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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후의 캐나다 생활(희비액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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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7
태평양 넘은 수양딸 사랑, 검찰도 감동했다.
정신질환을 앓아왔던 수양딸이 한국에서 처벌 당할 처지에 놓이자 캐나다에서 단숨에 달려온 양 아버지의 애틋한 사랑에 감동해 검찰이 선정을 베풀었다. 생후 19개월 때 머나먼 이국땅인 캐나다로 입양된 A씨(25 여 캐나다 온타리오). 캐나다에서 정규 대학교육까지 마칠 정도로 A씨에 대한 양부모의 뒷바라지는 헌신적이었다. 이런 A씨는 입양된 지 23년 맛?지난 2006년 10월 2일. 고국의 땅을 밟았다. 정신질환 탓에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지만 양부모는 생부모를 만나려고 고국을 찾겠다는 A씨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한국말을 단 한마디로 못하는 A씨가 모국에서 시작한 일은 강원도 춘천시 모 어학원에서 영어 강사. 이런 그녀에게 불행의 그늘이 덧씌워진 것은 귀국 2달 만인 지난 2006년 12월 10일. 한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데다가 지병 때문에 두통에 시달리기 시작하면서 A씨는 이날 캐나다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서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그러나 A씨는 이날 오후 3시 45분쯤. 피해망상증에 사로잡혔다. A씨는 택시기사에게 영어로 “총과 흉기가 있느냐?”라고 물었고 기사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있다는 식의 답을 했다. 순간 택시 운전기사가 자신을 해치려 한다는 생각에 신호대기 중이던 택시에서 황급히 내렸다. 그리고는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2차선 도로에 시동에 걸린 채 세워진 B씨의 승용차를 몰고 달아났다. 마침 승용차 안에는 B씨의 9살 날 딸이 타고 있었다. 놀란 차 주인 B씨는 부인과 함께 도망가는 차량을 막으려고 승용차 양쪽 앞문에 매달렸다. 하지만, A씨는 시속 30km 속도로 15m가량 달리다가 중앙선을 넘어 마주 오던 C씨의 승합 차량을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차량 두 대가 파손되면서 B씨의 부부가 각각 진단 2주의 치료를 받았으며 승합차에 타고 있던 C씨 등 4명은 경상을 당했다. 현장에서 붙잡힌 A씨는 구속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경찰이 A씨에게 적용한 법률은 교통사고처리 특례법과 도로 교통위반 혐의 등 모두 3가지. 단순하게 사고만으로 볼 때 A씨의 범행은 법망을 쉽게 빠져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A씨가 캐나다로 떠나기 직전에 양아버지에게 보낸 메일 한통이 구세주가 됐다. 머리가 아프다고 통증을 호소하는 딸의 소식을 알게 된 캐나다인 양아버지 링거(70)씨는 수양딸을 찾기 시작했다. 춘천 학원과 휴대전화로도 연락이 되지 않자 캐나다 한국대사관을 통해서 딸의 범행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순간 양아버지의 마음은 무너져 내렸다. 대사관 소개로 변호사를 선임하고 A씨는 노령에 나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머나먼 한국을 찾았다. 그리고는 곧바로 딸이 조사를 받는 경기도 의정부시의 한 모텔 생활을 하면서 변호사와 함께 딸을 선처해 줄 것을 검찰에 호소했다. 수양딸을 살려내려면 한가지의 시련이 더 있었다. 피해자들과의 합의금이었다. 공무원으로 정년을 마치고 연금으로 남은 삶을 보내던 양아버지는 자신의 가진 마지막 재산인 집을 내 놓기로 결심했다. 결국, 캐나다의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딸의 합의금을 마련했다. 변호사로부터 지병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검찰은 경찰의 수사를 토대로 재조사를 벌였다. 검찰은 정신 질환 탓에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결론을 짓고 기소유예처분을 내려 지난달 22일 A씨를 석방했다. 사건발생 12일 만에 A씨의 불행의 그늘이 검찰에 의해 떨쳐낼 수 있었다. 수사를 담당했던 의정부지검 형사4부 하충헌 부부장검사는 “A양이 한국어를 못해 통역관을 통해 조사하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라며 “피해자들과 합의가 이뤄졌고 양아버지의 애틋한 수양딸 사랑 때문에 선처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하 검사 부부는 A씨에게 병을 완치하고 나서 다시 모국을 찾아와 달라는 말과 함께 우리나라 전통양식이 달린 보석함을 선물했다. A씨는 수용시설에서 출소하고 나서 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고서 지난 4일 양아버지와 함께 캐나다로 향했다. 생부모를 찾겠다는 꿈을 가지고 고국 땅을 밟았던 A씨. 끔찍한 기억만 남길 뻔 했지만 양아버지의 사랑과 검찰의 선처로 새로운 삶을 찾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피 한방도 섞이지 않은 수양딸을 위해 일흔이라는 나이까지 헌신하고 자신의 마지막 남은 재산까지 내 놓는 양아버지의 조건 없는 사랑은 우리 사회에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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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5
