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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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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의 영적전쟁<제시펜루이스, 이반로버츠/벧엘서원>
lhyunsik

출처 : 일산 갈보리 침례교회 성도들의 영적전쟁<제시펜루이스, 이반로버츠/벧엘서원> 2장 사악한 영들의 사탄적인 동맹 53페이지 성경의 기록에서 역사에 따라 시대들을 조망해보면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적인 능력의 흥하고 쇠함은 악한 마귀적인 군대들의 존재를 인지했는가의 여부에 달려있다. 옛 시대에나 새 시대에나 하나님의 교회가 영적인 능력의 최고봉에 있었을 때 인도자들은 보이지 않는 사탄의 세력을 잘 알아서 철저히 다루었다. 그러나 영적인 능력이 아주 낮은 상태에 있었을 때에는 사탄의 세력이 소홀히되었으며 그럼으로써 사탄의 세력은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다. 56페이지 오늘날 이교도들은 오히려 악한 영들의 존재를 알아보는데 선교사들은 보통 그것을 '미신'과 무지로 여겨버린다. 사실은 종종 선교사들이 더 무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들은 공중 권세 잡은 자로 인해 성경에 계시된 사탄적 세력들을 보지 못한다. 70페이지 이러한 악한 영들의 해악을 알고 있는 이교도들이 행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은 악한 영들에게 복종함으로써 그들의 증오를 달래고 누그러뜨리는 것이다. 73,74페이지 이러한 사탄의 초자연적인 세력들은 진실로 부흥에 장애물이 된다. 오순절에 일어나 부흥의 모든 특징을 지녔던 웨일즈 부흥 때 쏟아부어진 하나님의 능력은 주님이 이 땅에 계실 때 접하시고 사도들과 초기 교회가 직면했던 것과 동일한 악한 영들의 유입에 의해 계속 방해받고 저지되어 최고의 목표에 다다를 수 없었다. 20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은 사도들과 초기 교회들과는 달리 거의 예외 없이 흑암의 권세가 침입해 들어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며 따라서 그것을 처리할 줄 모른다. 마귀 들림은 오순절 이후 역대로 그와 유사한 부흥이 일어날 때마다 뒤따라 발생하여 부흥을 방해해 왔다. 교회가 성숙에 이르기 원한다면 이제 이러한 악한 영들의 역사를 이해하고 그것을 처리해야 한다. 제 3 장 현 시대에 행해지는 악한 영들의 속임수, 82-86페이지 교회 역사를 회고하며 다양한 '이단들'이나 '미혹하는 일들'이 발생한 것을 관찰해 볼 때, 우리는 속임의 시기가 어떤 커다란 영적 전기와 함께 시작된 것을 추적할 수 있다. 그러한 때에 사람은 성령께 자신을 완전히 내어맡기게 되며 그럼으로써 자신을 보이지 않는 세계의 초자연적 세력에 열어놓게 된다. 이러한 전기가 위험한 이유는 바로 이때 믿는이가 옳고그름을 판단하는 데에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지 않은 채 원칙상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는 것에 순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그는 성령께 자신을 내어맡김으로 보이지 않는 인격에 복종하고 그의 정신의 기능과 이성의 힘을 자신이 하나님께 속했다고 믿는 것에 대해 맹목적으로 굴복시키기 시작한다. 이 시점에서 다루어야 할 것은 그것이 그리스도인 생활에서 하나의 위기라는 것이다. 그것은 체험한 사람이 아니고는 누구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이 사람에게 매우 실지적이시기 때문에 그의 삶의 가장 높은 목표가 '절대적으로 성령께 복종하는 것'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어떠한 희생을 무릅쓰고서라도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데 의지를 굴복시키며 또 그의 전 존재를 보이지 않는 세계의 힘에 굴복시킨다. 물론 그러한 믿는이는 영적 영역에 다른 세력이 있으며 '초자연적'인 것이 모두 하나님께 속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다만 그러한 것들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어떻게 하나님의 세력과 사탄의 세력이 대립하는지를 분별하지 못하며 보이지 않는 세력에 온 존재를 절대적으로 복종시키는 것이 경험이 없는 믿는이에게 결정적인 위험 요소가 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성령께 순종'하기 위해 이렇게 굴복하는 것이 과연 성경에 부합되는 것인가는 많은 진실한 믿는이들이 잘못 인도되어온 사실에 비추어 점검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만일 그것이 성경적인 태도라면 많은 헌신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위험 요소가 되고 때로는 완전한 파멸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성령'께 순종하라는 표현은 성경적인가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성령'은 '성령께 순종하라'는 표현의 근원이 되는 중요한 어구이다. 이 어구는 예루살렘에서 회의가 열리기 전에 베드로가 사용한 표현으로서 다른 성경 구절에서는 이와 같은 사상을 보지 못한다. 이 어구를 읽는 모든 사람이 분명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기 위해서는 주의 깊게 읽을 필요가 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을 순종해야' 하는데(행 5:29), 베드로는 공회 앞에서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성령도 그러하니라"(32절)고 말했다. 사도의 말은 '성령을 순종하는 것'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을 의미하는가? 그 둘 사이의 차이점을 구별하는 것은 중요하며, 그 단어들의 배열은 하늘에 계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내주시하시는 하나님의 영의 능력을 통해 순종을 받으실 수 있다는 성경의 다른 부분들의 가르침에 따라 정확하게 이해될 수 있다. 그것은 아들을 통하여 성령에 의해 아버지 하나님께 순종하는 대신 성령을 순종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믿는이를 하늘 보좌 위에 계신 하나님이 아닌 그 믿는이 안에 계시거나 혹은 그를 둘러싸고 계신 '성령'께 순종하거나 의존하는 데로 이끌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분의 아들과 연합된 그분의 자녀들의 순종을 받으셔야 한다. 성령은 믿는이들의 순종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경배를 받으시고 순종을 받으시기 위한 수단 또는 매체이시다. 믿는이 안에서의 성령의 참된 역사 ...이때 성령께서는 사고와 경배의 중심과 목표가 되시며 본래 그분이 원치 않으시는 위치에 놓이신다. 그러한 위치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정하신바 성령님이 소유하거나 차지하셔야 할 위치가 아니다. "그분께서 스스로 말씀하시 아니하시고..."(요 16:13). 성령께서는 가르치는 분으로 행하실 것이지만(요 14:26) 스스로 말하지 않고 다른 한 분의 말씀을 가르치신다. 성령께서는 자신이 아닌 다른 분을 증거하셔야 했으며(요 15:26) 다른 분을 영화롭게 하셔야 했으며(요 16:14) 다른 분이 말씀하신 것을 듣고 말씀하셔야 했다(요 16:13). 간략해 말해서, 성령의 모든 역사는 무대의 배경 뒤에서 지도하고 역사하시면서 영혼들을 아들과 연합되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알도록 이끄시는 것이다. 믿는이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성경의 기록에 무지할 경우, '성령을 순종'하는 것은 이제 그에게 있어서 지고의 목적이 된다. 따라서 이제 속이는 자는 성령의 인도와 성령 자신을 위조하는 책략을 쓰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자는 어쨌든 하나님의 종을 지배할 힘을 다시 얻어서 그가 흑암의 세력에 맞서 공격적으로 전쟁을 벌이지 못하도록 세상으로 되돌아가게 하거나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섬기지 못하도록 어떤 곁길로 나가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 3 장 현 시대에 행해지는 악한 영들의 속임수, 91,92페이지 하나님의 교회의 모든 부분에서 발견되는 영적 진실성에 대한 사항도 우리 자신의 빛 비춤을 위해서든 혹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준비되기 위해서든 그것이 개인적으로 유쾌한 것이냐 불쾌한 것이냐에 상관없이 분석되어야 한다. 