 사람의 행동과 말을 평가 기준으로 삼는다(C.H. Spurgeon)." (5)목사의 판단 기준도 엄격해야 한다(약 3:1). 인간이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면 자신을 위해서라도 교회 지도자의 직위를 재삼 숙고해야 한다. (6)부르심의 시험에 대한 교회의 요구 조건도 엄격해야 한다. 하나님 말씀의 기준으로 보면 교회는 하나님께서 목사의 직분을 수행하도록 소명을 주신 사람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7)자기 판단과 수정에 대한 요구 조건도 엄격해야 한다.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목회자는 안수 뒤에도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반성해 보아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안수에 앞서서도 자신의 삶에 문제점이 있는지 살펴보고 고치려고 해야 한다. (8)거짓 교사들의 행위에 대해서도 기준이 엄격해야 한다(딛 1:9-11, 딤전 4:1-6). 성경에서는 거짓 교사들이 사탄의 지배를 받고(딤전 4:1-2, 고후 11:13-15),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서(엡 4:14, 갈 2:4, 롬 16:17-18), 교회에 대해 진정으로 위협이 되며(행 20:27-32, 살전 2:5, 고후 11:1-3), 종말이 될수록 점차 더 위협적으로 된다(딤후 3-4, 벧후 3, 유다서)고 했다. 이처럼 교회에 대해서는 언제나 위험이 존재하므로 목사에 대한 성경의 기준은 합리적이면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가 전세계에 불고 있는 악한 영들의 거짓 교의란 바람에서 견디어 내려면 비상하게 영적인 지혜와 능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을 두고 있어야 한다. 목사에게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자질은 무엇인가? (1)공식적인 성경 교육이나 대학 학위(행 4:13) 사도들은 공식 교육 기관에서 교육받지도 않았거니와 신학 학위도 받지 않았다. 성경에서도 물론 그런 요구는 하고 있지 않다.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할 역량이 있어야 하지만 반드시 신학 학위를 지녀야 하는 것은 아니다('신학자(Scholar)' 참조). (2)감명적인 모습이나 행위(고전 2:3-4, 고후 10:10) (3)재산과 인간관계(행 3:6) (4)뛰어난 언변(고후 10:10, 11:6) (5)뛰어난 천부적 능력(고전 1:26-29) (6)교회 지도자가 갗추어야 할 자격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생각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기준에 따라 결점이 없어야지, 인간의 기준과 사고 방식에 따라 결점이 없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목사에 대한 하나님의 기준 (1)성실한 인간이어야 한다(딤전 2:12, 3:1). (2)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야 한다(딤전 3:1). (3)증명받아야 한다(딤전 3:10). (4)딤전 3:2-5, 딛 1:6-8에 열거된 분야에서 결점이 없어야 한다. 곧 아내에 대한 관계에서 결점이 없어야 하고(딛 3:2), 자녀에 대한 관계에서도 결점이 없어야 하며(딤전 3:4, 딛 1:6), 개인 생활에서도 결점이 없어야 한다(딤전 3:2-3, 딛 1:8). (5)가르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딤전 3:2). (6)사도적인 성경진리를 끝까지 지킬 수 있어야 한다(딛 1:9). (7)거짓 가르침을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딛 1:9-11). (8)초심자가 아니어야 한다(딛 3:6). (9)지역사회에서도 명성이 높아야 한다(딤전 3:7). 목사에 대한 교회의 책임 (1)목사를 존경하고 사랑하라(살전 5:12-13). (2)목사의 가르침에 따르라(엡 4:11-12). (3)목사의 본보기를 따르라(히 13:7, 벧전 5:1-3). (4)목사의 감독에 순종하라(히 13:17). 교회 신도가 하나님께서 주신 목사의 권위에 순종함도 중요하지만, 목사의 권위는 오직 성경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도 알고 있어야 한다. 교회 지도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게 가르치려 한다면, 신도들은 그 지도자를 성경에 근거를 두고 있는가? 살펴보아야 한다. 