잔디가 파랗게 돋아나고 있는 토론토. (사진은 한국방문시 첫눈)
잔디가 파랗게 돋아나고 있는 토론토. (사진은 한국방문시 첫눈) 춥기로 유명한 캐나다. 눈 많이 오기로 유명한 캐나다. 그러나 금년은 세계의 온난화 현상으로 따뜻하다고 하지만 금년 겨울과 같은 해는 처음이다. 아니 100년만의 일이라고 한다. 오늘이 1월 4일, 낮의 토론토 날씨는 영상 9도를 기록하고 있으며, 내일도 13도가 된다는 예보다. 들에 있는 산천초목은 봄을 제촉하듯 파랗다. 들판에 있는 잔디는 파랗게 새싹이 나오고 있다. 골프장은 여기 저기에서 아직도 개장하고 손님을 받고 있다. 많은 한인 골퍼들은 이맘때면 미국 남부 혹은 중남미로 골프 치러 가지만 금년은 토론토 근교에서 골프를 즐기고 있다. 토론토지역의 많은 골프장이 문을 연 가운데 한인사업가 신중화씨가 운영하는 오샤와의 콜롬버스골프장에도 하루 평균 250여명의 골퍼들로 북적이고 있다. 지난 2005년 6월말 개장한 이 골프장은 예년에는 11월말이면 문을 닫았으나 올해는 따뜻한 날씨 덕분에 계속해서 문을 열고 있다. 이 골프장은 별도의 예약을 받지 않고 오전 8시30분부터 오는 대로 내보낸다. 요금은 35달러 균일. 신 대표는 “겨울이 시작됐으나 한번도 문을 닫은 적이 없다. 올해는 따뜻한 날씨 덕을 많이 보는 것 같다. 눈이 내릴 때까지 문을 열 계획”이라고 한다. 예년 같으면 가장 추운 날씨인 1월 초순인데 저녁의 날씨도 영상의 날씨다. 눈 구경도 아직 못하였다. 필자는 11월 하순에 한국 방문을 하고 12월 하순에 돌아 왔다. 서울에 있을 때 12월 17일에 갑자기 밤새도록 약 20센 치의 눈이 내렸다. 그러나 이곳 토론토지역에는 아직 한번도 눈이 내리지 아니 하였다. 예년 같으면 눈이 가장 많이 내리며, 가장 추운 때이다. 작년도의 12월 평균기온도 사상 최고를 기록하였다. 그래서 토론토의 날씨가 '제2의 밴쿠버' 날씨로 바뀌고 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난 12월 한달 동안의 토론토 평균온도는 영상 1.9도였으며, 2007년도 1월 1일도 토론토 최고 기온은 9.2도로 역사상 가장 따뜻한 날씨로 기록되었다. 연방환경 성 데 이브 필립스 기상학자는 "아직도 토론토와 남서부 온타리오에는 겨울이 도착하지 않았다"면 서 "지난 6주 동안 이상고온이 계속되였다"고 말했다. 따스한 날씨는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관상대는 전망하고 있다. 지난 1일 공휴일에 토론토 남단 호숫가에는 스웨터 차림으로 산책에 나선 시민들이 줄을 이었고, 티셔츠와 반바지만 입고 조깅을 즐기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또한 각 몰(Mall)이나 쇼핑센터는 언제든지 계절을 앞서가지만 겨울 옷이 대부분 살아지고 여름 옷들을 진열하고 있다. 대부분의 겨울장사들은 망쳤다고 야단이다. 또한 전자제품 상점들도 마찬가지다. 금년도는 온난화 현상으로 말미아마 겨울을 바라보고 있는 모든 상인들이 울상이다. 스키장 역시 개장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의 이상고온과 관련, 필립스 기상학자는 "한달 기록만 놓고 지구의 기후가 변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며 "토론토 지역의 훈훈한 날씨는 제트기류가 예년보다 북쪽을 통과함에 따라 미국 남서부의 따스한 기단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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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21
김태촌씨의 캐나다 입국, 출국명령과 체류허가 (사진)
김태촌씨의 캐나다 입국, 출국명령과 체류허가 (사진: 김태촌씨) 출국명령 받았든 김태촌씨 합법적으로 6개월 비자 받아 1970-80년대 한국의 주먹계를 주름잡았든 서방파의 두목출신인 김태촌(58세)씨가 33년간의 복역을 끝으로 기독교에 귀화하여 새 신앙인으로 변하였다. 그는 한때 정ㆍ재계는 물론 연예계까지 인맥을 넓히며 활동하다 뉴 송도 호텔 나이트클럽 사장 폭행 사건을 계기로 폭력계의 대부로 우뚝 섰다. 그는 복역 중 폐암 진단을 받은 뒤 수술 등 건강상의 이유로 한때 형 집행정지로 풀려나기도 했지만 1992년 `범서방파' 결성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조직범죄단체 구성 죄가 인정돼 징역 10년형을 받고 줄곧 수감생활을 했다. 특히 조직범죄단체를 구성한 혐의로는 처음으로 검찰로부터 1심과 2심에서 모두 사형이 구형됐고 1심에서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었다. 이처럼 오랫동안을 복역한 김태촌씨는 2004년 10월 풀려난 뒤 보호감호 처분을 받아오다 지난해 7월 사회보호법이 폐지되면서 `온전한 사회인'으로 돌아왔다. 