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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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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방주 (로버트 머리 맥체인)
lhyunsik

노아의 방주 -로버트 머리 맥체인(1813∼1843)-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한 일들에 대해 하나님의 경고하심을 받고 두려움으로 행하여 방주를 예비함으로 집안을 구원하였으니, 그것을 통하여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에 대한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히 11:7). 인간이 직접적인 체험을 통하지 않고서도 앞서 있었던 일들을 통하여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것은 너무도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본문에는 죄인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전형적인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 구절은 죄인이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노아는 자신이 준비한 방주로 도피했습니다. 여러분도 그러해야 합니다. 여러분을 위해 준비된 방주가 있습니다. 노아는 방주를 만들면서 세상이 저주를 받았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실로 저주를 받아 마땅한 것이 이 세상임을 여실히 깨닫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일단 방주에 들어와보면,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참으로 저주를 받을 만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말입니다. 자, 노아의 사건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성경을 읽어봅시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한 일들에 대해 하나님의 경고하심을 받고 두려움으로 행하여 방주를 예비함으로 집안을 구원하였으니...』 창세기 6장에는 노아가 받은 경고가 세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지면에서 번성하기 시작하고 딸들이 그에게서 태어났을 때,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들의 딸들이 아름다운 것을 보고 그들이 택한 모든 자를 아내들로 삼으니라.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영이 항상 사람과 다투지는 않으리니, 이는 그도 육체임이라. 그래도 그의 날들이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창 6:1-3).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창조한 사람을 지면에서 멸망시키리니,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들 모두라. 이는 내가 그들을 지었음을 후회함이라.″하시니라』(창 6:7). 이 두 경고는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주신 것들입니다. 그분은 성령께서 언제까지나 사람들과 다투지는 아니하시리라고 말씀하셨고, 급기야 자신이 창조하신 인간들을 모두 파괴에 버리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노아가 여러분들 중의 하나 같았다면, 그는 이렇게 대꾸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비의 하나님이야. 그런 분이 자신이 만든 사람들을 쓸어버리실 리는 없어.″ 혹은 또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아직 멀었어. 홍수는 한참이 지나서야 서서히 시작될 거야. 좀 더 있다가 하나님께 돌아서도 돼.″ 그러나 노아는 그렇게 반응하지 않았습니다.『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한 일들에 대해 하나님의 경고하심을 받고 두려움으로 행하여 방주를 예비함으로 집안을 구원하였으니...』 여러분, 여러분도 노아를 따르고픈 마음이 있다면, 두려움으로 행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한두번 경고하신 것이 아닙니다. 아마 골백번도 더 하셨을 것입니다. 그렇죠?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여러분에게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 가운데서 진리를 붙잡는 사람들의 모든 불경건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계시되거니와』(롬 1:18). 또 있습니다.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회심하지 아니하고, 또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 믿지 아니하면 누구든지 저주를 받게 됩니다(막 16:16). 회심하지 아니하고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마 18:3). 여러분, 여러분들은 이 말씀에 두려워 떤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면, 지금처럼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떨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러분과 달랐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한 일들에 대해 하나님의 경고하심을 받고 두려움으로 행하여 방주를 예비함으로 집안을 구원하였으니』 여러분은 사역자들을 통해 경고를 받습니다. 사역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여 사람들에게 경고를 던져줍니다. 우리가 의무를 게을리 하여 여러분들에게 경고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파수꾼인 우리의 손에서 그 피값을 요구하실 것입니다. 회심치 않은 사람들에게 경고를 던지는 것, 이것은 사역자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의 하나입니다. 저는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늘 이 일을 수행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경고의 말씀을 전해왔습니다. 여러분은 이 경고를 어떻게 받아들이셨습니까? 