교회 지도자가 다른 사람을 바로잡으려고 하면서도 판단에 성서적인 바탕이 없다면, 그 사람의 경고는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가치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교회 지도자는 성경에 따라 신도들을 인도하고 교화시켜야지, 오류에 빠지기 쉬운 자신의 사고방식에 따라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범사를 헤아리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해 보아야" 한다(행 17:10-11, 살전 5:21). 또한 맹목적으로 사람을 따라서는 안 된다. (5)목사를 위해 기도하라(히 13:18-19, 엡 6:18-19, 골 4:2-3, 딤후 3:1-2). (6)물질적인 요구에 응하라(딤전 5:17-18). "목사에게 물질적으로 인색한 교회는 성경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그런 교회는 좀처럼 영적인 힘이나 진보를 얻지 못한다. 고린도후서 9:6-10에에 말한 원리는 참고해 볼 가치가 있다." (Paul Jackson, 「교회의 교의와 행정」) 목사의 권한 일부 일반적인 교훈 다음은 목사의 권위에 관한 성경상의 진리 가운데 일부이다. (1)교회에는 지도자와 감독자가 있다(행 20:28, 살전 5:12, 빌 1:1, 딤전 3:1, 딛 1:7). 기독교인이 누구나 독립 교회에서 동일한 권한을 쥐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목사는 독립 교회를 이끌어야 하지만, 교회가 목사를 이끌어야한다는 성경의 가르침은 없다. (2)교회 지도자를 3가지 용어로 부를 수 있다. 그러나 그 용어들은 동일한 직분을 가리킨다. 따라서 감독(bishop)을 장로(elder) 위에 두는 수직적 교회 통치 구조는 성경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목사, 감독, 장로는 모두 목회자 한 사람을 두고 부르는 명칭이다. (3)교회마다 자기 지도자를 두고 자체적으로 운영해 나가야 한다(딛 1:5, 행 14:23). 이 점은 분명히 신약성경에서 유래된 것이므로, 이와 다른 교회 통치 형태는 성경에 바탕을 두었다고 볼 수도 없거니와 매우 위험스럽다('교회(church)' 참조).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처럼 개척 교회의 인도자 교회는 있을 것이다. (4)목사는 누구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야 하고 안수를 받아야 하며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행 14:23, 딤전 3장, 딛 1장). 신약성경을 믿는 교회를 목사 안수받지 않은 사람이나 전반적인 목사 직분을 수행할 수 없는 사람이 이끌어서는 안 된다. 목사는 누구나 교사이면서 지도자여야 한다(행 20:28, 딤전 3:2, 딛 1:9-11, 벧전 5:1-2). (5)집사는 교회를 다스리거나 감독하는 분야에서는 언급되지 않는다. 집사는 심부름꾼이지 지도자가 아니다. 집사회에서 교회를 다스리는 행위는 성경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며, 여러 집회에서 중대한 해악을 발생시키게 됨으로 경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목사에게 주신 권한의 범위 책임이 그에 상응하는 권한을 의미한다면, 하나님께서 목사에게 주신 교회 내의 권위에 대해 고찰해 봄으로써 목사가 지닌 권한의 분야와 범위를 분명히 밝혀낼 수 있다. 목사의 책임에는 3가지 주요 분야가 있으므로 권한도 또한 그에 상응하게 마련이다. (1)목사는 교회 식구를 가르치고 돌볼 책임과 권한이 있다(행 20:28, 엡 4:11, 살전 5:12, 벧전 5:1-4). 그러므로 목사는 그런 목회 업무의 모든 측면을 감독할 권한이 있다. 목사는 무엇을 누가 가르칠 것인지에 대해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하고, 가르침이 올바로 이루어지도록 정확히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전 14:29). (2)목사는 교회가 거짓 가르침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할 책임과 권한이 있다(행 20:28-31, 고전 14:29, 딤전 4:1-6, 딛 1:9-13). 목사는 무엇을 누가 가르칠지 결정할 권한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잘못된 교사들이 수행하는 성경 연구라든지 성경에 바탕을 두지 않은 교리나 의식이 진행되는 회합 등 그릇된 행위에 신도들이 현혹되지 않도록 보호할 책임도 있다. 여기에는 음악 전도에 대한 감독도 포함된다. 음악도 일종의 가르침이기 때문이다(엡 5:19). (3)목사는 교회의 전반적인 임무를 감독할 책임과 권한이 있다(행 20:28, 살전 5:12, 벧전 5:1-2). 목사의 교회 감독 직분은 감독자나 관리자의 직분과 유사하다. 목사만이 전도 임무를 전적으로 수행해서는 안 되고 신도들도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열심히 전파해야 한다. 그러나 목사는 그 임무를 모두 감독해야 한다. 