진리에 대한 지식은 사탄에 속한 거짓 영들과의 전쟁을 위해 가장 필수적인 것이며, 진리를 얻기 위해서는 진리를 알려는 진지하고 진실한 갈망으로 간절하게 추구해야 하며 하나님의 빛 안에서 진리에 순종해야 하기 때문이다. 편견이 없는 분별력에 의해 드러나는 우리 자신에 대한 진리, 채색되지 않고 무리가 없으며 훼손되지 않고 희석되지 않은 성경의 진리, 그리스도의 몸의 한 부분만이 아닌 모든 지체들에게 있는 체험에 대한 진리가 사탄에 속한 거짓의 영들과의 전쟁을 위해 가장 필수적인 것이다. 마귀의 속임수에서 자유케 하는 진리의 능력에 관하여 근본적인 원칙이 있다. 거짓을 믿는 데에서 구출되는 길은 진리를 믿는 것이다. 진리 외에는 그 어떤 것도 거짓을 제할 수 없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이 구절은 주님이 심오한 말씀을 하시면서 언급하신 특별한 진리만이 아니라 진리의 각 방면에 적용할 수 있다. 언뜻 보기에 납득이 되지 않은 진리를 생각 속에 웅크리고 있다가 필요한 때 갑자기 떠올라 체험을 통해 생각에서 명료하게 이해될 수 있다. 다른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진리가 생각 속에서 명료해지는 것은 체험 안에서 끊임없이 진리를 적용하고 흡수함으로써만 가능하다. 모든 믿는 이들에게 크게 필요한 것은 온갖 사탄의 거짓말에서 점점 더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간절히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오로지 지식과 진리로써만 속이는 자요 거짓말쟁이인 사탄을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진리를 듣는 자들이 진리를 대적하고 거역할지라도 진리는 진리의 성령의 관할 아래 있다. 심지어 어떤 믿는이가 진리에 대해 저항하는 경우일지라도 진리는 적어도 그의 생각에는 도달했으며 어느 때 그것이 체험으로 결실을 맺을지 모른다. 제 4 장 수동성은 마귀에게 사로잡히는 주된 근거임, 110,111페이지 악한 영들이 사람 속에서 역사하기 위한 주된 조건은 수동성이며,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녀들 안에서 역사하시기 위해 그들에게 요구하시는 조건과 정확히 반대된다. 믿는이가 그에게 계시된바 하나님의 뜻을 능동적으로 선택하면서 자신의 의지를 그분께 굴복시킬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그분의 영과 동역하여 그의 존재의 모든 기능을 완전히 사용할 것을 요구하신다. 간략히 말해서, 흑암의 권세들은 수동적인 노예를 얻고자 하여 그들의 의지를 사로잡으며, 하나님께서는 그와 대조적으로 거듭난 사람이 그 영과 혼과 몸이 노예 상태에서 자유롭게 된 가운데 그분의 뜻을 이성적이고도 능동적으로 갈망하고 선택하여 행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흑암의 권세들은 사람을 자동 기계와 도구로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거룩하신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그분의 형상을 따라 생각하고 이성적이며 새롭게 된 피조물로 창조하셔서(엡 4:24) 그 자신의 영역에서 자유롭고 지적인 주권자로 만들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어떤 기관도 '게으른' 상태에 있기를 원치 않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믿는이에게 활동하지 말라고 요구하지 않으시며 그분의 역사를 위해 그러한 비활동 상태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악한 영들은 믿는이가 극도로 비활동적이고 수동적인 상태에 있기를 요구한다. 하나님께서는 믿는이가 그분과 협력하면서 지적인 행동을 할 것을 요구하신다(롬 12:1-2). 그러나 사탄이 그의 뜻과 목적에 따라 믿는이가 어떤 행동을 하도록 강요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은 수동성이다. 하나님께서는 믿는이들에게 악한 행동을 중지하라고 명하신다. 이는 첫째로 그러한 악한 행동이 죄로 가득하고, 둘째로 그분의 영과 동역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수동성을 하나님 보시기에 큰 가치가 있는 고요함 혹은 온유하고 잠잠한 영의 상태와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영과 마음과 생각과 태도의 고요함, 그리고 음성과 표현의 고요함은 하나님의 뜻을 가장 활동적으로 수행하는 것과 공존하는 것일 수 있다(살전 4:11, '조용히...힘쓰라'). 또 우리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같이 조용히 지내며 자기 일을 하고 자기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살전 4:11. 제 4 장 수동성은 마귀에게 사로잡히는 주된 근거임, 114-116페이지 의지의 수동성 이 단락에서 다룰 것은 의지의 수동성인데, 이 의지는 배의 '키'와 같은 것이다. 이러한 의지의 수동성은 하나님께 완전히 굴복하는 것의 의미에 대한 잘못된 관념에서 비롯된다. 하나님께 '굴복된 의지'란 의지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믿는이는 자신의 의지로 (1) '선택하고' (2) '결정하고' (3) '행동하기를' 멈춘다. 그는 흑암의 세력들에 의해 가리워져 이것의 심각한 결과를 보지 못한다. 오히려 처음에는 그것이 하나님께 극도로 영광을 돌리는 것처럼 보인다. '강력하게 의지를 굴복시킨' 믿는이는 갑자기 수동적으로 의지를 내맡기게 된다. 그는 하나님께서 환경 가운데서 사람들을 통해 그를 위해 '그분의 의지를 행사하고' 계시기 때문에 행동하는 데 있어서 수동적으로 무력하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로부터 얼마가 지나면 그는 일상 생활의 문제들에서 아무런 '선택권'도 행사할 수 없으며 어떤 문제도 주도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 그는 어떤 원함을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아무 것도 결정하지 못한다. 그가 물 위에 떠 잇는 코르크 마개처럼 표류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그를 대신해서 선택하고 행동하며 이끌고 결정해야 한다. 후에 흑암의 권세들이 이러한 '내맡긴' 믿는이를 이용하고 그 주변에서 많은 악한 영들이 역사하기 시작하여 그의 의지의 수동성을 틈타 그를 혼란과 함정에 빠뜨린다. 그럴지라도 그에게는 이제 악한 영들에게 항거하거나 저항할 아무런 의지력이 없다. 악한 영들이 믿는이의 의지의 수동성을 틈타 그를 함정에 빠뜨린 결과, 그만이 개선할 권한이 있는 그의 환경 가운데의 명백하게 잘못된 점이 더 기승을 부리고 강해지며 어지럽게 된다. 흑암의 권세들은 환경에서나 개인적으로나 의지의 수동성을 근거로 하여 점차적으로 그를 얻어가고 있는데, 이것은 믿는이가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원하시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처음부터 환경에 수동적으로 복종한 데서 기인한다. 그러한 믿는이들이 잘못 해석하는 또 다른 구절은 빌립보서 2장 13절이다. "이는 너희 안에서 일하시며 자기가 참으로 기뻐하는 것을 원하게도 하시고 행하게도 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 '수동적'인 사람은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읽는다. "내 안에서 원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행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즉 '하나님께서 내 대신 원하신다'는 것이다. 성경 본문은 믿는이가 의지로 어떤 행동을 하기까지 하나님께서 혼 안에서 역사하시는 것을 의미하는 반면, 그러한 수동적인 사람들의 본문에 대한 해석은 하나님께서 믿는이를 대신해 '원하시고' '역사하신다'는 것이다. 이러한 잘못된 해석은 '하나님께서 내 대신 원하신다'는 결론을 도출하여 자신의 의지를 사용하지 않는 근거를 제공함으로 의지의 수동성을 야기시킨다. 하나님께서는 사람 대신 그의 의지를 행사하지 않으심 여기서 강조되어야 할 진리는 하나님께서는 결코 사람 대신 '그의 의지를 행사하지' 않으시며 그가 하는 것은 무엇이든 스스로 그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의지'가 수동적이 된 믿는이는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어떤 결정을 내리는 데 커다란 어려움을 느낀 나머지 아주 사소한 문제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도 외부로 눈을 돌려 그 주변에서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찾는다. ...