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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호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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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호 해송(海松)
<계간 수필> 동인, 문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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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23
김구와 <나의 소원>

                                                                            

김구(1876-1949)의 호는 백범(白凡)이고 본명은 창수(昌洙)다. 감옥살이하며 “왜놈의 호적부에 올라 더럽혀진 이름은 쓰기 싫다”며 구(龜)로 바꾸고, 후일 다시 구(九)라고 고쳤다. 인조, 효종 대의 왕실 인척이요 정승이던 김자점이 그의 방계 조로서 양반의 혈통이었으나, 김자점 부자가 효종의 북벌계획을 누설하여 일족이 멸문의 화를 입었다. 이때 그의 11대조가 솔가해 신분을 감춘 채 해주 변두리에 흘러드니, 그로부터 빈한한 상민으로 천대받던 집안에서 나고 자랐다.

그는 한학을 잠시 수학한 외에 신식 교육은 받지 못했다. 18세에 동학혁명의 소년 접주(接主)로 구국 활동에 앞선 이래 70 평생을 조국광복의 일념으로 심신을 불사른 독립운동계의 거두였다. 나라가 일제의 병탄을 당해 민족의 제단에 몸 바친 의사. 열사가 많았지만, 그 중에도 김구는 독립투쟁의 총수요 상징적 인물이었다. 이는 ‘조국독립’을 자신의 생명, 가치관으로 삼고, 일생을 오롯이 바친 그의 영웅적 행적이 있었기에 그럴 것이다.

김구는 드물게 보는 큰 덕과 높은 인품을 갖춘 인물이었다. 독립투쟁의 험난한 과정에도 계산적 술수보다는 정경대도를 걸었음은 범인이 흉내낼 수조차 없었다.

시인 이은상은, “이승만은 정치가로서의 독립운동자였으며, 현실을 방편으로 한 나머지 현실에 안주하다가 불행한 최후를 맞았고, 김구는 혁명가로서의 독립운동자였으며 원칙만 부르짖고 현실을 무시하다가 불행한 최후를 맞았다.”라며 두 위인의 특징을 비교하였다.

<나의 소원>은 김구의 자서전 <백범일지. 1947> 뒤편에 실린 10여 쪽의 논설문이다. 일제 탄압에서 해방된 조국의 미래상에 대한 그의 희망과 독립운동 과정에 체득한 정치철학을 녹인 글로서, 세 부문으로 나뉜다.

첫째, ‘민족국가’에서 우리는 백범의 우렁찬 목소리에 실린 애국 단심과 만난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독립이요.’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요’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셋째 번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 높여,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요’ 하고 대답할 것이다.”라고 적었다.

둘째, ‘정치이념’은 언론자유를 바탕으로 한 자유민주주의, 의회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소망스럽게 생각하여, 어떠한 상황에도 독재정치가 출현하지 않도록 조심할 것을 강조했다. 백범은 그 이후 반세기에 걸쳐 한국에서 지속된 독재정치를 예견이나 한 듯 간곡히 당부하였다.

셋째,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에서, 그는 우리가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닌 꽃을 심는 자유를 지니고, 가족과 이웃과 나라에 주기 위해 부지런히 일하며, 남의 것을 모방하기보다 새로운 창조의 근원이 되는 최고문화를 이룩해 세계발전에 기여하자”고 제시했다.

그래서 “인의와 화합으로 사랑이 넘치는 사회, 즉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모범이 되는 문화 대국을 건설하자”고 주장했다.

김구는 ‘국제정세에 어두운 사람’, ‘비현실적 테러리스트’라며 폄훼하는 테크노크라트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이들도 <나의 소원>을 읽으면, 말뿐 아니라 그가 온몸으로 행한 겨레 사랑의 열정이 전해와 가슴 아린 감동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해방 직후 미군정의 과도기에 새 나라 건설의 청사진으로 “미래세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민족문화의 창달을 통해 세계의 모범국으로 나아가자”고 외친 그의 목소리는 신선하고 돋보인다.

당시에도 국내외에서 신학문을 닦은 이들은 많았지만, 그만한 지도철학을 펼친 이는 없었다. 거칠고 투박하며, 오랜 반일투쟁의 삶이 주는 살벌한 이미지와는 다른 느낌의 이 글을 읽으면, 백범이 침략자의 혹독한 시련을 받은 사람 같지가 않다.

그래서 뒤틀리고 좁아진 심사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심 잡히고 따뜻하며 활달한 뜻을 풀어낼 넉넉한 마음을 가졌음을 알게 한다. 김구는 실로 ‘뻘밭에 핀 한송이 연꽃’이었다.

이 글이 나온 지 70년이 지났지만, 그때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으로 허리가 잘린 한반도는 아직도 그대로다. 북쪽은 인민을 극도로 억압하는 ‘3대 세습의 공산왕조’를 지속하고 있으며, 남쪽은 어려움을 이기고 자본주의 경제와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정착시켰다.

한국의 생산품이 세계를 누비며, 한국의 문화, 예술이 ‘한류’라는 이름으로 세계를 들썩이고 있다. 이러한 때 백범의 투박한 모습이 ‘한류’의 물결 위로 비쳐 보이고, 애국애족을 외치던 그의 우렁찬 목소리가 귓전을 때림은 어인 일인가?

김구는 남북한에서 동시에 존경받는 유일한 인물이다. 그것은 1945년 시작된 분단체제가 통일을 향해서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데 그 원인이 있다고 할 것이다.

<나의 소원>은 현학적 군더더기가 없는 간명하고 높은 품격의 정치논설로서, 진실하고 영웅적인 백범의 행적이 뒷받침하니 어떤 이의 글보다 울림이 크다. 평생 ‘생각과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려고 애쓴’ 백범의 도덕성 높은 인품은 거짓과 불신이 판치는 오늘날, 후세대에 귀감이 되어 힘찬 감동을 준다. 애국애족을 입에 담는 자 그 누구든, 겨레의 큰 스승 백범 김구란 거울에 자신을 비춰 볼 일이다.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蹟 遂作後人程 (눈덮인 들판길 걸어갈 때, 함부로 걷지 말라. 오늘 내가 찍는 발자국은 뒤에 오는 이의 이정표가 되리니.)

