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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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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능력 - R.A. 토레이
lhyunsik
2005-09-27
기도의 능력
R.A. 토레이(Reuben Archer Torrey, 1856-1928)
『너희가 갈망하여도 얻지 못하고, 너희가 살인하고 갖고자 열망하여도 얻을 수 없으며, 너희가 다투고 싸워도 얻지 못하니 이는 너희가 구하지 않기 때문이라』(약 4:2).
짧은 성경 말씀이긴 하지만, 이 속에는 참으로 많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실로 많은 이들의 가슴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고, 무능하게 사역을 수행하던 수많은 사역자들을 능력있는 일꾼으로 변화시킨 말씀입니다.
저는 몇 해 전 뉴욕에서 열렸던 성경 연구 집회에서 이 말씀으로 강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집회가 끝나고 몇 달이 지났을 무렵, 저는 그 집회에서 의장을 맡았던 분으로부터 한 장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잘 알려진 복음 전도자입니다. 그는 편지에서 쓰기를, ″당신이 강연회에서 읽어준 그 짧은 성경 구절이 제 마음 속에서 떠날질 않더군요. 밤이나 낮이나 늘 제 마음속에서 메아리치고는 했습니다. 그 말씀이 제 생각을 바꾸고 제 행동과 사역을 변화시켰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전 미국에서 그 어느 누구보다 더 잘 알려진 복음 전도자입니다. 이 짧은 말씀이 그의 마음에 깊이 새겨진 것처럼, 여러분들에게도 마음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 거기에 자리를 잡는 말씀이 되어, 몇 달이 지난 후에는 그 전도자와 같은 말을 하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그 짧은 성경 말씀이 제 마음에서 떠나질 않더군요. 밤낮으로 제 마음속에서 메아리를 쳤어요. 그 말씀이 제 생각을 바꾸고, 제 행동 양식과 삶, 그리고 주님에 대한 저의 헌신의 자세를 변화시켰습니다.″라고 말입니다.
무기력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본문의 말씀은 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과 사역자들, 그리고 교회들이 무기력하고 빈약하기 그지없는지, 그 원인을 밝히 드러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묻고 합니다.
″전 왜 이렇게 성장이 느리죠? 왜 빈번히 죄에 빠지고, 그리스도께로 이겨오는 혼이 이리도 적은 것이죠? 우리의 주님과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속도가 왜 이리도 느리죠?″
하나님은 이 질문들에 대한 성경을 통하여 이렇게 대답해 주십니다.
『너희가 갈망하여도 얻지 못하고, 너희가 살인하고 갖고자 열망하여도 얻을 수 없으며, 너희가 다투고 싸워도 얻지 못하니 이는 너희가 구하지 않기 때문이라』
답은 간단합니다. 구하지 못하기 때문에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많은 사역자들이 이렇게 묻곤 합니다.
″왜 제 사역의 열매는 이다지도 빈약하죠? 왜 이렇게 회심하는 사람이 적습니까? 왜 항상 교회가 마냥 그 자리에 정체되어 있기만 한 거죠? 왜 우리 교회의 성도들은 저의 사역에서 거의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그리스도에 관해 아는 것도 거의 없으며, 그분을 따르는 데도 주저하기만 하는 것이죠?″
그러면 주님은 다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이는 너희가 구하지 않기 때문이라.』
즉, 기도에 게으른 까닭입니다.
초대 교회의 승리
유일하게 영감을 받아 기록된 교회의 역사, 즉 누가의 손으로 쓰여진 사도행전에 나오는 사도 시대의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제일 먼저 무엇이 눈에 들어옵니까? 끊임없는 승리와 그리고 그 속에서 쉼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전진일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몇 구절만 찾아 읽어보겠습니다. 우선 사도행전 2:47을 읽어보십시오.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들을 그 교회에 날마나 더해 주시더라.』
그리고 4:4도 보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을 들은 많은 사람이 믿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 명이나 되더라.』
5:14을 한번 펴 보십시오.
『그때에 믿는 남자들이 더 많이 주께 더해졌고 남자들과 여자들의 수가 허다하더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6:7도 읽어봅시다.