이러한 때에 원수는 그 믿는이가 부응할 수 없는 요구들이 몰아 닥치는 상황에 그를 밀어넣음으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를 괴롭히거나 당황하게 만드는 책략을 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믿는이는 부지중에 이 목적을 위해 수동성을 가져다 준 악한 영들의 도움을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을 거의 모른다. 사용되지 않은 그의 기능은 악한 영들에게 속박되어 무력한 상태로 쉬고 있으며, 혹은 그 기능이 사용된다 하더라도 악한 영들이 그 기능을 통해 그들을 나타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할 뿐이다. 악한 영들은 그를 대신하여 '그의 의지를 행사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다. ...이때 믿는이는 매우 간절하게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면서 물에 빠진 사람이 밧줄을 부여잡듯이 이러한 것을 굳게 움켜잡는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오직 사람의 능동적인 의지 행사를 통해서만 역사하실 뿐 사람을 대신해서 역사하지 않으신다는 원칙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제 4 장 수동성은 마귀에게 사로잡히는 주된 근거임, 117,118페이지 생각의 수동성은 성령 안에서 하나님께 순종하고 내맡기는 생활을 함에 있어서 생각이 점하는 위치에 대한 잘못된 관념에 의해 야기된다. 그리스도께서 어부들을 부르신 것은 두뇌의 수동성의 구실로 사용된다. 어떤 믿는이들은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두뇌를 사용하실 필요가 없으며 두뇌 없이도 일하실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가장 총명한 때에 부르심 받은 바울의 예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교회의 기초를 놓을 사람을 찾으실 때 비상하고 지적인 사고력을 갖춘 사람을 선택하셨음을 볼 수 있다. 두뇌가 진리에 복종하는 한 두뇌의 능력이 클수록 하나님께서는 두뇌를 더 크게 사용하실 수 있다. 때때로 믿는이의 생각이 수동적이 되는 원인은 두뇌 활동이 믿는이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이 발전하는 것에 장애가 된다고 생각하는 데 있다. 그러나 진리는 이러하다. 두뇌가 게으르거나 잘못 활동하는 것은 하나님과 렵력하는 데 장애가 되지만 두뇌의 정상적이고도 순전한 활동은 하나님과 협력하는 데에 필수적인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수동성은 어떤 기능의 본질을 변화시키지는 않지만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방해한다. 어떤 사람이 기억을 방해하는 수동성에 빠진 경우, 그 사람은 바깥으로 눈을 돌려 '기억력의 보조 수단'을 찾으려 한 나머지 급기야는 메모와 보조 수단의 노예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러나 이러한 수단들은 위급한 순간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의 생각이 단순히 휴식하고 있을 때 그의 생각은 자신의 뜻대로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생각이 악한 수동성에 빠져 있을 때 그 사람은 무력하게 되어 '생각할 수 없게 된다!' 제 4 장 수동성은 마귀에게 사로잡히는 주된 근거임 고난, 132-134페이지 믿는이는 '십자가의 길'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받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데, 이때부터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받는 것'이 곧 보상과 결실을 의미한다고 믿으면서 고난이 어떤 형태로 오든 그것에 수동적으로 굴복한다. 그는 악한 영들이 위조된 '고난'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모른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고난이 하나님의 손에서 온 것이라고 믿으면서 그 고난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함으로써 악한 영들이 자신을 사로잡을 근거를 내줄 수도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다. 악한 영들이 직접 일으킨 고난은 영적인 열매 맺음과 승리, 또는 생명의 성숙의 결과를 전혀 가져오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의 교통에 참되게 참여하는 것과 구별될 수 있다. 우리가 주의 깊게 관찰해본다면 그러한 고난이 완전히 무익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한 목적 없이는 어떠한 일도 행치 않으신다. 겸손, 135,136페이지 믿는이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데 동의할 때, 그는 적절하고 참된 자아 존중을 전혀 허용하지 않는 '자아 소멸'과 '무가치함' 속에서 그 죽음이 실행되게 한다(고후 10:12-18과 비교). 믿는이가 악한 영들이 만들어내어 그에게 제안한 '자기 경시'의 관념을 받아들일 경우, 그는 그러한 관념으로 인해 자신이 나약하고 소망 없다는 생각에 빠져 다른 사람들에게 슬프고 무겁고 어두운 영을 전염시키게 된다. 그런 믿는이의 영은 쉽게 억눌리고 상처받으며 침체된다. 악한 영들이 교만과 죄가 제거된 것처럼 위조하는 속임수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항목으로 밝혀진다. (1) 믿는이가 자신이 내뱉은 말을 듣고 다른 사람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당혹스러워하는데도 아주 부적절한 순간에 자신을 경시하는 말을 불쑥 꺼내는 것 (2) 그리스도의 왕국의 권익을 인식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데서 뒤로 물러나는 것 (3) 대화와 행동에서 '나'를 배제하려고 애쓰면서도 정작 자신이 묻히게 될 상황이 오면 '나'를 더욱 잘 드러내려고 강변하는 것 (4) 변명하고 사과하는 태도로서, 이것은 하나님의 왕국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순간에 '이 세상의 어둠의 권세 잡은 자들'에게 기회를 제공하여 그 부하들을 부추켜 이러한 '내가 아니요'라는 사람을 짓밟고 옆으로 제쳐놓게 함 (5) 약하고 어둡고 슬픔에 빠져 있고 애통해하며 소망이 결여되어 있고 쉽게 상처받는 과만한 성격의 소유자의 주변 분위기. 이 모든 것은 믿는이가 '죽음에 굴복하는' 어떤 순간에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과 온전히 협력하는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영을 나타내는 그릇이 되기를 요구하시는 바 참된 인격을 악한 영들이 말살하도록 기꺼이 허용한 결과일 것이다. 약함, 136,137페이지 믿는이는 약함이 하나님의 생명과 능력의 나타남을 위해 필요한 상태라는 잘못된 관념을 갖고서 지속적인 약함의 상태를 받아들인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내가 약할 때 내가 강함이라"는 바울의 말에 근거를 둔 것으로서, 믿는이는 이 말이 바울이 약할 때 하나님의 힘이 그분의 뜻을 이루기에 충분함을 발견한다는 단순한 사실일 뿐,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약하게 되기를 원하라고 권유하는 것이 아님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많은 면에서 합당하게 섬길 수 없게 된다. 오히려 그들은 이렇게 말해야 한다. "나는 나에게 힘주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약하게 되기를 '원하는 것'은 사실상 하나님의 강화하심을 방해한다. 많은 이들의 생각 속에 주입된 원수의 이러한 교활한 속임수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위한 많은 능동적인 봉사를 강탈당하셨다. 수동성으로부터 구출됨, 138페이지 수동적인 상태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는 믿는이는 먼저 자신이 정상적이고 올바른 상태가 어떤 것인지를 알고자 힘써야 한다. 그런 다음 그러한 상태에 비추어 자신을 점검하고 조사하여 악한 영들이 자신을 간섭해오지 않았는지를 분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그는 영과 혼과 몸 안에서 혹은 그의 온 존재에서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생애의 한 순간을 회상하고 계속 유지하고 싶은 그 순간을 정상적인 상태로 여기면서 그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에 만족하고 안주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제 5 장 속임당함과 마귀 들림, 151, 152, 154, 155페이지 하나님의 역사와 믿는이에게 힘써 접근하려는 사탄의 역사는 한 가지 원칙에 의해 지배된다. 