백범이 즐겨 쓰던 휴정선사의 이 시는 그의 마음가짐을 여실히 드러내어 오늘도 추모의 정을 새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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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2
‘검수완박’ 소동 속의 언론

 

최근의 정국은 ‘검수완박’이란 신조어가 압도했다. 검찰이 독점하던 직접 수사권, 기소권 중에서 직접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여 경찰, 공수처, 중수처 등에 권한을 나눈다는 취지의 법률 개정안이 국회 의결을 거쳐 5월 3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기고만장한 신임 검사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마주해 욕보이던 장면에 대통령을 직접 뽑은 많은 국민은 모욕감을 느끼며 몸을 떨었다. 그 씁쓸한 기억은 오래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지난 5년 동안 일반인들의 범죄에 대한 기소율이 40%인데, 판.검사들의 범죄에 대한 기소율은 0.13%다.”라는 MBC 보도를 보았다. 검찰의 ‘제식구 봐주기’를 새삼 확인하게 된다. 검찰의 공소권이 남용되면서 사회 정의는 크게 훼손되었다. 그동안 사회정화라는 미명 하에, 반공의 기치 아래 얼마나 많은 시민이 죽고, 다치고, 인권을 유린당했던가.

검찰이 자신들의 사사로운 권세와 이익을 지키며 권력자의 수족 노릇을 하는 데는 충실했지만, 정작 시민을 보호하는 데는 자주 실패했다. 견제받지 않은 권력은 올바른 길로 가지 못한다. 스스로 부패할 뿐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군부통치를 종식했는데 그간 통치자 그룹에 기생하여 실권을 주물렀던 사법 일꾼들까지 민주화 행진에 동참시키지는 못했다. 그들은 법률지식과 준엄한 사법체계를 앞세워 국민 위에 행세하는 귀족처럼, 때로는 상전인 양 군림했다. 민주화로 시민이 주인이 되는 사회를 이룬 듯했지만 사법 일꾼들은 어떤 비리를 저질러도 추궁 당하지 않았으니, 그들은 시민과 학생들이 목숨 바쳐 쟁취한 민주정치를 공허하게 만들었다.

이번 <검찰청법>, <형사소송법>의 개정이 한국 민주주의를 꽃피우는 마침표가 되길 빈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다. 1776년 미국의 건국 정신에서, 1789년 프랑스의 시민혁명 정신에서,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헌법에서 천명된 바,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공화국을 이루려는 것은 인류의 공통된 염원이다.

임금도, 판.검사도, 장군도, 부자도 특권자일 수 없는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지향하는 개념이다. 한국은 건국 후 70년이 지난 이제야 민주 공화정을 확립하는 출발점에 서게 된 셈이다.

이러한 역사적 변환기에 ‘사회의 까칠한 감시자’, ‘목탁의 역할’을 해야 할 언론은 4부(입법, 사법, 행정, 언론)의 한 축이 되어 기득권을 누리기에 바쁘고, 그들이 겸업한 TV 방송의 정기적 인허가 갱신에 유리한 조건을 기대하는지 늘 보수쪽으로 기울었다.

그들은 지난 정부 내내 진보 성향의 후보자를 ‘위험한 인물’로 부각하거나 ‘부패한 인물’로 여론몰이 하는데 앞장을 섰으니, 결과적으로 윤석열 후보의 승리에 이바지했다. 그런 언론의 논조는 이득을 탐하는 경제인들의 모습을 보는 듯해서 믿음성이 없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물류대란으로 원자재. 식품 등의 가격이 폭등하고, 정상적인 유통질서도 마비되었다. 또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서방국가들이 한 편이 되고, 러시아, 벨라루스, 중국, 북한 등이 반대편이 된 불길한 전쟁이 지속된다.

 이미 자유를 맛본 우크라이나 국민이 러시아에 완강히 대항하고 있으며, 이에 서방세계도 우크라이나를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현재 세계의 어느 나라도 코로나19로 인한 경제활동의 곤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불편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발족하는 윤석열 정권이다. 청와대의 집무실과 충실한 안보시설을 시답잖은 핑계로 다 버리고, 수천억 원이 새로 들어갈 ‘대통령 근무처와 안보 시설의 연쇄 이전’에 목을 매는 그들의 태도가 비길 데 없이 사치스럽다. 육참총장 공관을 25억 원을 들여 수리하려다, 외교부 공관을 본 후에 마음을 바꾸었다.

70여 미터 높이의 언덕 위 숲에 넓게 자리한 외교부 공관은 주변환경과 시설이 꽤 좋다. 그곳에 간 김 씨가 정 장관의 부인에게 “내가 안방을 보려 하니 밖에 좀 나가 있어라.”라고 했고, 본 후엔 마음에 들었던지 “앞마당의 큰 나무가 남산을 바라보는 시야를 가린다. 곧 베어내야겠다”라고 ‘영적(?) 인물’다운 지시를 했다는데…

이렇게 무례한 행위가 차마 믿기지 않거니와, 그런 보도를 반박하거나 해명하는데 열의가 별로 없는 걸 보면 실제로 있었던 일인가도 싶다.

외교부 공관을 그렇게 마련한 사람은 박정희 대통령이다. 그는 경제를 일으킨 공로가 컸음에도 청와대 변기통 수조에 벽돌을 넣어 수돗물을 아끼려 했다. 말년의 유신 독재는 미웠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절약을 솔선한 그분의 품성이 사후에 알려졌다. 박 대통령의 근검절약 정신, 자강불식(自彊不息)하던 생활 자세가 신임 집권자들의 경박하고 낭비적인 태도와 날카롭게 대비됨은 피할 수 없다.