『하나님의 말씀이 널리 전파되니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의 수가 크게 늘었으며 제사장의 큰 무리도 이 믿음에 순종하더라.』
사도행전 전제에 걸쳐, 첫장부터 27장까지 매장마다 우리는 승리의 기록을 발견합니다. 저는 언젠가 한번은 사도행전을 읽으며 각 장에 나와있는 승리의 기록을 모조리 찾아 표시를 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한 장도 예외없이 모두 승리의 함성이 들어있더군요. 사도행전에 기록된 교회의 역사는 오늘날의 교회의 모습과 얼마나 다릅니까? 우선, 실제적인 예로 2장 47절을 봅시다.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들을 그 교회에 날마다 더해 주시더라.』
우리는 일년에 한번 정도 부흥회를 통해 40명이나 50명 정도 되는 혼을 구원시키고 나선 나머지 1년은 나태한 상태로 보내면서도 우리는 참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 시대에는 일년 전체가 부흥회 기간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물론 떠나가는 사람도 얼마 있었겠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들이 매일매일 덧붙여졌습니다.
초대교회와 오늘날의 교회는 왜 이토록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혹자는 이 문제에 대해 이런 대답을 내놓기도 합니다.
″요즈음은 교회를 대적하는 사람들이나 단체가 너무 많아요.″
그러나 초대 교회 시대에도 반대는 있었습니다. 너무도 단호하고 격렬하며, 또한 냉정한 반대라서 오늘날과 비교해 본다면 요즈음의 반대란 그저 어린아이들의 장난 즈음으로 보일 정도입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는 그 모든 반대를 물리치고, 모든 난관을 극복하며, 모든 원수들을 이기고 항상 승리하며 나아갔습니다. 그들 앞에는 늘 가장 강력한 이교의 사상들과 불신앙 그리고 완악함들이 버티고 있었지만, 예루살렘에서 로마까지 그들은 조금의 퇴각도 없이 앞으로만 나아갔던 것입니다. 혹자는 물을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죠?″
제가 앞서 인용한 구절들이 들어 있는 장들을 펴서 읽어보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끊임없는 기도
자, 그 실례로 사도행전 2:24을 살펴봅시다.
『그들이 사도들이 가르친 교리와 교제, 빵을 떼는 것과 기도하는 데 전념하더라.』
짧은 서술이지만 이 말씀은 초대 교회에 관하여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는 기도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그저 때때로 기도를 한 것이 아니라, 늘 기도 했습니다. 그저 몇몇 선택받은 사도들만 기도에 힘쓴 것이 아니라, 교회 성원들 전부가 주님께 기도를 올렸습니다. 늘 끊임없이 기도에 전념했습니다.
사도행전 6:4 또한 이러한 모습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기도하는 일과 말씀의 사역에 전념하리라.″고 하더라.』
6장 4절을 자세히 살펴봅시다. 여기에는 우리가 찾는 또다른 해답이 들어 있습니다. 4절은 사도들의 사역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사역은 기도의 사역이었습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기도했습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계속″해서 기도에 ″전념한″ 것입니다. 기도하는 교회와 기도하는 사역자! 교회와 사역자가 계속해서 기도하기만 한다면 교회는 마땅히 얻어야 할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도들의 시대처럼 우리도 기도를 통하여 끊임없이 전진하며 모든 대적을 물리치고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모든 대적들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왜 기도하지 않는가?
오늘날의 교회나 사역자들, 혹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당신과 나는 특히 이 기도의 문제에 있어서 사도들과 너무도 다른 모습을 취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복음주의적이란 교회의 회원들 중 다수가 기도에 대한 신학적인 정의들마저도 제대로 믿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소위 믿는 자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기도를 그저 유익한 ″영향력″을 작용시키는 행위 정도로 생각합니다. 즉, 기도하는 사람이 그 기도라는 손잡이를 통하여 자기 자신을 영적으로 향상시키는 유익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기도는, 만일 우리가 기도를 하지 않는다면 무슨 수를 써도 얻을 수 없는 것들을 가져오는 장치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요즈음 들어서는 사역자들 중에도 그런 고백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소위 ″현대 사역자″들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손에 쥐어주신, 인간의 머리로는 제대로 이해할 수도 없는 그 강력한 도구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교회 안에 너무도 많습니다. 말씀 드렸지만, 우리는 기도를 하지 않는 세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바쁘고 부산하기만 한 시대입니다. 인간의 노력과 결정, 그리고 자아에게 두는 신뢰와 오직 자신들의 힘으로 무언가를 성취하고, 인간이 만든 조직과 기구들, 그리고 인간들끼리 이리저리 밀려 다니며 인간의 교묘한 지혜와 인간적 성취만으로 가득차 있는 시대입니다. 하나님의 방법들로 그 무엇인가를 성취하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 세대인 것입니다.