사람이 자유 의지를 가진 존재로 창조되었을 때, 우주와 모든 천사들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충성을 얻는 데 있어서 사람의 자유 의지를 범하지 않으시겠다고 자신을 제한하셨다. 사탄의 악한 영들은 사람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승낙하지 않고서는 사람 안에 들어갈 수도 없고 그의 어떤 부분을 사로잡을 수도 없다. 사람이 선한 것을 '원할' 때 하나님께서 그가 원하는 것을 얻도록 역사하시듯이, 사람이 악한 것을 '원할' 때 악한 영들은 그가 원하는 바대로 되게 한다. 사탄은 또한 그러한 믿는이가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결심하고 이 땅의 모든 것보다 하나님께 대한 지식을 몹시 갈구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을 속이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과 그분의 임재와 그분의 역사하심을 위조해야 하며, 사탄의 더 깊은 속임수를 받아들이도록 사람의 의지의 동역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인 것처럼 가장하는 방법을 사용해야만 한다. 영이신 하나님께서 사람 안에 계시고 사람과 함께하실 수 있다면, 악한 영들 또한 그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사람들이 동의하는 경우 사람들 안에 거하고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다. 악한 영들의 목표와 갈망은 믿는이를 소유하고 그를 통제하는 것이다. '소유함', 혹은 '통제함'이란 용어들은 믿는이들 안에서의 하나님의 역사를 묘사하는 데에도 종종 사용되지만, 사실상 현 시대 말씀의 의미에서 보면 성경적인 용어들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만 소유권의 의미에서 사람을 '소유'하시지만, 소유하신 후로는 믿는이를 '통제하시는' 것이 아니라 다만 동역을 원하신다. 하나님에 의해 통제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과 동역함으로써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는 것이다. 죄에 유혹당하지는 않을 믿는이들을 사로잡고 통제하기 위해서 속이는 영들은 먼저 하나님의 임재의 현시를 위조함으로써 이러한 '임재'의 포장 아래 그들의 제안을 믿는이들의 생각 속에 집어넣어 아무런 의심 없이 그들의 위조를 받아들이게 한다. 이것은 속이는 영들이 믿는이들을 사로잡고 통제하기 위한 끈질긴 노력의 시작이다. 그러나 속이는 영들이 믿는이들을 사로잡고 통제하는 것이 늘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그 믿는이들이 성경에 좋은 기초를 두고 있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 위에서 행하기를 배운 사람들일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믿는이의 생각이 늘 민첩하게 활동하여 어떤 사상을 받아들일 때 방심하지 않고 건전한 것으로 채워져 있을 경우에도 속이는 영들은 믿는이들을 사로잡고 통제하기가 쉽지 않다. 제 6 장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위조함, 192, 193페이지 진정한 죄의 자백은 하나님의 깊은 책망하심에서 나온 것이어야지 강제적인 것이어서는 안 된다. 만일 그 죄가 하나님만이 아시는 것이라면 그 죄의 자백은 오직 하나님께만 행해져야 하며, 그 죄가 사람에 대한 것이라면 개인적으로 은밀하게 그 사람에게 자백해야 한다. 단지 그 죄가 공중에 대한 것일 대에만 공중에게 공개적으로 자백해야 한다. '죄의 자백'은 결코 어떤 강제적인 감정의 충동으로 이루어져서는 안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의를 선택하여 어떤 것들을 올바른 위치에 두는 의지의 신중한 행동이어야 한다. 믿는이가 공개적으로 죄를 '자백할' 때 사탄의 왕국이 유익을 얻는데, 이것은 원수가 사람으로 하여금 공개적으로 죄를 자백하도록 유도하는 데에 사용하는 계략들에 의해 분명하게 드러난다. 악한 영들은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고 그런 후에는 자신들이 그 사람으로 범하게 한 죄-이러한 죄는 그의 실지 인격과 상반되는 것이다-를 공개적으로 자백하도록 강요하는데, 이는 악한 영들이 그로 죄를 짓게 함으로써 그의 남은 일생에 오명을 남기게 하려는 것이다. 제 6 장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위조함, 198-202페이지 어느 것이 '하나님의 음성'이고 어느 것이 '마귀의 음성'인지를 식별하기 위해 우리는 성령만이 믿는이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도록 위임받은 분이시며 성령님은 사람의 영 안에서부터 역사함으로 그의 마음 눈을 밝히신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엡 1:17-18), 이것은 곧 사람으로 하여금 지성적으로 하나님의 생각과 동역하게 하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성령의 목적은 구속받은 사람을 영과 혼과 몸 안에서 완전히 새롭게 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믿는이의 모든 기능을 자유케 하는 방향으로 역사하시지 결코 어떤 식으로든 믿는이를 수동적인 기계로 만들어 선을 행하게 하시지 않는다. 그분은 믿는이가 선을 선택할 수 있도록 그 안에서 역사하시고 힘을 주신다. 그분은 '선'을 행하는 데 있어서 믿는이가 감각이 없어지거나 자유로이 행할 수 없게 만들지 않으신다. 그렇지 않으면 그분은 그리스도께서 갈보리에서 이루신 구속의 목적과 그분 자신이 오신 목적을 무효화시키게 될 것이다. 믿는이들이 이러한 원칙을 이해할 때 '마귀의 음성'을 알아차릴 수 있다. ...성령께서는 믿는이가 선택권을 가진 책임감 있는 존재로서 그의 지력을 사용하기를 원하시며, 또 그를 혼란케 하여 결정할 수 없도록 하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악한 영들은 또한 자신들의 음성이 어떤 사람의 자기 내부의 명백한 음성인 것처럼 위조할 수 있다. 마치 그 사람이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집중된 생각의 활동이 없다. 예를 들어, 그 사람 자신의 의지나 생각과는 상관없이 "너는 틀렸어." "너는 결코 옳지 않아." "하나님께서 너를 버리셨어." "너는 그렇게 해서는 안돼." 등등 그 사람 자신의 행동이나 다른이들의 행동들을 끊임없이 논하면서 속에서 떠돌아다니는 지속적이고 끊임없는 '논평'과 같은 것이다. 광명의 천사로 나타난 '마귀의 음성'은 식별해내기가 더 어렵다. 특히 그것이 성령의 음성처럼 보이게 하는 일련의 놀라운 성경 본문들과 함께 들려올 때 더욱 그러하다.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이든 천사들에게서 오는 것이든 외부에서 오는 음성들은 거절할 수 있다. 그러나 믿는이들이 하나님께로서 온 것이라고 생각되는 '쇄도하는 성경 본문들'에 의해서는 속임 당할 수 있다. 마귀의 음성을 하나님의 음성과 분간할 수 있는 길은 그 목적과 결과를 살피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신다면 그 사람은 미심쩍은 특별한 문제에 관하여 절대적으로 옳고 정확해야 한다. 속이는 영들은 그들의 제안과 인도를 믿는이의 개인적 특성에 맞도록 주의 깊게 적용하기 때문에 믿는이들은 그것을 발견해내기가 쉽지 않다. 즉, 속이는 영들이 제시하는 어떤 '인도'도 마음에 견고하게 뿌리내린 하나님의 강한 진리에 어긋나거나 마음의 특별한 성향과 불일치하게 제시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믿는이의 생각이 '실제적인' 성향을 띤다면 속이는 영들은 눈에 보이게 어리석은 '인도'를 주지는 않을 것이다. 속이는 영들은 성경을 잘 알고 있는 믿는이에게 성경에서 벗어난 것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믿는이가 어떤 점에서 강하게 무언가를 느낀다면, '인도'는 그 점에 알맞게 조화되어 주어질 것이다. 그리고 가능한 한 그러한 '인도'는 과거에 하나님께서 주신 인도의 연속으로 보이게끔 과거에 하나님께서 주신 인도와 비슷한 것으로 각색되어 제시될 것이다. 여기서에서 우리는 원수가 일하는 방법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믿는이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시작하지만 악한 영의 목적은 하나님의 인도를 위조함으로써 믿는이의 주의를 자신의 뜻을 실행하는 데로 돌리는 것이다. 사탄의 인도는 삶의 목적을 바꾸어 그 사람의 힘을 그릇된 방향에 쏟게 하여 그의 봉사의 가치를 감소시킨다. 