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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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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헌신을 하려면
lhyunsik
2005-09-29
올바른 헌신을 하려면
원경희 목사 | 2005·04·22 18:33 | HIT : 28 | VOTE : 1 |
성경본문:[롬6:13]
또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내어 주지말고, 다만 너희 자신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난 자처럼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헌신이란 사회에서는 봉사라는 말로 조직이나 단체에서는 충성이라는 단어로 쓰이기도 하지만 특히 종교적인 용어로 자신의 몸을 드린다는 의미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반대하고 공격하고 비난하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정확하게 알고 믿으면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자신이 소유한 전문 지식과 재산과 시간과 몸까지 하나님을 위하여 다 드리고 사용하려는 열정을 갖는다.
누구나 처음에는 구원받은 사실로 감사하고 기뻐하며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관심과 욕구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고 모든 초점을 말씀과 주님께 맞춤으로 인해 만족한 신앙 생활을 하게 된다.
더욱 만족을 얻기 위하여 더 많은 일에 열정을 쏟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는 누구나 적은 것에도 만족하고 주님을 알게 된 사실만으로도 고맙고 자신이 주님을 사랑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큰 자랑이 되기도 한다.
그 분을 위하여 몸이 부서지도록 충성하겠다고 다짐하고 아무리 힘든 고난이 닥쳐와도 즐거운 마음으로 참고 이겨내겠다고 호언장담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토록 충만하던 열정도 예수님에 대한 애정도 신앙생활의 연륜이 더 해 가면서 서서히 식어간다.
입으로는 헌신을 다짐하면서도 실제적인 생활 속에서는 헌신을 하지 못한다.
처음에는 모든 것을 다 드릴 것 같았는데 그 열정과 마음이 서서히 지식으로 옮겨간다.
때로는 예수님에 대한 첫 사랑을 회복하려고 애쓰지만 마음대로 안 된다.
헌신은 자신을 송두리째 주님께 내어 드리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시간과 물질과 마음까지도 온전하게 주님을 위해 내어놓는 것이다.
헌신하지 않으면 점점 주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한다.
그런 상태에서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하나 둘 생겨나면 점차 짜증이 나게 되고 육신적이고 세상 적인 일들이 점점 두렵게 되며 무엇인가 자신이 준비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것같이 불안해 지게 된다.
예수님을 알기 전에 살아왔던 생활 습관이 하나 둘씩 자꾸만 튀어나온다.
그것은 예수님을 알기 전에 가장 편안했던 자신의 살아온 생활 방식이였기 때문에 은혜를 받았다고 잠시 감격하여 변화를 일으켰던 삶이였지만 첫사랑의 감격이 식어지니 자연스럽게 지난 날 안일했던 생활로 되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태가 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감격하지도 기쁨과 감사도 없어진다.
오히려 자신을 책망하고 꾸짖는다고 불평하고 원망하게 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렇듯 가장 소중한 은혜와 사랑을 받고 진리를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으로 돌아갔는지 알아야 한다.
누구든 올바른 헌신을 하지 않으면 언젠가 이런 날이 닥치게 된다.
헌신은 뿌리깊은 나무가 온갖 비바람이 불어도 제자리를 지키는 것과 같아서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만이 참된 헌신을 할 수 있다.
헌신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쓰실 수 없으시다.
자신을 온전하게 주님께 맡기고 인도함을 받을 때 주님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올바른 헌신을 하려면
첫째 부르신 목적을 알아야 한다.
엘리야 선지자는 칼멜산에서 바알신을 섬기는 제사장들과 싸움에서 큰 승리를 얻기 전에 삼년 반 동안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사용하시는지 알게되었다.
하나님께서 크릿 시냇가 숨은 엘리야를 어떻게 돌보아 주셨는지 알 수 있다.
[왕상17:6] 까마귀들이 아침에 빵과 고기를, 저녁에 빵과 고기를 그에게 가져왔으며, 그가 시냇물을 마셨더라.
오랜 가믐 속에서도 사르밧 지방에서 엘리야를 통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다.
왕상17:16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주의 말씀대로 가루통도 고갈되지 안니하고 기름병도 비지 아니하였더라.
사르밧 과부는 죽은 아들을 돌려 받기도 했다.
왕상17:22 주께서 엘리야의 음성을 들으셨으니 그 아이의 혼이 그의 안에 돌아와서 그가 살아났더라.
이런 사실을 통하여 엘리야는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며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았으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먹을 것을 주시고 보호하시며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임을 알았다.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이 그와 같은 능력을 가지신 분인 줄 확신하였기 때문에 그는 기분이나 감정에 의하지 않고 죽기를 각오한 심정으로 칼멜산에서 아합왕이 지지하고 있는 바알을 섬기는 제사장들과 싸움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전에 첫 사랑의 감격으로 결정할 것이 아니라 정말로 나를 부르신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 엘리야를 부르신 하나님, 바울을 부르신 하나님임을 알고 결정을 해야 한다.
부르신 목적은
1.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부르셨다.
