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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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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과 시대들
lhyunsik
2006-02-08
츨처 : 천안 성경 침례교회
1. 언약과 시대들 I
우리는 성경에서 몇 가지 언약들을 통해 시대들이 나누어지는 체계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들을 통해 또한 하나님의 경륜이 어떻게 변해가는가도 발견하게 된다.
어찌보면 이 부분이 세대주의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잘못 이해되어 가장 많은 오해를 사기도 하는 부분이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약속을 하시는 것 중, 특별히 인간사 전체를 통괄하는 그분의 경륜과 관계된 약속들을 “언약”(covenant)이라고 한다.
흔히 우리 나라 신학계에서 “계약”이라 번역하기도 하는데(이를테면 “계약신학”), 이는 잘못된 번역이다.
왜냐하면 우리말에서 계약이라함은 쌍방간의 합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성경에서 말하는 언약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언약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는 합의하시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요구”하실 뿐이다. 모든 언약들의 주체는 오직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자신의 다루심을 어떻게 나타내 보이실지를 인간에게 계시하시고 그에 맞는 요구를 하시는 것이 이 언약들 가운데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이 언약들에 의해 시대들이 나누어진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에 클라렌스 라킨은 세대주의를 정의하기를 “시대에 따른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라 하였다.
이것은 참으로 올바른 정의라 아니할 수 없다. 자, 그러면 성경은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 어떤 시대들로 나뉘어지며, 그것들을 구분짓는 언약들이란 어떤 것들인가?
1. 에덴의 언약 - 무죄 시대
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처음 만드시고 그에게 이 땅을 경영하라고 주시면서 맺으신 언약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다산하고 번성하며 땅을 다시 채우고 그것을 정복하라. 그리고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보라, 내가 온 지면 위에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를 내는 나무의 열매가 있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그것이 너희에게 먹을 것이 되리라.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 위를 기어다니는 모든 것들에게 내가 모든 푸른 채소를 먹을 것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창1:28~30).
주로 명령으로 이루어지는 이 언약은 아담에게 땅에 대한 통치권을 주시겠다는 언약이었다. 아담과 이브는 죄없는 상태에서 이 땅을 가득 채우고 땅을 정복하며 만물을 다스려야 한다. 그 통치권은 약속받았다. 그러므로 아담은 이 명령에 순종하기만 하면 된다. 이때 하나님께서 원하신 계획은 이 땅을 죄없는 인류롤 가득 채우시겠다는 것이었다. 나아가서, 이 땅이 가득 차면 다른 별들에까지 이주시켜 죄없는 인류로 온 우주를 가득 채우시고자 했던 것이다.
이 계획은 원래 그 이전, 즉 사탄이 타락하기 전에 갖고 계셨던 계획히기도 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을 비롯한 영적 존재들로 우주를 가득 채워 하나님의 우주적인 통치를 영원히 나타내려 하셨던 것이다. 하지만 잘 아는 바와 같이 사탄은 타락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우주는 더럽혀졌다. 하나님께서는 부득이하게 그분의 피조 세계를 심판하실 수밖에 없었고, 그때 우주는 큰 홍수로 심판받았던 것이다. 그래서 우주는 창세기 1:1에서는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고 말씀하신 다음에, 곧이어 1:2에서는 『땅은 형체가 없고 공허하며, 어두움이 깊음의 표면에 있으며,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에서 거니시더라.』고 되어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1절의 창조를 6일간의 창조 행위를 가리키는 창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 창조는 “태초”가 아니다. 또 이 창조가 6일 간의 창조 행위를 말한다면 사탄은 언제 창조되었으며, 언제 타락했겠는가? 6일의 창조기간 가운데 사탄이 창조되었다는 말을 우리는 볼 수 없다.
또한 에덴으로 사탄이 침투했을 때는 그 이전에 타락한 사탄이 와야 하는데, 6일 가운데 창조되었다면 언제 타락했음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사탄은 그 이전에 창조되었음이 틀림없다. 따라서 창세기 1:1의 “태초”는 6일간의 창조 기간보다 훨씬 이전에 있었던 “원래의 창조”를 나타내는 “태초”인 것이다. 2절은 타락 후 심판이 있은 다음 황폐해진 우주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심판으로 온 우주를 가득 채운 물들의 표면에 거니시며 재창조를 준비하신다.
따라서 6일 간의 “재창조”이후 새롭게 펼쳐진 세상에서 아담에게 새로운 땅을 약속하셨을 때 그에게 그 땅을 “다시 채우라”(replenish)라고 말씀하신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사탄의 타락으로 인해 무너진 계획을 이제 아담의 인류를 통해 다시 세우시려는 것이었다.
