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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greenon
프랭크의 수석과 목조각 공예와 모니카의 케나다의 삶을 주제로 살아 나가는 생활상을 소개하고 함께 하는 장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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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방문시 나는 이렇게 보냈다
evergreenon

단지 6개월간을 캐나다에서 살고 제 입국한 나는 너무도 바쁜 날들을 보내게 되었다. 먼저 한국을 떠나기 전에 나는 캐나다에서 살게 되면 골프가 필수적이라는 주위의 권고에 나는 약 3개월 정도를 내 동생과 남편으로부터 집중 지도를 받아가며 골프 연습장에서 연습을 했었는데 캐나다에서는 연습장에서 연습을 하는 것이 실지 필드를 나가는 것 보다 비용이 더 많이 들어간다. 그래서 한국을 나온 김에 내가 부족했던 연습을 충분히 하고 가리라는 결심을 갖고 시간만 나면 연습장에서 평범한 여성들은 엄두도 못 낼 만큼의 골프 공을 무지막지하게 두드려 댔다. 그리고는 내가 캐나다를 떠나기 며칠 전에 남편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말인즉 은 자기 딸 아이를 유학을 보내고 싶은데 캐나다에 대해 아는바 없고 특히 딸아이라서 걱정이 되는데 아직도 그곳에 안정이 안된 걸로 아는데 죄송하지만 아이를 좀 거둬달라는 부탁이었다. 이것을 시발점으로 나는 지금 내 자식들을 제외한 조카와 남편 친구 딸들을 거두고 있다. 이미 한차례 캐나다를 방문했던 조카는 벌써 유학 수속 준비를 하고 있었고 거기에다 남편 친구의 딸들 수속을 보태어 내가 이민 수속을 진행하고 있는 에이젠트 회사에 의뢰하기 위해 상경을 했다. 우리의 이민 수속을 담당하고 있었던 에이젠트 대표는 나의 친구에 친구였으니 나에게도 친구나 다름없어 불편함은 없었다. 그곳에 도착 했던 날 정말 실망스러운 일을 듣게 되는 계기가 있었는데 그 내용은 남편 친구가 지도 했다는 후배 중에 한 사람이 남편의 소개로 이 에이전트를 소개 받고 이곳에 몇 달 후에 이민 접수를 하고서도 인터뷰 면제를 포함하여 영주권을 미리 받게 되었다는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속으로 생각을 하니 더욱 걱정스러움이 앞섰다. 그래서 에이젠트 대표와 우리 서류를 취급하고 있는 담당자에게 나는 차분히 설명을 했다. 방금 전화를 받으신 그분은 아시다시피 남편의 후배이자 제자이고 그의 상태를 내가 잘 알고 있는데 그 사람에 비해 제 남편이 학벌이나 재산 상태 및 어학실력 등등 어느 하나 못한 점이 없는데 그분은 인터뷰 면제가 되고 우리는 아직 인터뷰 날짜 통보도 없으니 무언가 실 타래가 꼬여도 단단히 꼬인 게 아니냐고 불평을 틀어 놓았다. 에이젠트 대표는 이사실을 가만히 들어 보더니 담당 직원에게 이분들 서류를 제 점검 하라는 지시와 함께 혹시 캐나다 6개월 거주할 당시 ESL학교를 등록하여 공부한 영수증이나 그곳에서 개체하는 세미나 등에 대한 참석 자료가 없느냐고 물어 왔다. 그런 증빙할 서류가 있다면 본 회사가 최선을 다해서 우리의 상황과 전자에 영주권을 미리 받았던 분과 비교한 상세한 설명을 캐나다 이민국으로 편지형식으로 발송해 보겠다는 것이었다. 실지 우리의 속담에 밑져야 본전이다 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우리는 캐나다로 돌아가자 마자 우리가 다녔던 학교에서 서류를 떼어 송부하겠다는 약속과 가능한 한 매끄럽게 편지를 잘 작성해 달라는 말을 전하면서 쓸쓸히 그곳의 문을 나왔었다. 하루 해가 밝으면 언제 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친구, 가족 친지들과의 만남 등 해서 스케줄이 워낙 바쁘게만 돌아갔다. 한국에 나와서 머문 지 한달 반 정도는 너무나도 빨랐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이들은 아이들 대로의 스케줄에 맞춰 각자 나름대로 바빴던 것 같았다. 나와 남편은 이왕 캐나다에서 살기로 결정했다면 한국에 너무 오래 머무는 것은 우리나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게다가 어렵게 영어 공부한 것 이 환경에 젖어 들면 다 잃어 버리기 쉽상이라면서 이곳에 있으면서 영주권을 받고 간다고 가정하면 언제 나올 것인지 기약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캐나다로 제 입국하기로 결정하고 비행기 Ticket을 구입했다 . 비행기 속에서 나는 빌었다. 하루빨리 영주권이 나와서 우리아이들의 학교 문제 해결과 또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안전한 생활권, 내가 맡아서 키워야 하는 조카와 남편 친구의 딸들, 이들을 위한 좋은 학교와 환경의 제공, 우리가 영주권자로서 캐나다에서 둥지를 틀 주택 구입 등등의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시원하게 만들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