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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의 노숙
leesangmook

 

 

 

▲오크빌에서 집 나간 지 1년여 만에 생환한 사막 거북이

 

 

 

며칠 전 하지가 지났다. 시인이 모란이 지면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한탄 했 듯 하지(夏至) 역시 한탄의 대상이다. 시인이 한탄한 것은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기 때문이다. 하지 역시 더 이상 일조시간이 뻗쳐 오르지는 않는다.


한 겨울에도 동지(冬至)가 되는 날 혼자 슬며시 미소를 짓는다. 아무리 추워도 이제 일조시간이 길어진다는 희망 때문이다. 동지는 그러니까 슬픔 속에 기쁨이 있는 날이고 하지는 기쁨 속에 슬픔이 있는 날이다.


캐나다에서 여름을 마냥 기뻐만 할 수 없는 건 짧은 여름 기간에 긴 겨울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집을 손보거나 혹은 유리창을 갈아 열 손실을 막는 단열공사 등이 거의 여름에 이뤄지니 여름은 겨울을 위해 존재하는 계절이다.


겨울 나기가 문제라는 강박관념 때문에 집 주위에 흔히 보이는 동물들의 겨울 나기도 남의 일 같지 않다. 그 흔한 다람쥐는 겨울을 어떻게 나는지 또 올 봄에도 뒤뜰의 상추를 축내는 토끼는 어디서 겨울잠을 자는지 늘 궁금하기만 한 것이다.


야생동물의 겨울잠은 물론 피의 온도에 따라 다르다. 찬피 동물은 아예 몇 달 동안 땅 속에서 잠을 깨지 않는다. 근래 찬피 동물인 어떤 거북이의 가출이 화제다. 며칠 전 오크빌에 사는 한 여인은 그 지역 동물보호협회(Humane Society)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거북이 한 마리를 누가 가져 왔는데 그게 잃어버렸다고 신고한 그 거북인지 와서 보라는 거였다. 그 여인은 거북이를 애완동물로 기르고 있었는데 작년 7월 뒤뜰 울타리를 뚫고 탈출했다. 찬피 동물인 거북이가 노숙을 하다가 겨울에 얼어 죽지나 않았는지 여인의 수심은 깊어만 갔다.


연락처를 적은 쪽지를 여기저기 붙였고 지역신문에도 기사로 내달라고 했다. 혹시 누가 인터넷 장터인 키지지(Kijiji)에 매물로 내놓은 건 아닌지 검색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말 못하는 거북이가 단순히 애완동물이 아니라 반려동물이었던 셈이다. 그런 거북이가 거의 1년 만에 생환을 한 것이다. 말 못하는 거북이가 생존 스토리를 털어 놓을 리 없다.


어느 집 데크 밑에서 몇 달 동안 겨울 잠을 자지 않았다면 사막에서 사는 그 거북이가 살아 남을 수 없었을 게다. 집안에서 스며 나오는 더운 바람이 그 데크 밑에 온기를 나눠줬을 수도 있다.


올 봄 토끼가 검불을 입에 물고 나르는 것을 목격했다. 새끼를 위해 둥지를 만들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들었다. 토끼는 땅 속에 굴을 파고 겨울을 난다고 한다. 거기에 마른 풀이나 지푸라기, 잔 가지들을 물어다 보온이 되게 꾸민단다.


다람쥐는 한 굴에 여러 마리가 들어가 겨울을 난다. 많을수록 서로 체온을 보탤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체온이 떨어지는 것을 막는다. 더 격렬하게 떨수록 몸이 따뜻해진다는 것을 다람쥐는 알고 있는 것이다. 


잃어버린 거북이를 애타게 찾았다는 여인의 기사를 읽고 우리 집 뜰을 공유하는 토끼와 다람쥐는 겨울을 어떻게 노숙하는지 알아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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