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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수기-뿌리 뽑힌 나무(34)
minjukim

 

 (지난 호에 이어)

제5장백산

1. 목숨을 탈출

 그날 밤 나는 함께 풀려나온 아줌마와 함께 도강하기로 마음먹었다. 밤11시쯤에 우리는 둘이서 손을 잡고 또다시 강물에 들어섰다. 어찌된 영문인지 들어서자마자 깊이가 장난 아니었다. 물이 갑자기 허리까지 차고 올라오자 나는 갑자기 공포감에 휩싸였다. 어젯밤에 소용돌이치던 물소리가 귓가에 환각처럼 들려왔고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내 모습이 환영처럼 눈앞에 얼른거렸다.

 나는 심장이 쿵쾅거리고 더 이상 앞으로 가다 가는 진짜로 심장이 멎을 것 같아 다시 물 밖으로 뛰쳐나왔다. 또 우리는 낮동안 음식을 먹지 못해 배가 고프고 기운이 하나도 없어 몸을 겨우 가눌 정도였다. 다시 강기슭으로 나온 우리는 온몸이 다 젖은 채로 잠잘 곳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연속 3일 밤을 강변이나 감옥의 차디찬 바닥에서 겨우 쪽잠을 자서 그런지 온몸은 극도로 지쳤고 뼈마디가 안 쑤시는 데가 없이 정말 다문 한시간이라도 두 다리 쭉 뻗고 잠을 자고 싶었다.

 그 아줌마는 자기 사촌이 시내에 살고 있다며 나를 데리고 그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흠뻑 젖은 몸으로 거의 1시간 넘게 걸어 밤 12시경에 그 집 문을 두드리니 온몸이 후줄근 하고 젖어 있는 거지 몰골을 한 우리 둘을 보면서 서너 시간 잠만 재워 달라는 애원에도 매몰차게 문을 닫아 버렸다.

 갈곳이 없는 우리는 다시 혜산역으로 향했다. 역전 대합실은 바리바리 배낭과 보따리상들의 물건과 훔쳐갈까봐 서로 지키면서 잠 못 들고 있는 사람들로 꽉 찼다. 그 모습들을 보니 내가 임신 6개월 때에 두 언니와 함께 신의주 바로 밑에 있는 염전 도시 염주에 소금장사 하러 갔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 우리는 소금 9배낭을 사고 하염없이 연착되고 있는 열차를 기다리며 역전 앞마당에 배낭들을 쌓아 놓고 셋이 다 잠들지 말고 한 명씩 번갈아가며 지키기로 했다. 큰언니가 2시간 동안 지키다가 둘째 언니를 깨우고 잠들었는데 둘째 언니는 다시 잠들어버려 그대로 우리 셋 다 쿨쿨 잠들었다.

 새벽에 눈을 떠보니 등을 대고 누워 있던 배낭 9개 중에 3개가 사라져 버렸다. 정말 눈뜨고 코를 베어가는 세상이었다. 그렇게 먼 곳까지 장사하러 갔다가 짐을 도둑맞고 돌아오니 이윤이 남을 리가 없었다.

 둘째 언니는 그것 때문에 한동안 우리에게서 모진 구박을 받아야 했다. 그때의 일이 내 눈앞을 스치면서 우리는 앉을 자리 하나 없이 사람들이 꽉 찬 대합실에서 2~3시간 정도 더 기다려야 했다. 열차가 한 대 출발하고 나서야 대합실이 좀 조용해졌고 우리는 드디어 의자에 앉을 수가 있었다.

 우리는 더 이상 잃을 것도, 지킬 것도 없으니 자리에 앉자마자 머리를 떨구고 꼬꾸라져 잠들었다. 그렇게 몇 시간을 잤는지 눈떠보니 새날이 밝아왔다. 흠뻑 젖었던 옷은 벌써 반쯤 말랐고 대합실은 이른 아침부터 또다시 사람 발 디딜 틈도 없이 붐비기 시작했다.

 자다 깨고 또 자다 깨고 그렇게 한 3시간 후에 우리는 다시 새벽안개가 자욱한 압록강으로 나왔다. 다시 안전하게 강을 건널 곳을 미리 탐색하려고 말이다. 그리고 동행하던 아줌마는 중국에 한번 갔다 온 적이 있어 그가 가지고 있던 중국 돈 1원과 낡은 시계를 얼른 싼 값에 팔고 둘이서 밥을 두 끼 사 먹었다. 그나마도 우리에게는 큰 보탬이 되었고 기운을 낼 수가 있었다.

 그날 저녁 강둑에 앉아서 날이 어둡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강 옆에 사는 어떤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홀로 앉아서 강물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슬그머니 그 할아버지 곁에 양쪽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혹시 강을 건너가려 하시나요?”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아니요. 아줌마들은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구만. 우리집은 바로 저기 지붕이 보이는데요. 강을 건너가려고? 여긴 그리 안전한 곳이 못 되오.” 혹시 보위부 사람이 아닌지 의심스러워 대답을 함부로 못하고 있는데 그 할아버지는 우리 몰골을 보고 거침없이 말했다.

