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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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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해야 하는 세 가지
lhyunsik
2005-09-30
전주성경침례교회
09.13 2005
항상 해야 하는 세 가지
빌립보서 2장 12,13절
구원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인답게 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본 적이 없지만, 구원받은 사람을 통해 그들은 하나님을 어느 정도 볼 수 있습니다. 구원받았다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지 않을 때, 세상 사람들에게 간증을 잃게 되며 결과적으로 그들에게 하나님을 제시해 줄 수 없게 됩니다. 구원받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부끄러운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분명 세상 사람들과는 달라야 합니다. 생각에 있어서나 행동에 있어서나 모든 면에 있어 믿지 않는 사람들과는 달라야 합니다.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부어야 하는 것처럼 구원받은 사람은 새로운 가치관과 기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인으로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항상 해야 하는 것들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해야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해야 하고(마 6:33),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헌신해야 하고(롬 12:1), 보이는 것이 아닌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갈 2:20).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것말고도 항상 해야 하는 것이 세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을 온전히 이루는 것과 성령으로 충만하는 것과 영적인 것들에 자신의 생을 투자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세 가지를 잘 알아서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Ⅰ. 항상 복종하며 구원을 온전히 이루라
오늘 본문 빌립보서 2:12절을 보시면『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항상 복종했던 것처럼 내가 있을 때뿐만 아니라 내가 없는 지금도 더욱더 두려움과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온전히 이루라.』고 말씀합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이 구원을 온전히 이루기를 원했습니다. 한 가지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구원을 온전히 이루라.』는 말은 구원이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행위를 통해 구원이 온전해지길 바라는 내용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사역은 완전한 사역입니다. 거기에는 그 어떤 행위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도바울이『구원을 온전히 이루라.』는 말은 어떤 행위를 통해 구원이 온전해 진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구원받았다면 구원받은 사람답게 살라는 것입니다. 입술로는 구원받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구원받은 사람으로서의 그 어떠한 간증도 내지 않는 삶을 산다면 그 사람이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말하기가 우리 자신이 부끄러운 것입니다. 영생은 결코 이론이나 어떤 사상이 아닙니다! 영생이란, 말 그대로 그 사람 안에 있는 "실재하는 생명!"입니다.『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옛 것들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고후 5:17) 마귀의 성품을 물려받아 태어나서 마귀의 정욕(요 8:44)을 실행하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물려받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성품을 성경은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된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 안에는 하나님의 성품이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그 성품은 악을 증오하는 성품이며, 선을 사랑하고 선과 연합하는 성품입니다(롬 12:9).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이 새 성품을 따라 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구원받기 전 우리는 모두 마귀의 성품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었습니다. 마귀의 성품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반역하는 마음"입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보좌를 찬탈하려고 달려들다 파멸해 버린 자입니다. 그처럼 아름답고 존귀한 존재인 덮는 그룹이 하나님을 향해 반역을 시도하다 결국 흉찍한 사탄으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아담의 성품을 물려받았다는 것은, 바로 이런 반역하는 성품을 물려받았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 안에는 새 성품이 있음에도, 그 안에는 여전히 아담의 성품이 공존한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구원받았다는 사람이 성령의 지배를 받지 않고, 육신과 손잡게 되면 그는 즉시 하나님께 대하여 반역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하나님께 반역하는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지 않으면 그 자체가 이미 반역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복종"이라는 단어를 먼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항상 복종했던 것처럼 내가 있을 때뿐만 아니라 내가 없는 지금도 더욱더 두려움과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온전히 이루라.』사도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이 "항상" 복종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무엇에 복종한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했던 것입니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복종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사탄으로부터 물려받은 반역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복종시킬 수 있는데, 이는 그 안에 하나님의 말씀에 부복할 성품이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항상" 복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낮추고 그 말씀을 두려워하여 엎드리는 자세를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실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의 섬김을 결코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주께서 번제와 희생제를 주의 음성에 복종하는 것만큼 크게 기뻐하시나이까? 보소서, 복종하는 것이 희생제물보다 낫고, 경청하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나이다.』(삼상 15:22)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함이 없는 모든 형태의 예배는 실로 헛될 뿐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 아래로 들어갔음을 의미합니다! 전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무관하게 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났고(벧전 1:23), 따라서 그 말씀이 우리의 모든 실행과 믿음에 있어 "최종권위"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의 권위에 자신을 쳐 복종시키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섬김을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이 무시되는 곳에 하나님은 계시지 않습니다(계 3:20).