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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수기-뿌리 뽑힌 나무(32)
minjukim

 

(지난 호에 이어)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순간을 기억할 때마다 울지 않으려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애를 쓰지만 결국엔 또 울고 만다. 그냥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다. 20여 년이라는 세월이 흘러도 그때의 고통과 나의 자책감은 지금도 감히 나를 용서할 수가 없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 차디찬 강물 속에 던져진 그의 명복을 빌고 또 빈다.

 부디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 내 아들아! 다음 생에는 꼭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렴! 그곳에선 편히 지내길 바란다. 사랑하는 아들!

 

5. 보위부 감옥

 군인들에게 끌려 30분 정도 걸으니 국경경비대 초소에 도착했다. 그 초소 안에는 도강하다가 잡힌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나 혼자 독방에 갇히게 되었다. 3명이면 꽉 찰 만한 숨 막히는 보초막에서 나는 목숨을 끊을만한 무엇이 있는지를 둘러봤지만 못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2시간 정도 후에 군인이 나타나더니 커다란 낡은 군용신발을 신으라며 던져 주었다. 그리고 나를 끌고 또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때 시간을 물어보니 새벽 2시라고 했다. 개미 하나 얼씬도 하지 않는 혜산시의 적막한 밤거리는 두 명의 호송원을 따라 걷고 있는 나를 저승길로 바래주는 듯이 스산하고 섬뜩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젖어있어 갑자기 추위를 느꼈던 것이다.

 거의 1시간 반 정도 걸어서 도착한 곳은 바로 양강도 보위부 감옥이었다. 그때는 벌써 새벽 2시~3시 사이었는데 모두 잠들고 조용했다. 당직근무를 서던 직원은 아침까지 기다려야 서류 수속을 할 수 있다며 나를 복도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영화에서나 보던, 평생 내가 들어올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진짜 감옥 안에 있는 것이다.

 나 혼자 감옥 복도를 왔다 갔다 해보니 쇠창살로 된 내 키 절반 되는 작은 문 너머로 누워서 자고 있는 수많은 죄수들이 보였다. 나는 목을 매달 수 있는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야간당직 직원은 반쯤 열린 사무실 의자에서 자고 있었고 그의 앞에는 감시화면들이 펼쳐져 방마다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여기저기 샅샅이 찾아봐도 쇠창살로 된 감옥 창문이 높다랗게 달려 있을 뿐 끈 쪼가리 하나 쇳조각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밖에는 사람들이 그렇게 죽어 나가는데 나는 왜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없나? 불과 몇 시간 전에 벌어진 참극이 머릿속에 맴돌면서 또다시 가슴이 면도칼로 저미듯이 날카롭게 후벼팠다. 이방 저 방 열어보며 죽을 궁리를 하고 있는데 ㄷ 자 모양으로 생긴 복도 맨 끝에 열 명 정도의 여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지 않고 밤새 도란도란 얘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슬금슬금 다가가 아무 말 없이 털썩 주저앉았다. “어쩌다 잡혔소? 어디서 도강하다가 걸렸는데?” 그들은 대뜸 탈북하다 잡힌 걸 다 알고 있는 듯했다. 아니 그들 모두 중국에서 잡혀 나온 여자들이었다. 그들이 물어보는 질문에 차마 대답하기조차 힘들어 나는 꺽꺽 울기만 했다. 그중에 한 40대 여인이 갑자기 버럭 성질을 냈다.

 “야! 왜 청승맞게 울기만 하니?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너 혼자 세상 슬픔을 다 가진 듯이 우리 앞에서 그렇게 눈물 흘리지 말아. 여긴 너보다 더 큰 슬픈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야.” 호되게 소리치는 바람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몇 시간 전에 벌어진 일들을 얘기해 주었다.

 “난 그냥 죽고 싶어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요. 나 같은 게 이제 살아서 뭐해요? 난 이제 여길 나가면 꼭 죽을 거예요. 난 살 자격이 없는 사람이예요.” 나는 이미 실성한 것처럼 반 정신이 나가 있었다.

 “갓난 아기 하나 죽은 걸로 부모가 준 목숨을 버리려 하다니. 그건 사고였지 네가 일부러 죽인 건 아니잖아!” “내가 정신만 똑바로 차렸어도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거예요. 다 내 탓이에요. 난 죽어 마땅해요. 아니 난 내가 용서가 안돼. 죽는 게 더 차라리 나아요.”

 그들은 절대로 죽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당신들은 자식을 잃어 본 적이 없으면 함부로 말도 마세요. 지금 내 심정을 어떻게 다 알아요?”

