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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greenon
프랭크의 수석과 목조각 공예와 모니카의 케나다의 삶을 주제로 살아 나가는 생활상을 소개하고 함께 하는 장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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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피어슨 공항에서 상봉
evergreenon

어려운 난관 속에서 아이들과 토론토 피어슨 공항에서 상봉하다 우리가 캐나다로 이민을 오겠다는 가장 큰 이유가 자식의 교육환경을 바꿔주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서울에 두고 온 아이들의 사정이 어떻게 되어가는지에 대해 궁금하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했다. 이주공사를 통해서 왜 유학비자가 늦는지 혹 나오면 언제 나오는지에 대해 알아 봐 달라고 부탁을 한 이틀 후에 정말 가슴 답답한 답변을 듣게 되었다. 유학비자가 거절되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왜 유학비자 거절을 당해야 했는지에 대해 자세히 는 모르나 당시에 에이전트회사 측의 말을 빌리자면 부모가 영주권 신청을 한 상태 애서는 자식들의 유학 신청이 안된 건지 아니면 학교가 아닌 학원의 입학 허가서 때문인지, 혹은 수업기간 6개월이 너무 짧아서 인지 (대부분 1년) 아이들의 나이가 너무 많아서 인지 자신들도 대사관에 질의 했지만 노 코멘트라는 것이다. 우리의 계획은 6개월 동안의 수업 기간동안에 영주권이 나오면 아이들을 퍼블릭 스쿨로 보낸다는 일차적인 계획은 완연히 수포로 돌아갔고 갑자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어차피 일은 이렇게 흘러가고 있는 것을 걱정한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남편의 다독거림 속에 우리는 일단 아이들이 입국을 쉽게 하도록 묘안을 짜기로 했다. 아이들이 만에 하나 공부에 대한 어떤 목적이 있다는 것을 이민관 이 안다면 그 자리에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래서 여행자 상태로 들어올 수 있도록 그 기준에 맞추기로 했다. 큰아이는 별문제가 없는데 작은 아이가 맘에 걸렸다. 하지만 고등학교2학년 초에 벌써 영어공부를 위해 학교에 휴학계를 내놓았기 때문에 이미 단발머리는 길어 있었고 옷만 좀 잘 챙겨 입는다면 대학생 수준의 외모는 보일 수 있었다. 그래서 언니 옷을 입고 나이를 물으면 국민학교를 7살에 들어갔다고 얘기하라고 말했다. 입국 시에 반드시 여행복장을 할 것과 돈은 가져올 수 있는 한도 내로 많이 지니고 숙소에 대해서는 호텔에서 체류 할 것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행선지는 온타리오주의 관광지 및 쾌백, 프린세스 아일랜드 등으로 지명을 말하라고 모든 문구를 작성하여 아이들이 거주하는 서울 사촌 집에 팩스로 송부했다. 아이들이 서울을 출발하여 토론토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떻게 잠이 올 수 있겠는가? 정말 악몽 같은 캐나다 미시사가 시에서의 밤이 였다. 어찌 됐건 우선 아이들이 무사히 입국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우리는 빌고 또 빌었다. 그 다음의 진행 사항은 아이들을 만나고 난후의 일인 것이다. 드디어 5월1일의 날은 밝아왔다. 비행기는 저녁 8시경에 도착을 하기로 예정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침부터 저녁 픽업 시간까지의 그 시간은 왜 그렇게도 길었던지, 왜 그렇게 가슴 답 답 했던지, 하루종일 음식을 입에 대기 조차도 싫었다. 항상 어려운 순간이 오면 아직 이민 초기도 아닌데라고 생각하며 나 자신을 위로했다. 아직까지 우리는 차를 구입하지 못했기 때문에 조선생님댁의 신세를 져야만 했다. 자동차를 파킹하고 공항 안으로 걸어 가는데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져 생각은 걸었지만 육체는 뛰고 있었다. 전광판에는 KAL 074편 Arrived로 표시되어 있는 것을 보는 순간 심장은 평소와 달리 운동을 하고 있었다. 30여분 후에는 한국인 탑승객들 한사람 한사람씩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우리아이들은 언제나 나올까 정말 조바심이 나서 견디질 못할 것 같았다. 얼마나 흘렀을까? 시간이….. 가끔씩 승객들이 나올 때 자동문이 열리는 문틈 사이로 우리아이들이 짐을 찾는다고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 이곳까지의 일은 잘 되어가는 것이다. 짐 찾는 곳에 있다면 이미 이민관에 의한 입국심사는 끝이 났다는 게 아닌가. 그 다음이 세관검사만 하면 되는데…. 긴장된 가슴이 안정을 되 찿을 때 벌써 나의 안구 저 뒤쪽에선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무사히 모든 과정을 아무런 문제없이 통과하여 우리 앞에 모습을 나타냈을 때 너무나도 반가웠다. 