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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nyyoon48
아호 해송(海松)
<계간 수필> 동인, 문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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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할 줄 안다는 것
johnnyyoon48

 


지구상에서 반성할 줄 아는 귀한 존재는 이성과 양식을 지닌 인간뿐이다. 반성(反省)이란 ‘자신이 한 말이나 행동, 또는 그로 인한 결과가 탐탁지 못함을 깨달아 불찰을 뉘우치는 행위’다. 그리하여 인간 집단은 계속 발전할 명분과 동력을 얻는다. 인간이라 하여 모두가 양식이 있고 교양을 갖추어서, 자신의 잘못을 반드시 반성한다고 볼 수는 없다. 반성하는 데 양심과 도덕성이 요구될 테니, 무엇을 깨닫는다 해도 반성을 실행하기가 쉽지는 않기에 그렇다. 그리 보면, 반성한다는 것은 행위자의 통찰과 도덕적 품성이, 일반인의 수준을 뛰어넘는 경우라야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가톨릭교회의 성사(聖事) 중에 ‘고백 성사’란 게 있다. 인간은 연약하여 잘못을 저지르기 쉽다. 소소한 죄를 저지른 사람이 추가로 비슷한 죄를 또 짓게 되면, 점차 마음이 무거워진다. 하느님 전에 면목이 없어서, 자연히 교회를 향한 발걸음도 뜸해지기 마련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교회는 ‘고백(告白)’이라는 해결책을 그 운영 방침 속에 마련해 두었다. 잘못의 누적으로 면구스러워하는 신도의 고백을 듣고, 회개로 이끌어서, 그를 공동체에 복귀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 제도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보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더 애틋해하시는’ 하느님의 사랑과 긍휼이 담긴 제도다. 그래서, 한 죄인이 자기 잘못을 사제에게 털어놓고 하느님의 용서를 구하는 내밀하고 개인적인 일에, 고백성사(告白聖事)라는 멋진 이름을 붙인 것 같다. 죽음이 임박한 환자에게 이승에서 베푸는 마지막 회개 기회인 ‘종부성사(終傅聖事)’라는 명칭도 있다.

 

한국의 정정(政情)이 꽤 불안하고 요란스럽게 돌아간다. 우리 민족이 짧은 기간에 선진국 수준의 경제와 민주주의를 일으킨 것은 기적 같은 일로서, 세계의 칭송과 질시의 대상이었다. 이제 한시름 놓았다 싶은 때, 검찰 집단이 왕년의 군부가 차지했던 월권적 헤게모니를 차지해 조자룡 헌 칼 휘두르듯 비리를 저지르며, 국민을 겁박하는 일 또한 잦아졌다. 국민이 삼십여 년의 피어린 투쟁으로 쌓아 올린 ‘민주주의 금자탑’을 검사 정권이 명분도 없이 허물어뜨리는 현실을 보니 허탈감이 밀려온다. ‘옳고 그름’을 재단할 가치 기준은 뒤집히고, 사회의 기강은 무너졌다. 나라의 지휘부를 이룬 그 잘난 인간들이 억지스러운 말과 행동을 통해 공든 탑을 열심히 부수고 있다. 의식 있는 국민의 걱정과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그리된 근본적 원인을 살펴보자. 검사들이 국가 기구의 요지마다 포진하고 무속인들의 코치를 받아 휘두르는 망나니 칼춤이 사회를 분열시키고, 헌법 정신을 공공연히 까뭉개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처음엔 검사 집단에 건 국민적 기대도 있었겠지만, 결국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그들은 ‘나는 검사니까 무슨 짓을 해도 항상 선이고, 너희는 범죄자니까 내가 내리는 벌을 마땅히 받아야 한다.’는 직업적 관행에 찌든 인간들 같다. 범죄자를 매일 상대하는 검사들이 되풀이되는 생활 속에 일반 국민을 범죄인 보듯 하는 사고와 말버릇이 생긴 것 같다. 건전한 논쟁을 통해 국정을 추진하는 상대편(반대당)을 ‘용공 이적단체’라고 몰아세운다. 당연히 여야 간 정책적 대화는 사라졌다. 입으로야 ‘자유, 정의, 민주주의’를 지껄이나, 그들의 머리나 가슴은 왜곡된 선민의식과 이유 없는 나르시시즘에 빠져, 민주정치와는 동떨어진 세계를 그리고 있음이 자주 확인되었다. 그토록 오만한 거짓말쟁이들을 지도자로 뽑은 유권자들은 차제에 확실히 깨닫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 그러잖으면 한국의 앞날은 암울할 수밖에 없다. 