0.7%의 차이로 간신히 권병을 거머쥔 그들인데 언행은 점령군 행세와 같으니 봐주기가 좀 거식하다. 외교부 장관을 내보내고 그곳을 차지한다면 높은 언덕과 숲에 가려서 자연히 국민의 눈길로부터 수백 미터나 떨어진다. 그것이 “국민과 동떨어진 구중궁궐 같은 청와대에는 발도 딛지 않겠다.”라던 이상한 선거공약에 충실한 처신인지?

 그대들이 선거 때 뱉은 말은 취임하기도 전에 벌써 여러 번 바뀌었고 엄청난 국고를 쏟아붓게 될 일을 느닷없이 벌이면서 국민께 미안해하지도 않는 것은 참 낯선 모습이다.

언론사가 많다고 해도 이런 내막을 조리있게 따지고 평가하여 국민께 알리고 ‘흥청망청한 집권자들’을 따끔하게 깨우치는 언론은 보기 어려워 서글프다. 말로만 ‘사회의 목탁’이니 뭐니 하지만 제 역할은 팽개치고 승리를 자축하는 집권세력의 술에 같이 취해서 돌아가는 장사꾼들 같다.

 그럼 사회의 소금 역할은 누가 하나? 소금이 짠맛을 잃었으니… 몽롱한 정신을 일깨울 목탁 소리는 또 어디서 들을꼬? (2022.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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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07
안보시설의 연쇄 이전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이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다. 주장인즉슨, “청와대는 국민과 동떨어진 구중궁궐 같아서 제왕적 대통령이 되기에 십상이다. 한번 발 디디면 권력욕에 취해 나오기 어렵다. 그래서 청와대 일대를 이번 봄꽃이 지기 전에 시민들께 돌려드려서 가족 나들이 장소로, 신혼부부들의 웨딩 촬영지로… ” 라고 한국의 안보적 입장에 썩 어울리지 않는 낭만적 사유를 늘어놓았다.

세종로 정부청사나 외교부 청사는 전쟁 시 대통령의 안전 확보가 어렵다는 평이다. 그러더니 국방부 청사가 거론되었다. “청와대는 국방부 청사로 들어가고, 국방부는 그 옆의 합참 청사로 가고, 합참은 남태령에 있는 수방사 시설로 옮기게 하여, 5월 9일까지 이전을 모두 마칠 계획이다.”라고 발표했다.

또 “용산의 미8군을 내보내어 그곳에 시민 공원을 조성하고, 그 한쪽에 관저를 지으면 대통령이 시민들과 접촉하기도 쉬워지며, 가족 나들이 장소나 혹은 결혼식 장소로 국민들께 돌려드린다.”라는 구상이라고 했다.

 미군 측은 “옮겨갈 곳의 준비가 안 된 관계로 언제 나갈지 모르겠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미군이 나간다 해도 심하게 오염된 토양을 처리하려면 5년 이상 7년여의 세월이 소요된다.”라는 환경부의 의견도 있었다.

‘안보시설의 연쇄 이전’은 대선이 끝난 뒤에 나온 얘기다. 세종로 청사의 안전 문제로 고민하던 중 어느 국방부 출입기자가 “그럼 국방부로 들어가면 되겠네.”라고 의견을 냈다. 3월 20일 국방부 일대의 꽤 과장된 조감도 앞에서 당선인이 여긴 대통령이 쓰고, 저긴 국방부가 쓰면 되고, 이쪽 벙커가… 어떻고 등등 군사기밀을 언론에 브리핑했다. 당선인과 인수위원 중에 군 복무를 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군사보안 따위는 관심 밖이었다. 이적(利敵) 행위를 TV로 보는 심정은 착잡했다.

 전직 합참의장 11인이 “국방부와 합참의 연쇄 이전은 안보적 관점에서 위험성이 높다. 국민 여론이 그렇게 모아지면 그때 자세한 계획을 세워서 추진해도 된다.”라며 급한 이전에 완곡한 반대를 했다.

다음 날, 전 국방부 장관 이상훈이 ‘예비역 장성 천 명 일동’이란 거창한(?) 명의로 “우리는 대통령 집무실의 국방부 이전을 찬성한다. 군사시설의 이전이 안보 불안을 일으킨다는 건 거짓말이다.”라고 강변했다. 방위산업 관련 비리로 형을 살고 나온 자라서 그런지 옥살이에 대한 감정적 단말마처럼 들렸다. 장군 천 명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으니 그의 말은 신뢰성도 보잘것 없었다.

여기서 걱정되는 몇 가지를 짚어본다.

 첫째, 김용휴 장군을 비롯한 몇 명의 예비역 중장님들, 그대들은 한국의 전쟁 지휘부를 달포 안에 다 뜯어내어, 옮기는 것에 안보적 문제가 없다는 말인가? 안보 시스템을 유례없이 흔들고 수천 억원의 혈세를 낭비하면서 그렇게 옮기는 이유가 무엇인가? 군대 ‘군’자(字)도 모르는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고 그러는가? 아니면, 북녘 김씨 임금을 편들려는 것인가?

둘째, 청와대 본관이 보기에는 장려해도 사용하기엔 불편하다. 문 대통령은 외빈 영접, 고위직 임명 등의 행사 땐 본관을 이용하나, 통상 비서동의 한 편에서 사무를 본다. 아방궁이니 구중궁궐이니 하는 표현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문 정부를 헐뜯으려는 말장난이다. 안보는 매끄러운 말로 하는 게 아니라 몸을 바쳐 실행하는 과업이다.

 그러니 안보 관련 발언에는 말장난을 섞지 마라. 군사(軍事)에 허언은 용납될 수 없다. 정권 재창출에는 실패했지만 지난 5년간 첨단 군사장비를 적극적으로 개발하여 국군의 전쟁수행 능력을 높이고 북.중.일의 침략 야욕에 쐐기를 박은 문 정부의 실제적인 노력은 평가할 만하다.

