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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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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들 (David W. Cloud)
lhyunsik
2005-11-25
집사들 : 하인들인가 주인들인가?
(Deacons : Servants? or Rulers?)
데이빗 클라우드(David W. Cloud)
“모든 실용적인 의도에도 불구하고, 무지하고, 무능하고, 정직하지 못한 자들이 집사로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들이 교회에 없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들은 비단 쓸모없을 뿐 아니라 교회에 궁극적으로 해악을 초래한다. 때로는 그들은 가장 심각한 상처들을 교회에 남기기도 한다 .”
- R.B.C.Howel
집사(deacon)에 대한 신약 그리스어 단어는 -디아코노스(diakonos)-로서 단순히 ‘심부름꾼’을 의미한다. W.E..Vine이 내린 다음 정의를 살펴보자:
“그 특성에 대한 특별한 규정 없이, 무상으로 봉사하는 하인이든, 혹은 노예 노동을 하는 것이든 디아코노스(diakonos)...는 간단하게 심부름꾼을 뜻한다. 그 단어는 아마도 서둘러 뒤쫓다, 추적하다(아마도 어원적으로는 육상선수를 언급할 때 사용)는 뜻의 동사 ‘디오코(dioko)’와 연관되는 것 같다. 신약에는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하인들”(요 2:5,9)
“사자”(롬 13:4)
“그리스도”(롬 15:8, 갈 2:17)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타인을 섬기는 자”(마 20:26, 23:11, 막 9:35, 10:43)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요 12:26, 엡 6:21, 골1:7 4:7)(W.E.Vine)
실제적으로는 우리는 “집사”란 용어가 신약에서 크게 두 가지로 지역교회와 관련하여 사용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1. “디아코노스(diakonos)" (집사, 하인, 사역자로 변역되는 그리스어)는 일반적으로 크리스챤 일꾼들을 가르치는 데 사용되고 있다.
디아코노스가 사용된 다음 구절들을 살펴보자:
“바울은 누구이며 또 아볼로는 누구냐? 곧 주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대로 너희를 믿게 한 사역자(diakonos)들이 아니냐?"(고전 3:5)
“내가 겐그리아에 있는 그 교회의 섬기(diakonos)는 우리 자매 뵈베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롬 16:1)
“또한 그분은 우리를 새 언약의 유능한 사역자들로 삼으시되…”(고후 3:6)
“오직 모든 일에 우리자신을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자처 하며…”(고루 6:4)
“그들이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이냐?…”(고후 11:23)
“…내가 사역자가 되었느니라”(엡 3:7)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사역자가 되었느니라”(골 1:23)
“너희에게서 온 그리스도의 종(diakonos)인 에바브라가…”(골 4:12)
“우리의 형제요, 하나님의 사역자요, 그리스도의 복음 아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디모데를 보내었으니”(살전 3:2)
“…예수 그리스도의 선한 사역자가 되리라”(딤전 4:6)
그리스어 단어 “diakonos"가 사용된 상기 모든 인용문에서, 그리고 각각의 구절들에서 그 의미는 일반적으로 복음 전하는 자들과 크리스챤 일꾼들을 뜻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 디모데, 에바브라, 그리고 다른 전도자들이 "deacons(집사들)”로 불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 모든 크리스챤들은 한 사람의 집사이고, 한 사람의 하인이며 - 포괄적인 의미에서 - 그리스도의 종이며, 잃어버린 세상 사람들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며, 교회의 섬기는 일꾼들이다.
2. “diakonos"는 또한 지역 교회 내에서 특별한 직분을 일컫는 말로 사용된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하인이라는 포괄적 의미에 따르면, 집사의 직분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신약에서 제시된 집사라는 직분이 있는데, 확실하고 높은 수준을 가진 직분, 그리고 오직 적절한 자질을 갖추고 있는 선택된 크리스챤들이 가지고 있는 직분을 말한다. 이런 의미로의 그 단어 ‘집사’는 또한 오늘날 매우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빌립보에 있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모든 성도들과 감독들과 집사(diakonos)들에게 편지하노니,”(빌 1:1)
“이는 집사의 직분을 잘 섬긴 사람들은…”(딤전 3:13)
여자들이 집사가 될 수 있는가?
로마서 16:1의 ‘뵈뵈’의 예는 어떻게 여자들이 포괄적인 의미의 집사들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예로서 즉 그리스도의 사역자들과 교회에 대한 하인들이란 의미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직 남자들(형제들)만 지역교회에서 특별한 의미의 집사라는 직분을 가질 수 있다.
집사의 직분을 담당하기 위해 요구되는 여러 자질들 중 하나는 다음이다-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안을 잘 다스려야 할지니라.”(딤전 3:12)
이 규정은 교회나 가정에서 여자들이 남자들 위에서 지도하는 자리에 있는 것을 금하는 신약의 가르침과 일관된 것이다. 비록 집사라는 직분이 목자라는 직분과 같은 의미로서의 지도자(리더)의 직분은 아닐지라도 집사들은 사실상 높은 영적 위상을 가진 형제들이여야하고 거의 대부분 항상 교회 다른 회원들과 외부인들로부터 영적 모범자로서 존경을 받아야 한다.
집사의 의무는 무엇인가?
집사는 모든 크리스챤들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 외에 특별한 의미로 교회와 목사를 돕는 하인들이 되는 형제들을 위한 직분이다. 사도행전 6:1-4에는, 비록 실제적인 용어 ‘집사’가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명백히 집사들이 하는 일에 대한 성경적 표본이 여기 있음을 알 수 있다. 확실한 필요성이 제기될 때, 몇몇 자질 있는 남자들이 선택된 것을 주목하라, 그들의 주된 기능은 목사들이 기도하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 전하는 영적 임무에 전념할 수 있게 돕는 것이었다.
물론, 집사들은 목사나 교회에 의해 지명된 어떤 일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특별히 재정, 복지, 그리고 사회 구제(미망인들을 돌보는 일 등)과 같은 일들을 맡아보아야 했으며 그리하여 목사들이 -감독, 연구, 가르침, 전도, 심방, 상담, 기도와 같은- 목회자 임무에 자기들의 모든 사고와 정열과 시간을 바치도록 다른 일에서 그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었다.
사도행전 6장의 예에 따라, 우리는 ‘집사’라는 용어를 다음과 같이 한정할 수 있다 : 집사들은 목사에게 예속된 특별한 직분에 선택된 형제들이며 계속적으로 목사가 하나님주신 의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모든 필요한 방법으로 돕고 지켜주는 자들이다.
집사의 의무들은 결코 성경에는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기록되지는 않았는데, “아마도 선한 이유에서, 즉 그들이 집사의 마음가짐으로, 스스로 해야 할 바로 그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집사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지적하는 것은 목사들에게 맡겨져 있다.”(윌리암 페넬 목사)
집사의 권위
신약의 어디서도 집사들이 교회의 지배자로 언급된 곳은 없으며 또한 어느 곳에서도 그들이 목회자들에 대해 지배하는 것을 찾아볼 수 없다.
