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6 전체: 81,253 )
탈북수기-뿌리 뽑힌 나무(28)
minjukim

 

(지난 호에 이어)

 역 출구를 빠져나온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어떻게 같은 여인으로서, 아이를 가진 엄마로서, 일말의 동정심도 없이 내가 가진 재산의 전부를 가지고 도망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험악한 세상, 눈을 뜨고도 코를 베이는 무서운 현실을 실감하며 머리가 망치에 얻어맞은 듯 멍해졌다.

 돈 한푼도, 갈 곳도, 아는 사람도 없는 낯선 이곳에 나와 아이한테 사기를 치고 도망가버린 그들이 과연 사람인가? 내가 얼마나 더 처절하게 몸부림쳐야, 얼마나 더 쓰디쓴 눈물을 삼켜야 이 삶의 바닥까지 다 알 수가 있나? 그러나 잔인한 비극은 이제부터 막 시작일 뿐이었다. 나는 아직 몰랐다. 내가 이미 “죽음의 문턱”에 들어서고 있다는 것을.

 등에 업힌 아이의 머리가 한 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지며 힘들게 자고 있는 모습에 나는 일단 아이를 편하게 눕혀 재워야겠다고 생각하며 터벅터벅 아무 데나 발걸음을 옮겼다. 끝내 적당한 곳 을 찾을 수가 없어 나는 어느 집 울타리 모퉁이에서 그만 주저 앉았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발길에 먼지가 펄펄 날리는 길 바닥 위에 작은 돌들을 치워 버리고 평평하게 한 뒤에 아이를 눕혔다.

 나도 아기 옆에 쪼그리고 누웠는데 눕자마자 몇 초도 안되어 곯아 떨어졌다. 며칠 동안 콩나물시루 같은 열차 안에서 다리를 펴지도 못하고 열차 바닥에 앉아서 제대로 잘 수도 없었던 그 피곤이 모두 몰려왔던 것이다. 한 30분 정도 지났을까 하는데 누군가 나를 발로 툭툭 차는 것이었다.

 “야! 왜 길 바닥에서 자? 어디서 왔어? 여긴 뭘 하러 왔어?” 국경도시 단속 그루빠(그룹)대원들이 나를 발로 차면서 깨웠다.

 국경지역에서는 아무 연고도 없이 국경연선에 오는 타지방 사람들에 대한 단속이 정말 심했다. 탈북할까봐 단속하는 것이다. 그들은 나를 끌고 파출소에 데리고 갔다. 잠든 아기를 둘러업고 또다시 비몽사몽 그들을 따라간 나는 불과 1시간 전에 내가 사기를 당했다는 얘기를 반복해야 했다. 그 사람들은 안쓰러운 눈길로 달리 나를 도와줄 방법이 없으니 그만 포기하고 빨리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였다.

 “여기가 얼마나 살벌한 곳인데, 아무 사람 말이나 다 믿어? 이 순진한 여자야. 이 아줌마 생긴 건 똑똑하게 생겼는데 완전 등신 이구만!” 그들은 욕을 하고 있었지만 등에 잠이 든 아이와 나를 번갈아 보며 너무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만약 그 아줌마를 보게 되면 자기들에게 신고를 하라고 부탁했다. 빼앗긴 동을 되찾아 주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 30분 정도 파출소에서 취조를 받고 풀 려난 나는 또 단속을 당할까봐 어떤 아파트의 베란다에 들어갔다. 그곳 아파트 1층 베란다들은 모두 비어 있었다. 너무 낮아서 내가 뛰어넘어 갈 수 있을 정도였다. 내가 무슨 고생을 하던지 말던지 아이는 축 늘어져 잠만 쿨쿨 잤고 울고 보채지 않아 그나마 그것이 나에겐 행운이라면 행운이었다.

 집주인들은 베란다로 통하는 문을 굳세게 잠그지만 베란다에는 아무 물건도 두지 않는다. 그곳에 다시 누워서 날이 밝을 때까지 2시간 정도 더 잤다. 아침 해가 떠오르며 내 얼굴을 비치자 잠에서 깬 나는 사기꾼 여자가 알려 준 집주소를 찾아갔다. 인민반 29반에 살고 남편은 군인이며 이름은 김기남을 찾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것도 다 거짓말임을 알지만 그래도 당장 갈 곳도, 할 일도 없어 그 주소를 찾아 헤매고 다녔다.

 정말 그 인민반에 김기남이라는 이름을 가진 집을 사람들이 알려 주었는데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문을 두드려 보니 웬 낯선 여자가 문을 열었다.

 “저 김기남이라는 집을 찾는데요?” “여기가 김기남 집인데 왜 무슨 일이요? 우리 남편이 김기남이오. 나는 갑자기 뭐라고 할 말을 잃었다. “어떤 여자가 소아마비 앓고 있는 아들을 데리고 다니는데 자기가 사는 집 주소를 알려 준 것이 바로 여기예요.” “무슨 소리야? 난 열차 타고 다닌 적이 없어. 이것이 어디서 사기 쳐볼려고, 당장 꺼져”

 갑자기 그는 거칠게 욕을 하며 나를 사기꾼으로 몰아세웠고 나는 귀싸대기라도 맞게 될까봐 얼른 자리를 떴다. 그 소아마비 아들의 엄마는 누군가의 집 주소와 세대주 이름까지 팔아서 사기를 쳤던 것이다. 나는 멍청해서 사기를 당한 자신을 끝없이 질책하며 여기서 일단 당장 오늘 먹을 것과 차비를 마련하기로 했다.