제 7 장 마귀에게 사로잡힘을 위한 입지와 그 징후들, 222-224페이지 악한 영들에게 입지를 제공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 중 첫째는 악한 영의 제안이나 사상을 생각에 받아들이는 것이다. 믿는이는 어떤 사상이 사탄에게서 왔음을 의식하게 되는 순간 즉시 단호하게 거절해야 한다. 그러나 수많은 '사상들'이 믿는이의 의지와 상관없이 오는데, 이는 생각을 통제하여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할(고후 10:5) 줄 아는 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속이는 영들의 접근에 노출된 주된 기능은 생각이다. 특히 믿는이가 생각이 새롭게 되어야 할(엡 4:23) 필요성을 이해하고 또 그의 존재의 가장 깊은 곳인 성전 안에 하나님의 신성한 역사가 있음에도 불고하고, 자신의 생각이 악한 영들에게 열려 있어 악한 영들에게 이용당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전에는 속이는 영들에게 생각이 속임당하기 쉽다. 또한 그가 과거 생활에서 악한 영들에게 역사할 입지를 내주었던 것을 깨닫기 전에 이 세상 신이 생각을 어둡게 함으로(고후 4:4, 엡 2:2) 삽입한 모든 '생각'은 악한 자가 후에 역사할 재료들을 마련해주게 되는데, 그것은 아마 무의식 중에 쌓인 '사념들' 아무런 점검 없이 받아들여진 정신적 관념들,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표류하는 생각들, 종이에 씌어진 한 문장, 그의 귀에 무심코 들린 한 마디 말, 혹은 그에게 생각지 못한 영향을 남기며, 성경 말씀을 편견을 가지고 대하게 하며, 그 생각을 악한 영들의 어떤 제안에도 거의 방치되어 있는 정신적 세계의 표류물과 같은 것들이다. 원수의 역사는 매우 평범해서 믿는이들이 인식하지 못하며, 또 초자연적인 역사들이 매우 '자연스럽게' 보이기 때문에 믿는이들은 그것을 초자연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해 있다"는 성경 말씀은 진실로 사실이다. 온 세상은 악한 자의 말과 역사를 삶의 '일상적인' 일로, 정상적인 정신 기능의 작용으로 받아들이며 따른다. 그러므로 흑암의 권세 잡은 자의 다스림 아래 있는 세상에게 흑암의 왕국이란 가깝고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제 8 장 자유에 이르는 길, 265, 267, 268, 274, 275페이지 빛과 진리만이 자유케 할 수 있다. 일단 의심이 들어올 때 자신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쉽사리 속임당할 수 있다는 진리에 마음을 열면, 그의 열린 마음과 태도에 빛이 비췬다(요 3:21). 때로 속임수가 현저할 때에는 즉시 알아볼 수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속임당했음을 발견하는 것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빛이 서서히 비취는 동안 인내가 필요하다. '전투'의 의미는 특별한 경우로 설명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믿는이가 자신이 수동성에 빠졌음과 악한 영이 수동성에 빠진 그의 기능을 붙들고 있음과 그의 기능이 그와 협력하는 데 있어서 수동적인 상태에 있음을 발견하여 그 입지를 제거하려 할 때, 그는 다시 스스로 행하는 것과 다시 기능을 사용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정하는 문제에 있어서 피동성에 빠져 있다가 원수에게 제공한 입지를 거절하면서 이제 스스로 '결정'하고 악한 영의 통제 아래 행하지 않기로 결단한다면, (1) 그는 스스로 행하고 결정하기가 어렵다는 것과 (2) 악한 영들이 그가 그렇게 행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것, 즉 그 믿는이가 악한 영들이 자신을 통제하는 것을 거절할 때 악한 영들은 그가 임의로 그렇게 행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그는 전혀 '행하지 않거나' 악한 영이 계속해서 그를 대신해 행하도록 내버려두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기를 원치 않을 것이고, 잠시 동안 자신의 결단력을 사용할 수 없을지라도 원수가 자신의 결단력을 사용하도록 그냥 두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그의 '자유 의지'를 사용하기 위한 싸움, 즉 그의 결단력을 파괴하고 악한 영들로 그를 지배하게 했던 '의지의 수동성'에서 벗어나기 위한 치열한 싸움이 될 것이다. 이 때문에 믿는이는 인내를 가지고 싸워야 한다. 즉, 악한 자에게 내어 준 입지를 끊임없이 거절하는 태도를 견지해야 하는 것이다. 수동성에 빠진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그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조건, 즉 참되고 순수한 생각이 유지되는 것과 같은 조건을 회복해야 한다. 그 결과 악한 자는 정복되고 믿는이의 기능은 더 이상 악한 자의 통제를 받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찬송하고 기도하며 말하고 읽는 등 몸의 활동과 상상력과 기억 등은 모두 원수의 간교한 역사 아래 있는 타락한 수동적 상태로부터 능동적 상태로 이끌려져야 한다. '전투 기간'은 매우 고통스런 시간이다. 믿는이가 회복되고자 애쓰는 싸움에서 흑암의 권세들의 저항을 의식할 때, 거기서 비롯되는 심한 고통을 겪으면서 격렬하게 분투하는 힘든 순간이다. 그가 약한 상태에서 강화되려고 하는 순간, 그는 자신을 저지하는 악한 영들의 힘을 감지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그는 이전보다도 '싸울' 때 그의 상태가 더 악화되었으을 느낀다. 그가 그렇게 생각하거나 느끼지 않을지라도 이것은 '해방'의 표시이다. 자유를 얻기 위한 싸움에서 믿는이는 악한 영들에 대해 승리하기 위해 성경을 거룩한 무기로 사용해야 한다. 즉각적인 효력이 있고 구원의 증거를 주는 말씀들은 어떤 공격이든 그 공격의 특별한 성질을 보여 준다. 무기로서 효력을 발하는 말씀들은 그 싸움의 직접적인 원인을 나타내기 때문에 믿는이는 그 무기의 효력으로 그 싸움의 원인을 추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무기로 사용된 본문이 '사탄은 거짓의 아비'라는 내용이고 믿는이가 사탄의 모든 거짓말을 거절한다고 선포함으로 원수의 압제로부터 자유를 얻는다면, 그것은 원수가 속이는 역사로 공격하고 있음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믿는이는 원수의 모든 거짓말을 거부해야 할 뿐 아니라 "주여, 마귀가 내게 하는 모든 거짓말을 멸하소서."라고 기도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다만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속임당한 믿는이가 지성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진리를 알아야 하며, 진리를 수용하고 그에 따라 행할 때 자유로워진다. 믿는이가 속임수에 빠져들어갈 때에는 지성이 사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자유를 되찾을 때 믿는이는 사려깊은 지식을 따라 행해야 한다. 즉, 믿는이는 '수동적'으로 속임에 빠져들지만 이제 온 존재를 사용하여 능동적으로 자유를 향해 솟구쳐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힘에는 힘으로 맞서야 한다. 흑암의 권세들을 대항해 싸우는 전투에서 힘을 사용하는 것에는 두 방면이 있다. 하나는 믿는이가 사로잡힌 데에서 자유케 될 때 영적인 힘에 대항하여 영의 힘을 사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몸을 사로잡는 능에 대항하여 물리적 힘을 행하사는 것이다. 이 둘 중 어느 것이든 속이는 자는 이러한 것이 '자기-노력'이라고 속삭임으로 그 사람을 속여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게 하며, 그럼으로써 자신에 대한 저항을 그치게 하려 할 것이다. 그러므로 믿는이는 힘-순수한 힘-을 사용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데, 이러한 힘을 사용하는 것은 다양한 행동을 함에 있어서 영과 혼과 몸을 능동적으로 사용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악한 영들은 사로잡음을 통해 세 부분으로 된 사람의 힘을 피동적이고 수동적인 상태에 빠뜨렸으나, 이제 이러한 힘은 억류하고 있는 힘을 대항하여 발휘되어야 한다. 생각과 영뿐 아니라 신체적인 존재까지도 피동성에서 벗어나 자유에 이르러야 한다. 