 

정부든 여당이든 12. 3 불법 계엄 사태에 대한 사과나 반성은 없이, 이재명 탓하는 소리만 높히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지? 다른 나라들이 그런 한국의 정세를 보며 비난하거나 비아냥거린다. 달러 대비 원화의 환율이 치솟고 외환 보유액이 빠르게 줄어든다. 그러고 보면, 한국호의 운행이 상식의 길을 벗어나 갈지자걸음을 한 지도 2년이 넘었다. 그간 잘한 게 뭐 하나라도 있어야지….쯧쯧.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대통령의 책임이 가장 크고, 참모진과 여당의 책임도 크며, 그들을 뽑은 유권자들도 반성해야 마땅하다. 그런 짓에 계속 장단을 맞추던 한국의 언론계나 종교계의 책임 또한 간과할 수 없다. 그런 책임 주체들을 모두 제쳐놓고 “이재명 때문”이라고 떠드는 건, 잘못한 자가 반성은 하지 않고, 책임을 남에게 덮어씌우는 조잡한 술책이다.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반, 대통령이 헌법상의 요건조차 갖추지 못한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민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었다. 무장한 계엄군을 동원하여 국회를 유린했으며, 북한을 도발해 국지전을 일으킬 구상을 실행하던 진상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국회의 권능을 보호하려고 영하의 밤에 쫓아 나온 열혈 시민들, 야당 의원들과 보좌진의 기민한 움직임이, 쿠데타를 멈춰 세웠다. 우리 민족은 동학 농민혁명(1894), 3.1 독립운동(1919), 4.19 혁명(1960), 5.18 광주 항쟁(1980), 6.10 서울 시민 궐기(1987)로 이어진 과정에 죽고 다치면서 깨우치고 단련된 민족이다. 그렇게 37년 전에 끝난 줄 알았던 ‘민주화 대장정’을 ‘친일적 검사 정권’이 무위로 돌리려 했다. 21세기에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던 무식하고 무도한 짓거리였다. 그러고선 한 마디 반성조차 없이 ‘친북세력 척결’이란 궤변만을 늘어놓고 있다. ‘국힘당’에 백여 명의 국회의원이 있지만, 이번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한 사람이 없음은 국민을 얕잡아보기 때문이요, 그게 바로 오만한 검사 정권의 현주소다. 

 

윤석열은 실패한 쿠데타의 수괴(首魁)로 전락했다. 국민이 직접 선출한 국회의원들, 그 의원들이 이루는 국회는 모두 헌법기관이다. 그 헌법기관을 총칼로 없애려 한 자, 정권욕에 불타서 전쟁을 촉발하려 한 자는 헌법상 내우(內憂) 외환(外患)의 죄를 모두 범한 반란범이다. 그 수괴는 당장 체포하고 처벌해야 반란이 중단되고 나라가 안정화된다. 고름 주머니는 칼로 째고 약을 발라야 새살이 돋는다. 병역 의무는 교묘히 회피한 위선자들이 국민의 군대를 휘몰아 민주주의 질서를 깨부수는 데는 그리도 열성적이고 치밀한 모습을 보는 심정이 착잡하다. 각료나 여당 인사들이 입에 올리는, “질서 있는 퇴진” 운운도 모순된 말로서 어불성설이다. 이런 변란를 누가 일으켰기에 그따위 한가한 소릴 입에 담는가. 그런 말을 하는 자들은 필경 내란의 주요 임무 종사자거나, 비굴한 방조자가 아닌가. 현행의 검찰 제도와 국힘당은, 그들이 저지른 반국가적 행위로 인해 이미 명분과 권위를 잃었고, 해체해야 할 수준에 다다른 것 같다. 우리는 ‘민주주의 금자탑’을 부숴 놓고도 반성할 줄 모르는 무도한 집단의 최후 모습을 보고 있다 (202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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