이때 주어진 또 하나의 명령은『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네가 거기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창2:17)는 것이었다.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는 약속(창2:16)과 더불어 주어진 이 명령은, 불복종하면 “반드시 죽으리라.”는 형별 조항까지 담겨 있었다.
이 언약으로 시작되는 시대는 거의 완벽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아직 죄가 없었기 때문이다. 금지된 열매를 먹은 다음부터 문제가 발생하지만, 아직 먹기 전까지는 그들에게 죄가 발견되지 않았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다.”라는 진리는 아담 이후의 사람들에게만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금지된 열매에만 참여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하는 어떠한 행동도 죄가 될 수 없었다. 따라서 이 시대를 “무죄 시대”(innocrnce)라 한다. (가끔 이 말을 “순수의 시대”, 또는 “순진무구의 시대”라고 번역한 책들이 있는데, 이는 세대주의의 이해가 부족해서 단어의 뜻만 갖고 잘못 번역한 것이다.)
2. 아담의 언약 - 양심 시대
하지만 이 무죄 시대는 매우 짧게 끝났다. 그들은 자식 한 명 낳아 보기도 전에 타락하여, 하나님의 계획을 조금도 성취시키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던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이미 타락해 있던 사탄의 개입이 매우 큰 역할을 담당한다. 사실 이때부터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 길고도 긴 영적 전쟁이 땅과 인간을 놓고 벌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시대에나, 어느 영적 전쟁에서나 마찬가지로 인간은 둘 중 하나의 편이 되어야 한다. 즉 사탄의 편이 되거나 하나님의 편이 되거나 하는 것이다. 다른 일에서는 중립이 있을 수 있으나, 영적인 문제가 개입되는 순간부터 중립이란 있을 수 없다. 성경 어디를 펴 보아도 요한계시록 마지막에 이를 때까지 하나님고 사탄이 벌이는 이 거대한 영적 전쟁은 그치지 않았다.
이 첫 번째 전쟁에서 우리의 조상은 지고 말았다.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함으로 그들 안에 죄가 발견되었고, 이 짧았던 “무죄 시대”는 종결을 고하게 된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책망하시며, 남자와 여자와 뱀을 차례로 책망하시는 가운데, 남자에게는 수고의 고통을, 여자에게는 해산의 고통과 남자에게 복종함을, 그리고 뱀에게는 종신토록 흙을 먹고 살 것이라는 형벌을 내리셨다. 땅도 아담으로 인해 저주를 받아 그 아름다움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런데 뱀에게 내리는 형벌은 단순히 흙을 먹으리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의 멸망에 대한 이 저주는 인간에게는 크나큰 축복의 언약이요, 또 하나님께는 사탄과 벌이는 모든 전쟁에서 최후의 승리를 차지하시겠다는 선포이기도 하다.
바로『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또 네 씨와 그녀의 씨 사이에 적의를 두리니, 그녀의 씨는 너의 머리를 부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부술 것이라." 하시고』(창3:15)는 말씀이다.
이 선포는 사실 하나님께서 직접 사탄과 싸우는 두 개의 큰 전쟁을 내포한다. 첫 번째 전쟁에서 뱀의 씨는 여자의 씨, 곧 예수 그리스도의 발꿈치를 물 것이고, 두 번째 전쟁에서 여자의 씨는 뱀의 씨의 머리를 부술 것이다. 여기서 첫 번째 전쟁이라 함은 십자가에서 벌어진 큰 전쟁을 말함이요, 두 번째 전쟁이라함은 주님께서 재림하시면서 사타의 머리를 부숴버리시는 큰 전쟁을 말한다.
비록 인간은 자신들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그 풍성한 축복에서 떨어져 나갔고, 그 후로 태어날 모든 인류를 죄 가운데 집어 넣었으며, 하나님의 계획을 전혀 이루어 드리지 못했지만, 우리의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인간에게도 자비를 베푸시어, 최후의 승리를 약속해 주신 것이다. 물론 십자가 자체도 발꿈치를 상하셨다 해서 실패하셨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 주님게서는 십자가에서도 승리하셨다. 왜냐하면 자신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죽음의 속박에 놓여 있는 사람들을 놓아주셨고(히2:15), 친히 부활하심으로 사망의 권세에서 승리하셨기 때문이다. 사실상 사탄은 아직 그의 권세만 잃지 않았을 뿐이지 이미 패배자로 판결을 받은 셈이다.
이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비록 타락하여 낙원에서 쫓겨나는 인간들이지만, 그들에게 이러한 약속들이 사실임을 인쳐주시기 위해 한 표적을 주셨으니, 곧 가죽 옷으로 그들에게 입혀 주셨다는 것이다. 왜 가죽옷인가? 이 가죽 옷이 양의 가죽이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친히 속죄 제물이 되시겠다는 것에 대한 약속이었다.