제 8 장 자유에 이르는 길, 283-286페이지 자신의 원래의 정상적인 상태를 아는 것이 중요함 믿는이가 악한 영들의 세력에서 완전히 구출되기 위해서 자신의 원래 정상적인 상태를 아는 것이 필수 불가결한 것인데, 믿는이는 그 앞에 놓인 이 척도를 가지고 그가 신체적으로나 지적으로나 영적으로 얼마나 구출받았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이것은 믿는이의 모든 기능이 자유케 되고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자유케 하신 그 자유함 속에서 해방된 사람으로 서기까지 확고한 결단력과 믿음으로 끝까지 싸우기 위한 것이다. 그가 이러한 표준으로 자신을 판단할 때 그는 "내 상태가 이전과 같이 않다."고 말할지 모른다. 이로 인해 그는 자신의 정상적인 상태를 복구하기 위해 기도로 싸운다. 속이는 영들은 그의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온갖 종류의 변명을 제시할 것이다. 예를 들어, 그의 나이가 사십이라면, 속이는 영들은 "당신의 지성은 이십 세 때처럼 활력적이지 않다." 혹은 "과로했기 때문에 당신이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것이다."라고 하면서 다양한 변명을 제시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마귀에게 사로잡힌 사람이었다면 그는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이는 이유를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믿는이는 영과 혼과 몸에서 자신이 도달한 은혜의 최고의 분량을 알고 흑암의 권세들의 모든 시도에 맞서 저항함으로 자신을 지켜야 한다. 과거에 대한 태도 자신이 한 일과 하지 않은 일에 대해 '후회해서는' 안 되며, '지나치게 생각에 잠겨서'도 안 된다. 이것은 과거를 회고하는 보편적인 생각의 작용일지라도 자칫하면 일반적으로 '가슴앓이'로 묘사되는 심한 상태에 빠져들 수 있다. 믿는이는 단순히 '회고'하는 것인지 아니면 '후회'나 '가슴앓이'를 하는지, 혹은 '지나치게 상념에 빠져' 있는지를 분별하기를 배워야 한다. 삶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실패들을 포함하여 과거에 대해 승리해야 한다. 미래에 대한 태도 미래에 대한 생각의 활동에도 동일한 태도가 적용될 수 있다. 죄나 사탄이 초래한 '생각에 빠지는' 악한 상태에 떨어지지 않는 한 과거나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가한 일이다. 현재에 대한 태도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능동적으로 준비하면서 매순간 해야 할 일에 마음을 집중해야 한다. 이것은 끊임없이 활동하라는 의미는 아닌데, 전혀 쉬지 않는 지적인 활동은 속임당한 거의 징후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의 무기 믿는이는 자신의 기능을 손쉽게 사용하는 것을 회복하며 악한 영에게 수동적인 상태로 복종하다가 회복된 후 생각을 건강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흑암의 세력과의 부단한 싸움임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싸움에서는 체험이 증명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난 싸움의 병기를 사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성경에 있는 "한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다"라는 진리는 과거에 대해 지나치게 생각하는 것이나 미래에 대한 고뇌를 거절하게 하는 무기이다. 원수의 압박이 너무 심할 때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는 말씀을 무기로 사용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여러 다른 '전투'에 대한 성경 본문들은 악한 날에 원수의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믿는이를 맹습하는 그 자를 찌르는 '성령의 검'이라는 것이 참되게 입증될 것이다. 의지의 견고한 태도나 행동 생각이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상태로 유지되고 원수의 방해에서 벗어나기 우해서는 믿는이가 그의 의지를 견고하게 세우는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예를 들면, "나는 내 생각이 수동적인 상태에 떨어지도록 가만히 있지 않겠다." "나는 내 기능들을 자유자재로 완벽하게 조절해서 사용하겠다." "나는 원수에게서 오는 모든 것을 인식하기 원한다."라는 태도이다. 이러한 모든 것은 이렇게 하겠다는 결심이라기보다는 그의 선택을 천명하는 말들이다. 흑암의 권세들은 단순한 결심, 즉 결의에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흑암의 권세들에 대항하여 서는, 즉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확신 있게 선택하는 결단력 있는 행동으로 무력화된다. 제 9 장 사람의 의지력과 사람의 영, 291, 292, 295페이지 이제 우리는 성경을 통해 믿는이 안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참된 길에 대해 사탄과 그의 사악한 영들의 길과 대조하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과 협력하는 원칙은 하나님에 의해 수동적으로 조종당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이해하는 가운데 행하는 것인데, 이것은 속임당함과 마귀 들림에서 벗어나기 위한 기초일 뿐 아니라 다음 장에서 다루게 될 전투의 기초이기도 하다. 간략히 말해서, 거듭나나 사람의 영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는 믿는이의 의지의 능동적인 협력이 있어야만 혼의 기능과 몸의 지체들을 통하여 활동하고 역사하신다고 할 수 있다. 즉, 사람의 영 안에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 자신이 "나는 내 손을 사용하겠다."라는 의지를 세우지 않는다면 그의 손을 사용하시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의지와 조화를 이루려는 신중한 선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지와 그의 의지의 본질적인 연합과 성령의 활력화시키는 능력이 주어질 때, 믿는이는 영과 혼과 몸 안에서 자신을 통제하는 데 자신의 의지를 능동적으로 사용한다. 그의 영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가 결단력을 행사할 때 그와 협력하실 수 있다. 거듭난 사람의 의지가 성령의 능력에 의해 하나님의 법과 목적에서 그분과 조화를 이루고, 겉 사람 전체가 '자기-통제'의 상태로 이끌려지는 것은 그때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열매 중에 절제(자기-통제)가 있는 것이다(갈 5:23). 성령의 열매는 단지 혼-인격-의 통로를 통해 나타나는 사랑과 희락과 오래 참음과 온유만이 아니라, 자신의 세계를 지배하는 데 있어서 다음과 같이 되는 것이다. (1) 그리스도에게서 나타난 것처럼 모든 생각이 사로잡혀 아버지의 뜻에 복종된다(고후 10:5). (2) 또한 그의 영이 의지에 '지배받아' '냉철하게' 된 결과 그는 자신의 마음에 있는 것은 물론 영 안에 있는 것도 임의로 '마음에 간직하여 두거나' 말할 수 있다(잠 17:27). (3) 그의 몸은 의지에 복종되어 하나님께서 활력 있게 하시고 능력을 주심으로 훈련된 치밀한 도구가 된다. 몸은 섬김을 위한 수단으로서 지성으로 조절할 수 있는 도구이며, 더 이상 사람의 주인이거나 사탄의 도구이거나 제어하기 어려운 욕망을 충족시키는 도구가 아니다. 제 10 장 전투에서 승리함, 321, 322, 326페이지 참소자인 마귀에 대한 승리 : 원수의 '참소'와 그의 '유혹'의 차이점은, 후자는 사람을 죄 가운데로 끌어들여 강제로 죄를 짓게 하려는 마귀의 노력을 말하고, 전자는 마귀의 노력으로 죄를 지은 것에 대해 비난하는 것을 말한다. 유혹은 사람으로 하여금 법을 범하게 하려는 노력이며, 참소는 믿는이로 하여금 법을 범한 죄 있는 위치에 서게 하려는 노력이다. 악한 영들은 사람이 잘못한 것에 대해 그를 참소하고 벌 주기 위해 그가 잘못되기를 원한다. '참소'는 정죄, 즉 하나님의 책망하심의 모조품이다. 믿는이는 자신이 범한 죄에 대해 비난받을 때 그것이 하나님의 책망인지 사탄의 참소인지를 알아야 한다. (1) 마귀는 사람이 정말 죄를 범했을 때 그를 참소할 수 있다. (2) 마귀는 사람이 죄를 범하지 않았을 때도 참소할 수 있으며, 이때 그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고 믿게 만든다. (3) 마귀는 그의 참소를 하나님의 책망으로 여기게 하려고 애쓰며, 그에게 전혀 죄가 없을 때에는 그것이 악한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악한 영들은 믿는이에게 죄의식을 주입할 수 있다. 