물론, 때때로 집사들 혹은 교회의 다른 사람들이 조정해야할 때도 있다. 일례로 목사의 부재 시를 들 수 있다. 또 다른 예는 목사가 어떤 문제로 부재중이거나 장기 출장 중이거나 병상에 있을 경우 또는 목사직을 잠시 쉬는 경우이다. 그러나 심지어 그러한 경우에라도, 집사들이나 혹은 교회를 이끌어가는 데 참여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역할과 권위가 오직 일시적이라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교회가 다시 하나님-부르신-훌륭한 목사를 맞이하게 되었을 때에는 교회의 리더십은 반드시 집사들과 그동안 리더십을 참여했던 다른 사람들에 의해 그 목사에게 양도되어야 한다.
“목회자(pastor)”,“장로(elder)” 그리고 “감독자(bishop)”이란 용어는 신약에서 번갈아가며 사용되었으며 분명히 동일한 사람인 목사의 지위를 칭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다른 단어들은 그 직위의 세 가지 면을 설명하는데 사용되었다. - 목회하는 일, 가르치는 일, 그리고 이끌어가는 일. 한 사람의 목사(혹은 교회 설교 전도자)는 교회 내에서 감독할 수 있는 성경적 권한을 가진 유일한 직분자이다. 그는 감독자(bishop)라고도 불린다.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은 또한 감독자들이라고도 불렸다(사도행전 20장 17절과 20장 28절을 비교해보라). 신약에서 교회의 다른 어떤 직분자도 이러한 타이틀이 주어진 적이 없다. 집사들이란 결코 감독자, 통치자, 그리고 지도자를 의미하는 데 사용된 적이 없다. 교회는 반드시 감독자 위에 또 감독자를 세울 수 없다!
어떤 때라도 집사 혹은 다른 형제들의 모임이나 재직위원회에서 권위 면에 있어서 목사보다 자신들을 높인다면, 즉 자신들을 그 하나님께서-명하신 지위 아래 복종하는 자리에 자신들을 두지 않으면, 그 사라들은 불의한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반역하는 것이다.
물론, 만일 목사가 회개하지 않고 죄악의 거짓 교리에 서 있다면, 집사들과 혹은 교회 내의 다른 장년의 형제들은 반드시 일어나서 그 상황이 요구하는 범위까지의 성경적 가르침을 실현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특별한 경우이고, 그 문제가 해결되는 즉시 성경에 따른 말씀위에 서있는 목사가 된다면, 최종 통솔 권위와 감독권은 그의 손에 주어져야 한다.
신약에서 우리는 잘 이끌어가는 장로들(목사들, 딤전 5:17)에 관해서는 살펴볼 수 있으나, 잘 통솔하는 집사들에 대해서 찾아보는 자는 헛된 것이다!
“성경에 집사들에게 권위를 주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그것은 복종하는 직분이고 반드시 스스로를 낮추어야 하며 선한 양심과 하늘에서 온 지혜를 가진 자여야 한다. 집사들이 지역교회에서 권위가 주어지는 유일한 이유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지역교회에는 오직 하나의 권위만 있으며 그것은 목회자의 권위이다. 교회에서 그의 음성은 청종되어져야 하고 사람들의 영혼에 대한 감독자로서 존중되어야 한다. 그의 권위는 매사에 있어서 존중되어야 하며 그것은 순종되어야한다.
지역교회에서 집사를 선출할 때 그가 아무런 권위도 없다는 것을 기억케 하는 것이 목사들의 의무 중 하나이다. 당신은 그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에게 아무것도 주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파당이나, 분쟁 혹은 다툼이 일어나 집사가 그것을 주도하고 있을 때, 당신은 한 가지를 확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그 안에 안 계신다는 것이다. 야고보서에 기록된 지혜에 관한 말씀을 기억하라. 그렇다면 많은 다툼과 슬픔들을 없앨 수 있을 것이다(야 3:13-18)
하나님께서 지역교회에 집사를 두라고 하신 명령은 없다. 만일, 그런, 그것이 명령되었다면,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따르도록 명령하신 통제만이 있을 뿐이다. 하나님의 금하시는 말씀은 반드시 따라야 한다.
만일 목사의 권위가 훼손되었다면 혹은 목사가 그의 사역에 실패하였다면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가 집사들의 권위를 살펴보는 한편으로, 목사가 훈계되어져야 하거나 혹은 새로운 목사를 선택해야 할 때 취하는 태도에 관해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런 경우에 교회를 지도하는 것은 집사들이다.
1. 목사에 대한 송사를 받아들이거나 혹은 송사하는 데는 극도로 주의해야 한다.
“장로(목사)에 대적하는 송사는 두세 증인들 앞에서가 아니면 받지 말 것이요”(딤전 5:19)
주변에는 사탄이 할 수 있는 한 목사의 사역을 파괴하기 위해 사용하려고 노력하는 사악한 자들이 항상 있다. 목사에 대해 속삭이거나, 허물 들추어내기 그리고 그의 등 뒤에서 수군거리며 비난하는 것도 사악한 것이며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심판받을 것이다.
“형제들아, 정죄를 받지 아니하려거든 서로 남을 탓하지 말라. 보라 재판관이 그 문 앞에 서 계시느니라.”(약 5:9)
적어도 두 세 사람의 명망 있고 신실한 증인의 증거 없이 목사에 대해서는 어떤 행동도 취하지 말라.
2. 정정과 회복을 시도하라. 만일 이것이 실패하면, 다른 회개하지 않는 교회원들처럼 실패한 목사는 반드시 교회로부터 교정될 때까지 목회를 정지해야 한다.
죄가 회개할 때까지 그를 목회자로서의 자격을 상실케 했을 때가 있다. 간음, 이혼, 일부다처 등의 경우가 그렇다.
고린도 전서 5장이나 디도서 3장 10-11절은 교회 안의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다. 목회자를 포함해서. 아울러 디모데전서 5:19-21절의 교훈도 있다.
3. 목사의 권위와 교회에 대한 감독권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을 침해하거나 대신하지 말라.
잘못된 경험을 하거나 혹은 그러한 목사직분의 훼손을 경험한 후에, 목사의 권위에 대해서 견제와 균형이라는 인간적 시스템을 도입시키기 원하는 것이 교회의 일반적이 경향이다. 예로
ㄱ. 집사들이 때때로 영원히 교회의 통치권을 가지고, 목사에 대해 강력한 권위를 행사한다.(장로교회의 경우 장로들이 주인이고 목사들이 종이 되는 악습들이 있다.)