이것은 위대한 신약 시대를 예표하는 사건이다. 죄로 인해 자기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인한 그분의 온전한 은혜로만 구원한다는 것에 대한 강력한 예표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십자가를 바라보고 구원받았다는 말은 아니다. 그들은 단지 하나님께서 주신 가죽 옷을 입었을 뿐이다. 그들은 얼마나 많은 제물을 하나님께 드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다한들 그것이 예표는 되었을지언정 그것으로 구속을 이루는 것은 효력은 발휘할 수 없었다. 구원을 이루는 것은 예표가 아니라 실체여야 한다. 예표는 단지 앞으로 그렇게 하시겠다는 약속일 뿐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 그들 안에 죄가 발견됨으로 이미 “무죄 시대”는 끝났다. 십자가로 구속이 완성되어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은 더 더욱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양심에 따라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로마서 2:15,16에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은 양심에 따라 판단받는다고 되어 있는 것과 같이, 그들은 그 양심에 따라 판단받아야만 했다. 이로써 인간에게는 “양심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3. 노아의 언약 - 인간정부 시대
하나님의 경륜이 무죄 시대에서 양심시대로 바뀌었지만, 그렇다고 인간들이 양심에 따라 더 선을 행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의 죄를 더욱 드러낼 뿐이었다. 이들의 죄는 극에 달하여 결국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지게 되었는데, 이 심판은 온 인류에 대한 완전한 대가로 “인류의 멸종”이라는 것이었다. 오직 노아와 그의 가족들만이 살아남게 되었는데, 이때 노아는 아담과 마찬가지로 전세계를 단독으로 소유하게 되었다. 아담도 그 이전에 있었던 존재들이 멸종한 다음에 새롭게 땅을 다시 채우기 위해 창조되었고, 노아도 그 이전에 있었던 종족들이 멸망한 다음 땅을 다시 채우기 위해 남겨졌다.
그래서 노아의 언약은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 맺었던 에덴의 언약과 매우 유사하다.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다시 채우라. 너희를 두려워함과 너희를 무서워함이 땅의 모든 짐승들과 공중의 모든 새들과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들과 바다의 모든 고기들에게 미치리니, 그들이 너희 손에 넘겨졌음이라』(창9:1,2).
여기에서 에덴의 언약에 추가되는 사항은『 살아서 움직이는 모든 것은 너희에게 먹을 것이 되리라. 내가 모든 것을 푸른 채소같이 너희에게 주었느니라.
그러나 고기를 생명과 더불어, 즉 거기에 있는 피째 먹지 말지니라』(창9:3,4). 즉 육식이 허용되되 피째 먹지 말라는 것과, 『사람의 피를 흘리는 사람은 사람에 의해서 자기의 피도 흘려지게 되리니』(창9:6), 즉 사형제도가 제정됐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노아의 언약이 맺어졌다고 해서 갑자기 하나님의 경륜이 바뀌어졌다고 해서 갑자기 하나님의 경륜이 바뀌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아담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이 땅을 주님께서 원하시는 새로운 종족으로 가득 채우시려 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아담의 창조 때와 똑같은 관점으로 그분의 계획을 실현시키려 하신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온 인류를 멸종하신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온 인류를 멸종시키시고, 노아로 하여금 새로운 인류를 번성시키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전 경륜과 다른 어떠한 것을 제시하실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무죄 시대였던 아담의 창조 때의 경륜으로 돌아가야 할 정도였다. 왜냐하면 이미 타락한 성품은 다시 회복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담으로 인해 인류는 모두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 되었고, 죄에서 해방시키는 일은 십자가 사건이 있기까지 아무도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의 죄들에 대한 심판의 근거를 따질 때는 여전히 양심 시대가 연장된다.