김씨는 인천에 있는 인천순복음교회에서 집사로 활동하면서 최근까지도 소년원, 경찰서등과 TV 등을 통해 신앙 설교 및 간증을 해 왔다. 그는 특히 최근 경찰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는 "청송교도소 수감 시절 아내가 유산했다는 소식에 목을 매 자살을 기도했지만 숨이 붙어 있었고, 반 평짜리 독방 마룻바닥을 헤매던 나를 일깨운 것이 성경책이었다"며 창세기를 5분여간 외워 경찰 신도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김태촌씨는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캐나다 한국일보사의 초청으로 한달 가량에 걸쳐 토론토를 비롯, 해밀턴, 런던, 몬트리올 등지를 돌며 신앙간증집회를 가질 예정이었으나 연방이민성의 예기치 않은 개입으로 10월 15일(일) 캐나다를 떠나라는 출국명령을 받게 되였다. 지난 14일 한국일보 도산홀에서 열린 김씨의 첫 강연회는 행사 시작 전 갑자기 들이닥친 이민성 수사관들로 인해 자칫 무산될 뻔한 위기를 맞았다. 이민성 불법체류자 단속반 소속의 수사관 2명이 토론토경찰국 소속 한인경관 케빈 정씨를 통역으로 대동하고 나타나 출입국관리법 위반혐의로 김씨의 연행을 시도한 것. "한국의 조폭보스가 강연회를 갖는다"는 익명의 제보를 받고 행사시작 15분 전인 오후 6시15분경 도착한 이들은 강연회 사실을 확인한 후 김씨와 초청자인 이형관 목사(토론토 성석교회 담임)를 심문한 뒤 강제동행을 요구했다. 이민관들은 한국에서 폭력조직을 지휘하고 총 33년간 수감생활을 한 김씨가 "출입국관리법(371-A•361-B)에 따라 이민장관의 허가 없이는 입국할 수 없는 인물"이라며 이민성의 불법이민자구금센터(Immigration Holding Centre)로 연행하려 했다. 그러나 수사관들은 한국일보 행사관계자와 이 목사의 설득에 일단 예정 되여 있던 강연을 30분 가량 진행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우여곡절 끝에 예정시각보다 30분 가량 지연된 7시경 단상에 선 김씨는 자신의 어두웠던 과거와 파란만장했던 삶을 담담한 목소리로 고백했다. 지난 13일(금) 연방이민성 인터뷰에서 강제추방을 집행하지 않는 조건으로 17일(화) 중 자진출국 의사를 밝혔던 김씨는 지난 16일(월) 변호사와 함께 이민성의 담당수사관을 다시 찾아가 출국조치의 부당성을 호소, 입국일(10월3일)로부터 6개월 동안 합법적으로 국내에 머물 수 있게 됐다. 통상 무비자 방문자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6개월간 체류할 수 있다. 체류허가 6개월동안에 그가 무엇을 헐것인지에 대하여 자세히 알려지지 않이 하였으나, 그는 간증집회를 목적으로 입국하였음으로 간증집회나 조용히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가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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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14
캐나다 명예시민 된 다라이 라마 (사진)
'평화의 사도' 달라이 라마 역대 세번째 캐나다 명예시민 되었다.' 몬테 솔버그 연방이민장관은 9일 밴쿠버를 방문한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에게 개인자격으로 명예시민권을 수여했다. 솔버그 외무장관은 명예시민권을 전달하는 자리에서 “당신은 인간 존엄성의 승리자이며 우리는 당신이 전하는 평화와 친절, 인도주의적 호의의 가치를 열망한다”고 말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달라이 라마로부터 ‘행복을 가꾸는 법’에 관한 연설을 듣기 위해 자리를 메운 1만여 군중은 이 광경에 환호를 보냈다. 이날 수여식은 지난 6월 국회가 달라이 라마에게 사상 3번째로 명예시민권을 수여하는 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한 데 따른 것이다. 과거 캐나다정부로부터 명예시민권을 받?사람은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대통령과 2차 대전 때 유대인 탈출을 도운 스웨덴 외교관 라울 발렌버그 뿐이었다. 한편 달라이 라마를 ‘위험한 분열주의자’로 규정하고 있는 중국은 캐나다의 이러한 결정에 강력한 유감을 표시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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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24
한국이 캐나다 오일세드 2억5000만 배럴 광구 구입
