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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들의 아픔
allellu

 

 

살아 숨 쉬던 모든 생명체가 물에 빠져 죽었다. 살아 남은 사람도 단 8명에 불과했다. 노아와 세 아들, 그 아내들이었다.

그렇게 된 원인은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세기 6장5절)에 나타나 있다.

그리고는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표준새번역)고 하셨다.

홍수가 끝난 뒤 “노아는 주 앞에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집짐승과 정결한 새들 가운데서 제물을 골라서, 제단 위에 번제물로 바쳤다.”(8장20절) 그러자 “주께서 그 향기를 맡으시고서, 마음 속으로 다짐하셨다. “다시는, 사람이 악하다고 하여서, 땅을 저주하지는 않겠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그 마음의 생각이 악하기 마련이다. 다시는 이번에 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없애지는 않겠다. 땅이 있는 한, 뿌리는 때와 거두는 때,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그치지 아니할 것이다.”

 

홍수 전이나 홍수 이후나 여호와께서 사람을 바라보시는, 평가하시는 기준에는 변함이 없다. 창세기 6장에서, 또 8장에서 똑같이 말씀하신다. 인간은 그저 ‘악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함’을 보시고 모든 생명체를 물로 쓸어버리신 여호와께서 ‘어릴 때부터 그 마음의 생각이 악한’ 인간을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언약 하신다는 데 있다.

그러자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된 인간들은, 선악을 판단하기 시작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을 사람처럼 취급한다. 창조를 후회하시고, 한탄하셨다는 성경의 단어들 때문이다.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신 여호와께서 그 참상을 보시고는 마음이 너무 아프셔서 다시는 그 같은 심판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신 것으로 받아들인다. 여호와를 생각할 때, 인간들이 벌이는 일이나 상황에 따라 수시로 뭔가 계획과 결심을 바꾸는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한 번 실패하신 하나님과 그것을 만회하려는 분으로 판단해 버린다.

 

그러나 창세 전에 이미 약속된 언약이나, 최소한 창세기 3장의 ‘여자의 후손’ 이야기만 기억해도 이런 해석이 얼마나 큰 착각인지 알 수 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 9장27절)와 같은 구절이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베드로후서 3장7절)는 말씀은 한 번도 취소된 바 없다.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라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가는 과정이다. 세상에 대한 멸망과 심판의 시간표는 십자가를 통해서만 확증된다. 십자가를 빗대서만 설명될 수 있다는 의미다.

노아의 홍수 사건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증거하는 에피소드다. 창세기 3장에서 희생 당한 짐승이 가죽을 남겼고, 그것으로 반드시 죽어야 하는 아담과 하와의 수치를 가렸던 것처럼, 노아의 방주 구원도 정결한 짐승의 죽음과 연계돼 있다. 노아와 그 가족들이 정결했던 것이 아니며, 단지 “노아 만은 주님께 은혜를 입었다(6장8절)”는 것이다. 그래서 그 패턴을 알고 있는 노아의 가족은 방주에서 나와 정결한 짐승을 제물 삼아 제사를 드렸다. 노아의 가족 8명 모두 홍수에 휩쓸려 죽어야 했으나,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짐승의 대신 죽음으로 살아났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십자가는 악한 인간, 죄인을 구원하는 방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온 세상과 역사의 주인으로 찬송을 받게 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이다. 홍수 사건 이후에 겨우 8명만 살아 남았으나,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향하는 길로 나아가야 했다. 그것을 설명하고, 증거하시기 위해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8장21절)”을 아시고도 오로지 예수만 드러나도록 심판까지 참으시는 것이다.

 

홍수 심판은 더 이상 없지만 세상의 끝은 분명 정해져 있다. 그 종말 가운데서 여호와께서는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백성만을 구원하겠다는 언약을 성실하게 이행하신다.

그런데 그 과정이 인간들에게 쉽지 않게 다가온다. 때로는 자신의 뼈와 살을 도려내는 아픔처럼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에피소드가 창세기 9장에 그려진다. 노아의 만취 사건이다. 방주에서 나온 뒤 노아는 포도나무를 심었다. 포도주를 만든 노아는 취해 벌거벗은 채 자고 있었다. 둘째 아들 함은 그 모습을 보고, 형제들에게 일렀다. 셈과 야벳은 노아의 하체를 보지 않기 위해 뒷걸음쳐 들어가 옷으로 덮었다. 이를 뒤늦게 알아차린 노아는 “가나안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 가장 천한 종이 되어서, 저의 형제들을 섬길 것”이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흉을 본 것은 함인데, 함의 아들인 노아의 손자 가나안이 저주를 받은 것이다.

창세기 10장은 “함의 자손은 구스와 이집트와 리비아와 가나안이다”(6절) 한 뒤, 그 자손들의 이름을 열거한다. 여부스, 아모리, 니느웨, 소돔, 고모라, 블레셋 등 성경을 조금이라도 읽은 사람이라면 익숙한 이름이 줄줄이 등장한다. 죄 가운데 심판과 저주를 받았던 족속이며, 이스라엘과 끊임없이 전쟁을 했던 자들이다. 이들이 모두 함과 가나안의 자손들이다.

 

노아가 술에 취해 벌어진 일의 대가 치고는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노아 스스로도 둘째 아들의 후손이 역사에서 이스라엘과 대척점에 선, ‘악의 축’ 같은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미리 알았다면 마음이 편치는 않았을 것이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다. 함은 가나안의 조상이 되었다. 이 세 사람이 노아의 아들인데, 이들에게서 인류가 나와서, 온 땅 위에 퍼져 나갔다.”(창세기 9장18~19절. 표준새번역)

이 구절은 ‘노아 언약’ 다음에 붙어 있다. 노아의 아들들을 통해 언약이 펼쳐지는 것이다. 세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은 그 언약 성취를 위해 각자 역할이 주어졌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도 그렇다. 이삭의 아들, 야곱과 에서도 그렇다.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두 아들 가운데 아들을 구할 것인지, 어떠한 선택지나 역할도 주어지지 않았다.

에서가 사냥을 하고 배고픔을 이기지 못한, 순간적인 실수 때문에 장자의 축복은 놓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말라기 1장2~3절).

마치 십자가에 예수와 함께 달렸던 두 강도의 모습이다. 그들의 똑같이 마음대로 살았던 강도다. 똑 같은 처벌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혔다. 똑같이 예수를 향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며 욕을 하고 저주를 퍼부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강도는 사랑을 받았고, 또 다른 강도는 미움을 받았다.(사장/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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