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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기에 좋았더라!
yeodongwon

 

자고 나면 쌓이는 눈 치우느라 지겹던 금년의 긴 겨울도 언제였나 싶게 봄이 성큼 문밖에 와있다. 이제 봄이 꽃 치장으로 한끝 멋을 내면 나는 봄맞이에 설레어 “보기 좋구나!” 감탄할 것이다.


하늘도 자신이 스스로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고 “참 좋았다”(창1-31) 하셨다니 내 마음도 이때만은 하늘마음 닮았는가 싶어 흐뭇해 할 것이다. 그런데 그 하늘마음에도 내 맘처럼 ‘좋다’ ‘나쁘다’ 란 상대성이 있다는 게 참 신기하다. 하늘은 스스로 좋은 절대성일 터이니 말이다.


편견과 아집 덩어리인 내 눈에도 우주는 나무랄 데 없이 완벽하고 보기 좋은, 그 자체가 절대치가 되기에 충분한 조건이거늘 하늘이 보시기에 견줄 무엇이 있겠는가?


절대치 하늘은 스스로 참이고, 착함이고, 고움이지만 상대적 가치에 늘 옳고 그름에 흔들리는 내 눈에도 무슨 꽃이건 꽃은 웃는 아이처럼 곱다.


더 감탄할 일은 봄이라는 계절이 더불어 꽃이라는 화사함으로 사철의 시작을 만물에게, 아니 나에게까지 선물하고 있다는 것, 하늘 의도가 담긴 배려의 선물임이 분명하다. 종교에선 이를 은총이라 한다던가.


 나는 이웃들 없인 잠시도 못산다. 하늘과 땅이, 물과 공기가 있어야 하고 뿌리, 열매, 짐승들이 있어야 산다. 해서 나는 그 이웃들과 동무로 친해지고 서로 사랑해야 산다. 그렇게 사랑하라고 하늘은 만물을 스스로 보시기에 좋게 만들었는가 싶다. 


내 눈엔 우주의 어떤 형상에도 뜻 없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없으며, 그 나름의 이유를 갖고 서로 인연적 관계로 얽혀 앞의 형상이 뒤에 올 형상에 영향을 주는 인과율(因果律)로 존재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길가 꽃 한 송이도 청순한 고움으로 피는 이유는 스스로 아름다움으로 상대의 마음을 뺐고 즐거움을 선사하는 주고 받음이라는 사랑의 표본으로 보인다. 


사랑은 만물이 서로 부드러움의 관계로 존재하라는 하늘의 메시지이며, 만상의 존재이유 이고, 우주가 살아있음의 증거이며, 우주운행질서를 관장하는 기(氣)의 본체가 아닌가 싶다.


삼라만상이 구체적 성질로 그 기(氣)를 증명하고 있음은 서로 피부로 느끼라는 하늘 의도가 분명하다. 


꽃이 아름답게 보임은 색이 있음이요, 그 향기에 취함은 냄새가 있음이며, 그 태가 보기 좋음은 모양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좋다” “안 좋다”라는 비교치를 갖는다는 것 자체가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할 의도임이 분명하고, 그래서 좋음은 좋음의 가치로 안 좋음은 안 좋음의 가치로, 그 가치로는 하등의 차이가 없다. 


천당은 지옥이 있기 때문이며, 선은 악이 있기 때문이다. 백은 흑이 있기 때문이요, 높음은 낮음이 있기 때문이다. 천당과 지옥, 선과 악, 높음과 낮음은 비유적 차이이지 차별일 수는 없다.


내 맘 비록 바람 따라 흔들리는 갈대 같아도 하늘 맘 닮아져 보는 것들이 보기에 좋아 사랑으로 대하게 되리라는 희망, 위선일지라도 버리고 싶진 않다. 


나는 뭔가 만들기를 즐긴다. 어떤 것은 구상한대로 안되어 실망하기도 하고, 어떤 것은 잘되어 “보기 좋구나!” 하기도 한다. 


창세기에 하늘이 스스로 구상한 기대치 이상으로 삼라만상이 만들어져 “보시기에 참 좋았더라” 하셨다는 만족의 의미는 만상이 사랑스럽다는 뜻 아닌가.


춘삼월 봄이라 만물이 잠 깨어 움트고 꽃피니 내 보기에도 하늘 맘 닮아 “참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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