한국 2억5000만 배럴 오일샌드 광구 주인됐다 (사진설명 : 정세균(오른쪽) 산업자원부 장관이 지난달 30일 알버타주 콜드레이크(Cold Lake)를 방문, 임페리얼오일(Imperial Oil)사의 오일샌드 채굴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한국이 2억5000만 배럴가량의 원유가 매장돼 있는 캐나다 오일샌드(원유 성분이 함유돼 있는 모래) 광구의 주인이 됐다. 국내 하루 원유 소비량이 230만 배럴임에 비추면 이 광구에서 나는 원유만으로 110일 정도를 지낼 수 있는 셈이다. 석유공사는 캐나다 앨버타주의 블랙골드 오일샌드 광구 지분 100%를 미화 2억7000만 달러(약 2565억 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맺었다고 24일 밝혔다. 이에 대한 인수 대금은 모두 석유공사 자금으로 충당한다. 석유공사는 2008년 본격적으로 생산시설 건설을 시작해 2010년부터 하루 3만5000배럴의 원유를 25년 동안 생산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연간 5억 달러가량의 매출이 예상된다. 산업자원부는 앞으로 2~3년간 이 광구의 생산설비 부문에 4억~5억 달러 규모의 투자가 필요하며 정제 판매 설비부문에 국내 기업들이 진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오일샌드는 생산비용이 비싸 그동안 큰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최근 유가가 오르면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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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04
캐나다는 미국의 최대 원유 공급국
캐나다는 미국의 최대 원유 공급국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캐나다가 미국의 최대 원유 공급국임을 모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28일 캐나다 언론 보도애 따르면 캐나다 미국 상공위원회(CABC)가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최대 원유공급국이 캐나다일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4%에 불과했다. 그러나 응답자의 41%는 가격이 비싸더라도 공급이 불안정한 지역에서 석유를 확보하려는 것보다 캐나다에서 석유를 수입하는 것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CABC의 랜돌프 도브 의장은 "미국 국민들은 캐나다산 에너지와 공급확대를 지지한다는 의미있는 조사 결과"라고 분석했다. 이 조사는 캐나다 알버타주 정치인, 상공인 그릅이 워싱턴을 방문해 풍부한 원유를 보유한 알버터로부터 에너지를 확보할 것을 홍보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3일부터 15일 사이에 실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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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04
7월 1일은 캐나다데이 (사진:캐나다기)
7월 1일은 캐나다데이 매년 7월 1일은 캐나다데이다. 이에 대한 유래를 알 필요가 있다. 1860년초에 캐나다 정착인구가 급증하였댜. 특히 영국계 주민들이 늘어났다. 영국계 주민들은 인구에 비례하는 정치제도를 요구하고 나섰으나, 불어권이 이에 반발, 캐나다 통합 움직임은 제자리에 머물렀다. 이에 영국계와 프랑스계 정치지도자들이 연대, 1864년 9월 1일 프리세스 에드워드 아일랜드주 샬롯타운에서 회의를 갖고 연방 결성을 주도했다. 이후 4년에 걸친 협상끝에 온타리오, 퀘벡, 노바스코시아, 뉴 브런스윅 4개주가 참여한 캐나다 연방이 탄생했으며, 1867년 6월 20일 당시 총독 몬크경은 "7월 1일부터 캐나다가 출범한다"고 선표했다. 1879년 연방의회는 7월 1일을 도미니언데이라는 명칭의 공휴일로 지정했다. 이후 캐나다 자체현법을 제정한 1982년 연방정부는 "도미니언데이"를 "캐나다 데이"로 바꾸고 건국일로 전국에 걸쳐 기념식을 거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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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21
토론토 다운타운에
토론토 다운타운 ‘대~한민국’ 붉은 물결 박지성 기적의 동점골, 프랑스와 1:1 무승부 캐나다 최대도시 토론토의 도심한복판이 온통 붉은색 물결과 태극기로 넘실거리고 “대~한민국”의 함성이 천지를 진동했다. 월드컵 한국-프랑스전이 벌어진 18일 오후 메트로토론토컨벤션센터는 6천여명(주최측 잠정집계)의 한인인파가 운집해 문자 그대로 열광과 환호의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해냈다. 비공식 통계로 이날 한인관중 수는 캐나다에서 벌어진 단일행사 사상 최대로 기록되게 됐다. 오후3시 경기시작에 앞서 일찌감치 수많은 한인들이 물밀 듯이 집결하기 시작한 컨벤션센터는 오후1시30분부터 붉은 악마 응원퍼레이드, 경품추첨 등 다채로운 행사가 벌어짐으로써 분위기가 고조되기 시작했다. 행사장에 준비된 좌석이 3000여개에 불과해 젊은 학생 등은 맨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야 했지만 관중들은 불편한 자리에도 전혀 아랑곳없이 시종 흥겹게 응원전을 펼쳤다. 관중들의 응원매너도 질서정연했으며 행사가 끝난 후에는 스스로 쓰레기 등을 말끔히 정리함으로써 수준 높은 시민의식을 과시했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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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24