ㄴ. 교회 내에서 가장 세력 있는 가족들이 때때로 통치권을 행사 한다. 때때로 소란스럽고 공개적인 태도로 그러나 훨씬 종종 야비하게, “막후에서” 교회를 흔든다.
ㄷ. 다른 경우에는, 가장 커다란 재정적 헌금자들이나 힘 있는 사업가들이 목사나 회중들을 다루며 교회 사건들을 지배하기도 한다.
왜 이것들은 잘못된 것인가?
1. 오직 주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목사가 되는 사람을 부르실 수 있다(행 20:28, 엡 4:11).
분명히, 그리스도인들은 목사를 부르거나 세울 권리가 없다. 하나님께서 부르셔야 한다.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과 하나님의 사람을 인정할 뿐이다.
2. 오직 목사만이 교회의 감독자라고 명령된 자이다.
신약의 어느 곳에서도 집사들이나 혹은 안수되지 아니한 남자들이 교회의 통치자라고 언급된 기록이 없고 어느 고세서도 감독에 대한 지위를 행사하는 예가 없다. 우리가 이전에 말해왔던 것이 반복된다. 목사들이 지도자들이고 그 감독자에 대한 또 다른 감독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예수님만이 목사들이 감독자이다!
다음은 매우 사악한 예이다
1. 고라의 죄(민16): 감독자이며 목사인 모세를 대항하였다.
2. 아론가 미리암의 죄(민12): 감독자이며 목사인 모세를 비방수근 거렸다.
3. 반역한 아이(벧전 3:1-5): 감독자인 남편에게 불순종하는 죄
4. 반역한 아이(잠 30:17): 감독자인 아버지 목사에게 불순종하는 죄
5. 반역한 하인(벧전 2:18-23): 감독자이며 목사에게 불복종하는 죄
어떤 그룹의 사람들이건, 가정이건 혹은 교회의 사람들이건 목사에 대해 통제력을 행사하려고 시도하는 자들은 상기 기록된 반역과 같은 죄를 범하는 것이다. 권위를 훼손시키는 것은 하나님 앞에 매우 심각한 문제이며, 그분이 특별히 엄한 심판을 하시는 것이다.
디모데전서 5:24-25은 우리에게 심판이 항상 우리 인생에 있다고 상기시킨다. 어떠한 죄악들은 그것들이 해결되기 전에 무덤까지 그리스도인을 따라간다. 일련의 집사 그룹이, 예를 들어, 여러 해 동안 어떤 확실한 심판 없이 목사 위에 월권을 사용해왔다면, 그들은 의심할 것 없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이 반역을 직면하게 될 것이다.
목사와 관련한 이 문제에서 교회는 아내와 같아야 한다.
1. 여자는 자신의 인생을 위한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있는 유일한 그 남자-구원받은 영적인 사람-와 결혼해야 할 책임이 하나님 앞에 있다.
이처럼, 교회는 반드시 하나님의 신약 규범에 의해 자질 있는 목사들을 선택해야만 한다. 그 교회는 반드시 완전히 확신할 때까지, 충분한 기도와 하나님의 뜻을 간구한 후에 그들이 그 때 교회를 위한 최적의 목회자를 찾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남편을 선택하는데 부주의한 여자는 반드시 그로인해 파생되는 문제들에 놀라지 말아야 한다. 교회 역시 목사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서둘고 비성경적인 선택을 한 것에 뒤따르는 문제들에 놀라지 말아야 한다.
2. 결혼 이후, 여자는 머리된 남편의 권위 아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분명한 명령(엡 5:22-24, 골 3:18, 딛 2:5, 벧전 2:1-6)이다. 그러나 만약 남편이 실수를 한다면? 그는 분명히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의 리더십과 사랑이 완전하지 않다면? 분명히 그럴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녀는 그리스도에게 그렇듯이 그에게 복종해야 한다. 바로 그렇게, 교회는 그 목사에게 복종해야 한다. 만약 그 가 확실히 실수를 하고, 많은 부분 불완전하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3. 그녀는 그녀의 남편이 명백하게 그녀에게 성경을 불순종할 것을 명령한다면 그 문제에 있어서는 남편을 따를 것을 거부할 수 있다. 그런 경우, 아내는 보다 높은 권위인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이처럼, 교회가 적법하게 목사를 따를 것을 거부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목사가 명백한 성경적 가르침에 위배되는 방향으로 인도하고자 할 때이다. 이런 경우, 교회는 반드시 순종을 거부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목사의 권위에 맹목적인 복종을 요구하지 않으신다. 교회 인도라는 목사의 권위는 성경말씀에 대한 그의 충성과 연결되어 있다.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은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라”(살 5:21)는 것이다.
4. 그녀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올바르게 유지해야 한다.
한 아내는 무능한 자리에 처해서는 안된다. 그녀는 하나님과 동행해야 한다. 다음 구절은 진리가 아니던가? “왕의 마음이 주님의 손에 있는 것이 마치 강물의 흐름과 같아서, 그분께서 원하시는 곳이면 어디로든지 그것을 돌이키시느니라.”(잠 21:1) 아내는 능력 있는 기도의 삶을 누릴 수 있으며 그로인해 그녀의 남편이 올바른 남편으로 서게 하는 것을 도울 수 있다.
심지어 그럴지라도, 교회 회원들은 자신들의 삶과 기도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목사를 축복하고 도우실 수 있으며 그렇게 하실 것이다. 한 사람의 목사의 삶은 보통 그 교회에 반영되고, 그리고 교회의 삶은 보통 그 목사에게 반영된다. 그렇다, 보편적으로 교회가 가치 있는 목사에게 주어진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교회에 몇 명의 집사들이 필요한가?
실제로, 성경은 어느 곳에서도 교회가 집사들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서는 집사들에 대한 확실한 필요성이 대두하기까지는 그 직분자들을 택하지 않았다. 바울이 디도에게 그레데의 교회들에 부족한 물건들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에 대하여 가르쳤을 때, 그는 목사들의 연보를 청하였지만 집사들을 언급하지는 않았다(딛 1:5-9).
오직 교회가 집사에 대한 확실한 필요성이 생겼을 때, 그들을 임명할 수 있고, 그리고 오직 온전히 자질 있는 자들만 가능하다(딤전 3장). 각 교회의 규모와 필요성에 따라 세워질 집사들의 수를 결정한다. 보통 집사들의 수는 소수로 출발하여 교회가 커감에 따라 그 수도 커진다. 소규모 회중의 교회에서 목사들이 집사로 임명하기에 자질 있는 형제들이 없다고 고민하는 일이 흔하다. 이것은 걱정할 일이 아니다. 오직 충분한 필요성이 있을 때, 그리고 오직 교회 내에 자질 있는 사람들이 있을 때에, 목사는 집사들의 임명에 관하여 생각할 일이다.