현재의 교회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민첩하고 일사불란하여 거의 완벽에 가까운 조직력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교회가 창안한 체제는 너무나 훌륭합니다. 거의 완벽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 속에는 아무런 능력도 없습니다. 그리고 일이 잘못되어 가는 경우에는 실패의 근원이 무엇인가에 접근하기 보다는, 즉 하나님을 의지하기 않았고 그분의 능력을 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각하려들기 보다는, 어디 다시 붙들어볼 새로운 체제는 없는가하고 이리저리 찾아다닙니다. 자신들의 조직에 갖다붙일 새로운 바퀴를 찾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너무도 많은 바퀴들을 발명하고 찾아냈습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새로운 체제 혹은 바퀴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해결의 근원인 생명의 영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마귀는 지금 자신의 기구와 조직의 힘 그리고 체제의 교묘한 운영 능력들에 의지하고 있는 작금의 교회들을 보면서 옷소매로 입술을 가리고 비웃고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하, 보이스카웃에다 돈 꽤나 들여 지은 교회 건문들이라! 수천달러를 써서 들여 놓은 교회 오르간에다 대학을 졸업하신 박학다식한 설교자님들, 그리고 바싸고 높은 의자들, 소프라노와 알토 그리고 테너와 베이스가 멋지에 어우러지는 성가대의 4중창, 그리고 대규모 성경 공부 모임, 수많은 주석서들에 특별 복음 전도 집회라! 저들은 이 모든 것에 몹시 흡족해 하고 있군. 하지만, 그런 잡동사니들은 나한텐 아무런 영향도 못 끼친다는 걸 모르는 모양이야. 만일 너희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을 구하는 데서 떠나 있다면, 틀림없이 응답을 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열렬하고 끈질기게 올리는 기도로 얻은 것들이 아니라면, 나하텐 아무 해도 못끼치지.″
그러나 마귀는 믿음의 기도를 하는 사람을 보면 ″떱니다.″ 어떻게 기도하는 지를 알고, 진정으로 기도를 올리는 사람말입니다. 무엇보다 모든 성도가 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면전에서 기도하는 교회를 보면, 그는 두려움에 사무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사람들이 정당한 상황 속에서 승리하는 기도의 요건을 갖추고 올리기만 한다면 사도 시대처럼 변함없이 능력이 내려오는 통로의 역할을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진정으로 기도하는 자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며 그분의 팔은 예전과 다름없이 강하고 능력이 있으십니다.
『보라, 주의 손이 짧아서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그의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사 59:1).
그러나 우리의 죄악이 그분과 우리 사이를 갈라 놓는 것입니다.
『오직 너희 죄악들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나누었고 너희 죄들이 그의 얼굴을 너희로부터 가렸기에 그가 듣지 아니하심이라』(사 59:2).