오늘날에는 목사의 권한과 감독의 직분을 저항하고 도전하는 불법 풍조가 널리 퍼져 있다. 그런 저항 행위는 그릇된 인간 본성에서 비롯된다. '육신적인 사람'은 목사의 권한을 싫어한다. 누구도 자신을 통제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 목사의 권한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하나님이 부르신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교회를 이끄는 일에 반대한다면, 그 어리석음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에게 답변할 수 있어야 한다. 성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警醒)하기를 자기가 회계(會計)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히 13:17)." 목사가 지닌 권한의 영적인 특징 목사나 전도사나 그밖의 교회 지도자가 행사하는 권한은 세속의 지도자들이 행사하는 권한과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 (1)그 권한은 전도를 위한, 곧 무리를 이끌 권한이다(행 20:28, 고후 13:10, 벧전 5:2). 목사의 권한은 하나님의 사람들과 행위를 구축하고 보호하기 위해 행사된다. (2)그 권한은 순종적이며 겸허한, 곧 청지기와 같은 권한이다(고전 3:9, 4:1, 12:7, 딛 1:7, 벧전 4:10, 5:3-5). 목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시를 받고 성경말씀에 따라 다스려야지 자신의 마음이나 의지에 따라 다스려서는 안 된다. 성경적인 모임은 하나님의 재산이요, 신실한 성도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이요, 그 성경적인 모임의 행위는 하나님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목사는 청지기, 또는 지키고 감독하는 사람이다. 이 말을 거만하고 악의에 차 있는 디오그레베의 전도 활동과 비교해 보라(요한삼서 9-10). (3)그 권한은 사랑에 찬, 아버지의 사랑과 같은 권한이다(살전 2:7-11). 목사는 하나님과 같이 사랑스럽고 부드러운 태도로 희생을 무릅쓰고 사람들의 안녕과 복지를 위해 배려해 주어야 한다. 목사의 다스림은 억압적이어서 안 되며 할 수 있는한 관용과 넓은 사랑으로 다스려야 한다. 목사의 권한에 대한 한계 목사는 하나님에 자신에게 위임해 준 권한만을 행사해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교회 지도자를 맹목적으로 본받을 필요는 없지만 진정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인도하고 있는 사람은 본받아야 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 11:1)." 바울은 자신도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리스도가 자신에게 준 메시지를 충실하게 설교하고 있었기에 사람들에게 자신을 따르라고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바울이라도 그런 권한을 지니지 못한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대해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갈 1:8). 기독교인은 복음 전도하는 사람이 다음과 같은 자질을 갖추지 못했다면 그 누구라도 배척해야 한다. (1)목사의 권한은 자신이 전도하는 복음에 바탕을 두고 있어야 한다. 히브리서 13:7에서는 기독교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을 본받으라고 했다. 목사의 권한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는 것이지 자신의 말이나 소명에 있지 않다. (행 17:10-11, 살전 5:21). (2)목사의 권한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행 20:28).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은 성령에게 임명을 받았다. 따라서 영적 권한의 근거가 되며, 기독교인들은 명백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증거가 있는 사람들에게 순종하기만 하면 된다. (3)목사의 권한은 자신의 삶에 바탕을 두고 있어야 한다. 히브리서 13:7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고 했다. 이는 삶의 방식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끄는 사람이 생활에 본이 되어야 하고, 또한 일상 생활에서 기독교적 삶을 올바로 실천하여야한다. 다른 사람을 이끌 권한을 소유한 목사는 모든 면에 본이 되어야한다. (4)목사의 권한은 자신이 수행하는 행위에 바탕을 두고 있어야 한다. 