죄 자체는 믿는이 속에 있는 악한 본성에 기인하며, 이것은 죄를 범하도록 외부에서 그에게 강요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믿는이는 어떻게 고의성이 없는 죄의 배후에 악한 영들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고 죄로 여기는 것에 대해서는 결코 굴복하지 않은 채 로마서 6장의 위치에 서 있는 그때에도 설명할 수 없는 죄에 대한 참소가 계속된다면, 이는 악한 영들에게서 온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만일 믿는이가 이성적인 지식과 분명한 판단에 따라 자신이 죄를 범했다고 완전히 판단할 수 없다면, 자신이 죄를 범했다는 참소나 초자연적으로 가해지는 비난을 결코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만일 그가 결백함에도 그 비난을 받아들이면 그는 실제로 범죄했을 때와 상응하는 고통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다른이들에게 죄를 '자백'하도록 강요하는 것을 거절하기 위해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이로써 원수가 거짓 참소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영적인 믿는이들이 속이는 자의 참소하는 영들에 대해 승리하기 위해서는 죄를 지었다는 어떤 의식이 실지 범죄의 결과인지 혹은 악한 영들에 의해 야기된 것인지를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만일 믿는이가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죄를 지었다는 의식을 받아들인다면, 그는 즉시 죄에 대하여 죽은 위치를 떠나 자신이 죄에 대하여 살아 있다고 여기게 되고 만다. 이로써 로마서 6장 11절의 '죄에 대해 죽은 자로 여김'으로 죄에 대해 승리한 것을 참되게 알고 있는 많은이들이 그들이 서 있는 기초를 포기하고 승리의 위치를 잃게 된다. 참소자는 '자아' 혹은 '죄'의 표현을 위조한 후 '로마서 6장은 통하지 않는다'고 조소하면서 그에 대해 믿는이를 참소한다. 참소자는 이러한 책략으로 믿는이로 그의 승리의 기초를 포기하게 함으로 그를 진흙탕과 흑암의 수렁인 혼란과 정죄에 빠지게 한다. 제 10 장 전투에서 승리함, 326, 327, 329페이지 죄에 대항해 굽히지 않고 단호하게 싸워야 함 사탄에 맞서는 전쟁은 죄에 대항해 강하고 위축되지 않는 전쟁과 함께 수반되어야 한다. 알고 있는 죄는 그 어떤 것도 일시라도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타락한 본성에서 나온 것이든 사람으로 죄를 짓도록 부추긴 악한 영들에게서 비롯된 것이든, 로마서 6장 6절과 12절을 근거로 하여 제거되고 멸해져야 한다. 원수의 모든 속임수에 대해 승리하기를 추구하는 믿는이들은 죄를 다루는 데 있어서 능동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 참소자인 사탄에 대해 영원히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믿는이는 그가 '의지'의 태도를 갖는 것과 그의 생활에서 실지로 행동하는 것 사이에 어떤 불일치가 있음을 깨닫고 이러한 불일치를 찾아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는 그의 의지와 동기에서만이 아니라 그의 행동들에서도 자신을 알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진리로 거짓을 이김 진리로 말미암지 않고는 거짓을 이길 수 있는 길이 없다. 거짓말쟁이인 마귀와 그의 거짓말을 이기기 위해서 믿는이는 항상 자신이나 다른이들에게 혹은 자신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언제나 진리를 알고 말하기를 결단해야 한다. 거짓말쟁이인 사탄은 그의 거짓 영들을 통해 하루 종일 끊임없이 믿는이에게 거짓말을 쏟아붓는다. 즉, 믿는이 자신에 대한 생각과 그의 느낌과 그의 상태와 그의 환경에 거짓말을 쏟아붓는 것이다. 그와 그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잘못 해석하게 하는 거짓말, 그가 접촉하고 있는 이들에 대한 거짓말, 과거와 장래에 대한 거짓말, 하나님에 대한 거짓말, 믿는이 자신에 대한 거짓말, 그리고 마귀의 능력과 권세를 과장하는 거짓말을 쏟아붓는다. 거짓의 아비에게서 오는 이러한 끊임없는 거짓의 흐름에 대항하여 승리하기 위해서 믿는이는 (1) 기록된 말씀 안에 있는 하나님의 진리의 병기로 싸워야 하고 (2) 그 자신과 다른이들과 환경 안의 사실에 대한 진리로 싸워야 한다. 제 11 장 흑암의 권세 잡은 자들에 대한 싸움, 362-366페이지 권위를 행사하기 위하여 믿는이가 갖는 지식과 분별력은 하나님의 영께서 언제, 어디에서 믿는이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권위를 붙들게 하시는지를 볼 수 있게 한다. 예를 들면, 악한 영들을 추방하는 권위는 악한 영들의 거짓말을 접하게 되면 아무런 효력을 발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권위로 악한 영들을 추방하기 위해서는 권위를 행사할 때 말하는 지식이 거짓이 아닌 진리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때 진리는 권위의 무기이다. 다시 말해서, 진리란 그리스도의 권위가 행사될 수 있게 하는 무기라는 의미이다. 그 자체가 진리인 지식의 권위로 말한 하나님의 진리만이 영혼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에서 지식과 이해에 관하여 얼마나 많이 말하고 있는지를 주의해 보자. 사도는 골로새 사람들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모든 지혜와 영적 깨달음에서 그분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워지는 것을(골 1:9) 말했으며, 주님은 "영생은...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라고 말씀하셨다. "만일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면 서로 사귐이 있고". 빛 가운데 행하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요, 하나님을 알 때 우리는 상대적으로 흑암의 권세를 알게 된다. 왜냐하면 빛이 흑암의 일을 드러내기 때문이다(엡 5:11-13 참조). 영적 생명이 장성한 사람들은 선과 악을 분별하는 데 연단된 지각을 소유하고 있다(히 5:14). 믿는이는 악한 영들을 분별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 기꺼이 대가를 치르고자 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 이유는 믿는이가 하나님께 속하거나 선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 저항적인 태도나 중립적인 태도를 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일이 하나님께 속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믿음을 위하여 지식은 또한 믿음에 영향을 미친다. 믿는이는 악한 영들이, 잠정적으로 뿐 아니라 실지로 하나님의 거룩한 분과 유기적으로 연합되어 연결된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믿는이는 악한 영들의 공격에 무시하는 태도로 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맹렬한 공격을 '대적하는'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엡 6:13). 믿는이는 경계해야 할 악한 영들의 '음모'를(고후 2:10-11) 파악하고 예수의 이름의 권위로 명한 말씀으로 '내쫓아야' 한다(막 16:17). 악한 영들은 믿는이가 그들의 정복자이신 분과 그 자신을 동일시하고 그분의 이름의 권위를 의지하여 행할 때 내쫓기게 되어 있다. 지식은 원수에 저항하려는 의지를 사용하는 데에 영향을 미친다. 만일 믿는이에게 모임 중의 권세가 하나님께 속한 것인지 사탄에게 속한 것인지를 식별하는 지식이 없다면, 어떻게 모임에서 악한 영들에게 저항하는 태도를 취할 수 있는가? 지각 또한 지식의 요소이다. 믿는이의 지각이 둔해진다면 흑암의 권세들의 역사를 간파하고 읽어내는 데 필요한 지식을 얻을 수 없다. 기도를 위하여 믿는이가 악한 영들에게 대항하는 데 효과적인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흑암의 권세들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악한 영들은 믿는이 주변에서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으며, 따라서 믿는이는 기도로 악한 영들의 역사를 멈추게 할 수 없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기도를 많이 할지라도 마귀가 그 가운데서 일하는 방식을 볼 때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백성은 기도로 마귀의 역사를 패배시킬 수 없는데, 이는 그들이 마귀의 역사를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흑암의 권세들과의 전쟁에서 기도는 가장 강력한 최상의 무기이다. (1) 흑암의 권세들과 그들의 역사에 대한 공격적인 전쟁에서 (2) 그들의 권세에서 사람들을 구원하는 데에서 (3) 그리고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를 반대하는 계급적인 세력인 그들에게 맛서는 데에서 기도는 최상의 병기이다. 