기도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와 능력의 창고를 여는 열쇠입니다. 하나님과 관련한 모든 것은, 또 하나님이 가지신 모든 것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그 모든 것을 받기 위해서 반드시 열쇠가 필요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은 무었이든 능히 이룰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기도는 전능한 힘을 끌어오는 통로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어떻게 기도하는지를 알며 승리하는 기도의 조건을 충족시키면서 진실한 기도를 올리는 사람을 대적할 수는 없습니다. 전능하신 주 하나님께서 그 속에서 또 그를 통하여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성경을 공부하는 것을 제외하면 우리를 거룩함에 이르게 하는 또 하나의 유일한 길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기도가 하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일반적인 이야기를 해왔습니다. 이제 이 문제를 아주 구체적인 차원에서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 문제에 관해서 명확한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기도는 우리를 경건하고 거룩하게, 다시말하면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닮아가게 만들어 줍니다. 이것은 성경을 공부할 때 얻는 효과입니다. 이 두 가지 일, 즉, 기도와 성경을 공부하는 것은 늘 함께 일어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지 않고선 진정한 기도란 있을 수 없으며, 기도하지 않고선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공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조건이 동등하다면, 여러분이나 제가 우리의 주님이시요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얼마나 많이 닮아가느냐 하는 것은 기도에 얼마나 시간을 투자하느냐, 또 얼마나 마음을 진중하게 기울이느냐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기도하는데 마음을 쓰고 시간을 투자하는 것에 비례해서 우리 주님이시요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된다고 하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많은 이들이 기도하는데 시간은 많이 투자하지만 마음은 별로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저 몇 가지 기도제목을 들고 시간만 때우는 식입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시간을 얼마 투자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기도하는 데 온 마음을 기울이는 까닭에 긴 시간을 두고 속빈 기도를 하는 사람들 보다 그 짧은 시간을 통해 훨씬 더 많은 것을 이루어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29:13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찾으려 하면 너희는 나를 찾게 되고 나를 만나리라.』
에베소서 1:3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천상에 있는 모든 영적인 복으로 복 주시는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는 복되시도다.』
말하자면, 속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신 것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는 자들에게 모든 영적인 복을 내려주실 수 있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믿는 사람이 누리지 못할 영적인 복이란 없습니다. 그복을 누리느냐 누리지 못하느냐는 오직 당신에게 달린 문제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대속하신 죽음을 통하여 이 영적인 복을 사셨고, 하나님은 그분 안에서 이 복을 베풀어주십니다. 이 영적인 복들은 모두 당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달라고 해야 합니다. 두 손을 뻗쳐서 붙들어야 가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손을 내밀어 축복을 달라고 요청하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기도를 통하여 그분께 복을 얻게 된다는 뜻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일들 안에서 이미 베풀어 놓으신 축복들을 우리에게로 가져 오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모든 영적인 복은 기도를 통하여 얻는다는 사실을 명백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편 139:23,24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살피시어 우리의 마음을 아시고 또 우리를 시험하시어 우리의 생각들을 아시게 된다면, 그분은 우리 속에 있는 죄악을 드러내시고 그 죄악을 우리 속에서 제거하시는 일을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시편 19:12,13을 보십시오. 우리가 그 구절 속에 담긴 기도를 한다면 우리는 숨겨진 죄악들로부터 깨끗해질 것이고 주님은 죄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여 주실 것입니다. 같은 장에서 14절을 읽어 보십시오. 이 구절에서는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하나님의 목전에 받아들여지게 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편 25:4,5도 많은 예들 중의 하나입니다. 이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분의 길을 보여주시고, 그분의 방법들을 가르쳐 주시며,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여 주십니다(마 6:13). 누가복음 11:13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분의 거룩한 영을 주시는 것도 바로 기도에 대한 응답을 통해서 입니다. 우리가 모든 영적인 복들을 일일이 열거하여 고찰해 본다면, 이 모든 것들이 기도를 통하여 주어지는 것임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7:11에서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너희가 악하다 할지라도 너희 자녀에게 좋은 선물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들에게 좋은 것들을 많이 주시지 않겠느냐?』
고린도후서 3:18은 성경 전체에서 기도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임을 보여주는 성경구절 중 가장 유익하고 교훈적인 구절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유리를 통하여 보는 것같이 수건을 벗은 얼굴로 주의 영광을 보는 우리 모두는 주의 영으로 말미암은 것같이 영광에서 영광으로 이르는 똑같은 형상으로 변모되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양이시라면 우리는 그를 반영하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개구쟁이 소년이 볕이 화창한 날 깨진 유리 조각을 들고서 태양빛을 반사시켜 어른들의 눈을 아리게 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까? 그것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와 깊은 교제를 나누게 되면 우리는 거울처럼 그 분의 영광스러운 빛을 세상 속으로 반사시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과 교제를 나눌 때마다, 그분께로부터 새로운 영광의 빛을 받아 세상에 반영시키게 된다는 말입니다.