그러나 아이들은 우리가 이렇게 가슴 조려가며 걱정한 모든 부분들을 까맣게 모르는 모양이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오기도 힘들 텐데 유학 오는 언니를 비행기 안에서 만나서 짐찿는 것 도와주고 밤이라 이국 땅에서 어떻게 목적지를 찾아가야 될지 모른다고 우리집에서 하루 묶고 다음날 간다는 계획을 갖고 혹을 하나 더 달고 온 것이다. 우리부부는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이다라고 서로를 쳐다보며 쓴 웃음을 교환했다. 궁지에 처한 남을 도와주고 배려하는 것은 항상 좋은 일이긴 한데……. 이렇게 해서 우리식구는 카나다라는 땅에서 한 지붕 밑의 첫 밤을 보내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실지 하루가 급한 것은 아이들의 학원 등록 문제인데 어제 같이 동행해서 온 언니라는 학생의 도착지가 나이아가라 부근에 있는 학교라는 데 핑계 삼아 택시 불러 다가 가라고 하면 될 텐데. 그게 마음을 아프게 한다. 만약 내자식이 저런 상황에 있었다면 하는 생각만 머리 속에 뱅뱅 돈다. 가뜩이나 우리가 이곳에 와서 이런저런 신세 많이 진 조선생님댁에게 부탁하는 것은 실지 염치 없는 짓일 테고, 그런데 다음날 조 선생님께서 미리 전화를 주셨다. ” 그 학생 어떻게 할거냐고 차도 없으신데 제가 우리아이들과 나이아가라로 바람도 셀 겸 가는 도중에 데려다 주지요 “ 라는 것이었다. 너무나 반가운 소리였고 또 고마운 배려였다. 이곳에 온지 4개월 정도 밖에 안되었다는 조 선생님은 지도 한 장으로 못찾는곳이 없을 정도로 지리에 익숙한 것 처럼 보였고 그게 얼마나 부러웠든 지 모른다. 언니라는 아이를 지도와 주소를 보고 기숙사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우리는 나이아가라 폭포로 향했다. 우리는 2번째 이지만 아이들은 외국이라는 곳과 이러한 장대한 폭포를 구경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이들의 얼굴에는 만면에 웃음과 신기함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내일부터 진행될 학원을 찾아가는 일과 등록 등의 많은 일들을 어떻게 해야할지의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한순간 우리 가족이 다시 이 멀고도 먼 이국 땅에서 다시 만나 새로운 삶을 같이 꾸려 나간다는데 대해서는 이보다 더 행복스런일이 더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다음날 아직까지 우리는 차량을 사서 운행할 처지가 못 된다. 능력이 된다손 치더라도 우리의 신분이 비지터의 신분이고 보면 비지터로서의 활동에 많은 제약된 부분들이 자유롭지 못하게 만들었다. 학원의 위치를 위해 광역 토론토와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미시사가 시에 대한 지도를 구입했다. 형광 펜을 이용하여 일일이 가는 곳을 마크하고 버스 이용 시간 및 정류장 등을 확인한 후 우리가족 4명은 버스티켓을 구입 하자는 의견을 갖고 출발하는 아침 당일 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도시락을 챙겼다. 처음에는 버스 티켓을 어디서 구입할지를 몰라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물어 물어 찾았다. 버스표 구입을 대형 몰 안에서 구입을 했다. 모든 지리가 서툴기 때문에 하나하나 익혀 나가야만 했다. 토론토행 버스는 한국으로 말하자면 그래이하운드나 광주,한진등과 같은 고속버스와 같았다. 토론토에 내려 다시 한번 지하철을 갈아타고 우리가 목적하는 학원에 이르를 수가 있었다. 독일인이 경영하고 있는 이 학원은 ESL을 가르치는 International Academic으로서 그런데도 정평이 나있었는데 아이들이 도착하자 마자 아이들에게 Level판정 시험을 치루고서 내일부터 소속된 교실에서 수업을 받도록 지시해 주었다.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미시사가에서 이곳까지 오는데 두 아이에게 드는 교통비가 만만찬은것 같았다. 우리는 새로 궁리를 하고 또 먼저 온 선배들에게 질의도 하여 가능한 한 저렴하고 빨리 갈수 있는 방법을 택하게 되었는데 이는 우리 집에서 도보로 약 15분 정도가 소요되는 곳에 기차 종착역이 있었다. 그래서 기차 종착역에서 기차를 타고 토론토로 들어가서 그곳에서 지하철을 연계하여 가는 방법이 경제적인 부담도 덜 할뿐 아니라 시간도 훨씬 절약되는 것 같아 다음날부터 그렇게 시행하도록 아이들에게 주문을 했다. 아이들은 일찍 한국에 있을 때부터 학원을 다니면서 현지인들과 영어를 공부했기 때문에 대화하는데 두려움이 없었다. 집에서 학원까지 이르게 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약 1시간 20분 교통비는 18불, 점심은 매일 샌드위치나 홈버거와 약간의 음료수를 곁들여 싸주었다. 아이들도 학원을 다니면서 일본인 친구들과 사귀면서 즐거이 공부를 했기 때문에 집에 와서는 별로 힘들다 는 소리를 하지 않았고 그럭저럭 많은 날이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