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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사역과 기도(30)
jinkyukim

 

(지난 호에 이어)
크리스천들은 주님이 주신 교회의 본(참) 모습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 늘 성찰하는 기회를 멈추지 말고 주님의 공동체가 진정으로 국가를 껴안고 기도하며, 세상이 교회를 향하여 실망하지 않고 정직한 교회(사역자, 성도)로 인도되어 구원의 방주가 되어야 한다.


즉 “성령 충만을 받으라”(엡5:18)가 신앙 생활의 정도(正道)가 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우리들에게 원칙적인 충고를 전하고 있다(롬12:3). 즉 지혜와 사랑으로 교회를 섬길 것을 강력히 주장한다.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이 말씀을 필요로 한다.


주제를 넘어서 자신을 과대 평가하지 말고, 다만 주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분량에 따라 분별력을 갖고 자기 자신을 판단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또한 롬(12:9-12)의 말씀을 상고 해 보면, <사랑>에는 위선이 있을 수 없고, 해로운 것은 혐오과 두려움으로 바라보고, 선한 것은 아교처럼 고수하고 집착하며, 형제 사랑의 테두리 안에서 서로를 위해 가족적인 애정을 베풀라고 가르치고 있다. 


서로 존경하기를 경쟁하고, 열심에 관하여는 나태하지 말며, 성령 안에서 열정적으로 주하나님을 섬기며, 소망 중에서 기쁜 마음으로 환난 속에서 인내하라고 분명한 <복음>을 전한다. 


그리고 기도로써 그 환난들을 끝까지 참아내고, 성도들의 궁핍함을 함께 채우는 동참자로서 그들에게 기꺼이 호의를 베풀 수 있는 기회를 찾으라는 말씀이다. 


우리는 주하나님께서 요구하시고 허락한 자리를 나가기 위해서 주하나님께서 허락한 모든 지혜와 은혜들을 총동원 하여야 한다. 그래서 나의 인생을, 남은 여생을, 주하나님 앞에서 살찌우기를 소원하여야 한다. 


이것이 서로 건강한 신자(성도)끼리 모인 알뜰하고, 알차고,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명목상의 기독교인들” 중에는 <실제로 불신앙인들>이 있다. 위선자의 불신앙은 세상에 드러나기 이전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눈앞에 먼저 드러나게 된다. 


“마음을 아는” 것은 주 예수그리스도의 대권이다. 주님은 “믿지 않는” 자들이 믿는 척하고, 교회의 빈자리를 채우며, 의식에 참여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을 이용하나, 세상에서는 좀처럼 발각되지 않는 자들이 누구인지 아신다. 


종종 교회란 그런 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이 구별되는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날은 곧 오고 말 것이다. 신앙은 주하나님의 선물이요 주님의 일 이므로 주 예수그리스도께서는 누가 믿고 안 믿는지를 알 수밖에 없다.


“한번 계몽을 받아, 주하나님의 선한 믿음을 맛본” 자들이 <타락하면 다시 회개 하기란> 지극히 어렵다(히6:4-6). 주님의 더디 오심(재림)은 고난 받는 그의 백성에 대한 관심이나 동정이 결여되어가 아니며, 불신앙적인 세계를 장려하거나 격려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오직 사람들로 하여금 영원에 대해 준비하도록 시간 여유를 주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또한 오직 우리가 회개하고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하여 여유를 주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은혜 안에서 자라야 한다”. 즉 은혜와 믿음과 덕과 지식에 있어서 성장하여야 하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야 한다. 결코 사람의 기질이 주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야지, 주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기호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참회>의 은혜를 받은 자는 우리 자신들의 불행을 형벌로 인식케 하고 <자비>의 은혜를 받은 자는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고난이라고 이해한다. 우리 자신을 판단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요, 우리의 형제를 판단하는 것은 우리의 “죄”이기 때문임을 알자! 


뿌리의 깊음이 나무가 자라서 큰 정자나무가 되듯이 터가 굳어져야 큰 건물이 세워지고, 우리들이 요구하는 어떤 것도 <사랑>없이는 생길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주여! 성령으로 말미암아 내 속을 강하게 해주시옵소서. 주하나님 오셔서 나의 주인이 되시며 내 생활의 모든 부분의 감독자가 되시고 인도자가 되어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 없이 어떻게 “사랑에 뿌리를” 내리겠나? 


소도 자기의 주인을 알듯이 주님께 위임 받은 <사역자(PASTOR)>들은 “주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여드는 <양의 우리>인 주하나님의 공동체(교회)에서 어떠한 위험이나 해를 막아주기 위해서 “그들보다 앞서가고” 그렇게 습관됨으로써 영적인 면에서도 양들을 안전하게 보살피어야 한다. 


새로운 피조물인(거듭난 성도) 선한 사람들은 양처럼 좋은 성품을 가지고 있어서, “해를 끼치지 않고” 비공격적이다. “온유하고” 조용하며 시끄럽지가 않다. 모든 것에 <인내하며> 공동체에 “유용하고” 유익하며, 서로 잘 어울리고 <솔선수범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신자(성도)들이다.


이 세상 교회에는 그리스도의 양을 훔쳐서 악마에게 제사지내고 양의 먹이를 빼앗아 죽이려 드는 도둑들이 범접(犯接)한다. 환언하면 “양의 옷을 입은” <늑대들> (거짓 사역자) (마7:15)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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