제가 드린 말씀은 제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만약 사역자들의 입에서 전파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다면 여러분들은 노아하고는 질이 다른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하나님의 경고를 받아왔습니다. 여러분 주위에는 병으로 죽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살아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여러분을 죄로 이끌려고 애쓰다가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을 본 분들로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죽었지만 여러분은 살아남아 있습니다. 여러분, 사실이 이러한 데도 나는 아무 경고도 받지 않았다고 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은 그 경고들을 어떻게 받아들이셨습니까? 경고를 듣고도 오히려 죄에 더욱더 탐닉하셨습니까? 만일 그러했다면, 여러분은 노아하고는 질이 다른 사람입니다. 어떤 이들은 ″전 두려움으로 행하긴 싫습니다, 전 단지 사랑으로 행하고 싶을 뿐이예요.″하면서 경고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낼 수도 있습니다. 사실, 두려움만으로 그리스도께 나아오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보고 그리스도께 나아와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러분의 안일한 자세는 두려움을 통하여 파괴됩니다. 두려움으로 인하여 세상으로부터 나와서 사랑으로 인하여 그리스도께 밀착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두려움을 되외시하지 마십시오. 바울이 만났던 교도관은 어떻게 구원을 받았습니까? 『그가 등불을 요청한 후, 달려들어와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더라. 그리하여 그들을 데리고 나와서 말하기를 ″선생님들이여, 내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이까?″하고 하니』(행 16:29-30). 그가 무엇으로 말미암아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했습니까? 예, 바로 두려움입니다. 예루살렘 거리들에서 삼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형제 여러분, 우리가 어찌하여야 하리이까?″』(행 2:37)하는 질문을 하게 된 요인이 무엇이겠습니까? 예, 두려움입니다. 바울로 하여금 땅에 엎드려 『″주여, 내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라고 부르짖게한 요인이 무엇입니까(행 9:6)? 바로 두려움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나아왔다면, 여러분도 그들처럼 두려움을 느낀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깨어나십시오. 『″오 잠자는 자여, 어찌된 일인가? 일어나 네 하나님께 구하라. 일어나 네 하나님께 구하라...』(요나 1:6). 그러니 제발 두려움을 도외시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그냥 이대로 세상에 푹 빠져 지내겠다면, 포도주 밑에 침전되어 있는 앙금처럼 살아가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나아올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성령은 비둘기 같으신 분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하는 첫 번째 사역은 죄의 확신을 주는 일입니다. 자, 이제 두 번째로 방주에 대해 생각을 해 봅시다. 『너는 고펠 나무로 방주를 만들되, 방주 안에 방들을 만들고 역청으로 안팎을 칠할지니라』(창 6:14). 16절도 한번 읽어봅시다. 『방주에다 창문을 만들되, 위로부터 일큐빗 되는 곳에서 마무리하고 또 방주의 문은 측면에서 내고 아래층, 이층, 삼층으로 방주를 만들지니라』(16절). 21절도 가까이 있으니까 읽어보겠습니다. 『너는 먹는 모든 양식을 네게로 가져다가 네게로 모으라. 그것이 너와 그것들에게 양식이 되리라.″하시니라. 노아가 그렇게 하였으니, 하나님께서 그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그대로 행하였더라』(21-22절). 방주는 완벽한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방주는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와 구원의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당시 어느 누구도 그렇게 큰 방주를 구상하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사든 사람이든 어누 누구도 죄인을 구원시킬 수 있는 방도를 찾지 못했을 것임이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주셨으니...』(요 3:16). 성경은 말씀하시길 천사들도 이 구속의 계획을 살펴보기를 간절히 바랬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로서는 도무지 헤아릴 수 없는 엄청난 계획이었습니다. 이것은 죄인들을 하나님께로 데리고 오는 계획이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땅에는 평화를 가져오는, 인간을 향한 호의였습니다. 자, 방주를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방주가 얼마나 튼튼하게 지어졌나 한번 봅시다. 하나님께서는 이 방주가 일렁이는 큰 물결에도 견딜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이는 그리스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은 자신에게 나아오는 모든 자들을 수용하실 수 있을만큼 강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자신을 통해 가장 높은 곳으로까지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방주는 매우 넓었습니다. 그리스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주께서 우리 사역자들에게 주신 말씀은 이것입니다. 『아직도 자리가 남아 있나이다』(눅 14:22). 방주는 문이 옆면에 나 있습니다. 그리스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의 옆구리에는 창자국이 있습니다. 구주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그 문이라』(요 10:9). 