그러나 이 양심 시대에도 여전히 인간은 죄를 짓게 되고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지 못한다. 이들의 죄도 이전처럼 세상에 가득 퍼진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전처럼 모든 인류를 멸망시키지 않으시고, 단지 바벨탑에서 흩어버리기만 하신다. 그리고 이 흩어진 사람들을 통하여 각 민족들이 나뉘어지게 되고, 그들은 각각 나름대로 정부를 구성한다. 최초의 왕국은 창세기 10:10에서 님롯을 통해 시날 땅(바빌론 지역)에 세워진 이방 왕국이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노아의 세 아들을 통해 갈라진 세 인종에서 파생된 민족들이다. 이때부터 세상은 이들을 통해 이방인들의 역사를 이루어 나간다. 아직 유대인들이 선택되기 전이기에 모든 사람들은 이방인이다. 이 이방인들이 각각의 정부를 만들어 나름대로 살아간다. 그래서 이때부터를“인간정부 시대”라는 새로운 경륜은 무죄 시대나 양심 시대처럼 인간의 죄들에 따른 하나님의 심판의 근거로서의 경륜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개인의 죄에 따른 하나님의 심판의 근거로 볼때는 여전히 양심 시대이다. 여기서 시작되는 인간정부 시대는 다른 관점으로 시작되는 경륜인데, 그것은 왕국에 관한 경륜이다. 하나님과 사탄의 전쟁은 단순히 인간을 죄인이 되게 하거나 죄에서 해방시키거나 하는 차원의 전쟁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 전쟁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왕국을 사탄이 자신의 왕국을 일으켜 대항하는 차원으로 발전된다. 이때 이방의 국가들(정부들)이 생겨나는 것은 향후 나타날 하나님의 정부, 즉 이스라엘을 통한 신정국가를 대적하기 위해 생겨난 왕국들이다. 사탄은 항상 이방 왕국들을 통해서 (단독 왕국이든, 연합 왕국이든) 이스라엘을 공격했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따라서 이때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은 여전히 양심 시대가 유지되는 가운데 새롭게 등장한 인간정부 시대인 것이다.
4. 아브라함의 언약 - 약속 시대, 또는 족장 시대
이렇게 타락한 인간들을 다루심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이전처럼 온 세상을 멸하지 않으신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순수한 인류로 온 땅을 채우시겠다는 계획을 바꾸셨다.
물론 이 계획은 취소되지 않았다. 이 원래의 계획은 후에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신 후에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신 후 죄와 죄의 기원인 사탄이 멸망한 다음에 온전히 이루어질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어차피 죄성을 가진 인간으로는 순수하게 땅을 채울 수 없다. 이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방법은 온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신정통치로 인해 우뚝 설 수 있는 모델 국가를 만드시어, 그 민족으로 하여금 세상의 모범 왕국으로 삼으시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물론 아직은 “아브람”이었다.)을 택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할 것이며 네게 복을 주고 네 이름을 위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되리라.』(창12:2)고 말씀하셨는데, 이 외에도 “아브라함의 언약”은 창세기13:14-17; 15장; 17:1-8 등에서도 볼 수 있다. 이 언약은 크게 하늘의 별처럼, 또 바다의 모래처럼 아브라함의 씨를 번성케 하신다는 “씨”에 대한 언약과 (창15:5; 22:17), 그 땅을 유업으로 주신다는 “땅”에 대한 언약(창13:14-18; 15:18-21) 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이는 유대인들에게 그 땅을 소유로 주어 거하게 하시겠다는 언약이다. 물론 이 “씨”에 대한 부분에서는 갈라디아서 3장에 따라 교회가 차지할 영적인 부분이 있다.(교회는 그리스도를 통해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다.) 하지만 교회는 그 땅에 대한 소유권이 없다. 그러므로 그 땅을 유업으로 받는 씨는 아브라함의 영적인 씨가 아니라 육신적인 씨인 이스라엘인 것이다.
이때 이스라엘은 단지 그 땅에 거하는 정도가 아니라 “큰 민족”이 돌 것이라고 약속을 받는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한 민족을 팔레스타인 땅에 심으셔서 그들을 직접 통치하시는 가운데, 그 민족을 온 이방의 복으로 삼아, 이 민족을 통해서 이방인들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앞서 인간정부 시대에서 시작된 모든 이방 민족들은 사탄의 수하에 있지만, 아부라함을 통해 나올 한 민족은 그 모든 민족들과 구별되어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있게 된다. 이때 이스라엘이 약하게 되면 온 이방 가운데에 웃음거리가 되겠지만, 이스라엘이 위대하게 되면 그때는 하나님의 이름일 온 땅에 높아지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실 수 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택함을 받는 시점은 하나님의 경륜상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특히 중요한 것은 그가 믿음을 통하여 의롭게 되었다는 것이다(롬4:11). 『아브람이 주를 믿으니 주께서 그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셨더라』(창15:6). 사실 구약성경에 있는 모든 사람중에서 신약 성도와 가장 유사하게 구원받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브라함이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직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 약속을 믿음으로 의를 입었다. 하지만 그의 의가 신약 시대의 의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 그는 십자가의 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생애에 있었던 많은 사건들이 십자가와 그리스도를 예표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림자일 뿐, 실제적으로 뿌려진 그리스도의 피를 믿고 구원받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신실하게 믿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신실하게 믿은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이었다. 그리고 이 약속은 이삭과 야곱에게도 동일하게 상속된다. 성경은 그들을 “약속의 상속자들”이라고 말씀한다(히11:9). 그래서 이 시대를 “약속 시대”라고 하며, 또 이 시대의 무대가 주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의 족장이며, 이들이 약속을 받은 사람들이기에 이 시대를 “족장 시대”라고도 한다. 물론 이방인들 가운데는 여전히 양심 시대와 인간정부 시대가 이어진다. 다음 호에 계속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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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언약과 시대들 Ⅱ
성경에서 언약들이란 하나님께서 인간을 다루시는 경륜의 각 기점들이 된다.
