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나 자기편의 여러 사람을 가리킬 때 일컫는 말이 ‘우리’다. 우리 집, 우리 마을, 우리 학교, 우리 반, 우리 회사, 우리 사회, 우리 강산, 우리나라, 우리 조국, 우리 역사, 우리 노래, 우리 춤, 우리 옷, 우리 음식, 우리 말, 우리 글, 우리 문화, 우리 풍습, 우리 애들, 우리 엄마, 우리 아버지, 우리 조상, 우리 마누라, 우리 남편… ‘우리’가 참 다양하게도 쓰이는 데 새삼 놀란다. 심지어 ‘우리 남편’, ‘우리 마누라’ 같은 말을 거부감 없이 쓰고 있음에랴.
심술궂은 이웃 종족들이 유사 이래 천 번이나 쳐들어와 우리의 생활 근거를 불 지르고, 약탈하고, 유린하던 수난 속에도 겨울 떠난 들판에 잔디가 푸르게 돋고 민들레가 샛노란 빛을 쏘아 올리듯 ‘우리’를 외치며 재기하여 삶을 이어온 것이 우리의 모습이었다. ‘우리’는 수천 년의 독특한 환경 속에 배태胚胎되어 생존을 위한 단합 구호처럼 응축된 소리가 아닐까.
신라의 삼국 통일 후 당唐의 소정방이 눌러앉아 식민지 총독 구실을 하려 하자, 김유신은 ‘우리’라는 독특한 정서의 힘을 빌려, 당의 야욕을 분쇄했다. 고려의 강감찬은, 25년 동안 세 차례나 쳐들어와, 강토를 유린하던 거란군을 쳐부수고 고려를 지켜낸 투혼을 발휘했다. 또한 조선의 수군 제독 이순신은 턱없이 부족한 병력과 피폐한 장비를 긁어모아, 막강 왜적을 상대한 마지막 해전에 대승함으로써 나라를 구했다. 그는 조선이 사라질 뻔한 7년여의 왜란을 종식한 ‘구국의 영웅’이다. 위의 대첩들은 ‘우리 가족, 우리 사회, 우리 문화, 우리나라를 지키자’는데 온 겨레가 합심해 성취한 대표적인 성과들이다.
사회에 만연한 인명 경시 풍조가 잦은 집단 참사를 부른다. 연례행사같이 발생하는 떼죽음에도 무덤덤한 지도자들이 낯설어 몸서리쳐진다. ‘이게 우리의 본모습인가?’ 이런 때 사회의 실권자들이, 자신의 태만과 무능을 감추며 뱉는 변명이란 게 “국론 분열을 획책한 좌익 무리의 소행…”이란 말이다.
21세기에 들어서도 여전하다. 영악한 인간들이 그 상투어를 70년도 넘게 쓰면서, 정작 치유를 위한 본론은 모르는 체한다. 인명의 대참사에도 책임지지 않고, ‘빨갱이 타령’으로 윽박지르며 넘어가니, 참 편리한 방식 같다. 이성도, 논의도, 반성도 없는 무례한 사회로 점점 빠져들 건만 안타까워하거나 슬퍼하는 사람은 적다.
갑론을박하는 논쟁가들은 자칫 편벽됨으로써 화합 단결을 버리고, 지리멸렬한 모습이 된다. 어느 한 편의 극단적인 주장은 점점 진실(또는 진리)에서 멀어져 자신의 정당성이나 도덕적 우위를 잃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이들이 침 튀기며 강조하는 반대편에 대한 비난은 그들 자신의 양심 부재, 이성의 마비, 질투심, 옹졸한 속내를 폭로하는 꼴이 된다. 당신은 얼마나 양심적이고, 얼마나 선하고, ‘우리’라는 집단 앞에 떳떳한가고 묻고 싶을 때가 많다.
논리가 궁한 사람들이 대체로 감정적 편벽 성을 강하게 띈다. 그럴 땐 그들의 높은 학력이나 유창한 언변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그렇게 편벽되고 그악스럽게 씹어대다가, 무릎 꿇고 내세의 영원한 복락을 기원하는 그들의 행태를 신神인들 용납하겠는가. 그런 이치를 생각하면 말수를 줄이고 중도를 지키려고 담담한 마음을 갖기로 수양함이 오히려 현명할 것 같다.