 그 할아버지는 건너기 좋은 제일 얕은 곳을 알려주었고 또 그쪽에 가면 도강할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니 여럿이 함께 건너면 훨씬 안전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두 명씩 강을 건너다가 휩쓸려 내려가 아무도 모르게 죽은 사람들이 수없이 많으니 절대 둘이서 건너지 말고 더 많은 사람들과 뭉쳐서 강을 건너라고 했다.

 그는 이틀 전 밤에 내가 겪은 이야기를 듣더니 몹시 가슴 아파하면서 갑자기 집에 들어가서 강냉이 가루로 만든 떡을 서너 개 내왔다. 그는 나에게 옥수수떡을 쥐여 주며 강 건너기 전에 먹으라고, 배고프고 기운이 없으면 물에 휩쓸려 내려가서 살기 힘들다고 말했다. 나는 그동안 만났던 나를 괴롭히고 비참하게 만든 사기꾼들과 너무나 다른 인자한 할아버지에게 감동을 받으며 그만 울컥했다.

 그렇게 좋은 할아버지 덕분에 왠지 오늘은 모든 일이 잘될 것 같은 자신감과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가 알려준 곳으로 가면 도강하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모여드는데 일단 가면 규칙이 있다고 한다. “아무것도 묻지 마”가 그곳 규칙이라고 한다. “어디로 가시오? 어디서 왔소? 이름이 뭐요? 여기 온지 며칠이나 됐소?” 이런 걸 물어보려고 하면 바로 쫓겨난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알려준 장소에 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그곳에서는 모두가 거침이 없었다. “강을 건너려고 하오?” “그렇소. 그쪽도 강을 건 늘 사람들이오?” “여기 다 마찬가지요. 더 이상 묻지 마오. 입 다물고 조용히 있소.”

 모두 10명의 여자들과 남자 1명이었는데 남자는 몇 번이고 중국을 넘나들던 사람이라 강을 건넌 후에는 중국 공안에 잡히지 않게 어떻게 조심해야 하는 지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가 들려준 얘기 속에는 정말 충격적인 소식도 있었다.

 바로 며칠 전에 3명의 탈북자들이 중국의 산속에서 며칠을 살다가 서로 싸우던 끝에 한 명의 동료를 살해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급격히 탈북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수색과 함께 신고하면 포상금을 (5천 위안) 주고 버스와 트럭, 그리고 지나가는 모든 차들을 무조건 세우고 차에 탄 모든 일행들에 대한 신분증 검사와 꼼꼼한 단속을 한다고 한다.

 자칫하면 바로 잡혀서 북송된다고 했다. 만약 마을에 가서 먹을 것을 동냥하면 사람들이 먹을 것을 주고 나서 바로 공안경찰을 부르기 때문에 마을사람에게 함부로 옷이나 음식, 물건을 얻으러 가지 말라고 했다. 즉, 될수록 사람들 눈에 띄지 말라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정보였다. 벌써 두렵고 무서웠다. 이제는 강을 건너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중국 사람들이 더 무서웠다.

 새벽이 되자 우리는 도강 준비를 했다. 그 남자를 중심으로 하여 양쪽에 여자들이 5명씩 서로가 팔 깍지를 끼고 절대 팔 깍지를 풀면 안 된다고 모두 약속했다. 팔 깍지가 풀리는 순간 한명이라도 물살에 떠내려가면 연쇄적으로 모두가 물에 빠져 떠내려갈 수 있으니 절대 팔을 풀면 안 된다는 다짐을 서로 하면서 말이다.

 1997년도쯤에는 그래도 도강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고 그때는 하도 많은 사람들이 강을 건넜기 때문에 미처 국경수비대는 일일이 단속을 하지 못했다. 우리는 끈으로 신발과 발을 함께 묶었는데 강바닥이 미끄러워 서 넘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우리는 바지들은 모두 벗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바짓가랑이가 물에 젖으면서 휘감기면서 저항이 심해 빨리 강을 건널 수 없기 때문이다.

 경비대가 언제 순찰을 돌지 모르니 들키기 전에 속전속결로 무사히 강을 건너가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 캄캄한 밤에 서로가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바지를 입었는지 벗었는지도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탈북을 성공하기 위해 모두 시키는 대로 잘 따라했다.

 새벽 2시, 드디어 우리는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날 우리가 건넜던 곳은 물이 허벅지까지 왔다. 그리고 다리에 힘이 풀려 한사람이 넘어지면 양쪽에서 부추겨서 일으켜주고 서로를 부축해 주면서  그렇게 11명이 무사히 강을 건넜다. 물속에 들어 선지 불과 3분도 안 되는 사이에 우리는 재빨리 강을 건넜고 얼른 길 건너편 숲속에 일단 모두 숨었다.