 옆에 앉은 50대 중반의 여자는 호되게 나를 나무랐다. “넌 겨우 아기 하나 죽은 걸 가지고 그러니? 난 남편과 새끼 4명을 다 잃었다. 내 손으로 관도 없어서 시체 그대로 땅을 파서 묻었어. 그래도 난 산다. 난 꼭 살 거야. 나도 너처럼 죽으려고 했었지. 하지만 죽을 수가 없었어. 죽기가 너무 억울해서, 남편과 자식들이 못산 인생을 내가 살아야지. 너 하나 죽는다고 누구 하나 끔쩍이나 하니? 무조건 마음 굳게 먹고 잘 살아야 돼. 그래서 돈도 많이 벌어 부모님들 배부르게 해드려 야지. 그게 네가 해야 할 일이야. 그렇게 눈물이나 질질 짠다고 뭐가 달라지니? 우리는 김정일이 보란 듯이 꼭 잘 살아야 해.”

 나는 남편과 자식 4명을 잃었다는 그의 말에 그만 할 말을 잃었다. 그러자 모두 이구동성으로 자기들의 슬픈 사연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어떤 처녀애는 친척집에 쌀 구하러 갔다가 보름 만에 집에 돌아가니 두 남동생과 아버지가 방안에 굶어서 돌아가셨는데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아 며칠 동안 방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 여자애는 용케 죽지 않고 탈북에 성공했는데 중국에서 잡혀서 북송되었다.

 그들은 담담하게 서로의 가슴 아픈 얘기를 하면서도 울지 않았다. 들어보니 어느 누구도 가슴 아픈 사연을 겪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14살 되는 어린 여자애는 당차고 똑똑했는데 그 역시 부모를 잃고 중국으로 넘어가 어떤 한족 집에 양딸로 들어갔다가 잡혀 나왔다고 했다. 그리고 날이 밝으면 다른 보위부 감옥으로 호송되어갈 것이니 아마 그렇게 끌려가면 감옥에서 몇 년간 못 나올 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나한테 만약 여기서 나가게 된다면 어떻게 다시 강을 건너고 어디가 안전하고 얕은지를 자세히 알려줬다. 또한 압록강을 건너다 물살에 떠밀려서 죽은 사람이 수도 없이 많다고 했다.

 “넌 진짜 천운이다. 그렇게 제일 깊고 넓은 곳에 혼자 뛰어들다니. 군인이 널 구해준 건 정말 행운이야” 허기진 사람들 서너명씩 도강하다가 거센 물살에 한 명이 쓰러지면 같이 도미노처럼 물살을 이겨내지 못해 떠내려가고 아침마다 북한 쪽이나 중국 쪽에는 강가에 밀려 나온 시신들이 수없이 많다고 했다. 정말 한마디 한마디 들리는 건 충격 그 자체였다.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현실에 대한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벌써 날이 샜다. 몇차례나 잡혀온 경력이 있는 몇몇은 벌써 낼 아침에 기차역까지 호송될 거라며 그때 동시에 도망가자고 했다. 호송원이 1명밖에 안 되니 우리 12명이 서로 달아나면 그가 다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정말 그의 말 대로 우리는 다음날 아침 6명씩 두 줄로 걸어서 감옥을 나와 시내 한복판을 1시간가량 걸어 도보위부 사무실에 도착했다. 걷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면서 수군댔다. 중국에서 잡혀왔다며 심지어는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저기 저 어제 그 아기엄마 아냐? 어제 아기업고 돌아댕기던데 아기는 어딜 가고 애 엄마 혼자야?”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나를 다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니. 세상이 이렇게 좁은가? 호송되어 가는 동안 거의 1시간을 걸었는데도 아무도 도망치지 않았다.

 드디어 도착한 보위부 사무실에서 우리는 한 줄로 나란히 서서 본인이 왜 잡혀 왔는지 설명을 해야 했다. 하나씩 심문을 하던 보위부장은 내 차례가 되자 이름과 주소 등등 무슨 이 유로 잡혀왔는지 물었다. 갑자기 울컥해진 나는 울먹거리며 어젯밤에 일어난 일을 설명하는데 바로 그 찰나에 밤새 불어난 젖가슴이 터져 마구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리기 시작했고 앞자락은 물론이고 내가 서 있던 바닥까지 뚝뚝 흘러내렸다.

 자초지종을 심문하던 보위부장은 갑자기 놀래면서 물었다. “야! 너 그거 뭐야? 무슨 일이야? 그 하얀 거 바닥에 떨어지는 건 뭐야?” 나는 그만 울음이 터져 나와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어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앙다물었다. 옆에 호송원이 어젯밤에 나한테 벌어진 일을 설명을 해주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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