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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선일미(茶禪一味)/문협 회원/고길자
건강이 신통치 않은 탓에 대부분의 시간을 집 안에 머물면서 유리창 너머로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있다. 겨울나무의 부서진 색깔을 보면서 쓸쓸함 속에 마음을 비우던 시간을 뒤로 하고 어느새 느릿하지만 서서히 녹색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겨울의 찬기를 휩쓸고 지나간 한 줄기 바람은 자취를 감추었어도 대지가 받은 기쁨이 큰 듯 봄기운이 묻어있다. 며칠 동안 오락가락하던 비가 그치고 햇살이 고운 오후, 묵직하고 피곤한 몸과 마음을 달래보려고 오랜만에 차를 달여보았다. 잘 우려진 설록차 한 잔을 앞에 놓고 찻잎이 뿜어내는 생기와 향을 음미해 본다. 쌓였던 피로가 조금씩 풀리는 듯하면서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음을 느낀다. 쉬지 않고 흐르는 시간 속에서 모든 것은 지나가게 마련이고 세월을 이기지 못하는 고통은 없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위로하며 힘을 얻는다.
차의 대가 초의선사는 혼자 마시는 고독 속의 끽다(喫茶)를 이속(離俗)이라 하여 최상의 경지로 꼽았다. 차를 마시면서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고 감각적 허위에서 벗어나 밝은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속세를 떠났다는 표현을 하신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예로부터 성현들이 차를 즐겨 마신 까닭은 차가 군자처럼 그 성미에 사악함이 없고 갈증과 피로를 풀어 몸과 마음에 활기를 주기 때문이라 한다. 조상들은 찻잎을 따고 덖어서 마시기까지 일관된 예법인 다도를 만들어 그 법도 안에서 차를 마셨는데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차를 마시는 사람들은 차와 선의 관계를 “다선일미” 혹은 “선다 일여”라고 말한다.
선이 망상과 집착에 물든 자신의 내면을 살펴서 순수한 참모습을 찾는 것이라면 한 잔의 차를 통해서도 잡념을 없애고 심신을 맑게 하여 자신을 통찰할 수 있기 때문에 차와 선이 한 맛이요 하나와 같다는 말이 틀리지 않은 것 같다. 조주 스님은 120년 동안 세상에 머물면서 뛰어난 선기(禪氣)로 수많은 사람들을 가르쳤다. 스님을 찾아와 “도”를 묻는 모든 이들에게 대답 대신 “차 나 한 잔 들고 가시게”라고 권유하여 저 유명한 “조주끽다거”라는 화두를 세상에 남겼다. 마음의 경지가 높은 사람이건 낮은 사람이건 차별하지 않고 차 한 잔을 권하는 스님의 선풍은 다선일미라는 생활 선으로 만인을 깨우치게 하였던 것이다.
어떤 모임이나 찻집에서 여럿이 모여 앉아 차를 마시면서 큰 소리로 정치 얘기나 남의 얘기를 거침없이 쏟아내는 모습을 보면 나는 그들이 차에게 결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차를 대여섯이 마시면 저속하다는 옛 다인의 말씀을 떠올리며 차를 대하는 마음을 되새겨본다. 고독 속에 홀로 마시는 이속의 차도 좋겠지만 가끔씩은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차 한잔을 앞에 놓고 눈빛만 보아도 편안하고 향기로운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 어설픈 외래어나 어려운 말 보다는 늘상 쓰는 우리 말 중에서 쉽고 고운 말을 주고받으며 소소한 행복을 나누고 싶다. 찻잔도 너무 화려한 것보다는 초라하지 않으면서 수수하고 기품이 있는 것이면 좋겠다.
몇 년 전 고국을 방문했을 때 인연 있는 스님으로부터 한국 최고의 명인이 만들었다는 고급 다구 셋트를 선물로 받았다. 어설프게 알고 있던 다도를 제대로 배워서 우아하고 격조 있게 차를 마셔보겠다고 벼르던 중 생각지도 못한 팬더믹을 만났다. 가까운 사람들과 남편을 모두 잃고 나 자신마저 병마와 싸우면서 그 꿈은 아직도 상자 안에 갇혀있다. 건강을 되찾는 날이 오면 상자 속의 다구를 펼쳐놓고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삶의 지혜를 나누면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싶다.
