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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의 수석과 목조각 공예와 모니카의 케나다의 삶을 주제로 살아 나가는 생활상을 소개하고 함께 하는 장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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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와 2000년 밀레니엄을 맞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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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와 2000년 밀레니엄을 맞으면서 조선생님댁의 가족과 우리는 주님께서 탄생하신 크리스마스 이브를 기념하기 위해서 1시간여의 거리에 있는 유명 관광지인 나이아가라 폭포 야경을 감상하러 갔다. 나이아가라 폭포와 그 주변은 계절에 따라 감상하는 것이 틀리기 때문에 우리는 그야말로 겨울의 눈꽃과 얼음 꽃 그리고 크리스마스 시즌의 야경을 감상하는데 마음이 들떠 있었다. 말로만 듣던 겨울의 나이아가라 폭포는 굉음을 내 뿜으면서 물줄기는 떨어져 있었고 바닥에 부딪치며 솟아오르는 안개 방울이 나무에 앉아 나무 자체가 얼음나무로 변해 있었다. 각종 전기 마스크와 에니메이션들이 크리스마스 야경 분위기를 고조 시켰다. 온드레이크로 가는 길에 세계에서 가장 적다는 교회를 세 번째 방문하게 되었다. 나는 이곳에서 우리의 영주권 문제가 이민관 의 눈에 빨리 띄어 순조롭게 잘 진행되도록 기도하고 또 Ancaster에 구입한 주택에 아무런 하자가 없도록 해주시고, 내년부터 우리 집에 올 조카와 남편 친구의 딸들이 아무런 어려움이 없이 학업에 열중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도 덧붙였다. 그 이후로 내 마음은 너무 편안했다. 1999년 12월31일 조선 생님 가족과 우리 가족은 한국 있었다면 망년회니 송년회니 하여 시끌벅적하게 보냈을 탠데 하고 우리도 그 기분을 살리기 위해서 미시사가 시청 앞으로 송구영신 밀레니엄의 한해를 맞이하기 위해 가기로 했다. 이날은 복잡한 교통을 통제하기 위해서 모든 시민들에게 버스는 무료로 승차가 가능하다. 우리는 모두 두꺼운 옷을 갈아입고 버스에 올라 시청을 갔다. 시청을 본부로 그 주위에는 각종 다채로운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모든 게 Free다. 이날 만큼은 80살이 다된 할머니 시장도 빠알간 망또에 정열적으로 이곳 저곳을 누비며 시민들의 불편이 없는가를 살피고 계셨다. 여러 행사를 관람하고 난 뒤 우리는 조 선생님 댁을 향했다. 이곳에서 우리는 밀레니엄을 조용히 맞이하자는 의견에서 였다. 카운터 다운이 되기 전까지 우리는 이제까지 있었던 수많은 일들에 대한 얘기 꽃을 피우고 우리가 집을 사게 된 내용과 그 과정을 설명도 곁들여 하였다. 사실 조선생님댁에서도 우리를 보면 놀라는 일이 그 동안 많았다. 자신들이 만약 우리 처지 였었다면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것도 조 선생님 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할 수 있다는 인사말을 빼먹지도 않았다. 항상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남편은 그 집에 부족한 점이 있으면 어디 가서 구하든지 구색을 맞춰 주기도 하고 정보를 주었다. 그래서 서로 협동하여 어떤 가정에 필요한 작품이나 가구를 만들기도 하였다. 이런 저런 아름다운 우리네의 이야기를 하다가 길고 긴 캐나다의 겨울 밤 그것도 한해를 정리하고 희망찬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한해를 기다렸다. 그리고 아이들은 하이 얀 백지 위에 자신들의 소망을 담아 종이 비행기를 접어 카운터 다운이 끝나는 동시와 함께 4층 아파트 베란다에서 날려 보내려고 각자가 귀퉁이에서 뭔가 적고 있었고, 나도 내 마음 속으로 2000년에는 우리가 소망하는 영주권과 또 바라는 모든 일들이 이루어지도록 소망 했다. 그렇게도 다사다난했던 이 한해를 얼른 접어 버리고 무언가 우리 가족의 앞날에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은 카나다의 희망찬 밀레니움의 시대를 맞고 싶었다. - - - 3,2,1,0 갑자기 베란다 창문이 열리고 종이 비행기가 하늘을 날았다. 멀리 서는 축하 폭죽 소리가 들리고, 아파트 아래 위 층에서는 웅성 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희망찬 새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