그분의 경륜에 따른 시대들은 때로는 개별적인 구원에 있어서, 때로는 민족적인 구분에 있어서 각기 서로 다른 양상을 나타낸다. 흔히 구약과 신약으로 나뉘어지는 기본적인 구분은 하나님의 경영이 크게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러한 언약들이 두 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곱, 혹은 여덟 개가 있다. 그 실로 다양한 언약들은 어떤 모습을 띠며, 각 언약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역사를 주관하시는가? 지난 호에서는 에덴의 언약과 아담과 아담의 언약의 언약과 노아의 언약과 아브라함의 언약을 살펴보았고, 이번 호에서는 모세의 언약과 다윗의 언약과 새 언약을 살펴보자.
모세의 언약 - 율법 시대
출애굽은 그들의 민족적 탄생의 기점이 된다. 더 이상 그들은 부족이 아니라 명실공히 한 민족으로서의 위상을 드러낸다. 아직 그들에게는 이방 민족들과 같이 체계적인 왕의 제도는 없었지만, 하나님의 신정통치 하에서 그분의 왕권을 위임받은 지도자가 있었고, 그는 실제로 왕으로서 역할을 수행했다(신 33:5).
그렇다. “신정국가”이다. 고대의 모든 국가들이 제정일치(祭政一致)의 정치형태를 띠고, 또 신적인 탄생이라는 건국신화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처럼 이방인들, 특히 당대의 최고 국가였던 이집트를 무참히 짓밟고 한 민족을 탄생시키시는 여호와라는 하나님을 자기들의 신으로 갖고 있지는 못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을 탄생시키실 때 전쟁에서 승리하시는 군대 대장으로서의 모습을 보이신 것이었다. 출애굽기5-12장까지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통쾌한 승리를 보라. 그 위대한 파라오의 영광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서 여지없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스라엘이 드디어 출애굽을 하는 12장 마지막 절에서 이같이 기사를 읽는다. 『바로 그 날 주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그들의 군대대로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오셨더라.』(출 12:51) 이스라엘은 위대한 왕의 인도함을 받는 “군대”로 탄생한 것이다.
하늘 아래 어떠한 민족도 이같은 방식으로 탄생한 민족은 없었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 이래로 하나님께서 특별히 택하신 민족이고, 그 택하심을 구체화시키시어 모든 민족들고 구분하여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셨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특별한 언약을 맺으실 필요가 있으셨던 것이다. 그리고 이 언약은 이스라엘이 큰 축복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된 만큼, 그에 합당한 요구사항들이 부가된다. 이 요구사항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나타내는 표식고도 같았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율법”이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이유로 “율법”으로 대표되는 이 언약은 다분히 “조건적인 언약”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언약은 무조건적이었다. 아브라함의 언약에 따르면 아브라함의 씨가 어떠한 요구사항을 지켜야 할 필요도 없고, 그들이 저주받을 이유도 없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행위가 아니라 그분의 약속을 믿음으로 그 언약에 들어간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행위를 보고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아브라함의 선택은 “무조건적인 선택”이었다. (칼빈주의자들은 이 용어를 사용하려면 신약성도 개개인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모세의 언약은 달랐다. 이 언약은 무조건적이지도 않고 영원하지도 않다. 이 언약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범죄하면 벌을 받고 심지어 그 약속의 땅에서 추방되기까지 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세의 언약의 기본적인 내용은 “율법”이다. 그리고 이때부터를 “율법 시대”라고 한다. 이 율법은 “십계명”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제사법들, 모든 도덕법들, 음식과 의복에 관한 법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회적인 규례에까지 이르게 된다. 특히 이 율법의 형벌은 매우 엄격하여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법이 적용되고, 특정한 법을 어기면 들로 쳐 죽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율법은 이스라엘 국가를 위한 통치 기틀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율법은 아무래도 종교적인 의미가 강하다. 이것은 특별히 제사법에 관련해서 그러한데, 어떤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 죄를 용서받기 위해 짐승의 피를 드려야 하기 때문이다(레위기, 특히 5장을 참조할 것). 만약 이 규례에 따라 제사를 드리지 않는 자는 용서받지 못하고, 자기 죄 가운데서 죽게 된다. 이때부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율법을 통해 다루신다. 율법을 지키느냐 지키지 않느냐 하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사는 길이고, 구원받는 길이었다.