출처...부공산 카나다
생일 선물
기고 칼럼 부동산 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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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선물 2024-08-01
고길자(문협회원)
이른 아침 창문을 활짝 열고 싱그러운 5월의 봄 향기를 집안 가득 받아들이면서 화초에 물을 주고 있는데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렸다. 벽시계를 바라보니 오전 7 시35분, 이 시각에 누구일까 궁금히 여기며 집어 든 수화기 너머로 처음 듣는 걸쭉한 남자의 쩌렁쩌렁한 음성이 고막을 때렸다. “서예하는 고 선생이시죠? 붓글씨 한 장 써 달라고 전화했습니다”로 시작된 그분의 이야기는 내가 말할 틈을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계속되었다. 하도 목소리가 커서 수화기를 귀에서 멀리하고 조금은 무례하다는 생각을 하며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여든 살이 넘어서 얻은 귀한 손자에게 며칠을 밤낮으로 연구하여 좋은 이름을 지어 주었는데 우리말을 전혀 모르는 서양 며느리는 단 한 번도 그 이름을 부르지 않을뿐더러 아들마저도 서양 이름만 고집한다는 것이었다. 일부러 큰소리로 손자 이름을 부르며 아기에게 가까이 갈라치면 며느리가 놀라서 애를 안고 얼른 제 방으로 들어가 버린단다. 자식들에게 무시당하고 있다는 상실감 속에서 어쩌면 영원히 묻히고야 말 손자의 이름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고심 끝에 아이의 생일잔치에 붓글씨를 써서 벽에 걸고 기념사진을 찍을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가로 80센티, 세로 40센티 크기의 화선지에 ‘축 김동현의 첫 돌’이라는 문구를 써달라고 했다. 꼭 해야 할 일들이 밀려 있는 데다가 다리수술로 활동이 자유스럽지 못한 나로서는 쉽게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어떻게 하면 이 노인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거절을 할 수 있을까 망설이는 순간, “저 세상에 간 집사람이 너무 그립다”며 감정이 격하여 말을 잇지 못하는 그 노인의 흐느낌이 목에 가시처럼 걸려 거절 대신 “알았다”는 대답을 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아침에 받은 전화가 온종일 머릿속을 맴돌았다. 언어가 통하지 않고 문화가 다른 낯선 땅에서 아내를 잃고, 홀로 된 노인이 겪는 소외감과 고독의 부피가 묵직하게 나의 마음을 누르고 있었다.
나는 다른 일들을 뒤로 미루고 서예 도구를 챙겼다. 화선지를 마름질하고 먹을 갈았다 오랫동안 멀리했던 붓을 들고 한 자, 한 자 써보았다. 손이 떨리고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지난 사오 년 동안 평생 겪어도 될 만큼 어려운 일들을 감당하느라 심신이 지쳐 있었던 탓에 소중한 나의 친구인 붓을 가까이하지 않은 결과였다. ‘앞으로는 늘 붓과 함께 하리라’ 다짐하면서 심호흡을 크게 하고 쓰고 또 쓰고를 반복하였다. 몸은 비록 서양에 있으나 정신은 한국인임을 잊지 않으려는 한 노인의 염원을 담아 흡족하지는 않지만 글씨 크기가 고르고 간격이 적당한 한 점을 완성하였다. 뻣뻣해진 다리와 시큰거리는 손목을 주무르면서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었음을 다행으로 여기며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약속 시간에 맞춰, “말씀하신 재료비는 받지 않겠습니다. 동현이의 첫 생일을 축하하는 저의 선물입니다”라는 메모와 함께 서예품을 경비실에 맡기고 밀린 일을 보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해진 내 어깨 위로 한낮의 눈부신 빛이 바람결에 내려앉고 있었다.
출처 부동산 카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