『이는 그를 통하여 우리 둘이 한 성령으로 아버지께 나아감이라』(엡 2:18).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요 6:37). 그분을 믿는 것 외에는 그분께 나아갈 길이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방주의 윗면에는 창이 열려 있습니다. 이 창을 쳐다보면 바로 하늘이 눈에 들어왔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와 화해하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방주에는 일용할 양식도 있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나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영광 가운데서 그의 풍요함을 따라 너희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실 것이라』(빌 4:19). 금이 필요하십니까?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당신에게 금을 하사하실 것입니다. 더러워진 자신을 깨끗이 씻을 물이 필요합니까? 그리스도 안에는 죄와 부정한 것들을 씻을 수 있는 개방된 샘이 있습니다. 허기를 느끼십니까, 그래서 빵이 필요하십니까?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니라』(요 6:35). 필요한 것은 모두 방주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큰 구원을 무시하고서도 어떻게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방주는 튼튼하고 양식은 풍족합니다. 왜 이 방주를 무시하려 하십니까? 자, 이제 세 번째로 노아가 어떻게 그의 집안을 구원하였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한 일들에 대해 하나님의 경고하심을 받고 두려움으로 행하여 방주를 예비함으로 자기 집안을 구원하였으니...』 노아는 가족을 다른 어떤 은신처로도 이끌지 않았습니다. 『주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시기를 ″너와 네 온 집안은 방주로 들어오라. 네가 이 세대에서 내 앞에 의로운 것을 내가 보았음이니라』(창 7:1). 『홍수의 물들 때문에, 노아가 자기 아들들과, 아내와, 자기 아들들의 아내들과 함께 방주로 들어갔고 정결한 짐승들과 정결하지 않은 짐승들과 새들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이 수컷과 암컷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니,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명하셨던 대로더라』(창 7:7-9). 잘 보십시오, 여러분, 노아가 그의 집안을 구원한 것은 바로 방주로 들어가는 것을 통해서였습니다. 모든 것을 떠나서, 그는 방주로 들어갔습니다. 육신적인 인간은 ″산꼭대기가 더 안전할 걸.″하고 말했을 지도 모르지만, 노아는 하나님을 믿고 다른 그 어떤 피난처로도 발길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 뿐만 문턱을 넘은 것이 아니라 그의 아내와 아들들 그리고 며느리들도 모두 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문을 닫으셨습니다. 여러분도 이 방주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다른 사이비 방주들은 다 무시하십시오. 세상은 말합니다. ″저거 말고도 좋은 방주 많아″ 라고 말입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는 너무도 자비하셔서 그 어느 누구도 멸망시키지 않으리라는 믿음의 방주로 도피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방주입니다. 또 어떤 이들은 순결한 도덕성이라는 방주로 숨어들고, 어떤 이들은 지식의 방주에 숨어들기도 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그릇된 방주들입니다. 인간에게서 비롯된 방주들은 모두 잘못된 피난처들입니다. 여러분, 이 허황된 방주들로부터 발길을 돌리십시오. 그리고 올바른 방주로 나아오십시오. 그런데 바른 방주로 와서는 또 문지방 앞에서 딱 멈추어 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선 안됩니다. 많은 이들이 방주 앞까지 와서는 그 속을 들여다보기만 할뿐 안으로 들어올 생각은 도통 하지 않습니다. 많은 이들이 방주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는 잘 알면서, 막상 그 속으로 들어오지는 않습니다. 어서 들어오십시오. 당신과 당신의 아내, 그리고 아들들과 며느리들을 모두 데리고 나아오십시오. 주님께서는 여러분 모두를 받아주실 것입니다. 방주에 대해 들어서 아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습니다.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울면서 기도한다고 해서 안전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방주에 들어온 자들만이 안전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옛 것들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고후 5:17). 짐승들도 여기로 들어왔습니다. 숫사자와 암사자, 키가 큰 소들과 낙타, 표범 등속들이 그 우아한 목을 숙이고 방주 문을 통과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새들도 이 행렬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하늘 높이 치솟앗다가 먹이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드는 게 특기인 독수리도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기어 다니는 것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개중에는 뱀도 있었을 것입니다. 노아는 뱀을 보고는 ″물릴지도 모르겠는 걸.″하고 말했을 지도 모릅니다. 하여튼 이 뱀들도 방주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여러분, 그 어떤 죄인일지라도 모두 방주 안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방주 안으로 들어와서 변화를 받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습니다. 사자가 양 옆에 가서 눕고 표범이 어린 아이 곁에 앉아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께로 나아온 자들에게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질이 범같은 사람도 어린양 같이 순해지고, 교만한 사람은 겸손해 집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옛 것들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고후 5:17). 