데살로니가전서 1:12-13에서는 주 안에서 우리를 다스리는 사람들에 대해 언급하면서 "우리가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겨야 한다"고 했다. 인간의 영적 전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수행되어야지 다른 사람에 대해 권한이 행사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교회(church)', '집사(deacon)', '디오드레베(Diotrephes)', '복음주의자(evangelist)', '고라(Korah)', '권력(power)', '선지자(prophet)' 참조) 집사(deacon) 헬라어 신약성경에서 '집사(deacon)'에 해당하는 말은 디아코노스(diakonos)이다. 단순히 '종(servant)'이란 뜻만 담겨 있다. 바인(W.E. Vine)의 다음 정의를 살펴 보라. "디아코노스(Diakonos)란 말은 본래 종(servant)을 의미한다. 노예와 같은 일이든 시중드는 일이든 그 업무의 성격과는 관련이 없다. 그 단어는 '서두르다', '추구하다'란 뜻이 담긴 'diokos'란 단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원래는 아마 '잔심부름꾼(runner)'을 가리키는 말이었을 것이다)." '집사(deacon)'란 말의 용법 '집사(deacon)'란 말을 실제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 말이 원래 신약성경에서 2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1)'집사(deacon)'란 말은 교회 내의 전반적인 일꾼들을 가리킨다. 다음 구절에서는 디아코노스(diakonos)란 단어가 '청지기'로 번역되어 있다. 곧 롬 16:1, 고전 3:5, 고후 3:4, 6, 11:23, 엡 3:7, 골 1:23, 살전 3:2, 딤전 4:6 등이다. 골로새서 4:12에서는 디아코노스(diakonos)가 '종(servant)'으로 번역되어 있다. 이들 구절에서는 모두 헬라어 디아코노스(diakonos)가 사용되었으며, 각각 '복음 전도인'과 '교회 내 전반적인 일꾼'을 가리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에는 사도 바울, 디모데, 에바브라라든지 그밖의 전도자들을 데컨(deacon)이라고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이런 일반적인 의미에서 볼 때에 기독교인은 누구나 '집사(deacon)'이 되어야 하고 '종(servant)'이 되어야 한다. 곧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야 하고 잃어버린 인간 세상에 대한 복음 전도자가 되어야 하며 교회 내의 비천한 일꾼이 되어야 한다. (2)'집사(deacon)'란 말은 교회 내의 어떤 직분을 의미하기도 한다. 집사가 하나님과 교회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볼 때에, 그 임무는 어느 기독교인의 임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 언급된 집사의 직분도 있다. 곧 기준이 분명하고 엄격한 직분이며, 적절한 자격을 갖추고 선택된 기독교인만이 지닐 수 있는 직분이다(빌 1:1, 딤전 3:13).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데컨(deacon)이란 말은 오늘날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다. 여성 집사도 있는가? 로마서 16:1에 나오는 뵈뵈의 예는 여성이 어떻게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데컨(deacon)이 될 수 있는지 가리켜 주고 있다. 곧 교회와 그리스도 복음 전도에 대한 일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집사(deacon)라는 '직분'은 남성만이 지닐 수 있다. 그 자격에 대해 성경에서는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가지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딤전 3:12)"라고 했다. 이 기준은 여성들에게 교회나 집에서 남성에 대해 우월적인 지위를 지니지 말라고 경고한 신약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한다. 집사라는 직분은 목사라는 직분과 달리 우월적인 지위가 아니라고 하더라고, 집사는 영적인 지위가 높아야 하고 다른 신도들이나 외부 사람들에게 영적인 지도자로 평가받을 수 있어야 한다. 집사의 의무 집사란 직분은 어느 기독교인들에게나 요구되는 것과는 달리 특별한 의미에서 볼 때에는 교회와 목사의 심부름꾼이 될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것이다. 