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고(요 1:14), "그 말씀"이 우리의 모든 죄를 제거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고(요 1:29), "그 말씀"이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다시 부활하셨고(롬 4:25), "그 말씀"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 위해 이제 곧 다시 오시는 것입니다!『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흰 말이 보이더라. 그 위에 앉으신 분은 신실과 진실이라 불리며 의로 심판하고 싸우시더라. 그의 눈은 불꽃 같고 머리에는 많은 왕관이 있고 또 한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자신 외에는 아무도 모르며 피에 적신 옷을 입었는데 그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불리더라. 또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정결한 세마포를 입고 흰 말들을 타고 그를 따르더라. 그의 입에서는 예리한 칼이 나와서 그것으로 민족들을 칠 것이요 또 철장으로 그들을 다스릴 것이며,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즙틀을 밟으실 것이라. 또 그의 옷과 넓적다리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만왕의 왕, 또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계 19:11-16)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불리는 분입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말씀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말씀입니다! 따라서 구원받은 사람이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곧 그분의 말씀을 섬기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항상 복종했던 것처럼 내가 있을 때뿐만 아니라 내가 없는 지금도 더욱더 두려움과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온전히 이루라.』(빌 2:12) 말씀의 권위를 무시하는 그리스도인은 결코 온전한 구원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부끄러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고전 3:15). 우리가 정녕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구원받은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엎드리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일은 항상, 매일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Ⅱ. 항상 성령으로 충만하라
에베소서 5:18절 말씀을 다 함께 보겠습니다.『술 취하지 말라. 그것은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라.』구원받은 사람은 즉시 성령을 받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또 다시 성령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전혀 비성경적인 기도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비록 그 사람이 어떠한 느낌도 느끼지 못했다할지라도 구원받은 즉시 성령님은 그 사람 안에 들어가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성경에 무지한 사람들이 구하는 어처구니없는 기도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으로 우리 자신이 충만해 지는 것입니다. 충만 이라는 것은 넘쳐서 흘러내리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구원받은 사람 안에 오신 것은 구원받은 사람 안에서 충만해 져서 그 사람을 관장하시려는 것입니다! 이는 구원받은 사람이 더 이상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성령은 거듭난 사람의 영 안에서 역사하시고, 그 영은 혼에게 지시하고, 그 혼은 몸에게 지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계의 법칙입니다. 따라서 거듭나지 않는 사람은 결코 성령의 인도를 받지도, 또한 받을 수도 없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의 매일의 기도는 성령께서 자신을 매일 관장해 주시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더 이상 자신의 능력이 아닌 성령의 능력으로 사는 사람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곧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한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 어디서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시인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의 생활은 활기가 있고, 윤택하며 진취적이고, 열정적입니다. 이는 그가 성령으로 충만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술에 취한 사람은 다른 사람처럼 보이듯이,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 역시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으로 충만하길 원하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성령의 능력으로 살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6-18절에서는『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모든 일에 감사하라.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 관한 하나님의 뜻이니라.』구원받은 사람은 더 이상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은 결코 육신적인 사람은 지키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별의 별일이 다 있을 것인데, 어떻게 항상 기뻐한단 말인가? 어떻게 모든 일에 감사한단 말인가? 라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형편과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무턱대로 말씀하신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성령 안에서 행하는 사람은 이러한 말씀이 전혀 어렵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능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사도바울은 죽지 않을 만큼 몰매를 받고 빌립보 감옥에 실라와 함께 갇혔는데도 기쁨과 감사 가운데 기도하며 주님을 찬양했습니다(행 16장). 과연 우리가 사도바울과 똑같은 형편과 처지에 있다면 바울과 같은 행동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며 낙심과 좌절 속에 불평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과 우리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한 쪽은 성령으로 충만한 상태이며, 다른 쪽은 우리 육신의 생각으로 충만한 상태입니다. 수많은 순교자들이 죽음 앞에서 마치 천사의 얼굴을 하고 기쁨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했기 때문입니다(행 7장). 차이는 바로 그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 없이 이 세상을 산다는 것은 바퀴 없는 수레를 끌고 가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은 상태로 영적 생활을 하려면 그 자체가 매우 힘겨운 멍에가 되는 것입니다. 영적 생활은 성령의 능력이 없이는 결코 할 수 없습니다! 영적으로 피폐해져 가는 사람은 주일 날 교회에 가는 것이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영적 생활이 곤고하게 되는 원인은 그 사람이 항상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는 말씀은 구원받지 않은 사람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루에 아무리 못해도 최소한 15분 이상은 해야 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최소 단위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성도는 반드시 영적으로 피폐해져 가며, 성령의 열매를 전해 맺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에게 기도는 절대 필요합니다. 구원받고도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도 자신은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며, 또한 기도하지도 않습니다. 기도가 멈춤 곳에는 성령님도 소멸해 버린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다면 자신이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다고 솔직하게 하나님께 시인하고 성령의 충만을 간구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도움이 없이는 그리스도인은 결코 영적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Ⅲ. 부활의 소망 안에서 행하라