어떻게 집사들을 선택하는가?
성경은 실질적으로 모든 교회가 집사를 선택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강제적 방법을 주시지 않는다. 다만 하나님께서 집사들이 지킬 것을 요구하시는 표준은 명확하게 주셨는데, 이것들은 결코 무시되거나 경시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실질적인 선택의 방법은 교회마다 다를 수 있다.
다음은 개개의 교회들에서 사용되는 몇몇 방법들이다:
1. 집사들이 갖추어야 할 하나님의 표준과 집사들이 할 일에 대한 성경적 견해를 가르치고 난 후, 교회는 자질 있는 집사들의 이름을 열거한다. 이것들은 목사에 의해 승인된다. 그때 교회는 승인된 목록에 따라 집사들에게 투표한다. 이것은 사도행전 6:1-4절에 예와 흡사한데 즉 이것이 성경이 제시하는 좋은 예이다.
2. 어떤 교회에서는 필요할 때마다 목사가 집사들을 선택한다.
3. 다른 교회에서는 목사가 집사로서 승인할 수 있는 남자들의 이름 목록을 선출하여 이 목록을 투표를 위해 교회 앞에 제시한다.
4.어떤 모임에서는 최초의 집사들은 목사와 교회에 의해서 선출된다. 이후로, 새로운 집사들은 투표 없이 목사와 그 집사들에 의해 선출된다.
집사들에게 요구되는 하나님의 표준
집사 선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러한 사람들에게 요구하시는 자질을 준수하는 것이다. 그 집사들을 선택할 때, 이러한 하나님의 표준을 신중하게 고려하는 교회만이, 집사들이 그 직분을 감당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최상의 축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며, 자질 없는 사람들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다양한 분쟁과 분란들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디모데전서 3장 8-12절
1. 거듭난 자
“순수한 양심에 믿음의 신비를 간직한 자라야 할지니라.”(딤전 3:9)
새로운 탄생은 하나님의 교회와 함께 하는 모든 일들에 있어서 최초의 요구사항이다. 그것은 침례와 교회 회원이 되는 것, 이전에 갖추어야 할 것이다(행 2:41-42).
사도 바울은 경고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는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 외에는 할례도 무할례도 아무 효력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니라.”(갈 6:15) 사람이 초자연적으로 위로부터 거듭나 죄 사함과 영생, 성령님의 내주하심을 받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때까지는, 모든 종교적 행위와 의무는 헛된 것이다. 침례, 교회모임, 주의 만찬, 성경봉독, 기도, 선행, 금식, 하나님의 법을 지키려는 노력, 교회 직분을 맡는 것-이것들 중 어느 것도, 아니 그것들 모두도 한 인간을 영원히 선하게 할 수는 없다. 그가 그의 죄로부터 구원을 받고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개인적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새 생명을 받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들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신의 긍휼하심에 따라 새 출생의 씻음과 성령님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으며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이 성령님을 풍성히 부어주셨으니”(딛 3:5-6)
집사의 자질과 관련하여 우리에게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믿음의 비밀이라는 것은 복음의 진리이다. 그 거룩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셔서 처녀에게서 나시고 죄 없는 삶을 사셨고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사흘 만에 사망에서 일어나시고 하늘에 다시 올라가셔서 지금 그분에게 올 모든 자들에게 영원한 구원을 주고 계신다(엡 3: 골 1:25-29, 롬 16:25-26, 딤전 3:16).
이 위대한 기독교 신앙에 대한 진리를 고백하는 사람들은 매우 많지만 그러나 그들 모두가 깨끗한 양심으로 이 고백을 하는 자들은 아니다. 그들은 참된 신앙을 가지지 않은 위선자들이다. 우직 진심으로 예수님과 그 분의 영원한 속죄를 받은 자만이 하나님 앞에 깨끗한 양심으로 설 수 있다.
“염소들과 송아지들의 피로 아니하시고, 오직 자신의 피로 단 한 번에 거룩한 처소 안으로 들어가시어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구속을 이루셨느니라. 이는 수소들과 염소들의 피와 암송아지들의 재도 부정한 자들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더욱 더 영원하신 성령님을 통하여 자신을 흠 없이 하나님께 드리신 그리스도의 그 피가, 어찌 죽은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 9:12-14)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최초의 집사들의 자질은, 그가 구원받은 형제이기를 원하신다. 어떤 형제도 자신이 거듭났다는 명백한 간증과 확신 없이는 어떠한 직분도 고려해서는 안된다.
2. 본이되는 영적 생활과 간증
"이와 같이 집사들도 반드시 신중하고, 한 입으로 두 말을 하지 아니하며, 자신을 많은 술에 내어주지 아니하며, 부정한 이득을 탐내지 아니하며“(딤전 3:8)
집사의 개인적인 영적 생활은 그가 교회의 다른 이들의 존경을 받을 만큼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넘어서는 것임에 틀림없다.
“단정”이란 것은 다른 사람들의 존경을 이끌어내게 되는, 영적 문제들에 있어서 매사에 있어서 성경에 따른 경계심, 의지 그리고 삶의 신중함을 의미한다.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는 신실함, 정직함, 개방성, 신뢰를 의미한다.
“술에 자신을 내어주지 아니하고”는 “술과 함께 서지 있지 않다”고 번역할 수 있는 히브리어 구를 번역한 것이다. 많은 성경적 이유로 인해, 우리는 이 표준이 집사가 주류를 완전한 삼가는 자여야 한다는 요구사항임을 알 수 있다. 많은 성경구절들이 알코올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한다(잠언 20:1, 23:29-35, 31:3-5, 이사야 5:22, 28:7, 호세아 4:11 합 2:5). 맥주 혹은 와인 컵을 손에 쥐고 있는 자는 이 경고들을 무시하는 것이다. 심지어 구약의 사제들과 왕들도 술 취하지 말 것이 요구되었다(레 10:8-11, 잠 31:4-5). 우리는 동일한 사항이 신약의 교회 지도자들에게 요구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는 집사가 탐욕스럽지 않고, 개인적 이득을 탐하지 아니하고 돈과 재산에 관하여 급급하지 않는 형제여야 함을 뜻하는 것이다.
3. 복음에 대한 지혜
“순수한 양심에 믿음의 신비를 간직한 자라야 할지니라.”(딤전 3:9)
집사는 그리스도교 믿음에 대한 지식과 해석에 있어서 뛰어나나 본이 되어야 함에 틀림없다. 이는 신약의 교리에 관한 것이다. 집사들은 그 때 그리스도교에 대하여 무지하거나 초신자여서는 안된다. 확실한 복음의 진리를 모르고는 결코 집사가 될 수 없다.
