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는 전반적으로 비가 많이 오지 않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는데, 2026년 8월의 그날 아침 그 순간은 이상하리만큼 유난히 소나기가 퍼부었다.
집안에서 일찍부터 서둘렀어도, 몸을 마음대로 잘 못 움직이는 남편을 차에 모시고 병원엘 가야 하는 일은 늘 전쟁이었다.
그때 만큼은 안 왔으면 좋았을 소낙비가 참전했고, 바람까지 적군이 되어 순간적으로 남편도 젖었고, 나를 물에 빠진 생쥐처럼 만들어버렸다. 아파트 로비 앞의 차도에 미리 갖다댄 우리차까지는 아주 가깝지만, 휠체어에서 안아 운전석 옆에 앉게 하기까지는 큰 전쟁이었다. 남편 78kg, 나는 57kg, 어찌 전쟁이 아니겠나.
비와 땀에 젖은 머리와 옷이며 손이 문제도 아니었다. ‘어서 병원으로 가야지.’ 운전석 문을 닫고 숨을 고를 틈도 없이 또 다른 전쟁, 빗속을 앞만 보고 액셀을 밟았다.
‘빨리, 안전하게, 무사히’ 라는 정신 하나로 노스욕제너럴병원 정문 앞까지 왔다. 부리나케 차량 트렁크를 열고 휠체어를 꺼내려 하자, 갑자기 나타난 안토니 씨가 휠체어를 번쩍 꺼내어 운전석 옆에 타고 있던 남편 앞에 갖다 대며 남편 손을 붙잡아 끌어안고, 휠체어에 태운 후, 나보고 빨리 병원 문을 열라 했다. 비가 오니까.
휠체어에 탄 남편을 병원 안에까지 쑤욱 밀어 주고, 그는 빗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어안이 벙벙할 뿐, 세상에 이런 고마운 일이 어디 있나? 세상에 이런 복도 받나 보네.
안토니 씨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폴란드 사람이고, 자주 보는 편이다.
은퇴했다 하지만 65세쯤, 70세는 아직 안 된 것 같다. 머리는 희지만 건장한 체격에 평소 말수가 적고 조용한 사람으로, 엘리베이터 안에서나 아파트 밖에서 보면 눈짓 한번, 고개 끄덕임 한번 그게 전부인 사람이었다.
오늘은 어찌하여 내 차 뒤를 순간적으로 쫒아왔을까, 아마도 아파트 앞의 빗속에서 전쟁을 치르는 나를 보았을 것이고,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즉시 내 차 뒤를 따라온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순간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해 행동했을까, 그의 순발력! 정말 감동, 감탄, 놀랄 일이다.
또한 나는 빗속을 운전하면서 뒤를 돌아다 볼 여념이 없었고, 그가 내 차를 따라와서 나를 도우리라는 것은 꿈에도 상상을 못했다.
안토니 씨가 나를 따라와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은, 오래 고민한 판단이 아니었고, 머리로 계산한 판단도 아니었다고 본다. 순간적으로 마음이 먼저 움직였고 몸이 따른 순발력이었다. 판단할 시간이 단 몇 초라도 있었나?
순발력은 단순히 몸이 빠른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순발력은 남의 어려움을 순간적으로 알아채는 감각이며, 즉시 행동으로 이어지는 용기다.
생각이 빠른 사람보다 마음이 먼저 반응하는 사람이 더 순발력 좋다는 말이다.
안토니는 그날, 비를 가르며 내 뒤를 쫒아와 보여준 것이 있었으니, 순발력은 기술이 아니라 품성이라는 것이다.
순발력은 재능이 아니라 배려의 따뜻한 속도라는 것을.
순발력은 위기 속에서 누군가를 먼저 돕는 인성.
순발력은 순간의 판단이 아니라 평생의 인격이 만들어 낸 반응이라는 것을.
나도 생각이라는 것을 해보니, 세상은 삭막하다지만 따뜻한 사람들이 있기에 지구가 돌고 있다는 것을. 그날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귀한 감동의 날, 토론토에 비가 마구 쏟아지던 날, 순발력이라는 이름의 따뜻한 속도를 가진 사람을 만난 날. 그런 사람을 만난 날은 비가 억수 같이 쏟아져도 정말 좋은 날.
나도 정녕코 남을 돕는 순발력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만 하늘 높이 오른다. (2026. 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