다 함께 고린도전서 15:58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라, 흔들리지 말라, 항상 주의 일을 넘치게 하라. 이는 너희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아니한 줄을 너희가 앎이니라.』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 장"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고린도전서 15장만큼 그리스도인의 부활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는 장도 없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곧 바로 가져야 하는 믿음은 "부활의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토록 많은 고난을 기쁜 마음으로 받으신 것은 다시 부활한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요 2:19). 주님은 죽음 뒤에 있을 부활의 영광을 보았던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부활의 소망을 갖지 못한다면 그는 전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말게 됩니다. 이 사실에 대해 바울은 고린도전서 15:16-19절에서 밝히기를『만일 죽은 자들이 살아나지 못한다면 그리스도께서도 일으켜지지 못하셨으리라. 만일 그리스도께서 일으켜지지 못하셨다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너희 죄들 가운데 있는 것이라.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사람들도 멸망한 것이라.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오직 이생뿐이라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비참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부활의 소망이 없다면 우리가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다를 것이 무엇이겠습니까?『먹고 마시자. 내일이면 죽으리라.』(고전 15:32)고 말하며 현실에 집착하며 살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오히려 우리가 모두 변화될 것이니 마지막 나팔에 눈깜짝하는 순간에 그러하리라. 나팔 소리가 나면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하는 몸으로 일으켜지며 우리도 변화되리라. 그리하여 이 썩을 몸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몸을 입고 이 죽을 몸이 반드시 죽지 아니할 몸을 입으리라.』(고전 15:51-53)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몸으로 변화되어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 안에서 "신비"입니다. 썩을 몸이 썩지 아니할 몸을 입고, 죽을 몸이 죽지 아니할 몸을 입는다는 것은 실로 인간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줄곧 그리스도인의 부활에 대해 말하면서 마지막 58절에 와서 결론짓기를『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라, 흔들리지 말라, 항상 주의 일을 넘치게 하라. 이는 너희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아니한 줄을 너희가 앎이니라.』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다시 부활하기 때문에 그들의 섬김은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슬과 함께 사라져버리는 그런 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을 넘치게 하라는 것입니다. 진정 우리의 생에 가장 가치 있는 투자는 "영원"에 대한 투자입니다. 이것만큼 더 확실하고 더 분명한 투자는 없습니다.
부활의 소망을 지니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은 구원받은 이후 결코 헌신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헌신의 의미도 모르며 썩어져 버리고 모두 다 타 버릴 것들을 향해 자신의 생을 낭비합니다(벧후 3장). 영원한 것들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상실해 버린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자신을 위해 먹고사는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을 위해 먹고산다면 그는 결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예전처럼 단순히 먹고사는 데에만 우리의 생을 쓰라고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영원한 것들을 바라보고 또한 그것에 자신의 생을 투자하라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같은 가치관과 기준을 가지고 살아도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우리는 다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부활한 후 우리는 우리 자신이 행한 행위들에 대해 결산을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되는 대로 막 살 수 없는 이유입니다. 구원받고 난 후 "더 좋은 부활"(빌 3:11, 히 11:35)을 얻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행위에 달려 있습니다. 구원은 그 어떤 행위도 없이 받았지만, 상급은 반드시 행위가 뒤따라야 합니다. 구원받고 난 후 주님을 위해 그 어떠한 행위도 하지 않았다면, 그는 부끄러운 부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믿음은 탁상공론이 아닙니다! 믿음은 행동입니다! 행하지 않은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이 현실 세계가 영원 세계와 곧 바로 직결된다면 이 현실 세계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간증을 낳는 삶이 아니라면, 그 삶은 살아 있으나 실로 죽은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아버지는 밖에서 돈을 벌어와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어머니는 자녀들을 돌보고 집안 일을 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학생은 학생으로서 공부에 전념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군인은 적으로부터 나라와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자신의 신분에 맞게 행동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모습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자신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여 그 말씀에 자신을 복종시키는 것과 매일 매 순간 성령으로 충만해 있어야 하는 것과 영원을 위해 자신의 생을 투자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가 선행될 때 그리스도인으로서 간증을 잃지 않습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습니까?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간증을 잃어버리는 일을 했습니까?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고 다 자백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영생을 얻은 사람으로서 바른 믿음과 행위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삶을 사시길 바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