제 11 장 흑암의 권세 잡은 자들에 대한 싸움, 383-385페이지 기도와 행동 끊임없이 인내로 기도하기를 힘쓰면서 다른이들을 위해 원수와 싸워온 믿는이는 행동할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믿는이가 중보기도한 사람을 구원하는 데에 그를 위해 기도해온 사람을 도구로 사용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도만이 아니라 행동을 취하는 것은 필수적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시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만으로 매우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기도와 함께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을 필요로 하신다. 기도와 전도 기도하는 사람은 전도함으로 진리를 전파하도록 부르심받을 수 있다. 만일 그렇다면 그는 전도할 때 기도의 지위를 알아야 한다. 믿는이가 효과적으로 전파하기 위해서는 다른이들의 기도를 필요로 하며, 그가 사탄의 왕국을 흔드는 진리를 전파하고 있을 때 그는 스스로 직접 전쟁을 수행해야 한다. 만일 그가 전도하기 전에 기도로 흑암의 권세들을 처리한다면 그의 영을 통하여 흐르는 흐름은 방해받지 않고 흐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악한 영들이 그의 전도를 방해하고 있다면 그와 동시에 그의 영이 영적인 영역에서 장애물에 저항하고 있기 때문에 그는 큰 어려움 가운데서 싸우듯이 전도의 말을 쏟아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영적 저항으로 인해 말씀을 전파하는 음성이 거칠게 들릴 수 있다. 믿는이가 실지로 말씀을 전파하고 있는 동안 속이는 영들은 그의 '메시지'의 흐름으로 청중이 구원받는 것을 훼방하려고 애쓸 것이다. 말하자면 악한 영들은 말씀을 전하는 믿는이를 비난하면서 그 말씀 전파를 방해한다는 것이다. 악한 영들은 그 모임의 상태에 대해 진정한 원인을 제외한 기타의 갖은 원인을 속삭이면서 그가 전파하고 있는 동안 그의 생각에 송사를 퍼부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대적할 것이다. 만일 그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거룩한 생활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면, 그는 다른이들에게 전하는 바로 그 거룩한 생활에 자신이 얼마나 미치지 못하는가를 듣게 된다. 그러한 송사의 말이 끈질기게 들려오기 때문에 그는 갑자기 메시지 속에 자신을 업신여기며 깎아내리는 말을 집어넣을 수 있다. 악한 영들이 제안했는데 연사가 자신의 말이라고 생각하고서 그 자신에 대해 추가한 이러한 말들을 통하여 악한 영들은 모임의 분위기 안으로 한 줄기 흐름을 흘려보내는데, 그것은 청중 위에 어두운 구름을 드리우게 된다. 악한 영들을 파괴하는 병기인 기도 기도는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게 하는 어떤 법칙을 이루며, 그분으로 그분의 목적을 성취할 수 있게 한다. 기도는 죄에서 나온 것이든 마귀의 역사로 말미암은 것이든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는 장애물을 파괴하는 병기로서, 믿는이가 임의로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병기이다. 기도는 건설적일 뿐 아니라 '파괴적'이다. 그러나 끝까지 기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운행하심을 방해하는 것의 원인들을 제거하고 어떤 일들의 근원을 꿰뚫는 것이어야 한다. 우주적인 기도 기도는 철저해야 할 뿐 아니라 지속적이어야 한다. 믿는이는 이를 위해 (1) 기도할 힘과 (2) 기도에 대한 이상과 (3)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기도의 사역에는 전도의 필요에 맞먹는 많은 훈련과 장비가 요구되고 기도의 순서는 지적으로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훈련된 기도의 전사는 구하는 기도와(요 14:13) 중재하는 기도와(롬 8:26) '말하는' 기도와(마 21:21, 막 11:23-25) 영이나 생각에 짐이 될 수 있는(골 2:1, 4:12) 부담의 기도 등 기도의 다양한 방면에 대해서 안다. 제 12 장 부흥의 여명과 성령 침례, 404, 405, 408 페이지 먼저 능력을 부여받는 것이 가능하다는 분명한 확신과 능력에 대한 깊은 신뢰와 그러한 능력이 필요하다는 느낌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을 섬기는 능력을 부여받을 필요가 있다는 느낌은 믿는이가 수년 동안 성령을 내주하시는 능력으로 알아왔지만 지금까지 그의 삶과 봉사에 아무런 효력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을 때 일어날 수 있다. 특히 능력이 필요하다는 느낌은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한 능력과 구변이 부족할 때, 그리고 초기 교회에서 그렇게도 현저했던, 흑암의 세력들에 맞서는 공격적인 힘이 거의 없을 때 매우 절실할 수 있다. 때로 하나님의 능력이 더 많이 유입되기 전에 선행되는바 능력의 필요에 대한 느낌을 갖도록 성령으로 감동된 사람들은 영적 생명에서 동일한 단계에 있지 않은 다른이들, 즉 그러한 능력을 부여받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 의해 방해받는다. 그러한 경우에 믿는이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제쳐놓고 직접 하나님을 대하면서 그분이 그의 절실한 필요를 채워주실 것인지를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하나님의 영이 믿는이 영 안으로 유입되심의 증거는 영이 해방되어 빛과 자유와 능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그 결과 증거를 감당할 구변의 자유를 얻고 성령께서 다른이들의 죄를 책망하실 때 그분과 동역하게 되는데, 성령께서는 궁극적으로 이 목적을 위해 오신 것이다. 능력을 부여받기 위해 성령에 의해 훈련되고 연단되고 있는 믿는이들은 이미 받은 은혜의 충만한 분량에 따라 빛에 충실하면서 현재 그리스도를 섬기고 있는 것처럼 꾸준히 그분을 섬겨야 한다. 그 이유는 신실하게 섬기는 노정 안에서 능력을 부여받는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녀들에게 무언가를 더 주시기 전에 그들에게 이미 주신 것들을 다 사용하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이다. 믿는이가 그분의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자 추구할 때, 하나님의 영의 조명하심에 의존하여 그의 생각과 판단력을 사용하고 그의 영의 느낌을 주의하기를 배우면서 그가 현재 가지고 있는 최고도의 지식을 따라 하나님을 향한 순종을 나타내야 한다. 제 12 장 부흥의 여명과 성령 침례, 410 페이지 원수를 대항하는 공격적인 전투의 장애물은 승리의 병기가 부족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기꺼이 진리로 향하지 않으려는 데 있다. 믿는이들은 자신들의 상태를 모르기 때문에 그저 만족한다. 그들이 가진 좋은 점 때문에 더 나은 것을 추구하거나 교회에게 더 필요한 것을 구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믿는이들을 자기 만족의 상태에서 이끌어내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사탄으로 하여금 그분의 백성을 키질하도록 허락하신다. 사탄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한계 내에서만 교회를 어둡게 할 수 있다. 믿는이들은 체험에 의해서만 그들 자신에 대한 진리를 배울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체험하도록 허락하신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주님의 다시 오심을 위해 생명이 성숙되고 예비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원수의 맹렬한 공격이 믿는이 위에 임하는 것을 허락하신다. 키질하는 불을 통과해서만 교회가 주님과 함께 승리의 위치에 오를 수 있는 길을 열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탄의 세력을 하늘에서 쫓아내는 전쟁과 승리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신성한 일들에 대한 잘못된 관념은 체험을 통해서만 깨뜨려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