‘우리’ 민족은 일제 40년간 모진 고난을 겪었다. 그로써 해방 후에 많은 분쟁이 일어났고, 해방 80년이 다가오는 데도 더 많은 내분에 휩싸인다. 친일로 돈벌이가 좋았던 집안의 자손들은 교육도 잘 받아, 일본 임금의 황은皇恩에 감읍한 모습이다. 숨죽여 살던 그들이 물질적 우위뿐 아니라, 이젠 명예도 차지하겠다고 하니, 공동체가 혼란스럽다. 그들은 이름도 근사한 ‘신자유주의’, ‘뉴라이트’ 등의 깃발을 쳐들고 목청을 드높인다. ‘내가(혹은 내 조상이) 일제의 주구 노릇을 했든 말든 어쩌란 말인가. 잘 먹고 잘살자는데 수단 방법을 따질 게 무언가’고 역정을 낸다. 갖은 희생을 당해 쇠락한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에게 “죽창가나 부르니까 뾰족한 수가 나던가?”고 비아냥댄다. 원수가 따로 없다. 피해자의 상처를 후벼파서 서로 간의 간극을 더 크게 하고, 자신들의 친일 행각을 합리화한다. 과거사 청산을 하지 않고 살아온 어리숙한 사회에 적반하장식 행태가 공공연히 빈발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부끄러운 역사를 되풀이한다.
4년여 나치 점령기에 부역했다 하여, 프랑스는 나치 부역자 수만 명을 처단해 민족의 제단祭壇을 피로써 씻었다. ‘다시는 민족 배반자가 나올 수 없게 한다’는 결의를 무섭게 실천했다. 40년 동안 일제의 압제에 시달린 우리 민족인데, 이승만 정부는 단 하나의 배반자도 벌하지 않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해체했으니, 배알이 없는지 온정이 과한 건지 모르겠다. 이제 ‘과거사 사과 문제’, ‘독도 문제’, ‘종군 위안부 문제’, ‘강제 노역장 유네스코 등재 문제’에서 역사 퇴행적인 추문이 꼬리를 물어도, 누가 무슨 명분으로 이를 바로잡을 수 있으리오.
10월10일, 작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우리’를 전율케 했다. 그녀의 저작물은 한국에서 ‘블랙 리스트’에 오른 지 이미 오래고, 도서관에 있던 한강의 저술들도 ‘불온 도서’라 하여 벌써 폐기가 됐다. 보도에 따르면, “그녀의 글을 교과서, 수업용 교재에 최소 34건이나 싣고선 저작권에 대한 보상금은 한 푼도 주지 않았다”는데, 그 이유란 게 “한강의 주소를 몰라서”라나 뭐라나.
‘한국문학예술저작권협회’의 쪼잔한 작태가 ‘우리’를 창피스럽게 한다. 국민을 상대로 사기詐欺를 치는 자들이 2세 국민의 교과서, 교육자료를 주무르게 하다니, 2세 아이들이 무슨 본을 보라는지…
한림원의 발표 직후부터, 국내에는 한강을 폄훼하는 속 좁고 못난 인간들이 설쳐댄다. 심사위원회가 “한강의 글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한 강렬한 시적 산문이다.”고 평가했다. 긴 세월 끽소리 못 하고 산 민족인데, 한강이 원통한 그 마음을 풀어내는 ‘해원解寃의 굿판’을 펼쳤다는 뜻이 아닐까. 그걸 나무라는 넌 누구냐? ‘우리’의 볼에 흐르는 눈물마저 틀어막으려는 넌, 도대체 누구냐? 넌 민족의 역사 앞에 얼마나 당당하고 떳떳한 존재냐? 그 입 다물라! 바깥세상이 ‘우리’의 깊은 슬픔에 위로와 격려를 보내는데 당신들만 배 아파하다니. (202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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