모세의 이야기를 기억하십니까? 그는 산에 올라가서 40일 동안 주님과 함께 머물면서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는데, 그 영광스러운 광체는 그의 얼굴에 강한 자취을 남겼습니다. 그가 산을 내려 왔을 때, 그 자신은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그의 얼굴에는 영광스러운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동료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하여 얼굴에 두건으로 가려야 했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가 세상을 떠나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과 단 둘이 지내면서 얼굴을 마주하여 그분의 영광스러운 빛을 보고나면, 세상으로 다시 내려왔을 땐(물론 실제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의 성품은 산에서 보았던 그 영광으로 말미암아 보석처럼 빛나게 됩니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이 세상에 비추는 것입니다. 그분과 교제를 나눌 때마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 중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붙들게 되고 또한 세상에 그 결과를 보여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곁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그분과 교제를 나누고 나면 왜 그분과 닮아가게 되는 지에 대한 완벽한 해설입니다. 그분과 교제를 나누는 것 외에 그분을 닮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존 웰치(John Welch)는 스코틀랜드 역사에서 가장 우뚝한 인물 중의 한명입니다. 그는 존 녹스(John Knox)의 사위로 위대한 스코틀랜드 종교 개혁자입니다. 그는 자신의 장인 덕에 유명해지긴 했지만, 어떤 면에서는 장인인 존 녹스보다 오히려 더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존 녹스가 ″나에게 스코틀랜드를 주소서, 아니면 차라리 죽음을 주소서!″ 라고 기도했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그것은 그의 사위인 존 웰치가 올린 기도입니다. 그는 하루에 일곱시간에서 여덟시간 동안 개인적인 기도 시간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존 웰치가 죽게 되었을 때, 그를 어린시절부터 지켜보아왔던 스코틀랜드인들은 말하길, ″존 웰치는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물론, 좀 적절치 못한 표현인 것은 사실이지만, 아무튼 이 옛 스코들랜드인들이 자신들의 말에 담아내고 싶어 했던 의미는, 그리스도께서 존 웰치를 통하여 자신의 성품을 강하게 드러내셨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 일이 가능했겠습니까? 그리스도께서는 존 웰치가 매일 그분과 7시간에서 8시간에 걸쳐 교제를 나누던 그 시간동안 자신의 모습을 그에게 심으셨던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모두에게 7시간 혹은 8시간 동안 기도하기를 원하신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현재보다는 더 많은 시간을 기도하는데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분과의 개인적인 교제는 우리가 거룩하여지고 또 그 거룩함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몇해 전에 우리는 <너 성결키 위해>라는 찬송가를 자주 불렀습니다. 저는 그 찬송가를 다시 더 자주 불렀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거룩함에 이르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어느 누구도 후다닥 거룩하여 질 수는 없는 법입니다. 거룩하여지기 위해서는 시간을 들여 개인적인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늘날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이 하나님과 닮은 구석이 전혀 없다고 투덜대곤 하지만, 저는 요즘의 그리스도인들이 주님께 기도를 올리고 교제를 나누는 데 들이는 시간이 얼마나 빈약한가를 생각해보면 들이는 시간에 비해서는 오히려 많이 닮은 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능력 있는 사역을 위하여
기도는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사역에 역사하도록 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사야 40:31을 읽어보십시오.