하나님의 사역중에 가장 우선되어야 하며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 바로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누가 복음을 전파할 것인가?
바로 지옥을 알고 죄인들에 대한 연민을 갖는 사람들이 자신을 구원해주신 주님을 위해 자원함으로 기쁨으로 이 일을 하는 것이다.
[고전1:24]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유대인들에게나 헬라인들에게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또 하나님의 지혜니라.
복음은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누구나 전할 수 있다.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은사가 아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파하는 데도 장소와 대상에 따라 쓰이는 도구가 다르다.
여러분들은 각자 자신이 속해있는 가정과 직장과 만나는 대상들이 다르며 또한 여러분의 재능과 지식과 위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딤전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원한 생명을 붙잡으라. 이를 위하여 네가 또한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들 앞에서 선한 고백을 하였느니라.
부르신 목적은
2. 지역교회의 회중으로 일하게 하시려고 부르셨다.
성경대로 믿고 행하는 지역교회가 세워진 곳이 많지 않다.
수많은 지역가운데서 왜 하필이면 강릉에다 지역교회를 허락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강릉지역에 있는 사람들을 더 사랑하셔서 아니면 여러분들이 특별히 잘나서일까요?
[고전1:26]형제들아, 너희는 너희의 부르심을 보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육신을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않고, 권력있는 자도 많지 않으며,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자도 많지 아니하니라.
분명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으셔서 이곳에다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를 세우신 것이다.
여러분들은 이 지역교회의 지체들이다.
지역교회 안에서의 지체들 마다 역할이 다르다.
[골3:15]하나님의 화평이 너희 마음을 다스리게 하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들이다.
지체들은 서로 함께 고난과 영광을 나눌 것이다.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며 영원히 함께 할 사람들이 바로 옆에 있는 지체들이다.
하나님께서는 각자에게 은사를 주시고 교회안에서 해야할 일들을 알려 주실 것이다.
[고전7:20]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안에 거하라.
부르심 목적은
3. 마지막 때의 사역을 맡기시려고 부르셨다.
이 시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고있는가?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헌신하고 주를 위해 충성을 맹세하고 있다.
그러나 입으로만 개혁을 외치고 교회안에 비리를 탓하고 문제를 말하지만 누구하나 실제로 그 일을 바로 잡기 위해 나서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 마지막 시대에 왜 여러분을 부르셨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실수로 부르셨을까요?
[롬11:29]이는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가 없으심이니라.
미리아심을 통해 여러분이 어떤 믿음으로 주님의 일을 하실 것인지 다 아신다.
비록 지금은 영적으로 어리고 또는 육신적인 생활로 인해 주님께 올바른 헌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올바른 헌실을 통해 주님의 귀한 일꾼이 되실 것이다.
베드로의 권고의 말씀을 다시 한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벧후1:11]그러므로 형제들아, 오히려 더욱 힘써서 너희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확고히 하라. 너희가 이러한 것들을 하면 결코 실족하지 않을 것이요
올바르게 자신을 드려 헌신하려면 먼저 복음전파와 지역교회의 회중으로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며 마지막 때에 일꾼으로 부르심을 알아야 한다.
올바른 헌신을 하려면
둘째 왜 헌신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스라엘이 이방인들과 같이 우상 바알을 섬기는 잘못을 깨닫게 하고 하나님을 믿게 하려는 계획을 실천하는데 있어서 그 일에 합당한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엘리야 선지자는 바로 그러한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적합한 체력과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였다.
길르앗이란 지역은 황무지 같은 산악지대로 이곳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엘리야는 가뭄이 심한 때에 크릿 시냇가나 사르밧 과부의 집에서의 어려운 생활을 잘 적응 할 수 있는 자질을 갖고 있었다.
하나님은 당신이 목적하는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그 목적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조건과 능력을 가진 사람을 선택하신다.
예를 들면 이방인 선교를 위하여 신앙과 학문과 언어에 능통한 바울을 부르셨고, 애굽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출하여 40년간 그들을 인도하기 위하여 지도자로서 훈련을 받은 모세를 선택하셨다.
여러분의 지식과 재능과 직업은 바로 하나님이 이 시대에 부르시기 위한 적합한 이유가 되며 자신의 능력에 맞지 않는 직분을 결코 맡기지 않으신다.
헌신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이 하고 싶다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부르실 때 순종하는 것이다.
왜 헌신 해야 하는가?
1. 지옥으로부터 구원받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구원의 기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매일 매일의 삶이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고 기쁨으로 가득한 가운데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한다.
자신이 지옥의 형벌로부터 구원받은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가장 먼저 자신을 구원해주신 주님께서 기뻐하실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몸을 받쳐 있는 힘을 다해 주님께 헌신해야 한다.
[딛3:5]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에 의하지 않고 그의 자비하심에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니
구원받지 못하였다면 헌신해야 할 이유가 없다.
구원받은 사실 하나만으로도 온 생애를 주님께 드려도 그 은혜를 결코 갚을 수 없다.