4. 성숙하고 증명된 자
“이런 사람들도 먼저 입증되어야 하나니, 그 후에 비방 받을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수행하게 할지니라.”(딤전 3:10)
복사와 집사는 안수 받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사역에 있어서 충성과 열심히 증명된 자들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길은 형제가 교회의 권위 있는 특별한 지위에 임하기 전에 증명하는 것이지 지위에 임함으로 인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다!
5. 영적인 아내
“이와 같이 집사들의 아내들도 반드시 신중하고, 헐뜯는 자가 되지 말며, 단정하고, 모든 일에 신실한 자라야 할지니라.”(딤전 3:11)
다음의 두 가지 이유로 인해 우리는 이 구절이 집사들의 아내에 적용되는 구절이지 여자 집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는 그 이전에 언급되었으나 반복하겠다. 먼저, 집사의 직분을 맡는 것은 형제여야만 한다. 이것은 디모데전서 3:12절에서 명백해진다.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안을 잘 다스려야 할지니라.” 우리는 또한 사도행전 6:1-6에서도 이 예를 살펴볼 수 있다. 오직 형제만이 교회에서 이 지위를 맡도록 선출될 수 있다.
자매들은 성경에 명시되어 있는 여러 다양한 방법으로 교회 내에서 봉사하고 일한다는 포괄적 의미로서의 집사들 봉사는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집사의 직분은 오직 형제를 위한 것이다. 이전의 구절들과 디모데전서 3:11도 형제에 관한 언급이다. 이 3장 11절은 단순하게 집사의 직분을 맡는 형제들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사항이다. - 그들의 아내들은 반드시 구원받은 영적 자매여야 한다.
중요한 자질들이 목사들과 집사들의 아내들에게 동일하게 요구된다. 형제의 아내는 그의 생활과 사역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며, 그녀의 영적 조건은 형제와 그 사역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러면 바울이 목사 혹은 집사의 아내의 자질에 관하여 언급한 네 가지 단어를 살펴보자.
① 그 아내는 단정해야 한다.
“그것은 다른 이들의 존경을 끌어내는 진지함과 위엄이 조합을 말한다.”(W.E.Vi-ne) 집사들의 아내는 그 의지에 있어서 신앙인의 진지함을 지니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크리스챤 자매여야 한다. 그녀의 삶은 타인이 그녀를 존경할 만한 것이어야 한다.
② 그 아내는 수군거리는 자가 아니어야 한다.
중상가에 대한 디모데전서 3장 11절에 사용된 히브리어는 다른 곳에서는 사탄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 단어는 “송사하는 자”를 뜻한다. 계시록 12:10에 사단은 형제를 송사하는 자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사람들에 대하여 악한 것을 말하기를 즐겨한다. 중상하는 것은 소문을 말하고 뒤에서 헐뜯고 그리고 험담하는 것이다. 집사의 아내는 타인에 대한 태도와 대화에 있어서 각별히 조심하는 자매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쉽게 자신의 교회를 해롭게 하고 자신의 남편의 사역을 자신의 입술로 허물어뜨린다. “덕 있는 여자는 그녀의 남편에게 왕관이 되나, 수치를 끼치는 여자는 그의 뼈들 속이 썩음과 같으니라.”(잠언 12:4)
③ 그 아내는 진지한 자여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자신의 마음과 삶을 조절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것은 술취한 사람이 알코올에 의해 조절되는 것처럼 악한 영향에 의하여 조절되지 않는 자를 의미하며, 이 악한 영향에는 또한 많은 다른 것들이 있는데, 약물(의학 치료용 약물을 제외한); 록앤롤, 최근 팝뮤직등 대중음악 같은 비성경적 음악; 거짓, 간음, 술 취함 등등을 조장하고 미화시키는 사악하고 헛된“드라마”같은 불건전한 라디오 혹은 텔레비전 프로그램; 혹은 다른 어떤 영향 즉 예수님과의 영적 교제와 거룩한 우리 하나님의 것들을 우리 영혼에서 밀어내는 다른 것들을 예로 들 수 있겠다. 하나님의 말씀은 집사들의 아내가 인간의 영혼에 악한 영향을 미친 위에 기술한 것들을 조절할 수 있는 진지한 자이기를 요구하신다.
④ 그 아내는 매사에 신실해야 한다.
이것은 한마디로 교회의 직분자들의 아내에 대한 하나님의 표준이다.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하여 그녀의 가정에서, 그녀의 사역에서, 그 교회에서 그녀는 반드시 신실한 복음의 자매여야 한다. 집사의 아내는 형제의 사역과 생활에 있어서 커다란 도움이 되어야하고, 이것은 오직 그녀가 이 자질들에 대하여 설명된 크리스챤 자매의 특성을 지녔을 때만 진리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녀는 위대한 방해물일 것이다.
“지혜로운 여자마다 그녀의 집을 세우나, 어리석은 자는 그녀의 손으로 잡아당겨 쓰러뜨리느니라.”(잠 14:1)
6. 올바른 종류의 가정생활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안을 잘 다스려야 할지니라.”(딤전 3:12)
하나님께서 집사는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남자여야 한다고 요구하신다는 것을 주목하라. 그는 반드시 신실하고 성경적인 아버지이자 모범 가정생활을 영위하는 남편이여야 한다. 여기에 완벽이란 요구사항은 없다. 만일 그렇다면 누가 과연 자질이 있겠는가! 하나님은 단순히 우리에게 교회 직분자들을 위한 합리적인 표준을 제시하신다. 그는 반드시 자기 가정에서 훌륭한 일을 하여야한다.
가정의 어떤 심각한 문제들도 형제가 교회의 직분을 위해 고려되기 전에 해결되어야 한다. 모든 남자는 다양한 종류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가령 아내와 자녀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그렇다. 모든 남자들은 그 가정에서 자신의 위치인 리더로서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해결하고 치유해야만 할 생활의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모든 영적 그리고 도덕적 문제들이 치유될 수 있다고 하나님께 찬양 드린다. 사실 우리는 “그분의 신성한 권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들을 우리에게 주심에 따라 그분의 관한 지식을 통호여 우리를 영광과 덕에 이르도록 부르셨으니”(벧후 1:3)
치유, 용서 그리고 성장을 위한 이 힘은 모든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의 유산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하나님의 요구에 합당하게 가정생활을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항상 있는 것이다. 성경은 그것을 명백히 밝히셨다. 즉 영적인 가정을 만들 때까지 그는 교회 직분을 맡을 자질을 갖추지 못했다고 말씀하신다. 그는 반드시 자신의 집을 “잘” 다스려야 한다.
집사들과 교회 재정을 맡은 자들을 위하나 몇 가지 부가적인 표준들이 사도행전 6장과 고린도후서 8장에 언급되어 있다.
7. 정직한 평판
“칭찬듣는 사람을 택하라”(행 6:3)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칭찬은 이미 하나님께로 칭찬받고 있는 증거이다.
