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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관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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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전화문자를 보냈으나 응답이 없다. 만일 그와 좋은 관계라면, 1. 이 친구 전화번호가 바뀌었나? 사고가 났나? 의심할 것이다. 만일 그와 나쁜 관계라면 2. 이제 나를 무시하는군, 나랑 말도 걸기 싫다는 거지, 이렇게 부정적으로 해석할 것이다. 


껄끄러운 관계라면 그 친구에게 말하지 않고 냉랭하게 지내다가, 그 친구가 같이 쇼핑 가자고 연락 오면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거절할 것이다. (흥, 내 문자를 씹을 때는 언제고 이제 쇼핑 가자고? 아쉬울 때만 연락하는군). 친구는 자신의 선의를 알아주길 바라고 지난번에 전화기 고장으로 연락을 못했던 것을 상대가 아무렇지 않게 받아줄 것으로 기대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냉랭함이다. 


전화문자불통이라는 사건이 둘 사이를 더 멀게 만들어놓았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의사소통의 미숙으로 단정지을 것이다. 서로 자기 입장을 상대가 알아듣게 설명하면 해결될 문제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한 가지 사건을 두고 사람들은 여러 가지로 해석을 할 수 있다. 긍정적, 부정적. 주인공은 이 사건을 상대가 자기를 무시한다고 부정적으로 해석했다. 왜 하필이면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선택을 했을까?


그것은 그 친구와의 과거의 경험이 부정적인 감정을 남겼기 때문이다. 평상시에 말투에서 점차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게 된 주인공은 급기야 친구가 문자도 수신하지 않자, 완전히 대놓고 무시한다는 감정이 커지게 됐다. 무시 당함은 상대에게 자기가 존중 받지 못한다는 감정이다. 친구가 자기가 아쉬울 때는 먹을 것을 들고 다가오고, 정작 주인공이 힘들 때는 나 몰라라 한다면, 주인공은 자신이 상대로부터 존중 받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지적 능력에 상관없이 사람들은 상대가 자신을 존중하는지 무시하는지는 쉽게 파악한다. 남의 도움이 많이 필요한 조건에서 사는 사람일수록 주변 사람들을 무시하면 그들이 멀어져 간다. 자기 힘으로 독립적으로 헤쳐나가는 사람은 남을 존중하지 않아도 된다. 고립된 상태에서 살기 때문에 남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도움이 절대적인 사람일수록 주변 사람들을 존중해주어야 그들이 내가 어려울 때 손을 내밀어준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데살로니카 전서 5장)"


주변사람들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면 그들에 대하여 '감사함'을 절로 가지게 된다. 그들이 내 주위에 존재한다는 그 자체가 감사한 것이다. 그러니 모든 일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감사'가 '기쁨'과 연결되는 것은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할 때 '기쁨'도 따라오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에게 감사함을 눈빛으로, 말로, 물질로 표현하게 되면, 그들이 기뻐한다.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나도 기뻐진다. 감사함의 상태가 가져다 주는 분위기는 '안정감'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의 포옹을 하고 음식을 같이 나누는 심리적 효과는 안정감이다. 여러 사람들이 따스한 감정의 울타리를 형성해서 둥그렇게 하나가 되는 형태가 감사함이 창조한 광경이다. 


반대로, 다른 사람이 하지 않아서 자신의 일거리가 늘었다든지, 자신의 업적을 주변에서 인정해주지 않고 오히려 강제로 뺏어가려고 할 때, 사람들은 공격과 방어의 자세를 취하게 된다. 남보다 자신이 더 가져가야 한다는 생각을 여러 사람들이 가지면 경쟁상태가 된다. 경쟁은 긴장을 낳는다. 긴장은 불안감을 초래한다. 따라서 상대를 비난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언제나 전쟁의 긴장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상대의 공격에 몸은 잔뜩 움츠리게 된다. 상대가 나를 존중해주지 않고 무시한다는 생각을 가지면 나도 상대를 존중해줄 수 없다. 서로 무시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이때 사건이 하나 발생하면 상대는 그 사건의 저의를 선의라기보다는 악의로 해석하게 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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