신약과 연관해 볼 때 이 율법은 십자가의 예표가 된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은 속죄제물이시고, 화목제물이시며, 그 피는 모든 동물들이 피가 가리키는 진정한 피다. 하지만 “율법이 십자가의 모형이므로 구약 성도들은 율법을 지킬 때 십자가를 보고 구원받은 것이다.” 라고 샹각하면 안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실제적으로 아무도 십자가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율법이 그림자이고 모형인 것은 사실이지만 어느 누구도 “그림자”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 누군가가 구원받으려면 반드시 “실체”를 통해서만 받는 것이다. 그들은 십자가에 대해서 계시도 받지 못했거니와 구체적인 예언도 듣지 못했고, 심지어 율법이 모형이나 그림자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또한 구약의 율법은 신약과 비교해 보니 모형이라는 것이지, 당시 구약 성도들에게도 모형으로 인식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들의 모든 삶은 그 자체로서는 전혀 가치가 없는 그림자로서의 삶일 뿐이란 말인가? 그렇지 않다. 그때 율법은 반드시 지쳐야만 하는 실체였다. 만약 구약 시대의 누군가가 “율법으로는 어떠한 육체도 구원받을 수 없어. 의식은 중요한 것이 아냐. 이것은 분명히 앞으로 올 무엇인가에 대한 모형일 뿐이야. 나는 그것을 기다리겠어.” 라는 마음으로 율법에서 제시한 제사 의식을 무시하고 지키지 않았다면 그는 용서받지 못한다. 그들은 분명히 율법에 따른 제사를 드려야만 용서받는 것이다. 따라서 율법 시대의 구원 방법은 율법을 지키느냐 지키지 않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 진리를 부정하는 사람은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그 분 앞에 의롭게 될 육체가 없나니, 이는 율법을 통해서는 죄의 깨달음이 있음이니라』(롬 3:20)라는 말씀을 잘못 해석하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될 육체가 없다고 했고, 율법을 통해서는 죄를 깨달음이 있다고 했지, 율법을 통해 “구원받지 못한다”고는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은 구약 시대에 율법으로 구원받는다고 하니까 ‘이것을 하라.’ 또는 ‘저것을 하지 말라.’는 조항들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여 “누가 그것을 완벽히 지킬수 있는가?”라고 하는 것이다. 물론 그들은 율법의 조항들을 지켜야 했다. 그렇지못한 자들은 저주를 받게 된다. 하지만 율법에는 또한 “용서”에 해당하는 법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된다. 사실 율법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의 핵심은 율법에 따라 주어진 제사로 “용서”받는다는 것이다. “구원”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개념은 지옥의 형벌로부터 구원인데, 이 형벌은 용서를 받으면 면해지는 것이다. 구약성도들은 율법을 아무리 완벽히 지키려해도 하나를 범하면 모든 것을 멉한 것이 되므로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다. 오히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만을 알게 될뿐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자비는 그에게 용서의 길을 마련해 주셨고, 그것이 바로 제물을 드리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이 율법은 유대인들과 맺은 언약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신약 시대에는 율법이 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신약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을 다루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영적 백성인 교회를 중심으로 다루고 계시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구약 시대에 이방인들은 율법으로 다스림받지를 않는다. 왜냐하면 이방인에겐 율법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방인들에게는 여전히 양심으로 다스림을 받는 양심시대가 이어진다(롬 2:12-16).
한편 모세의 언약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별도의 사항이 있으니, 그것은 “땅”과 연관된 언약이다. 아브라함에게 그 땅을 약속하신 이후로,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그 땅에 대한 소유권을 항상 주장하셨는데, 모세 때에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모세와 여호수아가 그 땅으로 나아간 것부터가 이 땅에 대한 언약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전쟁으로 그땅을 차지해야 한다. 하지만 땅에 대한 같은 언약이라도 이 언약이 아브라함의 언약과 다른 것은, 아브라함의 언약에서는 이 땅이 당연히 유대인들의 것인 반면, 모세의 언약에서는 그들이 범죄하면 그 땅에서 쫓겨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회개해야만 회복된다. 이것은 이 언약이 조건적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단면이다.
특별히 신명기 28-32장에 거쳐보면 이스라엘이 받을 복과 저주를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복종한다는 전제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들이 하나님께 복종하면 그들은 “그 땅에서 번성할 것이요,” 그들이 하나님께 지속적으로 불순종하면 여러 가지 벌을 받게도 되지만 그 종국은 “그 땅에서 쫓겨날 것이다.”(신 28:58-64). 학자들에 따라서 땅에 대한 이 부분을 모세의 언약과 구별해서 “팔레스타인의 언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스코필드, 라킨 등).