8. 영적으로 그리고 실천에 있어서 현명한 자
“지혜가 충만하고 정직한 것으로 알려진 일곱 사람들을 찾아내어”(행 6:3)
늘 기도하고 깨어있고 주 예수님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는 열심히 보여야 한다.
9. 믿음으로 실천하는 형제
“이 말은 온 무리가 기쁘게 여기고 이에 그들이 믿음과 성령님으로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를 뽑아서”(행 6:5)
집사들에 의해서 진행되는 많은 재정적 결정과 다른 실천적 문제들이 현실을 보기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믿음과 충분한 기도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집사들은 그때 선한 사업가 이상이어야 한다. 그들은 반드시 하나님에 대한 개인적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하나님의 재정과 교회 프로그램에 대한 영적 측면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많은 경우 교회들은 선교사들을 지원하거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단순히 하라고 직접 명령하신 다른 일들을 방해하고 있는 경우들이 있다. 왜냐하면 몇몇 포함된 사람들이 믿음의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몇 년 전에 이것의 중요성을 언급한 어떤 것을 목격했다. 한 설교자의 교제에서 나는 우리의 선교사역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목사에게 소개되었다. 그의 교회는 개척된 지 몇 년 안 된 교회로서, 이제 막 커다란 부채를 지고 새로운 건물로 이사했다. 그 목사는 아직도 세상 직장에서 일하고 있었고 교회에서 지원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 그의 집을 교회 건물 재정을 돕기 위해 저당 잡혀 있었다. 그는 그 교회로 나를 초대하여 설교를 부탁하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그들은 우리를 재정적으로 지원 할 수 없어 보였다. 나는 어쨌든 가기로 결심했고 다음 주일 아침에 남아프리카에서의 주님의 일에 관하여 설교하기 위하여 도착했다. 예배 전에, 그 목사는 내 옆에 와서 말했다, “형제여, 하나님이 나에게 이 주에 말씀 하셨네. 우리가 당신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우리가 어떻게 그럴 수 있을는지 모르겠네. 그러나 나는 우리가 해야 한다고 믿네. 지금부터 우리는 당신에게 매월 25불의 지원을 약속하길 원하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이 그 액수를 채우시리라 믿네.”
그것은 10년 전의 일이고 그들은 결코 한 달도 지나치지 않았다. 사실, 그들은 본래 정한 액수의 4배를 했다. 그들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했고 그리고 보이는 현실을 초월해서 그 목사는 그들로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그때 이후로 몇 년 내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들의 기대 이상으로 축복해주셨다. 교회 회중들은 그 숫자 면에서도 성장을 거듭했다. 그들의 건물 역시 증축되었다. 그 교회는 전적으로 그들의 목사와 보조자들을 지원할 수 있었다. 그들은 많은 선교사들을 지원하고 선교를 위해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결코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주님의 약속이 있지 않은가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니”(눅 6:38) 물론, 그러나 그것은 이 약속을 믿고 행동하는 신앙을 요구한다.
만일 믿음이 없는 사람이 복음의 멍에(예를 들어 몇몇 집사들)를 메는데 포함되어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들은 매 상황에서 그것은 현명하거나 합리적인 일이 아니라고 하며, 믿음으로 선교사들을 도우려는 시도들을 낙심시킬 것이 확실하다. 오히려 그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기도하기 보다는 그들은 불평할 것이다. 만일 믿음이 부족한 자가 직분자로서 영적인 멍에를 매게 된다면 그들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따르려는 교회원들을 낙심시킬 것이다. 마치 이스라엘의 자녀들이 10명의 나약하고 믿음 없는 정탐꾼들에 의해 낙담한 것과 같이(민 13-14).
10. 신실하고, 신뢰할 수 있는 자들
“우리가 그와 함께 형제를 보내었으니, 이 형제는 모든 교회에서 복음 안에서 칭찬을 받는 자요,”(고후 8:18)
집사는 반드시 신실하다고 믿어지는 자여야 하며, 자기 앞에 어떤 일이 맡겨져도 매사에 부지런한 자여야 한다!
11. 복음적인 자
“우리가 그와 함께 형제를 보내었으니, 이 형제는 모든 교회에서 복음 안에서 칭찬을 받는 자요,”(고후 8:18)
복음의 멍에를 지기에 부족한 자는 하나님의 재정을 관리하거나 집사의 일에서 어떤 부분에도 참여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시대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재정의 용도인 세계복음선교에 대해서 이해하지도 또 염두에 두지도 않기 때문이다.
고린도 후서 8장 18절에 있는 연보를 가져가기 위해 선택된 형제가 복음 안에서 칭찬받는 자였음을 주의하라. 그는 단지 정직하기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었다. 그는 단지 재정과 그 밖의 실제 행정에 있어서 현명한 사람만이 아니었다. 그는 복음적인 자였다. 그는 개인적으로도 복음 사역에 임함이 있어서 바빴던 자였다. 사도행전 6장 2절에 동일한 것이 언급되어있다, 거기에서는 최초의 집사들이 “성령님으로 충만한” 자들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최초의 집사들 중 하나인 스데반은 주저 없이 신앙을 간증함으로 인해 돌로 쳐죽임을 당하였다. 바로 이와 같은 이가 교회 재정이 성령님의 인도하심 아래 바르게 관리되게 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있어야 할 사람이다.
만일, 반대로 교회가 성령님에 의해 인도되지 않고 개인적 복음의 열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를 집사들로 임명한다면, 교회 재정은 영적인 일에 사용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목사와 함께 합리적인 재정 결정을 내리는 자들이 오직 세상적인 사업가들이라면, 그들은 교회원들을 잘못 인도해 갈 것이며 때때로 계속해서 목사의 마음을 낙심시킬 것이다. 사람들은 만일 그들이 그 자신들의 복음의 멍에를 지고 있지 않다면 복음사역과 전도사역에 부지런히 교회 재정과 자원들이 사용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만일 직분자들 스스로가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들이 믿음으로 연보하는 교회로 모범적으로 인도하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
요 약
집사들의 자질에 대한 훌륭한 요약은 R.B.C.Howell이 쓴 ‘집사됨’이란 책에 잘 나와 있다:
“집사직분에 적합한 형제의 자질과 관련하여 첫째는 그의 가정 관계를 특징에 의해서 결정되고..., 둘째는 그의 보편적 평판에 의해서 결정되며... 세 번째 자질은 후보자의 신앙적 특성이다... 그들은 반드시, 넷째로, 건전한 성경적 교리를 가진 자여야 하고... 다섯째, 지적인 능력에 있어서... ‘지혜가 충만해야 하며’..., 여섯째와 마지막으로... 자신의 신성한 직분에 대하여 능률적이고 신념에 차있는 자여야 한다.”
집사는 얼마동안 봉사해야 하는가?
