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soonja
한순자

경기도 여주 출생,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기도 광수중학교 근무, 1992년 캐나다 이민, 캐나다문인협회 수필 부문 입상, 2006년 해외동포문학상, 작품집 <인생에 실패는 없다 다만 또 다른 삶이 있을 뿐이다>, <나이만큼 행복한 여자>, <밀리언 달러 티켓 나도 한장>,<행복이라는 이름의 여행>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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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인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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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호에 이어)
 주인 남자가 내 이런 심정까지야 알지 못하겠지만 그 역시 사람이 바르고 그야말로 점잖은 사람으로 보였으니 서로가 인덕이 나쁘지 않은 사람들이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 날 가게엘 나가니 웬 여자들이 두 사람 있었다. 주변에 사람이 아무도 없다더니 벌써 중국인들이 나와서 트레이닝을 받는가 싶어 일하고 있는 한인 영대에게 물어봤다. 그랬더니 한 사람은 첸의 친구이고, 한 사람은 본사에서 나온 사람으로 진열장 청소와 물건을 새롭게 진열해 주기 위해 나왔다고 한다. 


 내가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나오니 본사에서 나왔다는 여자가 왜 모자를 거꾸로 썼느냐고 물어 보기에 빨리 답변이 나오지 않았다. 난 유니폼에 속해 있는 모자를 챙을 뒤로 해서 쓰곤 하였는데 그것은 챙이 가려 앞이 갑갑해 보여 그리했던 것이다. 그것이 아예 내 스타일이 되어버려 어떤 손님은  왜 모자를 쓰지 않았느냐고 묻는 날도 있었다. 


 그녀들이 안으로 들어가고 영대가 나오더니 본사에서 온 여자가 첸 보고 저 여자는 모자를 왜 저렇게 쓰느냐고 나가라고 했다는 소리에 물론 농담이겠지만, 그 여자가 나보고 나가라고 했느냐고 첸에게 재차 물으니, 그 여자는 갔으니 괜찮다며 “대츠 오케 대츠 오케”하며 첸과 친구가 동시에 합창하듯 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도 내 비위를 건드려 내가 당장 그만 두고 나간다고 하면 큰일이기라도 한 듯 내게 안심 하라는 듯 조금은 내 비위를 맞춰 주고 싶은 그런 느낌이었다. 이렇게 먼저 주인이었든 한국인은 떠나고 새 주인인 중국인이 왔다. 


 중국인 첸을 만나다


 그즈음 한국 사람들은 도넛 가게를 슬슬 빠져 나가고 그 자리를 중국인이 채오는 경우가 종종 눈에 띄었다. 대부분 한국인 주인은 한국인을 종업원으로 쓰는가 하면, 중국인은 종업원을 한국인들도 많이 쓰고 있어 나로서는 새로운 인연에 대해 어떤 만남이 될 수 있으려나 기대도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상대를 만날 땐 상대의 첫인상이 가슴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음을 안다. 차츰 만나면서도 첫인상에서 받았던 느낌이 크게 바뀌지 않아 첫인상에서 좋은 느낌으로 자리 잡은 사람은 사귀면서도 나쁘지 않은 관계로 이어지기도 한다. 


 내가 첸을 만났을 때 인상 깊었던 것은 순수하면서도 남을 의심하지 않는 그런 성품으로 보였다. 성격이 나쁘지 않게 보였던 것도 좋았지만, 가게를 인수하고 첫날 종업원이 교대하는 시간에 나왔음에도 돈 통을 챙기지 않았다는 데서도 조금은 의아스러울 지경이었다.


 우리가 가게를 할 때도 물론이지만, 그동안 한국 사람들은 돈 통을 챙기는 것은 기본이었다. 그런데 첸은 으레 다 알아서 하겠거니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는 그런 모습으로 보였다. 교대 시간에 나왔음에도 돈 통조차 챙기지 않는 것을 봐도 그랬지만, 그 후 몇 번 더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사람도 내 마음 같겠지’하는 본보기를 보는 듯 했다. 


 일이 끝나면 교대하는 사람과 돈 통을 바꿔 가지고 안으로 들어 와서 돈을 세어 놓고 가게 되어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누구 돈인지 얼마간의 잔돈이 조리대 위에 놓여 있었다. 그 잔돈을 보는 순간 그 다음날 첸이 가져가겠지 했던 것은 오산이었다. 그 돈이 며칠 그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한국에서의 일은 접어 두더라도, 우리가 이곳에서 도넛가게를 인수하면서 종업원도 그대로 쓰기로 해서 종업원 모두 외국인이었다. 가게를 하는 동안 종업원을 완전히 믿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커피숍이라는 곳이 손님들이 주는 팁도 있어 물건 값을 받아 본인의 팁 통으로 넣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러니 계산대 위에 놓인 잔돈은 그 다음 날이라도 종업원들에게 물어 봐서 돈의 주인을 확인하거나 할 터인데 며칠 그 자리에 그냥 있었다. 사실은 그런 점들이 첸을 지금까지 좋은 기억으로 남게 했음도 고맙기 이를 데 없다. 


 나야 나 자신을 내가 알기에 그렇다 해도, 내 기억속의 첸이나, 첸의 기억속의 나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어느 날이었다. 마감하기 전 쓰레기통을 비우는데 사무실 안 쓰레기봉투에서 20불짜리가 하나 나왔다. 난 처음에 그 돈이 가짜 돈이라서 첸이 쓰레기통에 넣었는줄 알고 그대로 버리려고 했다. 내가 살펴봐도 진짜 돈인지 가짜인지 잘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 다음 날 그 돈을 첸에게 주며 쓰레기 통 안에 있었다고 하니 가게 안 쓰레기통이었느냐고 묻기에, 사무실 안의 쓰레기통이었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 돈이 진짜 돈이었다며 내게 5불을 주기에 그 돈은 첸의 돈이니 내가 받지 않겠다고 돌려주었다. 


 첸이 생각해도 아무도 모르는, 아무도 보지 않은 20불은 아무 말 하지 않고, 내가 가져도 되는 돈일지 모른다. 그러나 난 그 20불이란 돈을 내가 갖는다면 평생 개운치 않은 감정으로 남을 것을 알기에 그것이 내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돈이었다. 


 일반적으로 중국인들은 의심이 많다고 한다. 실제 어떤 사람은 너무 의심을 많이 하는 중국 사람을 만났던지라 중국인에 대해 좋지 않은 선입견으로 자리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생업’이 씨줄이라면 사람과의 ‘만남’은 날줄이 된다. 무슨 일을 하며, 어떤 사람들과 만나며 살아 왔느냐가 그 사람의 인생이 되는 것이기에 ‘인연’은 소중하다 말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살아 온 삶을 되돌아 볼 때 사람과의 만남, 추억이 우선 떠오름도 무리가 아니다. 


 악연을 만나지 않은 삶도 행운일진대 좋은 만남, 아름다운 만남이야말로 삶을 얼마나 살찌우던가. 


 첸을 떠올릴 때면 순수한 모습으로 먼저 다가서니 좋았던 만남으로 추억할 수 있어 오래도록 따뜻한 마음으로 간직할 수 있어 고맙기 이를 데 없는데, 과연 난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을까 잠시 생각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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