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bokyung
(토론토대학교 정신의학 박사,
경북대 교육학과 교수(정년퇴임)
한국상담학회 수련감독 전문 상담사)
[email protected]
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74 전체: 110,747 )
선(禪)으로 성서(聖書)를 읽다(27)-“우리가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것”(8)
kimbokyung

 

 (지난 호에 이어)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으로부터 쫓겨난 이유가 그들이 선악과를 따먹은 결과로 “눈이 밝아져” 그들의 본래면목을 잃어버리게 된 탓이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의 숨, 성령으로 생명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특권을 얻어 에덴동산에서 영생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되어있는 체와 용, 본래면목을 가지고 있었으나 자기들 나름으로 경험할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생각할 수 있게 됨에 따라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책임과 기능을 상실해 버린 것이다. 


등불은 본래 어둠을 밝히도록 되어 있는 것이고, 소금은 본래 그 맛이 짜게 되어 있다. 만일 빛이나 소금이 가진 그 본래의 성질이나 기능을 잃게 되면 그것은 버려지게 된다. 기독교 신앙의 궁극적 목적 역시 인간 자신의 체와 용, 본래면목을 찾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구원의 길이 거기에 있다. 


인간의 본체(本體)는 성령이다. 아담이 성령으로 생명을 얻었고,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한 것처럼 사람은 누구나 성령으로 태어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자신을 스스로 더럽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자신의 본질인 성령을 가로막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빛으로 온 예수님을 영접하면 그가 비록 혈육으로 나고, 육정으로 나고, 사람의 뜻으로 났을지라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되찾을 수 있게 된다. 집을 떠났던 탕자가 집으로 다시 돌아옴으로써 아들의 특권을 되찾게 된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는다는 것은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기 전의, 하나님이 보기에 좋았던 그 때의 본래 모습으로 되돌아오게 된다는 뜻이다. 아버지 집의 종으로라도 다시 들어갈 수 있어서 구차한 생명이라도 유지할 수 있었으며 좋겠다고 생각했던 탕자를 아버지는 집 앞에서 기다리시다가 그에게 비단 옷을 입혀주고 소를 잡아 그를 환영하는 잔치를 베풀어 준다. 


아담과 이브의 죄는 단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것에 있지 않다. 그들이 저지른 죄란 그들의 본래면목을 잃어버린 데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창조한 본래의 뜻과 법에 어긋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서로 의존하게 되어 있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고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알게 되면서부터 처음에는 나무 잎으로 자신들의 벌거벗은 몸을 가리던 것에서부터 비록 하나님이 그들에게 가죽 옷을 입혀 주셨다고는 하나, 가죽, 즉 살생(殺生)의 역사가 그 때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인간의 몸이 곧 하나님이 거하는 성전이다. 그것이 인간의 본래면목이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은 결과란, 본래 하나님의 영이 주인으로 자리잡고 있어야 할 인간의 몸과 마음에 도적과 같은 인간의 탐욕과 분노와 무지가 자리잡게 된 것이다. 예수님이 세상에서 보인 모든 언행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의 본래 모습 그대로 나타내신 데 있다. 


성서에는 하나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으나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그것이 너희를 온전케 하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본질은 사랑이다. 예수님의 본질 역시 사랑이다. 예수님도 자신을 보는 것이 곧 하나님을 보는 것이라고 하셨다. 빛과 어둠이 함께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사랑과 분별은 함께 할 수 없다. 사랑으로 모든 것은 생명을 얻는다.


인간은 누구나 유기체 또는 공동체(共同體)로 비유되는 교회, 사회, 자연, 우주에 속한 부분으로서의 체와 용을 본래면목으로 갖추고 있다.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를 유기체로 보게 되면 인간의 본래면목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된다. 

 

14. 평상심(平常心)의 도(道)


사람이 제 나름으로 경험하고 느끼고 생각하고 판단하게 되어 부끄럽다거나 두렵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그가 이전 행동 경험으로 오염되어 있어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 본연의 지혜를 발휘지 못하고 있음을 뜻한다.


이미 오염된 자기를 본래 깨끗한 자기로 되돌리게 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의 방법은 오염된 자기를 깨끗이 씻도록 애쓰는 것이다. 둘째의 방법은 본래 자기란 깨끗한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더럽히지 않도록 차단하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지금 완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점차 완전해지도록 노력하는 것임에 비추어, 후자는 자신이 이미 완전한 존재임을 확신하고 더럽히지만 않도록 자신을 통제한다는 것에 특징이 있다.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