성경이 얼마동안 집사가 봉사해야 하는가에 대해 기록하고 있지 않으므로, 각 교회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어떤 교회는 집사 직분에 대해 1년이라는 한정된 기간을 가지고 있다. 어떤 교회들은 종신 집사를 안수하기도 한다. 두 가지 형식에 모두 장단점이 있다. 한정된 기간을 선택된 자들을 증명하기 위한 기회를 가질 수 있고, 또 그러한 기회를 허용할 때보다 나은 자들을 안수할 수 있다. 후자는 그것을 맡은 자들에 있어서, 보다 나은 효율성과 보다 높은 배려를 보장하는 경향이 있다.
집사의 상급
“이는 집사의 직분을 잘 섬긴 사람들은 자신들을 위하여 좋은 지위를 얻고 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 안에서 큰 대담함을 얻기 때문이니라.”(딤전 3:13)
언급된 첫 번째 상급은 “아름다운 지위”이다 아름다운 지위 혹은 아름다운 자리는 최소한 확실히 두 가지를 의미한다. 이 생에 있어서 사람들 앞에서의 아름다운 지위를 말한다.
언급된 두 번째 상급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이다. 훌륭한 집사는 영적 성
장과 능력과 열심에 있어서 특별한 진보를 이룬다. 이는 교회에 있어서 그의 충성된 사역을 담당시키시기 위한 그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이다.
목사들과 집사들 사이에 문제를 막기 위하여
다음은 목사들이 집사들과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도울 수 있는 몇 가지 간단한 제안들이다. 이들 중 다수는 휴지 피일(Hugh Pyle)의 책 “모든 목사가 알아야 할 것들”에서 발췌한 것들이다.
1. 성경적인 집사의 역할과 주님 안에서 집사가 갖추어야 할 필수 사항에 대해서 끊임없이 교회에 가르친다.
2. 집사들을 임명하는 데 있어서 매우 신중하라.
충분히 기도하고 조심스럽게 집사들을 선택하는 것이 출발부터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하고 출발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요구사항을 갖추고 있는 유능한 집사를 세우는 데 특별한 주의를 기울어야한다.
3. 목사는 겸손하고 영적인 지도자여야 한다.
“자신이 겸손한 자가 되어라. 당신은 영적이고, 확실하며, 구별되며, 용감하고, 그리고 온유한 자여야 한다. 당신의 사람들이 당신의 진정으로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깨닫게 된다면, 그들은 당신을 종경하고 그리고 당신과 역행하지 않을 것이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래도 남아 있지만…”(요 12:24) 스스로 죽으라, 육신을 희생하라, 그러면 몇몇 집사들이 당신과 불일치하던가, 혹은 모순되는 말을 하던 간에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인자가 온 것도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주려함이라, 하시니라”(마 20:28)
“화를 잘 내거나 토라지기 잘하거나 혹은 쉽게 감정을 상하지 말라. 가능한 한 모든 사람(집사들을 포함해서)과 화평하라. 그들 중 몇몇은 당신이 해온 훈련과 예비지식과 영적 가르침이 부족할 수도 있다. 반대로, 당신의 사람들 중 몇몇은 보다 더 사업적 수완이 뛰어나고 재정적 지식과 실질적 행정 실무에 당신이 해온 것보다 뛰어날 수 있다. 당신을 진정으로 도와줄 이 사람들로부터 어떤 것들을 배울 수도 있다. 당신의 집사들이나 교회 내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우는 것을 지나치게 자존심상해하지 말아라.”
“정직하라. 그러나 너무 솔직하거나 거리낌 없을 필요는 없다. 몇몇 과도하게 솔직한 사람들은 재치 없고 잔인해지기도 한다. 항상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하지 말라. 혹은 당신이 생각하는 모든 것을 말하지 말라. ‘우둔한 자는 자기 모든 마음을 드러내나, 지혜로운 사람은 차후까지 그것을 지키느니라.(잠 29:11)”
“속이거나 기만하지 말라. 확고한 자신감을 가지되, 완고하자는 말라. 하나님 앞에서 유동적이어라 그리고 당신이 실수했거나 감정적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기를 주저하지 말라”
“당신의 집사들(비록 그들이 당신을 지배하려고 하지 않을 지라도)은 결코 ‘고용인들’이 아니다... 그러나 디모데전서 3장의 성경적 자질들은 확실히 그보다도 집사의 직분에는 더 많은 것들이 있다고 알려주신다. 당신은 건전한 영적 지각을 가지고 교회조직의 물질적 재정적 필요들에 대한 책임감과 멍에를 짊어질 자들을 필요로 한다. 하베이 스프링거(Harvey Springer) 박사는 말했다. ‘나는 집사들은 수없이 많은 어려움 속에서 나를 도와주었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가 내 편이었기 때문이다.’”(Pyle)
4. 만일 당신이 젊은 목사라면, 혹은 이제 막 사역을 시작했다면, 당신은 부드럽게 다져나가야 한다.
“당신은 연장자들이나 어떤 면에서 당신보다 성숙한 사람들의 존경과 확신을 얻어야 한다. 당신은 사람들이 훈련될 때까지 그리고 회중이 성장할 때까지(단지 수적으로가 아니라 영적으로) 잠시 동안 집사 모임을 이전대로 유지하여 함께 이끌어 나갈 수 있다.”(Pyle)
5. 만일 복사가 교회에 와서 몇몇 비성경적 혹은 다루기 힘든 집사들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그는 충분한 기도와 지혜로 처리해야 한다.
첫째로, 집사들과 교회가 먼저 목사/집사 관계, 집사 자질, 그리고 교회 체제에 관한 당신의 확신과 당신의 목사직을 인정해야함을 인지시키는 것이 현명하고 윤리적이다. 만일 사람들이 이 문제에 있어서 성경에 복종하려는 자신들의 의지를 표명하지 않을 때에는 그 목사는 아주, 아주 조심스럽게 진행해 나가야 한다. 사실, 이 작가는 그 목사가 그러한 교회의 목사직을 받아들여야 하는 어떠한 상황도 상상할 수가 없다. 보통 그러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교회를 변화시키려는 시도보다 새로운 교회를 시작하는 것이 훨씬 나은 일이다.
하나님이 확실하게 참을성 있게 사물들을 바로잡으시려는 목적으로 그러한 교회의 목사가 되게 하시려는 사람을 인도하실 때에는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지혜는 커다란 주의를 요구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늙은 개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가르치”실 수 있고, 혹은 비성경적 지배체제의 전통에 흠씬 배어있는 교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은 심지어 하나님을 위해서도 매우 드문 사건임을 덧붙여야 하겠다.