『오직 주를 앙망하는 자는 자기의 힘을 새롭게 하리니 독수리처럼 날개로 치솟을 것이요, 그들이 달려도 피곤치 않으며 걸어도 곤비치 아니하리라.』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신들의 사역에 주님의 능력을 동원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능력을 가져오는 방법은 위에서 인용한 성경 구절에 잘 나와 있습니다. ″주를 앙망하는 자″, 즉 주님께 기대를 걸고 그분을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십시오. 자신에게 능력이 없다면,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간구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은 처음부터 끝까지 초자연적인 것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초자연적인 힘,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베푸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여 그 속에서 살아가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그 초자연적인 힘을 의지하여 우리의 사역을 수행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저한텐 무슨 재능 같은 게 없어요.″ 그러면 초자연적인 은사를 구하십시오. 성령님은 모든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부르신 특별한 사역에서 적절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초자연적인 은사들을 주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오신 분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한 분이신 같은 성령께서 역사하시어 그분께서 원하시는 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느니라.』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에게 부어집니다, 기도하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이 가운데서 자녀를 두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자녀들을 ″주의 교훈과 훈계″로 키우고 싶은 생각은 없으십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그렇게 양육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특별히 아버지들에게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베소서 6:4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자녀들을 성나게 하지 말고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불가능한 일을 명령하시는 법이 없습니다. 만일 신앙을 가진 아버지와 어머니들에게 주신 명령, 즉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말씀이 실현불가능한 것이라면, 결코 우리에게 그런 명령을 주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만일 당신의 자녀가 구원을 받지 못한 상태라면, 주님의 책망을 두려워 하십시오.
자녀를 구원시키는 것은 모든 믿는 아버지들과 어머니들의 엄중한 의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능력을 구하지 않는다면 이 일을 해내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처음 목회를 시작하던 시절, 우리 교회에는 아주 훌륭한 믿음의 여인이 한명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의 여섯 살 난 아들은 제가 그제껏 만나본 아이들 중 일찍이 유례가 없을 정도의 악동이었습니다. 온 동네에 악명이 자자한 아이였습니다. 한번은 주일 오전 예배가 끝나고 나서 그의 어머니가 저에게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톰이라고, 혹시 아시나요?″
당연히 알고 있었습니다. 근동에서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을 정도였으니까 말입니다.
″그렇게 훌륭한 아이라고 할 수는 없더군요.″
상당히 완곡한 표현이었습니다. 사실 좀 나쁜 정도가 아니라, 이웃들이 그 아이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떨 정도였으니까요.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머니는 수심에 푹 절여놓은 듯한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럼요.″
그녀가 대답했습니다.
″아주 구체적으로 아이가 거듭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까?″
″아뇨. 그렇게 구체적으로 기도한 건 아니예요.″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그럼 집에 돌아가시는 대로 구체적인 기도 제목으로 기도를 올려 보십시오.″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 구체적인 기도 제목으로 기도를 올렸고, 소년은 그 다음주부터 변화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사족을 붙이자면, 아주 훌륭한 젊은이로 성장했습니다.
오, 어머니와 아버지들이여 자녀들을 구원시키는 것은 당신의 특권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구원을 위해선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과 오랫동안 교제를 나누고 그분께 기도를 올리십시오. 그리고 항상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은 승리하는 기도의 근저이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녀가 있다면 집에 돌아가는 즉시 하나님께 자신의 삶에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가를 물어보십시오. 당신의 삶이 자녀의 현재 상태를 결정한 것일 수도 있게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그릇된 것으로부터 즉시 돌이켜서, 하나님 앞에 부복하고 그분께 당신의 자녀들이 회심하고 거듭나게 해 달라고 간구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자녀들이 틀림없이 구원을 받았다는 확신이 들때까지 그 기도를 멈추지 마십시오.
이 중에 혹시 주일학교 교사가 있습니까? 당신이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 모두가 구원 받기를 원하십니까? 학생들의 구원은 성경 지리학이나 성경의 역사,그리고 성경 교리를 가르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입니다.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원하지 않으십니까? 하나님께 그 능력을 구하십시오.
