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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0일 2003
신문 배달
임정남
나는 이민자이고 영어가 부족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한국신문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이곳 소식도 궁금하고 고국소식도 궁금하고 사건의 뒷 얘기나 오늘은 무슨 새로운 사건이 생겼나 궁금하고 그러다 신문을 받아보면 그렇게 반가울수가 없었다. 그러나 우편으로 오는 신문은 이삼일 늦기 마련이요 어떤때는 식품점에서 사본뒤여서 이중으로 신문값이 들기도 했다. 요사이야 신문이 매일 배달되니 얼마나 편하고 고마운지 모른다.
나는 신문배달을 중지하고 식품점에서 매일 사보기 시작했는데 어떤때는 신문이 늦게 도착되는 바람에 30분씩 기다려서 사보았으며 그렇게 기다려도 헛걸음을 칠때에는 얼마나 서운한지 모른다. 그러다가 91년 6월경인가 우편파업이 있어 모든 우편배달이 중단되었다. 나는 그때 한국신문을 기다리는 교민들이 얼마나 답답할까 나와 마찬가지로 그들도 얼마나 신문을 기다릴까?
나는 그러한 심정을 생각하면서 그들에게 신문을 배달해 준다면 얼마나 기뻐들 할까? 나는 그분들의 반가워하는 모습을 생각하면서 신문배달을 하기로 하고 집사람이 나오는 길로 집으로 가는척하고 신문사를 찾아갔다. 처음 찾아간 곳이라 어디가 어딘지 몰라 지하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기계가 있는것 같기도 하고 신문지가 쌓여 있는것 같기도 하고 아마 인쇄부가 아니면 배달부 같기도 했다. 가끔 사람이 지나치긴 했으나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부끄러움에 말을 부칠수가 없었다. 나는 서성거리다 돌아나오고 말았다.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포기 할수는 없었다. 나에게는 용기가 필요했다. 나는 다시한번 힘을 내어 사무실을 찾기로 했다. 첫번에 왔을때는 사람에 가려 간판을 보지 못했는데 지하로 내려가기전에 쪽문이 있고 쪽문위에 사무실이란 간판이 걸려 있었다. 나는 쪽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리고 한 직원에게 용건을 말했다. 직원은 나의 얘기를 듣더니 무척이나 반가워 하고 고마워 했다.
그리하여 20여부의 신문과 약도를 받아들고 독자를 찾아 나섰다. 그때 내가 받은 구역은 쉐퍼드로부터 하이웨이 7과 더프린과 제인이었다. 처음이라 집을 찾는데 아무리 캐나다가 집찾기 쉬운 곳이라해도 싸인 보느라 정신이 없고 잘못하다간 엉뚱한 길로 들어서서 몇바퀴는 돌아서야 하고 모르고 지나친 집을 발견하고 다시왔던 길로 되돌아 가야했다. 아파트부터 시작하여 주택가에 또한 프라자에 공장지대까지 각양각처를 다녔다. 신문을 받는 독자는 그렇게 반가워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들의 반가워 하는 모습이 얼마나 보람을 느꼈는지 배달중에 나는 혹시난 아는사람을 만나면 어쩌나 무척이나 걱정했었다. 그러나 대행히 한사람도 못만났다. 그런데 배달처 명단에 형님같이 모시는 분의 회사명단과 주소를 발견하고 나는 조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회사를 새자리로 이전하였을때 찾아뵈야 할텐데 하면서도 한번도 찾아뵙지 못했는데 이런모습으로 나타난다면 부끄럽고 죄송하여 제발 만나지 않게되기를 바랐다. 내가 두근거리는 가슴을 달래며 그곳에 당도하니 시간이 늦은 관계로 회사는 이미 닫혀있어 아무도 없었다. 정말 다행한 일이었다. 나는 신문을 편지함으로 딜여 밀면서 내가 아저씨 신문을 배달하다니 하며속으로 피식웃고 말았다.
첫날은 집을 찾는데 시간이 걸려 꽤 오래 걸려 배달이 끝났으나 두번세번째는 배달하기가 쉬웠다. 혹자는 “저자람 신문에 나려고 저런다.” 핀잔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제발 신문에 나지 않도록 신신당부를 했고 또 집사람이 알게 될까봐 얼마나 마음을 조렸는 모른다. 다행이 집사람 모르게 일이 끝나 안심이 되었다. 우편파업이 끝나고 얼마후에 감사의 편지와 조금의 사례비가 보내왔다. 나는 그것을 받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약간의 돈을 보태 조그마한 물건을 사서 행사에 쓰도록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