 셋째, 삼각산 아래 남향한 경복궁(청와대)은 6백 년 이상 한반도의 집권자가 차지한 상징적인 터전이다. 용산은 병정들이 총칼을 들고 진을 친 곳으로서 문화의 급이 다르므로 청와대 자리와 비교할 대상은 못 된다. 누대로 살던 안채를 버린 주인이 행랑아범이 사는 바깥채로 옮기겠다고 그 소란이니… 한반도 안에 그만큼 오랜 세월 통치자가 권위있게 자리한 곳, 통치문화를 꽃피운 터전이 어디 있다고.

 더구나 국방부 본청은 길에서 140여 미터나 떨어져 있고, 18m쯤 높이의 가파르고 둥그스름한 언덕을 올라가야 만난다. 시민들에겐 더 멀게 느껴지고, 길에서 볼 수도 없다. 즉 시민이 접근하기 어려운 지형이다. 어쩌면, 그런 약점을 감추려고 공원이나 웨딩 이야기를 자꾸 곁들이는지도.

넷째, 보수논객 조갑제가, 또 동아일보의 사설도 “윤 당선인이 자꾸 ‘청와대 터를 국민께 돌려드리겠다.’라고 말한다. 누가 돌려달라고 했나? 그 혼자의 말이다.”라고 썼다. ‘영적 인물’을 자처하는 김씨가 졸라대던가? 건진 스승이 “용산의 언덕에 자리 잡으면 승천하는 용의 운기를 누릴 것이다.”라고 꾀던가? 그런 이들의 부추김에 나라의 안보체계가 흔들리고 까발려지는 것이 경망스럽다.

 청와대 이전에 국민 58%가 반대하고 33%가 찬성했다. 당선인이 “나는 반대여론 따윈 개의치 않는다.”라고 하던데 민주국가의 지도자가 국민을 상대로 그같이 거칠고 무례하게 말하는 자를 보지 못했다. 국민의 안위에 직결된 큰 사업을 공론화 과정도 없이 제 고집만으로 밀어붙이면서 그게 제왕적 사고의 전형(典型)인 줄도 모르는가 보다.

 “통일될 때까지 군 복무 미필자는 선출 고위직에 나설 수 없다.”라는 법률규정이라도 마련한다면 두 손 들어 환영하겠지만. (2022.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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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17
대통령 선거를 본 느낌

 

3월 9일 한국에 제 20대 대선이 있었다. 대체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 힘’ 후보의 양강 대결로 시종한 선거였다. 안철수 후보가 “끝까지 완주한다.”라고 공언했으나, 그는 투표 3일 전에 시시한 이유를 대며 윤 후보에 귀순했다. 이름 대로 또 ‘철수’를 한 것이다.

사실 그가 당선될 것이라고 믿은 사람은 없었다. 다음번 대선에 기대되는 소중한 국민적 자산이라고 여긴 것이다. 안철수 후보는 미니 당 후보로서의 무력감이 서러워서, 엊그제의 언약을 엎어야 할 만큼 절박한 위기에 처했던가? 아니다. 100여 명의 국회의원을 거느린 제1야당의 군집세(群集勢)가 탐이 났던 것이다.

정치는 현실의 문제를 풀어가야 하지만, 이상을 바라보며 국민과 함께 미지의 앞길을 열어가야 하는 성질이 다른 두 가지 과업을 동시에 수행한다. 그 동작이 어느 한쪽으로 쏠리면 ‘수구꼴통’ 소릴 들을 것이요, 아님 ‘빨갱이’란 억울한 악평을 덮어쓰게도 된다. 수구꼴통은 보수적 가치만을 집요하게 고수하는 고루한 부류를 비아냥대는 말이요, 빨갱이는 70여 년 전 공산도배의 기습 남침으로 수백 만의 민족이 죽고 다친 전쟁 체험이 아직도 생생한 한국에서 잘 먹혀드는 강한 표현이다.

그러나 ‘늑대 소년’의 거짓말처럼 이를 남용해서는 아니 될 말이다. 그런 표현을 남용하는 이들은 정치 현안에 대한 설득 논리가 궁하니까 감정적으로 그렇게 말한다. 그런데 ‘빨갱이가 온다 해도 우리가 정의롭고 평등한, 그래서 굳건히 단결된 사회를 유지한다면 두려울 게 없다. 상대편 후보를 쓰레기 같은 말로써 예의 없이 폄훼하는 그 자신은, 사회의 공동선의 확충을 위해 뭘 했는가를 자문해 보라.

좌니 우니 하며 극단적으로 욕하기는 쉬워도, 건전하고 포용적인 중도적 사상과 세력을 키우는 과업이 매우 어렵지만, 우리에겐 꼭 필요하다. 그래야 다가올 통일 시대를 열 명분과 힘이 생긴다. 좌우를 극단적으로 주장하여 감정만으로 만사를 도배하면 상식과 합리가 자리할 공간이 없어진다. 당신은 무슨 마음에서 남에게 그런 무식쟁이 주장을 퍼붓는가? 여러 곳에 많이 사 놓은 땅을 오래오래 내 것으로 지키기 위해서? 숨기고 싶은 탈세 문제나 세금 때문에? 학연이나 지연 때문에? 자신의 격한 성벽을 자제할 수가 없어서?

윤 후보는 0.7%의 차이로 겨우 이겼다. 그가 선거 막바지에 날마다 공약을 남발하던데, 그중 절반이라도 실행하려면 더불어민주당의 협조를 얻어야만 한다. 대통령의 행정 명령으로 시행할 작은 일을 제외하면 대부분 국회의 의결이 있어야 시행할 수 있고, 예산을 집행할 수 있다.

대통령이 아무리 검사 출신이라 해도, 이것은 그가 입버릇처럼 되뇌던 헌법적 질서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규정이다. 죄인 잡아다 놓고 취조하듯이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야당에 굽히고, 설득하고, 하나씩 주고받으면서 말로써 협의해야 하는 절차는 그가 별로 경험해보지 못한 경지의 일이다.