기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난 예들
알렉산더 씨와 저는 호주의 시드니에서 열린 집회를 인도한 적이 있습니다. 모임 장소는 Town Hall이었는데, 약 5천 명의 사람이 모여들었습니다. 운집한 회중의 규모가 너무 커서 낮에는 여자, 그리고 밤에는 남자들만 모이도록 해야 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라는 초청을 했고,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주님으로 받아들이고, 그 순간부터 매일 매순간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리는 삶을 살겠노라는 고백을 내놓았습니다. 한번은 스무살 남짓 되는 열 여덟 명 가량의 여자들이 제 왼편에서 일렬로 서서 복음의 초청에 응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이 한줄로 죽 서 있는 것을 보고서 분명 누군가가 인도하고 있는 성경 공부 모임의 학생들일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집회가 끝나고 나서 그들은 다른 여자와 한 명과 함께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들과 함께 온 여인의 얼굴은 환한 미소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녀는 저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인도하는 성경 공부 모임에 나오는 사람들이랍니다. 저는 그들 모두가 이 모임에서 회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길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또 잉글랜드의 브리스톨에서 집회를 인도하며 스물 두명의 남자들을 인도 있는 탁월한 성경 교사를 한 명 만났습니다. 그는 자신의 모임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제가 인도하는 집회에 가보자고 했고 그 중 스물 한 명이 그 제의에 응했습니다. 그는 그 모임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이 회심하기를 간구하고 있었고, 또한 그 기도가 이루어지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고 합니다. 만일 이 나라의 성경 공부 모임 인도자들이 모두 그들의 학생을 위해 기도한다면, 이 땅에는 얼마나 큰 부흥이 일어나겠습니까?
좀 더 많은 사역에 헌신하고 싶으십니까? 혹은 강단에서서 가르치거나 설교자가 되고 싶으십니까? 그러면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간구하십시오.
우리가 매일 밤 주님께 잊지 않고 꾸준히 기도를 올린다면 우리가 속한 모임의 사람들이 얼마나 선한 영향을 받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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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힘(R. A. Torrey).
기도의 효능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그것을 능히 우리도 기도를 통하여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팔은 기도 소리를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무진장한 하나님의 보고는 기도 소리를 따라 열리기도 하고, 닫히기도 한다.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가득 싸여 있는 창고문을 여는 열쇠다.
"구하라 그러면 주리라" 하고 큰 음성으로 외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 소리에 따라서 그 보고의 문을 활짝 열어 제끼신다. 그러면 이제 다음에 기도의 능력이 이룰 수 있는 축복들을 조목별로 관찰해 보기로 하자.
1. 기도는 내 실상과 내결점을 바로 보게 하는 힘이 있다.
내 자신을 아는 일, 다시 말하면 내 단점, 내 죄, 내 불의를 깨닫고, 내 육체의 몸에는 선이란 털끝 만치도 없는 것을 깨닫는 일이야 말로, 아마 인생이 알아야 할 지식 가운데서 최귀(最貴)한 것인 것이다(롬7:8-).
…그런데 이 자기 관찰을 기도를 통하여서만 정당히 행할 수 있을 뿐 다른 길은 없다. 우리가 진심을 기우려, 시편 기자와 같이, 기도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응답해 주신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2. 기도는 우리의 마음의 모든 죄를, 즉 숨은 죄나 나타난 모든 죄를 깨끗게 하는 힘이 있다(시19:12,13).
다윗왕이 그 비참한 자리에서 간절히 호소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어 주시고, 그의 모든 불의를 깨끗이 씻어 주셨다(시51:2-). 수다한 사람들이 스스로의 죄과를 자력으로 해결해 보려고 며칠, 몇 달, 혹은 여러 해를 두고 있었지만 이루지 못하고, 드디어 하나님앞에 나아가서 사죄의 은혜를 받기까지 하나님을 붙잡고 놓치지 않는 열렬한 도고를 드린 끝에야 비로소 승리의 개가를 부르며 일어날 수 있었다.
3. 기도는 우리의 발걸음을 튼튼케 하며, 유혹을 이기게 하는 힘이 있다.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지 아니하였나이다(시17:5-) 이는 다윗왕의 호소였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기도에 곧 응답하신다. 예수님 자신도, 겟세마네에서 최후의 순간이 다가올 때, 제자들에게 타이르셨다.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눅22:40-)고….
그러나 제자들은 그 분부를 듣지 않고, 기도해야 할 때에 잠을 잤기 때문에, 몇 시간 후 닥쳐온 시험에 여지 없이 넘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밤을 기도로 새우셨다. 이튿날 그는 인간의 몸으로 당한 시험 중에, 전무 후무한 큰 시험을 당했다. 이를 극복하고 영광스러운 승리를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도 준비를 갖추고 기도로써 대하기만 하면 어떠한 시험에도 승리를 거둘 수 있다. 흔히 베드로와 같이 주를 부인하는 실패를 하는 원인은, 마땅히 깨어 기도할 때에 잠을 자기 때문이다.