고 이종욱 박사 - 토론토 스타에서
WHO chief dies after brain surgery May 22, 2006. 08:14 AM GENEVA (AP) ?Dr. Lee Jong-wook, who spearheaded the World Health Organization's successive battles against SARS and bird flu, died Monday after undergoing emergency surgery for a blood clot in his brain, officials said. He was 61. Lee died at 7:43 a.m. Monday morning, said a WHO statement. Anders Nordstrom of Sweden, whom Lee had named to take over in an emergency, will serve as acting director-general. "All of the staff of the World Health Organization extend their most sincere condolences to Dr. Lee's family. The sudden loss of our leader, colleague and friend, is devastating," the statement said. "He had been in hospital since Saturday afternoon, where he underwent surgery to remove a blood clot on his brain," it added. Lee, who took over as director-general of WHO in 2003 as the agency battled the SARS outbreak in Asia, fell ill Saturday afternoon while attending an official function. After the threat from SARS, or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was contained, WHO turned its attention to bird flu amid fears that the virus could mutate into a strain easily transmitted among people. The agency oversaw a number of preparatory meetings as the experts sharpened their plans. WHO built up a reserve of antiviral medicines and encouraged vaccine research. At a global donors' meeting in Beijing in January, $1.9 billion US was pledged to the fight against bird flu and preparations for a potential pandemic. Lee worked for WHO for 23 years, including time served in regional posts. He was the first South Korean to head a UN agency, after winning praise for his low-key but efficient management style as head of the agency's tuberculosis program. Time magazine named Lee one of the world's 100 most influential people in 2004. UN Secretary-General Kofi Annan sent his "sincere condolences" to Lee's family and WHO staff members, said Sergei Ordzhonikidze, head of UN offices in Geneva. It is a "very sad bit of news," Elena Salgado, Spain's health minister and president of the World Health Assembly, said Monday at the opening of the annual meeting of the 192 members of WHO. Flags flew at half-staff on the UN building, where the meeting was taking place. Lee "was an exceptional person and an exceptional director general," Salgado said. Lee originally said he wanted to improve international monitoring to help tackle outbreaks of diseases like SARS and that his mandate would be defined by the fight against HIV/AIDS, particularly in the hardest-hit poor countries. But his time in office came to be dominated by the high-profile spread of bird flu through Asia, Europe and Africa and its potential for causing a human influenza pandemic. "We know another pandemic is inevitable," Lee told a 2004 meeting of experts to discuss preparations for the