그의 부인이나 선거 스텝들은 지금쯤 이겼다고 희희낙락할는지 모르겠으나, 윤석열의 고생문이 활짝 열린 것을 누가 위로하리오. 선거 직후 더불어민주당의 우상호 위원장과 문 대통령이 그런 점을 짧게 언급한 보도를 보았다.

윤 후보를 당선시킨 주요 공신들이 누구일까? 첫 번째는 문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구겨진 채로 살던 윤 검사를 5계단이나 특진 시켜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을 시켰다. 문 대통령은 인사에 젬병으로서, 그의 인사는 자주 역효과를 냈다.

윤 검사는 대통령의 시정 방침에 자주 거역하였고, 그럴수록 야당의 응원을 받으면서 정부 안에 내분을 일으켰다. 조국 장관의 가족을 무참하게 파괴하면서도, 스스로는 피해자 시늉을 하며 야당의 대선 후보로까지 나아가던 과정은 온 국민이 보았다.

문 대통령이 말년에 부동산 관련한 세금 문제를 고집스럽게 처리하여, 윤 후보에게 공격 거리를 갖다 바친 것은 대통령의 자충수요 큰 실책이었다. 문 대통령이 이재명 후보를 떨어뜨린 셈이다.

두 번째 공신은 한국의 언론사들이다. 그들은 이재명 쪽의 실수를 늘 침소봉대하였고, 여론조사내용은 언제나 윤석열보다 5~10%쯤 떨어진 것으로 보도했다. 결국 윤 후보가 0.7% 앞선 것이 밝혀졌는데, 이때도 그간에 국민을 오도한 잘못을 자백한 언론사가 없다는 것은, 그런 보도가 의도한 것임을 증명하는 게 아닐까?

이런 언론이 활개치는 것은 국민에게 불행하다. 그들은 언론인이 지킬 양식과 신조를 모두 시궁창에 버린 것인가? 사법계 엘리트들이 땅투기꾼으로 변신하여 수억 원 수십억 원의 가공할 특혜를 뻔뻔스럽게 누리는 것은 흐지부지하면서, 이재명 부인이 공금 2백만 원을 잘못 처리한 점은 계속 나팔을 불어 이미지를 구기게 한 수법도 마찬가지였다. 일의 선후경중이나 가치 판단을 따질 줄도 모르는 무대포들 같았다.

언론사들이 윤 후보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려고 애쓴 것은 필경 기득권 세력으로서 서로의 약점을 덮어주며 상부상조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더불어민주당을 ‘촛불 세력’ ‘운동권 집단’이라고 빨간 명찰 붙이기에 충실했는데, 0.7%의 미세한 차이로 패배한 집단에서 “재검표하자”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 걸 보면 더불어민주당이 참 순한 사람들이구나 싶다. 세상에 이렇게 순한 빨갱이 집단도 있었던가? 만약 국힘당이 그런 처지라면 어떤 주장이 나왔을지 궁금하다.

국회의 여소야대 현상은 윤 당선인의 정치적 입장이 어렵다는 것을 말한다. 선거 막판에 본 것처럼 그가 무례하고 거친 언사를 남발한다면 국정은 당장 마비되기 십상이다. 전임 박근혜, 문재인처럼 윤 당선인도 심한 눌변이다. 그러니까 더욱더 거대 야당에 자신을 낮추고 인내하면서 풀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국을 사랑하고 염려하는 마음에서, 윤 당선인이 치적을 남기기를 빈다. (2022.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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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17
믿기지가 않는 빅 뉴스들

 

요즘 내 눈과 귀를 사로잡는, 그러나 믿기지 않는 뉴스가 둘 있다. 관심이 집중되는 뉴스가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한국인의 피를 물려받은 사람이라면 공통적 관심사가 ‘베이징 겨울 올림픽’, ‘한국의 대통령 선거 상황’이 아닐까 싶다.

첫 번째는 베이징 겨울 올림픽 관련한 뉴스다.

일본, 한국, 중국은 여름 올림픽과 겨울 올림픽을 모두 개최한 영예를 차지했다. 하지만, 그것도 올림픽 정신과 규칙이 지켜져야 개최국으로서 영예를 얻을 것이다. 세계적 대회를 개최하며 손님으로 찾아온 선수들을 분통이 터지게 하고, 적을 무찌르는 것처럼 추태를 피워서야 올림픽이라 할 수도 없다.

공산 중국이 썩은 돈 잔치를 벌이며 올림픽 게임을 주무르는 것을 본다. 웃기는 사람들이다. 이럴 바에야 올림픽을 없애는 게 낫겠다. ‘세계 선수권 대회’가 얼마든지 스포츠 선수들의 기량을 매길 수 있을 테니까.

2월 7일, 남자 1,000m 쇼트트랙 준결승 1조 경기에 1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한 한국 선수 황대헌은 네 바퀴를 남긴 상황에서 안쪽으로 파고들어 중국 선수 2명을 추월했다. 황 선수가 중국 선수를 막거나 건드리지도 않았다. 그들은 기습적으로 파고든 황 선수를 막으려다가 자기들끼리 부딪혔는데, 심판은 황 선수가 중국 선수들을 건드린 것으로 오판(?)하여 황 선수를 탈락시켰다. 결국 중국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하게 되었다.

2조에서 뛰던 한국의 이준서 선수도 헝가리의 산도르 선수에 이어 두 번째로 결승선에 들어왔다. 그는 경기 중에 안쪽으로 파고들어 추월했는데, 그때 헝가리의 산도르 선수와 중국의 우다징이 서로 부딪치면서 넘어졌다. 심판은 이준서(2위)와 산도르(1위)를 탈락시켜 중국 선수가 어부지리로 메달을 거머쥐게 했다.

