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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의 미학(8)-새끼줄의 과정학적 영원성
yeodongwon

 

 

(지난 호에 이어)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인간 생명체에서 ‘나’라고 하는 토막 개체 생명체는 긴 새끼줄 속의 한 오라기 지푸라기처럼 보여진다. 


우리 인간의 삶이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라 여겨져 “과정에 산다”라는 긴 글을 쓰고 있는데, 나는 이 긴 글을 시작할 때 80년 전 어느 날 시작된 내 삶의 과정을 통해서 얻은 것들을 차분히 수필 쓰듯 써나가려 했다. 그 영감과 느낌은 살아가는 역사기록과는 다르기에 자서전 형식이 아닌 수필 형식을 빌어 쓰여져야 격에 어울릴 것 같아서다. 


삶이란 미리 짜고 쓰는 소설적이라기보다 상황 따라 쓰여지는 수필적이라 여겨서다. 미리 정해 논 코스가 아니라 시시각각의 상황에 따라 생각하고 선택하며 살아지는 너무도 수필적이지 않은가?


그렇다. 지금 진행형으로 하고 있는 내 삶의 과정이 비록 일회적인 제한된 시간 속의 기회이긴 해도 영원히 살아 움직일 우주운행섭리 속의 한 생명체에 속해있기 때문에 그 공간과 시간의 일부를 내가 담당하고 있다는 자긍심으로 썼다.


우주의 일부로서 내가 담당하고 있는 나의 삶이란 토막 모양이 마치 긴 새끼줄 속의 ‘지푸라기 한 오라기’ 같아 보여서다.


당신은 새끼줄을 어떻게 꼬는가를 아는가? 나는 8살 때 해방이 되어 일본에서 귀향하여 지리산 산골 농촌에서 살았는데, 아버지는 나를 순 농사꾼으로 만들 작정으로 새끼 꼬는 방법부터 가르쳐 주셨는데, 지금도 잘 꼴 수 있다. 


2-3개의 지푸라기를 계속 이어나가면서 꼬는데 새 지푸라기는 기존 새끼줄의 지푸라기에 엇걸려 꼬여져 나간다. 지푸라기 하나의 길이는 고작 40여 cm 안팎이 될까. 그런데도 그 짧은 지푸라기를 계속 공급할 수만 있다면 우주 끝까지의 길이를 만들어낼 수가 있다.


비록 한 오라기의 지푸라기이나 타 지푸라기들과의 인연적 관계에서만 우주 끝에 닿을 새끼줄이라는 효용가치에 기여된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우주만물 속의 한 줄기인 인간생명체의 과거, 현재, 미래라는 연속적 운행의 과정을 우주 끝에 닿을 긴 새끼줄에 비유했을 때 내가 담당할 부분은 겨우 한 가닥 지푸라기에 지나지 않는 아주 보잘것없는 역할이 되고 있긴 하지만 그 긴 새끼줄이 되기 위해 없어서는 아니 될 아주 중요한, 필요하고도 충분한 역할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내 어찌 내 삶에 자긍심을 안 가질 수가 있는가.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이 긴 새끼줄이 한 새끼줄과 한 새끼줄과의 단순연결의 이어나감이 아니라 지푸라기와 지푸라기와의 엇걸린 꼬임의 이음이라는 사실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기차 칸을 연결하듯이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뒤엉킴의 꼬임으로 된 연결이라는 데 깊은 의미가 있다. 즉 ‘체인’이 아니라 ‘와이어’ 같은 것이다. 아니다 와이어는 메말라 있으나 새끼줄엔 물기(정, 사랑)가 있어야 제구실을 한다. 


그리고 이 새끼줄에서의 지푸라기는 자기 임무가 다하는 날 쉽게 썩어 본향인 흙으로 되돌려 준다는 것이다. 


비록 일회적인 내 단독의 삶(단위 생명체)이지만 과거와 미래와 그리고 지금에 걸쳐 이웃(만물)간에 얽힌 관계에서만 내 존재 이유와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아버지 어머니라는 사랑의 뒤섞임에 의해서 내가 태어나 그분들과 더불어 뒤엉켜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삶을 같이하며 이웃과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살다가 그분들은 어느 날 한 분 한 분 삶의 무대에서 물러나고, 내가 또한 아내라는 여인과 인연 맺어 낳은 자식이라는 새 지푸라기에 새끼줄로서의 역할을 다하도록 성장과 교육과 윤리의 밑거름이 되다가 어느 날 나도 내 역할을 마감하고 무대에서 물러나 흙으로 돌아가게 되고, 생명체 새끼줄은 영원을 향해 이어질 것이다.


이 새끼줄 시작은 언제 어디서부터이며 어디에서 끝나는가가 남은 질문이긴 하지만 내겐 별로 중요하지가 않다. 물론 이 큰 시작이 창조라고도 하고 진화라고도 하지만, 아니 우주 어디에선가 이민 온 생명체 유전인자 인지도 모르지만 서도. 


여기서는 전생이니 내생이니 하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 내생의 약속이 없으니 얼마나 허전하겠느냐고 하실 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영원히 있을 우주에 끼친 현재의 내 역할이 얼마나 중요하고, 지푸라기 하나로서의 내 가치의 자긍심에 보람을 느끼는데 어찌 허전하다 할까? 만약 허전하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현재를 도피하거나 자기 역할에 대해 과소평가하는 사람일 것이다.


지푸라기 한 가닥으로서의 내 삶의 과정에 대해 더 쓸 것도 많고 쓰고 싶으나 이쯤으로 해두고 기회가 된다면 계속 더 쓰고 싶다. 평소의 생각들이 지면이라는 멍석이 깔리니 주눅이 들어서인지 수박 겉핥기 식 끝맺음에 아쉬움이 남는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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