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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의 수석과 목조각 공예와 모니카의 케나다의 삶을 주제로 살아 나가는 생활상을 소개하고 함께 하는 장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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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설득.....
evergreenon
2004-10-22
남편에게의 설득
제일 중요한 것은 이러한 내용을 어떻게 남편에게 꺼낼것이며 설득을 시키는가 하는게 무엇 보다도 제일 큰 관건이 되었다.
하지만 이미 나의 마음은 케나다로 향하는 이민 비행기에 탑승을 하고 있는만큼 내자신이 준비할수 있는 서류들을 하나 하나씩 틈 날 때마다 학교에서 관공서로 준비해나가기 시작했다.
남편의 눈치만 살피면서 남편의 바이오리듬이 좋을 때 일을 벌이자는 나의 생각이었다. 평소에 농담섞인 말로 “ 우리 케나다로 이민을 가지 않을래요?”라고 슬쩍 물어 보았다.
남편의 대답은”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하는 일이나 열심히 하시요” 더 이상의 말이 필요가 없이 전화를 끊어 버리는 것이 였다. 나는 수화기를 놓고서 온몸에 힘이 쫘악 빠지는 것을 감지할수 있었다.
아니다 이건 시작에 불과할뿐 아직 첩첩 산중이다라는 것을 나는 잘알고 있었다. 나는 남편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잘알고 있다.
그리고 남편은 시가에서 장남이고 아직 노 시어머니가 생존하고 계시지만 그래도 집안의 대,소사에 남편의 결정을 모두가 잘 따르기 때문에 어떻게 하던간에 설득을 해야 한다.
그일이 일어난 또 다른 며칠이 지나가면서 나의 잎술은 바짝 타 들어 가기만 할뿐이다. 직장에서 나는 또 수화기를 들었다.. 이번에는 진지하게 “ 여보! 아이들을 위해 케나다로 이민을 갑시다” 평소보다 더욱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그의 대답은 “ 니 정말로 카나 거짖말로 카나? 정말로 카면 꿈 깨고, 거짓말이면 일이나 열심히 하쇼” 하고 뒷소리도 들어 보지도 않고 또 수화기는 찰칵 그린다.
또 며칠이 흘러가지만 말이 며칠이지 실지 한달이상이 흘 지나 가버린 것 같다. 그럴수록 내마음은 더욱 굳혀져만 간다. 그래서 남편 비위 거슬리지 않게 사사 건건 아양을 부리고 원래의 나자신을 출장을 보내고 나의 성심, IQ등 모든것을 다 동원하여 가시밭길을 조심스럽게 헤짚고 나가는 심경으로 진지한 대화를 나눌수 있는 날을 꼽아가고 있었다.
그런 어느날, 친정 삼촌께서 약국 확장을 하여 개업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친정 식구들과 같이 부산 여행길에 겸사해서 가게 되었다.
나의 뇌리에는 삼촌의 약국 개업에는 안중에도 없고 나의 머리 구석구석에는 이민에 대한 생각과 남편 설득에 대한 생각밖에 없다. 약국 개업 축하를 하고 오후에 축하연을 베푸는 자리가 있었다.
이곳에는 우리 가족들 밖에 없었기에 나는 남편 옆에 바싹 붙어 앉아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술잔을 권커니 하면서 슬슬 이민에 대한 말을 꺼집어 내게 되었다.
참으로 어려운 순간 이었다. 용기를 내어 다시” 여보 우리 케나다로…….” 말이 체 끝나기도 전에 그의 대답은 “ 농담이 아니고 진담이였는 갑네” 라면서 갑자기 언성이 커지면서 심각시에 나오는 특유의 음성과 인상이 동시에 남편의 얼굴에서 분출되어 나왔다.
나는 목에 힘주어 지금부터 내가 하는말 잘 한번 들어 보세요. 그리고 난뒤, 나는 조목조목 왜 우리가 이민을 가야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평소에 이렇게 하리라는 각본이 머리에 늘 상주해 있었고 이번에 승락을 받지 못하면 끝장이다라는 생각을 갖고 온 신경을 집중시켜 진지한토론을 하기로 결심을 먹고 있었다.
나는 요목요목 몇몇 상황을 언급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이민을 가자는 이유로서
첫째, 자식들에게 더 나은 교육환경 제공을 위해서
둘째, 나 자신의 병원생활 23년이 이제는 권태기가 와서
( 실지 남편과 난 직장에서 인사원칙상 진급의 최고 정상 에 있었슴)
셋째, 인생사의 반이상을 우리나라에서 살았다면 이제 그 절반은 선진 대국에서 훌륭한 자
연 환경과 복지의 혜택을 누리면서 인간답게 살아보고 싶은 마음에서
넷째, 어릴쩍부터 갈고 다듬은 영어실력이 아까워서
다섯째, 남편의 취미생활의 좀더 나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서
(목공예, 야생화기르기,수석,낚시 등등)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좋은 말들을 다 동원하면서 승락 얻기에 신경을 쓰가며 말을 이어갔다. 그중에서도 친정 식구들도 이민에 대해 찬반의 팀이 갈라지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친정의 큰 남동생과 남편은 정말 마음이 잘 맞아 휴일이면 산이나 농장을 다니면서 호흡을 잘맞추어 일을 진행하고 또 하곤 했다.
실지 큰 동생은 남편이 하는 취미생활이나 농장일에 대해서는 전혀 지식이 없는 터였고 그렇지만 비위를 잘 맞추어가며 따르기 때문에 무척 그를 좋하했다.
그런 동생이 나를 거들어 정말 좋은 생각이다라고 맞장구를 쳐 주는것이었다.그래도 남편이 좋아하는 큰동생이 같이 장단을 맞춰 준다는데 대해서 실로 실낱같은 희망이 사라지지는 않겠구나라는 것을 직감할수 있었다.
집으로 귀향하는 길에 남편은 애꿎은 담배만을 피우면서 많은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았다. 차안에서는 아무 말없이 가능하면 나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을려고 피하는 눈치를 느낄수 있었다.
하지만 내마음은 정말 불길이 휩쌓이는 것 같이 떠거웠고 답답하기만 했다. 생각을 해보자. 이미 나는 남편 말만 떨어지면 서류를 제출할 준비가 모두 되어 있었다. 그런후의 또 몇날이 흘러갔다.
이때까지 무반응을 보였기에 나는 힘이라곤 다 빠져 버렸고 더 이상 기대할만한 거라곤 세월이 흘러가는 것 밖엔 없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실지 남편은 암센타 연구실에 근무를 하였고 나는 환자들을 접하는 병원안에서 근무를 하게 되어 거리로 봐서는 아주 가까웠다.
나는 눈썹이 휘날리라 감이 이상하여 남편의 근무지를 향해서 달려갔다. 그날도 여전히 책상에서 담배를 물고 나를 보면서 “ 이민을 간다면 어떻게 가는데?”라고 되물어 왔다. 언뜻 나는 기회는 이때다 싶었다.
그리고선 장황하게 설명을 다하고선 모든 서류는 당신에게 미안하지만 다 준비 해두었다고 말을 건넸다. 한참의 침묵이 흘러간뒤, “ 그러면 날짜 잡아서 서울 이주공사로 가자”라는 승낙이 떨어졌다. 나는 이말끝에 “ 더러워 죽겠다.내가 모든게 당신 실력만큼 잘 갖춰졌으면 치사하게 이렇게 목이 메이라 하지 않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