자신이 구원받은 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하고 기뻐하는 동안 수많은 죄인들은 지금도 지옥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왜 헌신해야 하는가?
2. 주님께서 명하시기 때문이다.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많지만 그 중에 진리를 깨닫고 그 가치를 아는 사람은 참으로 적은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바른 성경이 없고 또한 양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진리를 알았다고 해도 자신의 유익을 위해 헌신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헌신은 강압적인 힘이나 권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비하심 가운데 명하는 것이다.
롬12:1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에게 권고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것이 너희가 드릴 합당한 예배니라.
따라서 헌신은 두려움 가운데 드려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려져야한다.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기꺼이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 드린다.
모든 것을 주님을 위하여 내어 놓음으로 인하여 더욱 가치있고 귀한 것을 얻게 된다.
헌신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드려져야 한다.
왜 헌신해야 하는가?
3.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듭난 이후 더 이상 자신의 몸을 주관 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사셨기 때문이다.
고전6:20 너희는 값을 치르고 산 것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오직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 아래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한다.
자신의 몸이 아닌 주님의 전을 잘 관리하고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
몸을 잘 관리하지 못해서 주님께서 필요로 하실 때 쓸 수 없다면 죄를 짓는 것이다.
고전6:19 또한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바 너희 안에 계신 성령의 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니라.
저와 여러분의 몸은 더 이상 자기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
주님의 것이기에 마땅히 주님이 필요하실 때 드려 쓰시게 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몸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고 있다.
헌신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올바르게 헌신하려면 구원의 기쁨가운데서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것인 자신의 몸을 스스로 자원해서 드려야한다.
온전한 헌신을 하려면
셋째 무엇을 포기해야하는지 알아야 한다.
베드로와 세베대의 아들 요한과 야고보는 예수님이 처음 그들을 부르실 때에 자신들의
생업의 도구인 배와 그물과 부친을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랐다.
누가복음에는 그들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쫓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바울은 자신이 배운 학문과 좋은 가문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고 전파하는데 걸림돌이 된다면 다 버리겠다는 한 고백은 우리가 헌신하기 위하여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우리가 헌신이 잘 안 되는 이유는 포기하지 못하고 짊어지고 가려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두 가지 세 가지를 한 번에 하려는 욕심 때문에 헌신하지 못한다.
자신이 배우고 익힌 지식, 명예, 권위, 돈, 생할에 필요한 물건들, 가족들을 짊어지고 주님을 섬기려고 하기 때문에 마음은 헌신을 하고자 하여도 몸은 무거워 헌신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포기 하여야 하는 것은
1. 세상 지식이다.
세상지식이 많으면 하나님의 말씀도 잘 깨닳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또한 성경지식을 많이 알아서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하지 말라.
세상지식을 가지고 판단하고 이해하려고 하면 절대로 주님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렇다.
[눅10:21]바로 그 시간에 예수께서는 영으로 기뻐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오 하늘과 땅의 주이신 아버지시여, 이런 일을 지혜롭고 슬기로운 사람들에게는 숨기시고 아기들에게는 나타내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그러하옵니다. 아버지시여, 이는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버지 보시기에 선함이니이다.
사도바울은 왜 자신의 지식을 버리겠다고 했는지 알 수 있다.
[빌3:8] 실로 모든 것을 손실로 여김은 그리스도 예수 나의 주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며,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그것들을 오히려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함이요
먼저 버리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주를 두려워함에서 시작된다.
바울이 버렸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지식과 경험을 오히려 사역을 위해 쓰셨다.
포기 하여야 하는 것은
2. 자신이 원하는 것이다.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을 부인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지 않고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 수 없다.
헌신하려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을 부르시고 계획가운데서 일을 맡기신다.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면 결코 헌신 할 수 없다.
[약1:14] 그러나 누구든지 자신의 욕심에 끌려 유혹을 받을 때 시험을 당하는 것이니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할 지라도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면 세상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다.
육신을 따라 살면 결국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에 불과하다.
[갈5:17] 육신은 성령을 거슬러 욕심을 부리며 성령은 육신을 거스리나니, 이들은 서로 반목하여서 너희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느니라.
포기 하여야 하는 것은
3. 자신의 의다.
인간의 의는 더러운 걸레와 같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 할 지라도 자신의 의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결국 자기의 능력으로 지식과 경험으로 일을 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했다고 자랑하기 마련이다.
[렘9:23] 주가 이같이 말하노니, 현명한 자는 자기 지혜를 자랑하지 말며, 용사는 자기 힘을 자랑하지 말고, 부자는 자기의 부를 자랑하지 말라.
하나님의 능력이 아닌 자신의 노력으로 한 것은 결코 주님을 위한 일이 아니다.
자신의 열성을 가지고 많은 일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 헌신하려면 오히려 자신을 주님께 맡겨야 한다.
자기 의를 내세우는 사람은 결코 믿음을 지속하지 못한다.
올바른 헌신을 하려면 자신의 지식이나 원하는 것을 포기하고 자신의 의를 포기하지 않고서는 헌신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