 밤새 모기와 새벽의 차가운 이슬에 시달리며 그렇게 악몽과도 같은 밤을 보낸 나는 어젯밤부터 나는 아무것도 먹지 못해 배가 고프다 못해 배고픔도 더 이상 느낄 수가 없었고 아기도 젖이 부족해 배고픔에 울고 칭얼대고 있었다. 혹시 장마당에 가면 그 사기꾼 여자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장마당으로 가는 길을 물어 찾아갔다. 그곳에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부모를 잃은 꽃제비(거지)들과 나처럼 모든 것을 잃은 갈 곳 없이 헤매는 사람들로 득실거렸다. 나는 마지막 하나 남은 떠날 때 언니가 준 남청색 고급 바지를 80원에 팔았다. 그리고 떡을 하나 사서 급하게 먹기 시작했다.

 겨우 두 입을 베어 먹었는데 누군가가 날쌔게 내 손에 든 떡을 훔쳐갔다. 10살쯤 되는 애가 내 떡을 훔쳐서 도망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니 꽃제비 애들이 한 무리가 그 떡을 서로 나눠 먹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를 쳐다보며 히죽거리고 있었다. 꽃제비 애들이 먹을 것을 사서 먹는 떡이나 물건을 닥치는 대로 훔쳐가는 장면은 매일 수도 없이 목격했지만 정작 내가 이렇게 눈 시퍼렇게 뜨고 당하기는 처음이었다. 너무 배고파서 정신 없으니 잠깐 경각심을 놓친 것이다.

 내가 떡을 먹다가 뺏기는 것을 본 장사하던 아줌마들이 나를 보고 안쓰러워했다. “쯧쯧, 젖먹이 아기 엄마 걸 뺏아 가다니. 어디서 왔소? 여긴 왜 혼자 왔소? 이 살벌한 곳에” 그들은 조용한 골목에 가서 먹으라고 한다. 내가 여길 처음 온 걸 알고 꽃제비들이 하루 종일 나를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하면서 말이다.

 

2. “나는 훔치지 않았다”

 

 일단 허기를 달래고 난 후에 나는 이제부터 뭘 해야 할지를 곰곰이 생각했다. 차마 이 꼴을 하고 집에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다. 또 돌아갈 여비를 마련해야 하고 열차가 며칠씩 연착이 될 수도 있으니 지금 당장은 돈이 필요했다. 나는 수중에 남은 60원 중에 10원만 남기고 나머지 50원으로 과일을 샀다. 역전에서 과일 고장에서 오는 과일장사꾼 들의 물건을 도매가로 조금 넘겨받아서 하루 종일 앉아서 소매로 팔기 시작했다.

 7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 그늘도 없이 땅바닥에 앉아서 때로는 끄떡끄떡 졸기도 하며 겨우 5kg 정도 되는 과일은 저녁이 되자 다 팔렸고 내 손에 100원이 생겼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 고장 사람들인데 나 혼자 타 지역 사람이었다. 그날 저녁 나는 잠잘 곳을 찾아 헤매다가 여관을 발견하고 그곳에 들어갔다.

 여관 아줌마는 내가 당한 사연을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 돈을 받지 않고 그냥 방을 빌려줬다. 나는 팔다가 남은 사과 3알을 숙박비 대신에 주었다. 사과 한 개에 5원이니 15원을 숙박비용 대신 준 것이지만 그녀는 사과를 받지 않았다. 오히려 여기 여관에서 며칠이라도 괜찮으니 낮에 장사하고 밤에 와서 자도 된다고 했다. 나쁜 사기꾼들도 있었지만 그나마 괜찮은 여관 주인을 만나 일단 잠잘 곳은 해결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안도의 숨이 나왔다.

 여관이긴 하지만 이불도 베개도 없었고 차디찬 온돌 바닥에 아기담요 하나 펴고 잠들었다. 그냥 길바닥에서 자는 것보다는 안전하다는 것뿐이었다. 그나마도 밤중에 누군가가 수시로 문을 열어보기도 하고 단속을 하는 느낌이 들어 잠을 제대로 잘수가 없는 그 여관에서 나는 3일 밤을 보냈다.

 내가 며칠 동안 살구나 복숭아. 또는 사과를 넘겨받아서 다시 소매로 팔았는데 50원으로 시작한 돈이 150원으로 불어났다. 내가 능숙하게 과일을 파는 것을 며칠 동안 옆에서 지켜보던 과일을 파는 웬 젊은 아기 엄마가 말을 걸어왔다. 집이 어디냐… 잠은 어디서 자냐 등등….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들려주자 그는 나를 아주 안타까워하며 자기 소개를 했다.

 우리는 서로 나이가 같았으며 심지어 그의 딸도 내 아들과 태어난 지 8개월 도 같았다. 그렇게 다가온 그녀는 나만 괜찮다면 자기 집에 가서 먹고 자면서 자기와 함께 장사를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