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soonja
한순자

경기도 여주 출생,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기도 광수중학교 근무, 1992년 캐나다 이민, 캐나다문인협회 수필 부문 입상, 2006년 해외동포문학상, 작품집 <인생에 실패는 없다 다만 또 다른 삶이 있을 뿐이다>, <나이만큼 행복한 여자>, <밀리언 달러 티켓 나도 한장>,<행복이라는 이름의 여행>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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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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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사람들은 모두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꿈꾸며, 어떤 마음으로 사는 것일까? 흔히 사십 넘어서는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지라고 하는 얘기는 그동안 어떠한 마음으로 어떠한 환경에서 살아 왔는지 대강 그 사람의 얼굴을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한국 사람도 많고 여기저기 한국 식품점도 많아 때때로 여기가 한국인가 외국인가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하지만 이민 초기에는 한국 사람만 봐도 반갑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라든지 도움이 필요할 때면 서로 나서서 도와주곤 했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 사람이 차츰 많아지면서 오히려 같은 한국인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이 앞서기보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나도 서로 얼굴을 외면해 버린다는 얘기도 듣곤 했다. 그러는 그들이 늘 가슴속엔 고향, 고국을 잊지 못하고 가슴에 안고 있다고 한다. 이런 곳에서 만나는 사람이 고향 사람, 한국 사람이 아니고 누구란 말인가. 아무리 같은 동족끼리도 모르고 지나면 외국인이나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외국인이라 해도 늘 대하고 마음을 주고받으면 그들이 곧 내 동족이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떤 친구가 다시 한국에 가서 살면 지방에 내려가서 살겠다고 한다. 지금껏 서울에 살던 사람이 타지방에 가서 살면 말이 통한다는 것 이외엔 그들과 사귀고 익히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타지에 가서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이민 생활 10년 20년 30년 하던 사람이 가슴에서 못 잊어 연연하던 조국엘 가면, 모두 아는 사람이고, 모두가 말이 통하는지 생각해 보면 알 일이다.

 

 몇 십 년 만에 나간다 해도 내 부모 내 형제, 친척이나 그때 알던 친구 몇 명일뿐이지 아무도 알아보는 이 없고, 알아주는 이 없이, 단지 모국 방문, 관광에 그치고 말게 된다. 나야말로 우리의 아이들이 작은 딸 같은 경우는 그곳에서 초등학교 6학년 올라 갈 때 왔으니 너무 어려 친구 관계가 거의 형성되지도 않았기도, 그나마 친구들 소식이 모두 끊겨 한국엘 나가면 누구를 만나게 될지 걱정스럽고 안됐다고 했더니, 인터넷을 통해 그때 친구들 몇 명을 거론하면서 근황까지 얘기를 하기에 한국엘 가면 그나마 몇 명은 확실하게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있겠구나 조금은 안심이 되기도 한다.

 

 그러기에 가까운 친척이 이웃만 못하다는 얘기가 열 번 나옴직한 것이다. 아무리 가까웠던 사이일지라도 자주 보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며, 옆에서 늘 보는 사람과 가까이 지내게 되는 것이다. 아들 딸을 어린 나이에 외국으로 유학 보내 놓고 음식을 앞에 놓고도 아이들 생각이 나서 울고, 아이들을 멀리 보내 놓고 옷은 입어서 무엇 하겠느냐며 허름한 옷만 입고 산다는 이도 있었다. 이는 비단 그녀뿐이 아닌 오늘의 많은 엄마들이 자식과 떨어져 있어야 하며 부부지간에도 떨어져 지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세상에 태어나 부모 자식지간, 부부지간이 가장 가깝고 사랑하는 사이임에도 이처럼 같이 생활 할 수 없는 것이 요즈음의 실태다. 마음 속 가슴속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차지하고 있음으로 해서 자칫 아니, 정작 눈앞에 있는 사람들,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아끼고 사랑하지도 못한 채 시간, 세월이 흘러가 버리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무리 부모 자식 부부지간이라도 보고 싶을 때 보지도 못하고, 먹는 음식, 맛있는 음식도 함께 하지 못하며 많은 세월 놓쳐버린다면 안타까워 어찌하려나.

 

 내가 도넛 가게에서 일을 할 때 이따금 음식을 만들어 가게에 가지고 갈 때가 있었다. 그것은 어차피 엄마나 친구들은 볼 수 없어 내가 매일 볼 수 있고, 만날 수 있는 사람들과 마음 적이나마 같이 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단골들의 적지 않은 이들이 나의 그런 점을 알기에 그들 역시도 음식을 가져 와서 내게 권할 때가 있다. 그런 이들 중에 에티오피아에서 왔으며 38살이라는 어떤 남자는 집에서 요리할 시간도 없지만 하지도 않기에 대부분 밖에서 사 먹는다고 한다.

 

 그가 그즈음 오후 여섯시 좀 넘어서 밥에 닭고기 몇 점 넣어서 볶은 밥이 저녁이라면서 먹으며 나보고 한두 번 먹어 보라고 하여 먹어 보았다. 그가 집에 가져가지 않고 그곳에 앉아 먹게 됨은 집에 가서 혼자 먹는 것보다는 덜 외롭기 때문일 것이며, 내게도 조금 주고 싶은 마음도 있는가 보다. 그것은 언젠가 내가 수박을 가져가서 손님 몇 명에게 줄 때 그도 있었고 또 팝콘을 한 봉지 튀겨 내어갔을 때도 그가 있었기에 그도 내게 무엇인가 주고 싶어 그리하지 않나 싶다.

 

 또 어떤 단골은 내 시간대에 올 수가 없기에 때로는 우정 시간을 내어 커피 한 잔 사며 팁을 주고 가거나 어느 날은 초콜릿을 사다가는 건네주고 가는 그에게서도 별다른 애정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나는 요즈음 내가 매일 볼 수 있고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을 마음에 두고 사랑하려 애써 본다. 많은 아는 사람 친구가 가슴에 남아 있다 해도 매일 같이 볼 수 있고 만날 수 있는 이들에게서 더한 애정을 느끼기도 한다. 이 나이에 캐나다까지 와서 이 순간, 나의 삶 속에, 나의 시간 속에, 같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하지 않으면 누구를 사랑한다는 말인가.

 

 사람은 자칫 이해관계가 얽힌 사람에겐 그 얽힌 만큼 멈추어 있거나, 얽힌 만큼 이상은 마음이 가지 않을 때가 많다. 하지만 아무런 감정도, 사심도 없는 사람에겐 내 마음을 열기만 하면 그 이상의 애정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매일 볼 수 없고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은 가슴에 담고 사랑함도 있어야겠지만, 매일 볼 수 있고 만나는 사람들을 진정 마음에서 사랑을 느끼고, 사랑을 하려는 마음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내 삶 속에서 하루하루를 같이하는 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야말로 나의 삶, 나의 인생을 풍요하게 함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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