한국 선수들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독일 선수 등이 유례가 없는 지적으로 탈락당했으며, 네덜란드 TV 특파원은 생방송 보도 중에 보안요원에 의해 쫓겨나는 장면을 온 세계의 시청자들이 보았다. 그러니까 폭설에 성화 불도 꺼트렸지…

한국의 20~30대 젊은 층의 여론이 급격하게 반중으로 기울었다. 대선 후보들도 모두 한목소리로 분통을 터뜨리며 반중 정서에 동조하였으니, 주한 중국 대사나 환구시보 등이 급기야 교활한 논조로 “황 선수가 다음번 경기에서 금메달 딴 것을 정중히 축하”했는데, 글쎄 그런 잔꾀로 눙치기엔 너무 나간 것 같다.

두 번째 빅 뉴스는 한국 대통령 선거와 관련한 이야기다.

한국은 흔치 않은 다종교 국가다. 타인이 신앙하는 종교를 존중하는 사회이므로, 종교 간의 마찰이나 싸움도 거의 없다. 불교, 가톨릭, 개신교 등 사회적으로 공인된 큰 종교들이 서로를 인정하고 때로는 사회 문제에 함께 협력도 한다.

불교가 한국에 들어온 지는 어언 1,600여 년이나 되어 우리 민족의 삶과 문화의 형성에 바탕이 되었다. 고귀한 가르침이라 여겨 수백 명의 목숨을 기꺼이 바쳐가며 받아들인 가톨릭은 어언 250여 년이요, 개신교는 약 140년의 역사 속에 교세를 급격히 확장했다.

한국의 기독교는 들어온 역사가 짧은 만큼 활기가 대단하다. 유럽의 나라들에는 기독교의 껍질만 남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한국의 기독교는 아직도 젊고 힘있는 종교다. 때로 어떤 지도자가 과격한 선동을 하여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대체적인 신앙 자세가 신선하고 적극적이다.

최근에 폭로되고 있는 김건희 씨의 수백 번에 걸친 통화 내용이 흥미롭다기보다는 나라가 걱정된다. 그녀는 은밀한 속삭임이 폭로될 줄은 몰랐던지, 위험스러운 생각을 겁도 없이 주절거렸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으로 현직 대통령이 탄핵되어 4년의 감옥살이를 한 것이 엊그제 일인데, 김 씨는 자신이 대선 주자 윤석열의 조종자임을 자랑스럽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간 전개된 일들과 그녀의 녹취록을 대조해보면 거의 맞아떨어지는 얘기다. 실로 섬짓하다.

“우리 남편은 내가 챙겨줘야지 뭐라도 할 수 있는 바보다.” “캠프를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은 거 아니에요. 우리 친오빠라든가 몇 명 있어요. 여기서 지시하면 다 캠프를 조직하니까…” “미투 터지는 것이 다 돈을 안 챙겨주니까 터지는 거야…” “내가 정권 잡으면 거기(모 언론사)는 무사하지 못할 거야. 권력이라는 게 잡으면 우리가 안 시켜도 경찰들이 알아서 입건해요…” “청와대에 들어가면 영빈관을 옮겨야 된다고 OO 대사가 말하더라.” 등등. 윤석열 후보는 김건희 씨가 조종하고, 김 씨는 건진 법사 전 모 씨, 무정 스님 등 무속인들이 컨트롤하고……

한국의 기독인들이 전투적으로 신앙 활동을 하는 것을 익히 본다. 지구 끝까지 전교한다면서 극성 떨더니 아프가니스탄에서 단체로 붙잡혔고, 아프리카에서도 말썽을 일으켰다. 어쩌면 이제 곧 무속인들이 나서서 한국을 이끌어갈 판국인데, 이거야말로 행동으로 막아야 할 사안이 아닌가.

국가 사회를 걱정하는 지성인이라면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지 않나? 수많은 언론사는 왜 아무 말이 없는가? 온통 검사들로 구성된 ‘국민의힘’이 집권하면 보복할 것이라 겁나는가? 그러니까 한국의 언론이 존경받지 못하는가 보다. 이게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거늘, 왜 눈을 내리감고 입을 다무는지? 김 씨와 짬짜미하기로 약속이라도 했었나? 도무지 믿기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어, 영 개운치가 않다. (202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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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03
동파(東坡)의 ‘헛소리’

 

송(宋)의 대문호 동파 소식(蘇軾 1036~1101)은 사천성 미산(眉山) 출신으로 부친 소순(蘇洵), 아우 소철(蘇轍)과 함께 ‘당송 8대 문장가’에 꼽힌 인물이다. 그는 정치적 소신이 뚜렷했으며 바른 소리 잘하는 곧은 천성 때문에 자주 귀양지를 전전해야 했다. 철학성 높은 명문 적벽부(赤壁賦)도 당시의 세도 재상 왕안석이 추진하던 개혁 신법을 반대하다가 쫓겨나서, 양자강 중류 황주 유배처에 머물 때 지은 글이다.

그의 기질은 천성적인 자유인이었으며 항주, 밀주, 형주, 서주에 태수로 일하던 때도 낮은 자세로 백성들에 다가가 어려운 사정을 보살폈다고 전한다. 그는 왕안석의 “신법과 그 추진 방식이 너무나 과격하여, 결국 백성들의 삶이 피폐하게 되고 말 것”이라는 소신을 극력 주장하였다. 곧은 성품을 굽히지 않고 신념에 충실하던 동파는 말년에도 예부상서 직에서 쫓겨나 남단의 해남도에서 7년의 유배를 살았다.

그가 백성들의 어려움을 한결같이 보살핀 것은 선한 목민관의 마음에서요, 파란만장한 삶을 녹여낸 빛나는 시문을 가는 곳마다 뽑아낸 것은 그의 천재적 문재(文才)였으니, 문학에서만은 현실의 억압을 벗고 훨훨 나르듯 재주를 펼쳤다. 그의 문장은 구질구질하지 않고, 읽는 이로 하여금 시원한 바람 소리를 듣게 한다.