네 번째로 세상에 임할 심판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노아는 세상을 책망했습니다. 노아가 방주로 들어오면서도 그는 세상을 책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세상을 심판하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의의 전도자였기 때문입니다. 그가 방주로 들어오는 행동 자체가 세상을 책망하고 저주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아직도 유효합니다. 불경건한 가족들 사이에서 자라는 어린 아이가 만일 방주로 들어온다면, 이는 곧 다른 가족들을 책망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형제들이여, 세상 사람들 거개는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노아의 날들과 같이 인자의 오는 것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의 날들에 그들이 먹고 마시며, 장가가고 시집가고 하기를, 노아가 방주로 들어가던 날까지 하다가 홍수가 나서 그들을 모두 다 쓸어 버릴 때까지 그들이 알지 못하였던 것같이, 인자의 오는 것도 그러하리라』(마 24:37-39). 그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있었습니다. 신부들은 신랑 손을 잡고서 신방으로 들어가며 행복한 나날들을 꿈꾸었을 것입니다. - 그러나 바로 그날에 홍수가 닥쳐왔습니다. 혹자는 말했을 것입니다. ″여기봐, 저기 마른 땅 위에 배를 만들고 있는 멍청이가 있어!″그들은 홍수가 닥쳐오기까지 노아를 조롱했을 거입니다.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방주에 대해 이야길 해도 여러분은 계속 자기 길을 갈뿐입니다.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갈 뿐이라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거부합니다. 여기 이 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진노의 홍수가 자신들을 휩쓸러버릴 때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갈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방주를 짓는 사람을 조롱하고 있습니다. 방주에 들어가지 않는 것 자체가 바로 그를 조롱하는 행위입니다. 여기 앉은 분들 중 많은 이들이 방주로 들어가는 사람을 보고 ″미쳤어.″하고 말할 것입니다. 이는 그 옛날 사람들이 노아에게 했던 말과 동일합니다. 여러분, 미쳤을 지라도 방주로 들어가는 이들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저는 노아를 비웃지 않고 오히려 방주짓는 일을 도운 사람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노아와 함께 나무를 자르고 방주를 만들었지만, 방주로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요즘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많은 사역자들이 방주를 만드는 일은 돕지만, 정작 자신은 방주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주일 학교 교사들 중 많은 이들이 방주를 만드는데 일조하지만, 막상 자신은 방주 안으로 들어오려 하지 않습니다. 노아가 방주로 들어가던 날 아침, 방주 앞으로 나아온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늦게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방주의 문을 닫으셨습니다. 저는 여러분들 중에도 너무 늦게 방주 앞으로 뛰어나오는 사람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분명 있습니다. 이 중에 많은 이들이 죄의 찔림을 받고도 방주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리석은 처녀들처럼 이렇게 외쳐댈 것입니다.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마 25:11).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마 25:12). 엘리야를 데려간 하나님의 전차가 덜커덕 거리며 내닫는 소리를 들으면서 문을 두드릴 테지만,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이러한 진실을 보지 못하게 여러분의 눈을 가리고 있는 치는 다름 아닌 마귀입니다. 드디어 대홍수가 밀어닥칩니다. 미처 깨닫기도 전에 비가 뿌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 사이에도 그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술집은 손님으로 미어터질 지경이었고, 행복한 신부들이 신랑을 따라 신방으로 들어가고 있었으며, 세상은 환희와 즐거움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이는 인자께서 오실 때에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대홍수는 갑작스럽게 닥칩니다. 수위는 엄청나가 높아졌습니다. 불어오른 물은 방주를 아라랏산 꼭대기까지 올려놔습니다. 물은 첫날에 벌써 400피트 높이로 불어올라 온 땅을 뒤덮었습니다. 너무도 크고 끔찍한 홍수였습니다. 그런 홍수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거만한 자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삼켜버린 무서운 홍수였습니다. 이는 불의 홍수가 닥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이는 그분의 진노의 큰 날이 임하였으니 누가 감히 설 수 있으리요?』(계 16:7). 주목하십시오. 죄많은 이들이여, 어서 이 홍수로부터 도피하십시오! 『내가 너를 다루는 날에 네 마음이 견디어 낼 수 있으며 네 손이 튼튼할 수 있겠느냐?』(겔 22:14). 이 홍수가 그리스도께 닥쳤을 때 그분은 얼마나 고뇌하셨습니까? 그러나 여러분이 방주 안에 있다면, 여러분은 그런 고통을 겪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구원을 받지 않은 자라면, 여러분은 지옥으로 영원히 추방당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동정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여러분, 홍수가 닥쳐와 모든 것을 쓸어버리기 전에, 어서 그리스도께로 나아오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