다윗의 언약 - 왕국 시대의 예언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서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지만, 특별히 “다윗의 언약”이라 부르는 것은 사무엘하 7:12-16에서 제시된다. 『 네 날들이 차서 네가 네 조상들과 함께 잠들 때, 내가 네 몸에서 나올 네 씨를 네 뒤에 세우고, 그의 왕국을 견고하게 하리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한 집을 세울 것이요, 내가 그의 왕국의 보좌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네 집과 네 왕국이 네 앞에서 영원히 서리라. 네 보좌가 영원히 세워지리라』(삼하 7:12,13,16).
아브라함에게서 땅과 민족이 결정되었고, 모세에게서 통치 기틀이 결정되고 땅이 확정되었으니, 다윗에게서는 왕국과 보좌가 결정되었으니, 다윗에게서는 왕국과 보좌가 결정된다. 이미 다윗의 왕국이 자리를 잡은 상태에서 이 언약을 다윗에게 주시는 것은 앞으로 다윗의 씨를 통해 메시야 왕국을 세우시겠다는 예언이다. 일차적으로 솔로몬이 이 언약을 이어받아 “다윗의 아들”로서 왕국을 안정시키고 주님의 이름을 위해 성전도 지었다. 그리고 성전을 봉헌할 때는 아버지 다윗에게 주신 이 언약을 자기에게 적용시켜 달라고 기도하기도 했다(대하 6장). 하나님께서도 그 언약을 기억하시어 솔로몬이 죄를 지었어도 사울 때처럼 그 보좌를 빼앗지 않으시고(삼하 7:14,15), 다윗의 이름으로 세워진 보좌는 견고히 유지하셨다.
하지만 이 예언은 단지 솔로몬에게 한정되지 않는다. 이 예언이 참다운 계승자는 미래에 오실 메시야다. 그야말로 영원히 세워지는 메시야의 보좌에 적용될 예언인 것이다. 솔로몬의 보좌는 다음 대에 갈라졌고, 바빌론 침공 때에는 끊기고야 말았다. 따라서 이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되는데, 그때 메시야 왕국은 “다윗의 보좌”로 대표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초림 때에 그토록 “다윗의 아들”이라고 불리신 것은 그분이 바로 이 언약의 계승자라는 사실을 잘보여 주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언약에서 유대인은 영원히 그 땅에서 번성한다는 약속이 주어졌는데, 다윗의 언약에서는 그 왕국이 영원히 번성한다는 약속이 주어진다.
특이한 것은 이전의 다른 언약들에서는 언약이 주어짐과 함께 하나님의 경륜에 따른 한 시대가 시작되었지만, 이 언약에서는 한 시대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언약은 미래에 이루어질 예언이지, 모세의 언약처럼 당대에 경륜이 바뀌어버리는 언약이 아니다. 다윗이 이 위대한 언약을 받았지만, 구약의 다른 사람들처럼 율법을 지켜야 했던 한사람이었다. 다윗이 이때 언약을 받았다고 다윗 때부터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은 아니고, 이 언약은 미래로 넘어가 왕국 시대를 이끌 예언이 되는 것이다.
흔히 세대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다윗의 예를 들곤 한다. 즉 율법에 따르면 다윗은 범죄한 후 죽어야 했는데 죽지 않았으니, 신약 시대와 동일한 은혜가 구약 시대에도 주어졌다는 것이며, 따라서 구약의 구원 방법도 신약의 구원 방법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한 것이 두 가지인데, 첫째는 다윗이 메시야인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로서 그리스도께서 행하실 일을 미리 행했다는 것이며, 둘째는 다윗도 여타의 구약 성도들처럼 용서의 법을 적용받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윗은 도피시절 제사장들 외에는 금지된 성막의 차려놓은 빵을 먹었다. 하나님께서는 신약에서 이 예를 드시면서 자신의 행위가 정당함을 말씀하셨다(마 12장). 이것은 다윗이 받은 특별한 “확실한 자비”에 속하는 것으로서, 율법에 속한 상황에서 예외적인 사건이었다. 하지만 다윗이 그랬다고 구약의 모든 사람들에게 이 일이 허용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예외가 있다고 해서 규칙 자체가 무시될 수는 없다. 또한 다윗은 범죄했을 때 누구보다 깊은 “상한 영”으로 참회를 했다(시 51:17).
아무리 구약의 율법이 엄격해도 죄를 짓자 마자 즉결심판을 한 것은 아니다. 다윗은 심판을 받기 전에 참회를 했고, 그 후에 희생제를 드리겠다고 했다(시 51:19). 물론 하나님께서는 그의 행위에 대해 백성을 계수하는 죄를 범한 후 하나님께서 징계하셨을 때에, 다윗은 분명히 희생제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삼하 24:18-25).