emergence of a new strain of flu virus, expected to come from a change in bird flu. "And when this happens, we also know that we are unlikely to have enough drugs, vaccines, health care workers and hospital capacity to cope in an ideal way. So we must act wisely." Lee was elected by WHO's executive committee in January 2003 to replace Gro Harlem Brundtland, a former Norwegian prime minister who stepped down after successfully transforming WHO from a disillusioned and badly managed organization to a high-profile agency which has put health firmly on the global political agenda. Lee, a tuberculosis expert, had previously run WHO's Stop TB program. He was the only WHO insider in the race for the top job in 2003 and the only candidate never to have held a ministerial or top UN post. Although initially regarded as a political lightweight, he showed his acumen early on in the race by persuading 53 members of the U.S. Congress to write to Secretary of State Colin Powell and Tommy Thompson, the health secretary, backing his candidacy. "I knew Dr. Lee for many years and had nothing but the highest admiration for his commitment to global public health," said Dr. Shigeru Omi, WHO's regional director for the Western Pacific. "He will be sorely missed." Lee is survived by his wife and 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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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0
2006-05-20
아프간 주둔 캐나다군 여군장교 전사 (전사한 니콜라 여장교)
아프간 주둔 캐나다군 여군장교 전사 (사진:전사한 니콜라 고다르) 파병연장 2009년까지로 149대 145로 국회 통과 니콜라 고다르(Nichola Goddard ) 대위는 아프카니스탄 칸다할시에서 서쪽으로 24키로메터 떨어진 곳에서 17일(수요일) 오후 6시 55분에 텔레반 잔당과 전투과정에서 총격을 당해 전사하였다고 캐나다군 여단장 데이빗 프레이저 장군이 발표하였다. 그녀는 26세의 포병장교로써 캘거리 출신이다. 군사소식통에 의하면 캐나다 여군이 사망하기는 2차대전 이후에 처음 있는 일이며, 아프가니스탄 주둔 캐나다 여군의 최초의 전사자다. 전투 중 사망한 캐나다 여군으로는 1,2차 세계대전에서 산화한 5명이 있다. 칸다하르에는 현재 2300명의 캐나다군이 파병돼 있으며 사망자로는 니콜라 대위를 포함 군인 16명과 외교관 1명이다. 니콜라 대위 사망과 관련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 프레이저 준장은 "반군과의 전투가 벌어졌고, 교전 중 니콜라 대위가 숨졌다"고만 말했다. 그는 "니콜라는 자신의 임무에 헌신했으며, 이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고 덧붙였다. 니콜라는 아프간서 사망한 17번째 병사다. 캐나다 여단장인 프레이저 장군은 “니콜라 대위는 주둔군의 임무가 아프간에 평화와 안보, 희망을 싹 틔우는 고귀한 일이라는데 자부심을 갖고 있던 훌륭한 군인이었다”고 말했다. 아침 부인의 사망소식을 통보 받은 제이슨 빔씨는 "니콜라는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는 3년 반 전에 결혼했고, 아이는 없다. 니콜라의 부모는 캘거리에 거주하고 있으며, 그녀의 장례식 역시 그곳에서 치러질 예정이다. 니콜라는 8년 전에 입대했다. 비보를 전해듣고 고인의 명복을 빈 스티븐 하퍼 연방총리와 빌 그래햄 연방자유당 당수는 무장세력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말로 캐나다군 연장 주둔을 거듭 강조했다. 현재 캐나다에는 62,000명의 군이 있으며 그 중 전투병은 12,000명에 불과하다. 캐나다의 여군은 약 15퍼센트에 불과하며, 그 중에서도 전투병은 225명에 지나지 않는다. 여군은 주로 운전사, 정비사, 항공교통 관제관, 소방요원 등에 근무하고있다. 한편, 국민들의 여론에도 불구하고 연방하원(국회)은 내년 2월로 끝나는 아프간 파병을 2009년까지 연장하는 안을 이날 표결에 부쳐 찬성 149표•반대 145표로 통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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