사도행전 6:1-4에서는 실제로 '집사(deacon)'란 용어는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집사가 할 일을 성경의 말씀으로 제시해 주고 있다. 어떤 특정한 필요가 있을 때에는 그런 자격이 있는 사람이 선택되었으며, 그 일차적인 임무는 목사로 하여금 자유로이 하나님의 말씀을 영적으로 전도하고 기도를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물론 집사는 목사나 교회가 배당해 주는 일을 무엇이든지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특히 금전관리나 구제 사업(홀로 사는 여성들에 대한 배려 등)에 중점을 둠으로써, 목사가 교회에 대한 감독, 연구, 가르침, 설교, 방문, 상담, 기도 등 목회 업무에 부담 없이 집중하고 시간과 노력을 기울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6장의 예를 바탕으로 '집사(deacon)'란 용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릴 수 있다. "집사란 목사와 교회에 대해 특정한 봉사 업무를 수행하도록 선택된 사람으로서 목사가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의무를 자유로이 수행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방법으로 끊임없이 돌보고 도와 주는 심부름꾼이며 종이다." 집사의 권한 신약성경 어느 곳에서도 집사에게 교회를 다스리라고 하지 않았으며, 목사를 다스리라고도 하지 않았다. 집사는 다스리는 사람이 아니다. 물론 교회를 집사나 그밖의 사람들이 떠맡아 다스려야 할 때도 있다. 예를 들면 목사가 부재중이거나 목사직이 공석중일 때 등이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교회의 위기를 관리하는 집사나 그밖의 사람들은 그 임무와 권한이 일시적이라는 점을 알고 있어야 한다. 교회에 다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자격 있는 목사가 오면 교회의 위기를 관리하던 집사와 그밖의 사람들은 그 목사에게 목회권과 감독권을 일임해야 한다. '목사(pastor)', '장로(elder)', '감독(bishop)'란 말은 신약성경에서 한 사람의 직분으로 호칭하여 사용되고 있으며, 목사에게 해당되는 동일한 직분을 가리킨다. 그 직분의 3가지 측면을 설명하려면 상이한 용어를 사용할 수 있다. 곧 '무리를 치기(shepherding)', '가르치기(instructing)', '이끌기(leading)'이다. 목사만이 교회 내에서 성경에 바탕을 둔 권한으로 감독해 나갈 수 있다. 따라서 목사를 '감독자(overseer)'라는 뜻이 담긴 '지도자'라고도 부를 수 있다(사도행전 20:17과 20:28 비교 참조). 신약성경에서는 목사 외에 어떤 교회 집사 일꾼에게도 그런 칭호를 주지 않고 있다. 집사는 절대로 감독자, 다스리는 자, 이끄는 자가 될 수 없다. 교회는 절대로 감독자인 목사 위에 또 다른 감독자를 세워서는 안 된다. 집사회라든지 그밖의 사람들의 모임체가 하나님께서 주신 목사직에 순종하기는커녕 자신들을 권한 있는 목사직 위에 세워 놓으려고 하면, 그 사람들은 죄를 짓는 것이며 고라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하고 있는 것이다(민16장). 신약성경을 보면 목회자인 장로들이 잘 다스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딤전 5:17). 그러나 집사들이 잘 통치하고 있는 사례를 찾아보려 한다면 시간 낭비일 것이다. 왜냐하면 집사들은 다스리는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성경에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교회들이 겪고 있는 고통중에는 집사들에 의해 발생하는 것들이 많다. 집사들이 목사의 권위의 영역을 침해하고 집사들의 직분을 망각하는데서 오기 때문이다. 모든 교회들의 집사들이 철저하게 목사에게 순종한다면 교회 내의 문제는 지금보다 현저하게 줄어들고 교회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 있을 것이다. 집사에 대한 기준 (1)거듭나야 한다(딤전 3:9). (2)모범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딤전 3:8). (3)신약성경에 대한 믿음이 건전해야 한다(딤전 3:9). (4)성숙하고 연단을 받은 자여야 한다(딤전 3:10). (5)아내가 영적이어야 한다(딤전 3:11). (6)올바른 가정 생활을 영위해야 한다(딤전 3:12). (7)정직하다는 명성을 얻어야 한다(행 6:3). (8)성령과 지혜가 충만해야 한다(행 6:3). (9)믿음이 있어야 한다(행 6:5). (10)믿음과 신뢰심이 있어야 한다(고후 8:22). (11)복음을 전도해야 한다(고후 8:18). ('교회(church)', '교회 사도(church disciple)', '목사(pastor)'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