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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날 특집 대담
jny0801
2004-08-23
게재일 : 06/19/2004 면 : A5
우리시대의 '보통아버지' 임정남씨
'아버지날' 특집인터뷰
우리시대의 '보통아버지'
임정남씨
"줄 수 있는 한 행복해요"
궂은일 도맡는 '봉사전문가'
"떳떳한 삶이 곧 자식사랑"
임정남(62)씨를 만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작은 몸집을 쉴새없이 움직이며 일하는 모습이 활기에 넘치거니와, 그의 동그란 얼굴에는 사람 좋은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이민생활 27년째. 빈손으로 건너와 자신의 가게도 갖게 됐고 자식들도 장성한 지금, 그는 자신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꼽는데 주저함이 없다.
개성출신인 그는 1·4후퇴 때 9살 어린 나이로 홀어머니 손에 끌려 38선을 넘었다. 남들만큼 교육을 받지도 못했고 집안에 재산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생활은 고단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산동네에서 연탄배달을 하고 남의 집 처마밑에 구멍가게를 열 때도, 그는 항상 주변을 도울 생각에 먼저 골몰했다.
『보잘 것 없는 나 자신의 핸디캡을 극복하자면 항상 열심히 일해야 했고, 장사를 하려면 사람들을 모아야 하잖아요. 그렇게 이웃을 돕기 시작하다보니 자꾸 아이디어가 생겨나고, 그게 정말 큰 기쁨이자 보람이 되더라고요.』
그가 살던 서울 전농동 동회앞에서는 매년 그의 주도로 어린이날 노래자랑이 열렸고 노인잔치가 베풀어졌다. 그의 구멍가게 한켠에는 항상 노인들을 위한 자그마한 쉼터가 마련됐고, 새벽 길거리 청소도 그의 몫이었다. 그의 감동적인 인생이야기는 KBS·MBC 등에 의해 단막극으로 제작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77년 임씨는 가족과 함께 이민해 먼저 와있던 형님가족과 어머니를 상봉했다. 새로운 나라에서 그는 접시닦기와 호텔청소를 하며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했다. 부인도 공장에 다니며 눈물겹게 모은 돈과 주변에서 조금씩 융통한 돈으로 지금의 가게를 시작했다. 첫 6개월 동안에는 운전면허도 없어 도매상에 물건을 떼러갈 때도 다 손으로 들고 날라야 했다.
그래도 가게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그는 특유의 봉사와 선행을 토론토 교민사회에도 펼쳐나갔다. 매년 굵직한 한인사회 행사에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며, 한인회관 주변청소와 화단 가꾸기 등 남들이 돌아보지 않는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88년부터 실협과 한인회 이사 등으로 봉사한 그는 수많은 공로상과 감사패를 받았다.
이런 그가 이민초기 가장 생생하게 기억하는 일화 가운데 하나는 아들을 처음 학교에 데려가던 일이다. 『9살이던 아들을 데리고 학교에 갔는데, 말도 안통하고 낯선 곳이니 아이가 겁을 먹고 울더라고요. 선생님께서 뭐라고 말을 하는데 알아듣지도 못하겠고.... 애처롭고 막막한 심정에 나도 눈물이 나오데요.』
이민당시 초등학생이던 딸과 아들은 지금 장성한 직장인이 되었다. 자녀가 어릴 적엔 먹고살기 바빠 살뜰하게 살펴주지도 못했고, 『사랑한다』 소리 한번 해본 적도 없다. 하지만 임씨는 『살아오면서 아이들에게 욕 한마디, 손찌검 한번 안한 것에 대해 나 자신을 대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식이 잘되라고 위해주는 게 전부가 아니라 아버지가 열심히 훌륭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곧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 아닐까요.』
요즘 임씨는 37살이 되도록 미혼이던 아들이 참한 색시감을 만나 올해 10월 결혼식을 올리게 된 것이 아버지로서 무엇보다 큰 기쁨이다. 『사위도 며느리감도 나를 아는 분을 통해 소개를 받았지요. 그분들이 아버지인 나를 좋게 봐주지 않았다면 우리 자식들에게 중매를 했겠습니까. 또 우리 아들이 15년전 지금의 회사에 취직할 때도 면접관이 우리 가게에 와본 적이 있어서 나를 기억한다고 호감을 표하더랍니다. 내가 자식들에게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니 그만큼 큰 보람이 없더군요. 자식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울타리 역할을 해주는 것이 아버지의 역할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살면서 많은 걸 느끼고 배웠다』고 말하는 임씨는 독실한 불교신자로서 자신이 만난 인연과 겪어어온 일들을 글로 옮긴 수필집을 펴내는 것이 꿈이다. 자신의 부족함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희망과 행복으로 벅찬 이국생활을 이어나가는 자신이 자랑스럽다고 그는 말한다.
20일 「아버지날」이 돌아오는 이즈음 임씨는 자신의 부친을 떠올린다. 한살 무렵 돌아가 셔서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아버지다. 임씨는 『그래도 꿈에라도 뵙고 싶은데, 안나타나시니 서운하네요』라며 하하 웃는다. (김영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