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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유감-캐나다와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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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남 

 

 매년 새해가 오면 1월에 나에게는 인생에 아주 소중한 날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1월 14일 내가 가족과 함께 1977년 캐나다에 이민 온 날입니다. 올해는 45년이 되는 해. 왠지 어느 해보다도 감회에 젖어 듭니다.

1975년 캐나다 대사관에서 이민 심사를 받는 날, 나는 근심 걱정에 가슴이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사실 처음이 아니라 3번째 심사에 떨어진 상태이고 마지막 기회였기 때문입니다.

3번째 이민 서류를 넣고 아무 소식이 없을 때 나는 왠지 실격 당한 듯하여 장문의 편지와 함께 저에 대한 자료를 보냈습니다. 코너 가게를 하면서 매년 어린이 잔치를 벌이고 길을 찾는 분들을 위한 안내소, 노인들을 위한 놀이방, 산골 마을문고 만들기, 공동묘지 외로운 영혼을 위한 합동 위령제 등의 봉사 이야기와 그리고 각종 표창장과 KBS방송국 통일원 문화공보부 수기당선 그리고 TV 단막극, 라디오 연속극 등의 사연과 청와대 단독 초청 이야기까지 써서 보냈습니다. 그러자 1주일 만에 연락이 왔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민서류 속에 용접공 5년 경력에 캐나다 고용 계약서가 있었습니다. 사실 그 당시 저는 용접공을 막 배우기 시작했었습니다. 그러니 걱정을 아니 할 수 없었죠.

인터뷰가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심사관은 큰 사전을 꺼내 펼치고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형이 캐나다에 오면 기술이 있어야 한다고 해서 지금 용접을 배우고 있습니다”

고 대답했습니다

그 순간 나는 너무나 부끄럽고 죄송했습니다. 안돼도 좋으니 순간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더 이상 물어보지 않고 그 두꺼운 책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캐나다에서는 어떻게 살 것인가?”

 “캐나다에 가면 한국에서와 같이 훌륭한 시민으로서 살겠습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간단한 질문을 한 뒤 인터뷰는 끝났고 그는 저의 캐나다 이민을 받아주었습니다. 나는 그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그는 나의 잘못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나의 진심을 알아주었던 것입니다. 나는 그에게 가슴 속으로 약속을 했습니다. ‘캐나다에서 훌륭하게 살겠습니다.’

캐나다에 오자 저는 맨파워 스쿨에 다녔고 집사람은 회사에 다니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며 캐나다의 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다 접시닦기, 호텔 청소를 거처 집사람이 모은 5,000불을 종자돈으로 1978년 11월 영과 로렌스에 허술한 가게를 인수하고 28년간 운영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아들은 장가가고 딸은 시집가서 아이들 낳고 직장과 사업하며 잘 살고 있으며 우리 부부는 은퇴하고 편히 지내고 있습니다. 저는 캐나다에 살면서 약속을 잊지 않았습니다.

어린이 잔치를 벌이고, 노인잔치도 하고, 망가진 신호등, 4거리에서 교통정리, 교민행사에 엿장수, 농악대 탈춤을 추고, 실협 15년과 한인회 20년 이사 그리고 무궁화사랑모임에 임원으로서 무궁화를 널리 보급하고, 매년 현충일 행사를 열어 참전 희생자를 기리며, 한국과 캐나다의 우대를 쌓는데 정성을 쏟고 있습니다.

나는 생각합니다. 캐나다에서 훌륭하게 살겠다는 약속 잘 지키고 있다고… 캐나다는 어떻게 나를 생각할까요? 나는 캐나다의 대답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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