새 언약
새 언약은 사실 두 가지다.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으실 새 언약(New Covenant)이고, 또 하나는 교회와 맺으신 새 언약(New Testament)이다. [영어에서 이 둘은 다른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tesament 도 언약의 일종이며, 실제로 교회와 맺는 언약도 covenant 로 사용될 때가 있다.] 신학적으로 이 두 “새 언약”들은 분명히 서로 다르지만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는, 이 둘이 모두 한 옛 언약에 대한 새로운 언약이 되기 때문이다. 그 옛 언약은 모세의 언약이다.
1. 유대인과 맺는 새 언약 - 왕국 시대
이 언약은 예레미야 31:31에서『주가 말하노라. 보라 그 날들이 오면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니』라고 말한 것처럼 오직 유대인들과 맺의실 언약이다. 그것도 아직 맺어지지 않고, 앞으로 맺으실 언약이다. 다윗의 언약은 이미 맺어진 상태에서 아직 그 시대가 미래에 온다는 예언이지만, 새 언약은 언약 자체를 미래에 맺을 것이라는 예언이다. 이 언약은『 주가 말하노라. 내가 이집트 땅에서 손으로 그들을 인도하였던 날에 그들의 조상들과 맺은 언약에 따른 것이 아니니...』(32절)라고 말한 것처럼 모세의 언약과 대조되는 언약이다. 모세의 언약, 즉 옛 언약에서도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었지만, 그들은 그 언약을 파기했다. 그래서 새 언약에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법을 돌판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 속에 기록하시고, 그들의 죄들을 용서하신다. 그때는 주를 아는 지식이 충만하기 때문에 아무도 자기 이웃과 형제에게 “주를 알라.”고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34절). 즉 주님에 대한 전파가 그쳐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언약은 교회 시대에 적용될 수 없다. 왜냐하면 지금은 주님에 대한 전파가 더 지속적으로 죄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언약은 메시야 왕국이 임할 때에 맺어질 것이다. 유대인들은 지금 반역하여 주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 있지만, 그들은 대환란 때에 심판을 받고 민족적인 회심을 할 텐데, 이때 하나님께서는 이들과 새 언약을 맺으시어 그들을 위로하시고 회복하실 것이다(사 40:1,2). 그때 유대인들은 그분의 왕국에서 위대하게 될 것이다.
2. 교회와 맺으시는 새 언약 - 교회 시대
예레미야 31장의 새 언약은 교리적으로는 왕국 시대에 적용될 것이지만, 영적으로는 교회에 적용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 언약의 내용 중에는 그분의 법을 마음 속에 기록한다는 것과 그들의 죄악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겠다는 말씀이 있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성도들 안에는 마음 판에 그분의 법이 기록되어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죄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에게 입혀진 그리스도의 의를 보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언약을 영적으로 적용하지 않더라도, 교회에 해당하는 분명한 새 언약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그것은 주님께서 잡히시고 전날 만찬자리에서 포도주로 예시하신 것인데, 이에 대해서 『이는 이것이 죄들을 사하심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을 위해 흘리는 나의 새 언약의 피이기 때문이라』(마 26:28)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이 언약은 “그분의 피로 맺으신 새 언약”인 것이다.
이 언약이 새 언약인 것도 이전의 모세의 언약과 대조하여 새 언약이라는 것인데, 이 경우에는 특별히 모세의 언약중 동물의 피와 대조되는 그리스도의 피라는 관점에서 새 언약이다. 구약에서는 용서를 받기 위해 수많은 동물들이 피를 흘려야 했다. 그것도 죄를 반복해서 지으면 반복해서 피가 흘려져야 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단 한 번 피흘리심으로 영원한 구속을 이루셨다. 동물들의 피는 일시적이고 불완전하지만, 그리스도의 피는 영원하고 완전하다. 따라서 신약의 구속은 구약보다 더욱 확실하고 완전하다. 이것이 구약에는 성령께서 임하셨다가 떠나가실 수도 있지만, 신약에서는 성령께서 임하신 후 절대로 떠나지 않으시고, 한 번 구원을 받으면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는 이유이다.
이 언약은 피로 맺은 새 언약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죽으신 후에야 효력이 발휘되었다(히 9:15). 따라서 예수님께서도 율법을 존중하지만, 그분의 죽음 이후에는 새 언약에 따른 은혜의 복음이 전파되었고, 그것은 바울 서신들에서 아주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바로 이 언약이 “신약”이라고 불리는 것으로서, 현재 신약 시대를 이끌고 있는 언약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