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bokyung
(토론토대학교 정신의학 박사,
경북대 교육학과 교수(정년퇴임)
한국상담학회 수련감독 전문 상담사)
[email protected]
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14 전체: 110,771 )
禪으로 성경을 읽다-우리가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것(36)
kimbokyung

 

(지난 호에 이어)
사람의 몸이 서로 다른 지체들이 서로 다른 책임과 기능을 발휘함으로 온전하게 되는 것과 같이 우주도 해와 달이 있고, 밤과 낮이 있고, 바다와 육지가 있고, 산과 골짜기가 있고, 물과 불이 있고, 음과 양이 있어서 사람의 몸과 같은 조화로운 세계를 이룬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성령으로 나가 되고 또한 동일한 성령으로 숨을 쉰다. 사람의 구원은 사랑이라는 하나님의 형상, 사랑이라는 하나님의 이(理)와 일치되어 사는가, 그렇지 않는가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사랑 안에 있으면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신다. 사람의 몸이 곧 성전이다. 사람의 몸이 성전으로 그 안은 성령으로 채워져 있어야 한다. 그러나 령으로 채워져 있어야 할 사람의 몸이 탐욕과 분노와 무지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는 성전이 될 수 없다. 아담과 예수님뿐만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성령으로 잉태되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의 본질은 곧 사랑으로, 거기에는 자기라는 관념이 없다. 


이사무애법계와 사사무애법계로 우주는 운행된다. 화엄사법계는 우주자연의 법이기도 하면서 인간 사회의 법이기도 하다. 사람 속에 우주가 있고, 사람이 우주 안에 있다. 


우리는 예수님이 가르치신 주기도문에서도 이사무애, 사사무애법계를 보고 사도신경에서도 본다. 하나님과 사람이 둘이 아니며, 사람과 사람이 둘이 아니다. 제법무아다. 거기에 구원이 있다. 


태초에 하나님의 영은 물위를 거닐면서 혼돈 속에 있었던 우주를 말씀으로 질서를 찾게 하셨고, 또한 그 질서에 따라 그 안의 모든 것이 생명을 얻어 조화를 이루며 번성하게 하셨다. 


인간이 ‘뱀’으로부터 배운 간교한 생각만 버리면 바로 이 땅과 이 하늘이 새 땅과 새 하늘이 된다.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에게 “너희가 선악과를 따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경고하셨다. 


그 경고는 사람의 간교한 지식과 과학기술이 극도로 발달된 지금 더욱 무섭게 한다. 그러나 방법이 있다. 상호의존의 이법을 적용하면 올바르지 않은 현상을 올바른 현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그 목표는 첫째, “하나님을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섬김”으로 자기의 몸이 성전이 되어 하나님의 뜻과 법이 자신의 뜻과 법이 되게 하는 것이고, 둘째, 이웃을 자기의 몸과 같이 사랑하게 됨으로써 성도가 그리스도의 몸이 되고 각 지체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주관하시는 이(理)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게 되어있다. 마치 사과의 본질이 만유인력에 의하여 나무에서 떨어지게 되어 있는 것과 같다. 


예수님은 자신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선포하신다. 예수님의 세상에서 보이신 행적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병을 고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십자가를 피하지 않은, 이사무애법계와 사사무애법계를 대표한다. 


불교와 기독교의 목적은 같다. 양자 모두 인간의 간교한 생각에 의하여 방해를 받고 있는 본심을 회복하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본심을 불성이라 부르고, 기독교에서는 인간의 본심을 성령이라 부른다. 


불성이나 성령 모두 아담과 이브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열매,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 가졌던 본심에 해당된다. 소를 잃어버린 사람이 소를 찾아가는 여정과 탕자가 아버지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 


불성으로 모든 것이 한 몸이 되고 각 지체가 되는 것처럼 성령으로 모두가 한 몸이 되고 각 지체가 된다. 자비가 불교의 이(理)라면, 사랑이 기독교의 이(理)다.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발견하려는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 역시 이러한 종교적 범주로부터 크게 떠나지 않는다.


글을 마치며 구약성경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과 유대 백성의 관계가 다윗이 시편에서 노래하고 있는 것과 같이 목자와 양 떼로 보인다. 목자와 양 떼 간의 관계에서는 목자와 양 그리고 양과 양은 상호 분리된 형태로 양은 목자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덕이고 법이 된다. 


그러나 만약 목자가 선한 목자가 아니라면 양은 고통과 죽음을 면할 수 없다. 그러나 신약성경을 보면 예수님과 성도의 관계는 ‘포도나무와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와 같은 유기체다.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