 큰길에 다니는 차량이 꽤 많아서 공안들의 눈에 띄면 우리 다 잡혀갈 판이다. 강을 건너고 난 후에는 바로 큰 도로가 있었는데 전조등이 끊임없이 비추었고 중국 군인들의 말소리도 다 들렸다. 무조건 그 큰 도로를 건너야만 그 어디든 갈 수가 있었는데 우리는 최대한 몸을 숨기고 전조등이 비치기 전에 재빨리 거의 엎드려 기어가기를 해서 그 대낮같이 밝은 전조등 불빛을 통과하여 도로를 무사히 건넜다.

 바로 그 도로 옆으로 몸을 날려 재빨리 움푹 패인 곳에 빠져들어 간 나는 정말 성공했구나 하는 벅찬 생각에 기뻐할 틈도 없이 어서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돌아보지도 않고 무작정 어두운 쪽을 향해 달렸다.

 반소매 옷을 입은 내 팔과 얼굴에는 가시덤불에 긁히고 여기저기 상처와 피가 났으나 미처 알지도 못했다. 아니 그런 것은 지금 중요치가 않았다. 나는 그 와중에도 전쟁영화나 첩보 영화에서만 봐오던 게릴라 작전을 수행하는 듯한 짜릿함을 느꼈다. 학교 졸업하고 군사 야영소에서 받은 기초훈련들이 이때 참 도움이 되었다.

 탈북을 하는 사람들은 3가지 부류였다. 1부류는 정말 생존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이나 한국 또는 다른 나라에 가서 살려는 사람들, 2부류는 중국에 넘어와서 농사나 벌목장에서 돈이나 벌어서 다시 고향에 돌아가는 사람들, 3부류는 중국에 넘어와서 무차별 강도 및 도적질(쌀, 의복, 공업품)을 해서 북한에 돌아가 팔고 다시 반복하는 전형적인 범죄형이다. 따라서 어떤 목적으로 강을 건넜느냐에 따라 일단 강을 건넌 후에 향하는 방향은 다 달랐다.

 나는 무조건 산을 향해 달렸다. 가장 안전하고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이 산으로 가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함께 건너온 사람들 대부분은 시내나 마을을 향해 달렸다. 그런데 길이 없이 무턱대고 달리다 보니 나는 무릎까지 빠져드는 논밭을 건너야만 했고 벼 이삭들은 내 얼굴과 팔을 사정없이 할퀴였다.

 내가 정신없이 앞으로만 내 달리자, 다른 3명이 내 뒤를 따랐는데 그들은 내가 길을 잘 알고 달리는 줄 알고 무턱대고 따라오다가 길도 없는 논밭과 늪을 지나 산으로 가는 것을 알고는 욕설을 퍼부어 대며 다시 돌아갔다. 그들은 모두 배낭을 여러 개 가지고 와서 밤새 식량이나 뭐든지 훔쳐갈 준비를 하고 강을 넘어온 사람들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30분 정도 들판을 통과하여 드디어 산기슭에 다다랐다.

2. 장백현 18도구

 불과 한 시간도 안 되어 우리는 목숨을 걸고 그토록 염원하던 신세계로 탈출하는데 성공했고 나는 드디어 산기슭에 도달했다. 나는 겨우 안도의 숨을 내쉬고 나도 모르게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말이 야산이지 거의 과수원과 참외 등 과일 밭이었다. 나는 갑자기 발끝에 뭔가 걸려 넘어졌는데 손으로 만져 보니 참외였다.

 나는 그 참외를 따서 옷에 슥슥 문지르고 한입 베어 먹었는데 맛이 아직 익지는 않았지만 참외 향기가 코를 찔렀다. 채소들이 어찌나 크고 탐스러운지 주변에 오이와 가지 등 온갖 열매들이 주렁주렁 보였는데 와! 정말 믿을 수 없었다. 손가락 크기 만한 오이조차 구경하기 힘들었던 북한과는 하늘땅 차이었다.

 나는 오이도 하나 따서 먹으며 점점 더 깊어지는 산으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공안도 없을 것이고 제일 안전할 것이다. 산에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마음 놓고 걸어가던 나는 어떤 과수원을 지나가다가 담장 너머 들려오는 사납게 짖어 대는 개소리에 그만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과수원 주인은 개가 짖어대자 손전지를 켜고 내가 있는 쪽으로 달려왔고 나는 사냥개에게 물릴까봐 길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개가 한창 짖어 대고 주인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자 개를 달래며 돌아갔다. 개와 주인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나는 꼼짝 말고 엎드려 있어야 했다.

 나는 발소리를 듣고 또 개가 달려올까봐 신발을 벗고 맨발로 살금살금 걸어서 그곳을 지나왔다. 산을 오르고 또 올라 드디어 울창한 수림 속에 들어선 나는 바람 소리에 우수수 흔들리는 나뭇가지 소리와 승냥이 울음소리가 뒤섞여 머리칼이 곤두설 정도로 서늘한 공포를 느끼며 캄캄한 산속을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캄캄한 산속을 밤새 걷고 또 걸으니 어느새 먼 동이 트고 저 너머로 산봉우리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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