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soonja
한순자

경기도 여주 출생,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기도 광수중학교 근무, 1992년 캐나다 이민, 캐나다문인협회 수필 부문 입상, 2006년 해외동포문학상, 작품집 <인생에 실패는 없다 다만 또 다른 삶이 있을 뿐이다>, <나이만큼 행복한 여자>, <밀리언 달러 티켓 나도 한장>,<행복이라는 이름의 여행>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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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픔이 그리움 되네
hansoonja

 

 
 작년 크리스마스 날 식구들이 큰 딸네 집에서 모이기로 했다. 음식을 몇 가지 준비해서 큰 딸네 집으로 갔다. 현관을 들어서는데 애완견 금동이와 짱아가 먼저 나와서 반겼다. “금동아, 짱아야 잘 있었느냐”며 그들을 한 번씩 쓰다듬는 순간, 벼락이의 부재가 크게 다가왔다. 


 딸과 같이 상차림을 하는 동안은 잠시 잊고 있었다. 그런데 음식을 먹는데 금동이와 짱아가 곁에 와서 올려다보는 그 눈을 보는 순간, 다시 또 왈칵 그 자리에 벼락이가 없음이, 보고 싶은 마음이 이런 거였네 실감케 했다. 


 그것은 내가 딸네 집을 방문할 때면 개 세 마리가 식탁 옆에, 밑에 앉아 먹을 것 좀 달라는 간절한 눈빛, 선명한 눈망울이 거기에 그냥 있었다. 그 순간 와락 벼락이가 보고 싶은 마음이 밀려왔다.


 그래서 “서진아(손녀), 벼락이 보고 싶지, 보고 싶지 않아?” 하며 독백이기도 한 그 말이라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벼락이가 보고 싶었다. 그랬더니 남편이 옆에 있다가 왜 애한테 그런 걸 묻느냐며 내 말을 제어하듯 했다. 


 그 순간 손녀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큰딸은 이미 눈가가 붉게 물들고 있었다. 그 후 며칠이 지나 우연하게 남편과 같이 큰딸 벼락이와 같이 드라이브를 갔다 오던 그 길을 지나게 되었다. 다시 또 그 순간 벼락이가 참 보고 싶어졌다. 


그 날은 벼락이가 ‘췌장암’이란 사실을 알고, 딸이 벼락이가 갈 날이 멀지 않았겠지 싶어 곁을 비우지 않음은 물론이요, 췌장암에 좋다는 음식까지 찾아서 해 먹이며 정성을 다하며 가슴앓이를 하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딸도 그렇지만 벼락이 기분전환 겸 드라이브라도 시켜주자고 우리 셋이서 드라이브를 다녀오던 그 길이었다. 


 그 날 벼락이는 차에서 앉지도 않고 서서 편안하고 즐거운 표정이 역력했는데 그 모습이 가슴 시리도록 보고 싶었다. 벼락이는 그렇게 즐거운 나들이를 하고 돌아와 그날 밤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났다. 그래서 더 잊을 수 없는 그 길인데, 우연찮게 남편과 같이 그 길을 지나게 된 거였다. 


 난생 처음 추억 어린 자리, 그것도 아름답고 그리움이 묻어있는, 벼락이의 살아있던 날의 마지막 모습이, 보고 싶은 마음이, 가슴에 먹먹할 만큼 밀려왔다. 


 그 후 며칠 지나 큰딸과 같이 밖에서 밥을 먹으며 벼락이 얘기가 나왔다. 내가 벼락이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보다 딸은 한층 더하리란 것을 난 안다. 벼락이는 딸아이가 어릴 때부터, 한국에서 데려다 키웠으니 16년이 넘는다. 그러니 벼락이의 부재가 때론 가슴 저리도록 보고 싶을 것 같다. 


 그런 마음을 더더욱 알 수 있음은, 서진이가 아침에 데이케어에 가며 금동, 짱아한테 갔다 오겠다고 인사를 한다고 한다. 그런 손녀에게 벼락이한테도 인사말을 하라고 한단다. 그런 말을 들으니 딸아이가 아직도 벼락이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하물며 그리운 사람, 그리운 얼굴은 비록 세상을 떠났다 해도 단지 볼 수 없다는 것뿐 항상 곁에, 가슴 속에 있음을 대변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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