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21 전체: 98,727 )
나의 꿈은?
yeodongwon

 

어린 내게도 꿈이란 게 있었던가? 있었다면 무엇이었을까? 당시의 내 처지에 꿈은 사치였는지 모른다.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라는 선택이 없던 절대빈곤에서도 끼니를 거르지 않는 처지만으로도 복인 시절이었으니 어린 가슴에 포부, 꿈이란 게 있었다면 되려 사치였을 게다.


그런데 이제 삶의 마무리 나이가 되어서인지, 뭔가 해야 했을 걸 안 한 것 같은 아쉬움이 걸린다. 이게 무얼까? 혹 꿈이었는지 모른다. 주어진 환경에 그저 그렇게 안간힘도 노력도 없이 무덤덤하게 산, 그래서 결산할 성적 따윈 없는 것이 당연한데, 그 무언가 없는 빈손에 허전해 할까?


내가 만약에 성공이라는 꿈을 향해 살았는데도 꿈을 이루지 못했다면 당연히 못다 이룬 허탈감이라도 있을 터이지만, 세월에 실리어 구름에 달 가듯 흘러 산 이력에 허무해 할 것도 없는데, 아마도 꿈 없이 산, 되돌릴 수 없는, 다 써버린 일회용 삶의 낭비가 그렇게 아쉬운가 보다. 


후회나 아깝다는 건 하고 싶었던, 되고 싶었던, 갖고 싶었던, 이루고 싶었던 게 있었다는 말 같은데, 그렇다면 꿈을 못 이룬 것이 서운한 것이 아니라 꿈이란 걸 못 가졌던 그게 그렇게 서운한가 보다. 


그러고 보면 꿈 없이 산 내 삶이 꿈이 많았다는 역설도 성립 되는데, 만약에 하루하루 구름에 달 가듯 세월에 실리어 주어진 숙명에 순응하며 산 모범답안지 같은 내 삶 속에 응어리진 꿈 뭉치가 나도 모를 사이 가슴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다면 도대체 그게 무얼까? 나도 궁금하다.


산 첩첩 지리산 산골마을에서 나는 유년기를 보냈었다. 동네 앞 강변 모래사장에 여름 저녁이면 몰려나온 아이들과 미역도 감고 씨름도 하며 놀다 나란히 누워 별 하나, 별 둘, 별 셋 헤다 잠이 들곤 했다.


그때 나는 밤하늘 별을 헤다 그 별 끝 간데 그 너머가 궁금했었고, 저 산 첩첩 그 산 너머는 누가 그리고 무엇이 있을까? 저 별천지 그 너머 밖은 어떤 세계일까? 가 궁금했었던 것 같은데, 그런 궁금증을 뒤집어 보면 내가 크면 저 산을 넘겠다는 뜻이고, 하늘 끝간 데를 가보고 싶다는 뜻이 된다. 


이 뜻이 바로 나의 꿈이 아니었나 끼어 맞춰보니 꿈 하나 야무졌구나 위로가 된다. 비록 이루지 못한 개꿈이 되었지만 서도. 아니지, 산 너머 바다 건너 하늘을 날아와 이렇게 이민해 살고 있으니 꿈 하나 야무지게 이루었단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모든 생물은 주어진 환경에 유전적 습성으로 적응하며 살아가지만 인간만이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는 삶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꿈이라는 4차원적 품격의 삶이라면, 그게 바로 삶의 진화를 위한 동력이다.


다 생각 나름이다. “산은 산이오 꿈은 꿈이로다” 허허하며 남은 생을 그렇게 살 일이나, 꿈이 목적이 되면 부담이고 짐이니 짐 없이 과정에 실리어 세월을 벗하며 흘러 산 내 삶이 맹물 같을지라도, 그저 그렇게 굴곡 없이 살게 해준 어딘가에 되려 감사할 일일는지 모른다.


오늘도 격 없는 동무, 몇 커피 집에 불러내어 조잘대며 한나절을 보낼까?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손자 손녀와 어울려 놀까? 아니면 주인인 내 앞에선 깜박 죽는 통끼(개) 놈이나 데리고 크레디트강변 따라 펼쳐있는 공원 숲길이나 거닐며 판소리 ‘사랑가’ 한 곡 늘어지게 뽑아볼까?


행복은 먼데 걸린 무지개가 아니라 바로 이런 게 아닌가, 하면 아무래도 궁상 변명으로 들리겠지? 하긴 6/49 복권을 이번 주도 샀으니 말이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