두 번째로, 목사직을 받아들이기 전에 자질 없는 집사들의 사임을 청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훨씬 낫다. 사실 이일을 바르게 하는 것은 목사의 책임이다. 자신들의 생활이 신성한 성경의 표준을 맞추지 못하는 자들이 집사의 직분에 계속 있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충성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표준들을 지키는 것이 목사의 임무이며 그리고 만일 교회가 이것을 지키지 못한다면, 그 목사는 그런 교회를 떠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의 조화를 위해서, 그가 적어도 몇 차례는 집사의 문제에 대해 분란을 일으키지 않고 그러한 교회의 목사직분을 수행해야 한다고 반박할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교회의 직분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기록된 표준들에 정면으로 반항하는 것일 뿐 아니라, 집사들이라는 비 자질적인 사람들의 존재로 인해 교회를 이끌어가는 목사의 능력이 맹렬하게 방해받는 상황으로 스스로를 몰아넣는 것이다. 목사들은, 그러한 상황에서, 계속해서 자신의 사역에 위축된다. 또한, 바로 발단에서 집사의 자질에 대한 이유를 묻지 않고 간과함으로 인해, 그 목사는 자신이 기꺼이 하나님의 신성한 표준이라는 문제에 관하여 애매한 태도를 취한다는 메시지를 교회에 주는 것이다. 그가 진리에 대한 사랑에 기울이는 열렬한 열정보다 앞의 행동에서 명백하게 본 메시지를 회중들은 청종할 것이다.
세 번째로, 인내하라 그리고 집사들과 교회에 교회, 목사, 그리고 집사들 간에 성경적 관계에 대해서 가르치기 시작하라.
네 번째로, 문제들이 바르게 해결될 때까지 하나님의 도움과 축복을 위해 하나님을 바라라. 시편 32:8-9, 145:18-19절의 하나님의 약속들을 기억하라.
6. 전도서 7장 20-22절을 항상 염두에 두라.
“이는 선을 행하고 죄를 짓지 아니하는 의로운 사람은 땅 위에 한 명도 없느니라. 또한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들에 네 마음을 두지 말라.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들을까 염려함이라.”
비록 구원받았다 해도, 우리가 아직 죄를 짓는 자라는 커다란 진리를 결코 잊지 말라. 오래되고, 반항적이고, 옳지 못한 본성이 아직도 우리들(목사 그리고 집사도 포함하여!) 각 사람 안에 살고 있다. 우리의 권위 하에 있는 사람들(아내이든, 자녀이든, 집사이든, 교회 회원이든)이 우리의 지도와 방법들에 불만족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 때때로 우리는 심지어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불만족을 느끼지 않던가? 잠언서 7장 20-22절의 충고는 지도하는 자들이 명심해야 할 굉장히 현명하고 중요한 구절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감독 하에 두신 자들이 결코 반항이나 비판의 어떤 조짐도 느끼지 않거나 표현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비합리적인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성령님의 권능에 의해 조절되어야만 하는 반항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누가 모든 순간 하나님의 성령에 충만하여 동행하는가? 누가 오직 현명하고 옳은 결정만 내리는가? 누가 결코 반항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는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완전하고 지속적인 복종을 기대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 현명하게, 기도하며, 깨어있고, 겸손하며, 그리고 매사에 인내하는 자가 되자.
그러나 특별히 우리의 결정이 무시되고 우리의 권위가 공격받을 때 더욱 그러하자. 하나님의 지혜와 도움을 바라라. 그분을 앙망하라. 두려움 없이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르라. 그분은 문제를 해결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의 일이고 그분의 교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은 신실하게 그 문제 해결에 있어서 당신이 임무를 하도록 당신을 인도하실 것이다.
집사에 대한 징계
한 집사가 바르게 징계함이 필요 한다면? 어떤 조치가 취해져야 할까?
“만일 직분자가 직무태만 한다면, 그는 징계를 받거나, 혹은 달라지거나 추방되어야 한다. 신실하지 못한 목사는 쉽게 탄핵되고, 그리고 만일 그라 이교적이라면(교리면에서 잘못되었다면) 혹은 무질서 한다면, 그는 쫓겨나 아마도 추방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 사람이 집사라면, 그가 신실하건 혹은 신실하지 않건 간에 그는 일생동안 그 직분을 유지하게 된다, 만일 그가 기꺼이 이사를 하지 않는다면, 혹은 비도덕성으로 인해 교제에 추방당하지 않는다면! 누가 집사가 추방되었다고 들어본 일이 있는가? 혹은 심지어 그의 직분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탄핵받았다고 들어본 적이 있는가? 나는 결코 들어본 적이 없다! 왜 그런가? 그들 중 누구도 실제로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가? 그렇다면 놀라운 일임에 틀림없다. 즉 현저하게 잘못된 무언 가가 있다는 것과 그 점에 대해 대단히 방심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는가?”
“그 교회는 모든 다른 경우들에 사용할 수 있는 동일한 치료약을 여기에 가지고 있다.... 이 직분자들의 충성되지 못함이 나태한 무관심으로부터 비롯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그들은 반드시 권면되어야 한다. 만일 그래도 자발적으로 잘못이 행해진다면, 그리고 목사로부터의 훈계나 교회로부터의 권면도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그들은 탄핵받아야 하고 그리고 정규적인 투표를 통해, 해임되어야 한다. 한 사람의 직분자를 세운 권위는 그 직분자가 비 능율적이거나 신실하지 못할 때, 그를 해임할 때도 동일하게 사용되어야 한다.
“생각은 행동을 낳는다”는 격언과 같이 올바른 신앙진리는 올바른 행동을 가져오게 되어 결국 아름다운 가정, 교회 그리고 사회에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진리를 옳게 분별”하여 “행함으로 믿음을 보이는 생활”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악한 생각이 악한 행동을 낳고 선한 생각이 선한 행동을 낳지만 “말만하고 행치 아니하는” 바리새인들 같이 올바른 진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행하지 않는 믿음은 악한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성경 말씀에 입각한 교회 집사직의 원리를 충분히 배운 후에 그 진리에 따라 행동하는 신앙생활은 개인의 가정과, 교회 부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본 집사 직분 교재는 “성경의 교회 진리”와 “성경의 침례교회 신앙진리” 그리고 교육 자료로 배부된 “침례교회의 직분은 목사와 집사만 있다”는 자료와 일치되고 있어 반드시 함께 참고 되어야 할 것이며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성경 말씀대로 순종하려는 자세만 있다면 교회는 그 사명을 다하게 될 것이다. 아멘!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기억하며 살아야 할 말씀 중 하나는 아래와 같다.
“그러므로 그 때가 이르기 전, 곧 주님께서 오시기까지는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분께서 어두움에 감추어진 것들을 빛으로 비추시고, 마음의 뜻을 밝히 드러내시리니 그때에 하나님께로부터 각 사람이 칭찬을 받으리라.”(고전 4:5)
[주님의 말씀들이 내 입맛에 어찌 그리 단지요! 참으로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나이다.](시119: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