“강과 산, 달과 구름은 본래 임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요, 그것을 벗하여 즐길 마음의 여유를 가진 사람의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내가 지금 귀양살이하는 처지라서 많은 것을 박탈당하고 있지만, 황제도 내가 벗해 즐기는 “강과 산, 달과 구름과 바람 소리’만은 뺏어갈 수 없다”라는 마음을 담은 말인 듯하다.

그의 모친이 <후한서 범방전(范滂傳)>을 읽어주던 열 살 무렵이었다. 범방이라는 충신이 공평무사하게 공무를 수행했지만, 권력자의 미움을 사서 사형을 당하게 되는 구절이었다. 범방이 모친께 하직을 고했다. “어머님, 소자가 효를 다하지 못하고 황천의 아버님께로 먼저 갑니다.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범방의)모친 왈, “한 인간이 천고에 이름을 남기고, 또한 오래 부귀를 누리는 것이 어찌 둘 다 가능하리오. 너는 네 이상(理想)에 목숨을 바치는 것이니, 어미는 너를 지지하느니라.”

이에 어린 동파가 그의 모친께, “어머님, 저도 크면 범방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동파의)모친 왈, “네가 범방이 될 수 있다면, 나 어찌 범방의 어미가 될 수 없겠는가!?”

어린 소식과 어머니가 나눈 가슴 뭉클한 이 대화는 그의 일생을 꿰는 신조요 철학이 태동(胎動)하던 장면을 보여준다. 소식이 단순히 글을 매끄럽게 짓는 재주 하나만으로 천 년 세월 동안 기림을 받았을 리가 없다. 정의를 추구하는 그의 곧은 신념과 용기, 힘없는 백성을 감싸는 긍휼이 그가 즐겨 노래하던 대자연의 티 없는 아름다움과 어우러져서 세인의 심금을 울리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동파는 과주에 유배를 살던 때 불교에 심취하였다. 인근 금산사의 주지 불인(佛印) 대사와는 글을 주고받을 정도로 친한 벗이 되었다. 그는 불인에게 불도를 배워서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세상에 대한 욕망이나 불만도 삭일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하나의 영감이 떠오른 동파는 팔풍취부동(八風吹不動)이란 찬불게(讚佛偈)를 지었다.

“자비의 백호(白毫) 광명으로 만물을 비추시는 부처님께 절하며 뵙게 되네/

팔풍이 불어와도 추호의 흔들림 없이/ 황금색 좌대 위에 단정히 앉아 계신 이여.”

(*백호 : 부처의 두 눈썹 사이에 있는 희고 빛나는 가는 터럭. 이 광명이 무량세계를 비춘다고 함. *팔풍 : 인간 내면에 있는 여덟 가지의 욕망과 감정이 일으키는 소용돌이)

소식은 불인에 칭찬 들을 기대로, 사동으로 하여 그 시를 전했다. 불인이 읽은 후 “헛소리”라는 짧은 평을 적어 보냈다. 이를 받은 동파는 섭섭하고 화가 나서 강을 건너가 불쾌한 기분을 잔뜩 쏟아놓았다. 듣고 있던 불인이 껄껄 웃은 후, “팔풍의 모진 바람 불어와도 흔들리지 않는다더니, ‘헛소리’라는 한 마디를 못 참아 이리도 급히 오셨소? 쯧쯧쯧… 그럼, ‘팔풍취부동’이라고 쓴 이는 누구이며, ‘헛소리’라는 한 마디에 방방 뛰는 이는 또 누구인고?”하고 점잖게 꾸짖었다.

빼어난 시문을 휘날리던 천하 문장 소동파도 가볍게 놀림감이 되고 얼굴을 붉히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초보 불자 동파가 대자대비한 부처님께 잘 보이려고 발돋움하는 모습을 본다. 울고 웃는 인간미의 주인공 동파의 ‘헛소리’를 듣는 기분이 그다지 싫지 않은 건 어쩐 일일까.

동파의 묘비명에는 그가 자식들에게 주었다는 유언이 새겨져 있다. “나는 일생 추호도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다. 그래서 죽은 다음 지옥에 떨어질 리도 없을 터이니, 울며불며 통곡하지는 말아라!” 일생 행적으로 보건대 그의 유언은 헛소리를 섞지 않은 말일 듯싶다.

3년째 지속되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세상이 온통 죽음의 그림자로 덮인 듯 우울하지만, 홀로 영원의 길을 떠나는 순간에 이만한 양심 고백을 할 수 있는 나그네가 몇이나 될는지?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어야 하나?”라는 의문들이 근심처럼 일어나서 자신을 새삼 돌아보게 되는 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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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6
왜 사과(謝過)를 해야 하는가

 

‘사과’는 잘못된 허물에 대하여 용서를 비는 것이다. 이 말이 요즘같이 묵직한 느낌으로 다가와 그 의미를 곱씹는 일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어떤 이들은 국민의 간택을 석 달쯤 앞둔 시점이라,‘사과를 제대로 하고 안 하고에 따라’정치적 위상이 크게 달라질 계제에 있다. 또 90년간 비슷한 삶을 살면서 한 시대를 쥐락펴락한 두 남자가 한 달 차이로 별세한 사건이 있었다. 사과 여부에 따라 그 둘에 대한 세평(世評)이 하늘과 땅 사이를 오르내리는 것을 본다.

 휴전선 너머 공산군을 경계하는 과업에 열중했어야 할 군인이었지만, 그 둘은 청와대‘각하’의 동정과 심기를 살피는 데 온통 마음을 쏟았다. 그들은 박 대통령이 시해된 격변의 회오리바람을 타고 군사반란을 획책했다.‘하나회’라는 군내의 사조직을 이끌어오다 이를 바탕으로 얽힌 사적 인맥을 활용하여 군의 공식 통수계통을 마비시켰으며, 육참총장(계엄사령관 겸임)과 수도권의 군 지휘관들을 체포하고, 군권을 찬탈했다.