4. 기도는 우리의 혀를 제어하는 힘이 있다.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니 가득한 것이라(약3:8-). 그러나 사람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하시나니, 믿고 드리는 기도는 여기서도 응답되는 것이다. 우리가 간절히 믿는 마음으로, 다윗왕을 본받아 다음과 같은 기도를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그대로 이루어 주신다.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숫군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시141:3-) 많고 많은 경솔한 혀들이 이 방법을 통해서 절제의 덕을 나타내기에 이르렀다.…
5.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지혜를 얻게 하는 힘이 있다.
성경 말씀은 이점을 매우 분명히 강조하고 있다(약1:5). 약속 치고 이 이상 더 분명한 약속은 없을 것이다.
6. 기도는 우리의 눈을 뜨게 하여서 성경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발견케 한다(시119:8-).
…신학을 연구하는 것 이상으로, 기도를 통하여 우리는 성경을 통달할 수 있다. 기도하는 사람만이 성경을 참으로 깨닫는 것이다.
7. 기도는 성령으로 하여금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의 영육간 생활을 은혜중에 진행케 하는 능력이 있다.
… 우리의 마음과 생활에 성령을 모셔 드리는 일은 기도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우리의 대다수가 왜 이렇게 생활면에 있어서나, 봉사면에 있어서나, 무능력한가를 묻는다면, 그 원인의 태반을 기도의 부족에 돌릴 수 있다. 우리는 구하지 않기 때문에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약4:2-). 존·녹스(John Knox)는, 양자였던 존·웰치(John welch)는, 스코틀랜드가 낳은 위대한 개혁가인 동시에 극히 희귀한 성자적 그리스도적 성품의 소유자였다. 그는 그의 시간의 3분의 1을 기도로 보냈으며, 철야기도를 자주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를 잘 아는 어떤 사람이,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 그를 가리켜 그는 그리스도의 유형에 속한 사람이었다라고 말했다. 기도가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성품을 이루게 하는 힘이 있다는데 대해서는 얼마든지 많은 예증을 들 수가 있는 것이다.
8. 기도는 우리의 영성을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화하게 할 뿐 아니라, 우리의 사업에 충만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나게 하는 힘이 있다.
초대교회의 사도들이 그들 자신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난관에 봉착했을 때 저희가 듣고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행4:24-). 빌기를 다하매 능력이 임하여 모든 장애는 일소되어 버리곤 하였다(행4:31,33,5:14-). 그대가 이제 주일학교의 교수에, 개인 전도에, 설교에, 또는 자녀 교육에 있어서, 하나님의 능력이 같이 하기를 원하는가? 구하라. 받을 때까지, 하나님을 붙들고 조르라.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눅18:1-).
…존·리빙스턴에 대해서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가 그의 친한 동기들과 더불어 하룻밤에 철야 기도를 하고 나서 이튿날 숀쯔의 회당에서 어떻게나 강한, 능력 있는 설교를 했던지 500명이 즉석에서 믿기로 결심했고, 또 그 자리에 모였던 전신도들의 마음을 비상하게 긴장 시킨 바 있었던 것이다.
9. 그러나 기도의 사람은 자기 자신의 생활면에만 능력을 소유할 뿐 아니라, 또한 이웃 사람에게 능력을 준다. 기도는 이웃을 구원하는 능력이 있다.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요일 5:16). 다른 모든 방법으로 실패한 뒤에도 기도로서 이웃에게 구원을 얻게 할 수 있다. 기독교의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반기독자였던 다소의 사울이 변하여 교회 사상 최대의 사도가 된 것은, 당시의 신도들의 많은 기도의 응답이 있음은 거의 의심 없는 일이다. …기도에는 위대한 힘이 있다. 신자가 충만한 능력을 받는데는 이 기도의 힘이 불가결의 요소인 것이다.
- R. A. 토리 - <기도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