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kim3000
김영수

부동산캐나다 칼럼 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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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가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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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 해가 진다. 황야에 스며드는 어둠이 모든 것의 경계를 지우고 있다. 뭇 생명이 휴식에 드는 시간. 유목민 한 사람이 이동식 천막집인 게르에서 나오더니 어린 낙타를 줄에 붙들어 맨다. 태어난 지 며칠밖에 안 된 것이 밤 동안 길을 잃고 헤매면 어쩌나 싶어서다. 어미는 놔둬도 괜찮을까. 세상의 모든 어미는 어린 제 새끼 곁을 떠나지 못한다. 새끼만 단속하면 모성은 저절로 묶이는 것이 자연의 질서이고 천륜이다. 어미는 멀리 가지 못하고 밤새 어린것의 곁을 지킬 것이다. TV 화면 앞을 떠나지 못하는 나도 어미의 밤샘에 동참하고 싶다.

 

동이 트면서 모래바람이 분다. 붉은 해를 등지고 서 있는 어미 낙타 다리 사이로 무엇인가 보인다. 새끼 낙타다. 어미와 새끼 낙타가 한동안 서로 반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소 눈을 닮은 어미 낙타의 눈이 먼 기억을 더듬는 듯 허공을 향한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것은 제 어미 몸에 머리를 비비며 응석을 부린다. 무슨 영문인지 어미는 새끼가 젖을 물지 못하도록 몸의 방향을 틀어버린다.

어린것은 애절한 눈빛으로 어미를 응시하며 제 어미를 빼닮은 눈을 끔벅거리고 있다. 허기진 새끼 낙타가 다시 한 번 어미 품을 파고든다. 이번에도 어미는 거부의 몸짓을 분명히 한다. 순하디 순한 눈망울에 어울리지 않는, 어린 제 새끼에 대한 저 집요한 거절은 무엇인가. 난산의 기억 때문이라지만 어쩌면 어미로서의 삶 자체를 거부하는 몸짓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목숨마저 위협하던 출산 기억이 어미 낙타의 속눈썹에 내려앉아 시야를 가렸는지, 아니면 막막한 사막에서 어미로 살아갈 내일이 버거운 것인지. 주위는 숨소리조차 삼킨 듯한 적요에 시간이 멈춘 것 같다. 어미는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표정이다. 어미가 어린것에게 젖 물리기를 거부하는 위태로운 시간이 끊어질 듯 이어지고, 지켜보는 나는 침이 마른다.

 

어미 낙타의 마음을 어쩐지 이해할 것 같다. 난산으로 내 아이를 얻은 시간은 무거웠다. 무슨 이유로 물 마시는 게 금지됐는지 몰라도 하루를 넘는 진통 시간 동안, 나무토막처럼 마른 혀가 입안에서 덜거덕거리던 기억은 꿈속에서도 갈증을 불렀다. 내 옆에 눕힌 아기 머리가 고깔모자를 쓴 것처럼 뾰족했다. 그게 낯설어 나는 다른 산모들처럼 내 아이를 선뜻 받아 안지 못했다. 출산할 때 아기 머리가 보일 무렵 정신을 잃어서 아기를 흡입기로 뽑아냈다는 걸 며칠 지나서 알았다. 진통하는 시간의 터널을 같이 건너온 어린 생명에 얼마나 미안했는지. 제 어미와 생사를 함께한 아기를 안고 마음 저리던 느낌은 세월에도 퇴색하지 않고 꿈틀거린다.

 

자신이 속한 세계를 벗어나는 꿈을 버리지 못한 영혼처럼, 어미 낙타의 눈빛이 외롭게 흔들린다. 어미의 거부 의지가 저리 확고하면 머지않아 새끼를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있다. 새끼를 살려야 하는 주인은 어미 낙타의 마음을 움직여줄 연주자를 부르기로 한다. 머리 부분이 말머리 모양이라서 마두금(馬頭琴)이라 불리는 악기는 자그마한 직사각형 울림통에 두 줄이 달린 유목민 전통 현악기다. 구슬픈 곡조가 가슴 깊은 곳을 울리며 고요한 사막에 울려 퍼진다. 모든 것이 지워진 공간에 하늘과 낙타와 음악 소리만 존재한다.

 

얼마쯤 지났을까. 어미의 커다란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한다. 낙타가, 울고 있다. 눈 아래 털을 적시며 흐르던 굵은 눈물방울이 모랫바닥으로 툭, 툭, 떨어져 내린다. 한 방울, 또 한 방울, 결코 우연일 수 없는 눈물이다. 애절한 음악에 감동하여 우는 동물을 보며 주인과 연주자가 내쉬는 안도의 숨이 다큐멘터리 화면 밖으로 새어 나오는 듯하다. 은닉해 있던 어미 낙타의 모성이 음악과 교감하여 눈물로 승화한 것일까. 곁에서 남의 새끼가 굶어 죽어도 자기 젖을 내주지 않는 비정한 낙타라지만, 마두금 연주에 감동하면 눈물 흘리며 젖을 물린다니.

 

주인이 새끼 낙타를 데려온다. 긴장되는 순간이다. 어린것은 허공에 시선을 둔 채 눈물 떨구는 어미의 젖을 불안한 듯 두려운 듯 더듬어가며 문다. 어미는 젖은 눈으로 조용히 새끼를 받아들인다. 그토록 배타적이던 사랑과 화해하는 장면에, 나는 내 아이를 품에 안던 순간을 떠올리며 울컥한다. 연주자의 손에서 풀려 나오는 악기 소리, 그건 해독할 수 없는 신비였다. 그 소리는, 동물의 감성을 어루만지던 영상 속의 시간마저 울리는 힘이 있었다.

 

태양이 사정없이 내리쬐고 사막은 침묵하며 모래바람을 부른다. 바람이 훑고 가는, 길 없는 길을 오늘도 수많은 생명이 걸어갈 것이다. 어떤 이는 막막한 사막에서 모래바람의 노랫소리를 들을 것이고 또 어떤 이는 낙타의 눈물을 기억할 것이다. 구도승처럼 끝없이 걸으며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는 낙타의 행보에서 인간의 모습을 본다. 죽음에 드는 순간까지 저마다 숙명처럼 짊어진 삶의 하중을 견디면서 묵묵히 걷는 인간의 모습과 어찌 그리 닮았는지.

오늘처럼 내일도 낙타는 제 몸보다 무거운 등짐을 지고 걷는 일을 멈추지 않으리라. 모래바람이 불어와 어제의 모든 흔적을 지우는 그곳 광활한 사막에, 자신의 발자국을 새기며 끊임없이 걸어갈 것이다. 인간도 낙타도, 그 뒤를 따르는 눈물로 키워낸 어린 생명들마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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