“다시는 나같이 불행한 군인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라던 박 대통령의 전역사(轉役辭)가 진심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대통령은 자기를 닮은 정치군인들을 주위에 키우고 있었다. 그는 경제적으로 큰 공적을 이루었지만 영구집권을 노린‘유신통치’를 하면서 국민을 숨도 못 쉬게 억압했으며, 많은 정적을 쫓아내고, 고문하고, 죽이는 등의 전횡을 다반사로 저질렀다.

정권을 탈취한 신군부는 더 거칠고 모질게 권병을 휘둘렀다. 삼청교육대에서 450여 명, 형제복지원에서 5백여 명, 광주에서 2~3백 명을 학살했다. 그들이 무슨 명분과 권한으로 4.19 때보다 6~7배나 많은 국민을 죽였던가? 신성한 국방 무력을 국민을 학살하는 데다 쓰다니! 까닭도 모른 채 끌려가서 몽둥이 찜질을 당하고 목숨을 잃은 원혼과 그 가족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른다.

전 씨 등이“새 시대”, “정의사회 구현”같은 막연한 구호를 외쳤지만, 그것은 자신들의 초라한 정당성을 감추려는 발버둥이 아니었을까 싶다. 공동정범(共同正犯) 노 씨는 훔쳐간 돈을 반납하고, 부인과 아들이 광주 묘지를 참배하여 최소한의 시늉은 했다.

전 씨는 군사반란과 강권통치의 주역이면서“난 잘못한 것이 없다.”는 억지만 부리다 갔다. 훔쳐 간 돈도 970여억 원이나 미납인 채로. 천 수백 명을 죽이고, 수천 명을 다치게 한 폭거에 대해 사과받고 화해할 기회는 사라졌다.

전 씨 때의 경제발전을 운위하지만, 백성을 학살한 데 대해 진솔한 참회와 사과가 없다면야 무슨 평가를 기대하는지? 양민을 떼로 죽였는데‘정의’‘경제’‘행복’이란 구호가 무슨 소용인가. 사과와 화해의 마지막 기회를 놓친 건 전 씨나 국민에게도 유감된 일이다.

인간은 완전할 수 없고, 때로 잘못을 저지르기도 한다. 하지만 늦게나마 자기 잘못을 깨달아 참회하고 용서를 빌어 화해할 수 있는 것 또한 인간이다.“To err is human, to forgive Divine.”(잘못을 저지름은 인지상정이요, 용서는 신의 섭리다.) 라는 격언은 사과와 용서의 속성과 상관관계를 알게 한다.

 잘못을 사죄하고, 이를 용서하는 긍휼은 신의 영역에 근접한 마음일 것이다. 그리 보면 사과도 인품이 그만한 수준에 달하고 마음의 여유를 지닌 이라야 가능한 일 같다. 큰 잘못을 저지르고 빗발치는 아우성에 어깃장 놓는 것은 무지하고 무례한 자질을 스스로 폭로하는 짓이다. 의도했든 아니든 남의 목숨이나 재산을 빼앗아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주고 외면하는 것은 파렴치한의 모습이다.

이재명 대선 후보가, 조금 과하게 나갔다 싶으면 바로 사과하고 국민의 요구에 맞춰 공약을 수정하거나 유예했다. 그의 처신이 가볍게 보일 수는 있겠지만, 국민의 뜻에 순응하는 자세는 민주 사회의 지도자로서 당연하고 안심이 되는 바가 있어, 장점으로 볼 것이다. 진보적 가치에 사로잡혀 성급하고 고집스럽게 밀어붙이다가 어정쩡하게 멈추어 서던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과 비교해 구체적이고 살가운 정책을 제시하는 이 후보의 주장이 손에 잡힐 듯하다.

 경기도지사 때 주민 지지율이 첫해 40%, 둘째 해 60%, 셋째 해 70%였다는 실적이 지도자로서의 성실성을 말해준다. 대통령이 우리의 지배자로 군림한 것이 이승만 정부 때부터였던가? 후보자의 입으로 오랜만에 듣는“국민의 뜻에 충실한 큰 머슴이 되겠습니다.”라는 생경한 표현에, 제3대 대선 후보 신익희 선생의‘한강 백사장 연설’을 떠올린다. 해공(海公)은 첫 유세에서 “주권재민(主權在民)의 헌법정신을‘민국의 임자들’께 상기시키고, 그 실천을 다짐”하였다.

야당의 주자는“헌법정신”, “공정”을 되뇌는 윤석열 후보다. 오랜 검사 생활이 몸에 배어서 그런지 검사스럽다. 타인의 잘못은 신속하고 무자비하게 척결하더니, 자신과 처가의 위법, 탈세에는 나 몰라라 한다. 그런 불공정한 행태에,‘먼 길을 가던 전 씨가 돌아왔나? 싶다. 그래서 그런지 용감하게도 전두환의 통치를 찬양하였고,‘개와 사과’사진을 트윗에 올려 국민을 우롱하기도 했다. 대통령 입후보자가 국민의 뒤통수를 치는 농간을 부린다니…

 박근혜 대통령이 빨간 두루마기 차림으로 오방색 주머니를 나무에 매달던 일이나, 윤 후보의 손바닥에 그린 ‘王’자 부적을 보는 느낌도 낯설고 섬뜩하기는 마찬가지다. 언제는 성경을 끼고 교회에 나타나던데, 그건 또 무슨 변신인지? 여하튼 한국이란 번듯한 나라를 이끌려는 대통령 후보자의 정신력이 약하여 무당의 주술을 담은 부적에 의존해야 한다니, 께름칙하다. 그러기보다는, 매사에 건전한 상식으로 임한다면 보는 마음이 편할 것 같다.

한국이 지성적이고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지도자를 만나서 자유롭고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로 나아가기를 빈다. (2021.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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