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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동란
(피커링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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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지금 어디쯤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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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2일. 내가 정말로 말이 아니다. 오후에 지하실 수도관이 동파했다. 2~4시 사이의 시청 문화 교실을 끝내고 귀가했을 때 물이 넘치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자. 남편에게 알렸고, 옆집에서 똑같은 사고로 전문가를 불러 작업을 끝내고 우리 집에 왔다. 그런데 나는 기억이 없었다.
왜 기술자가 왔는지 도무지 생각이 안 났다. 기억을 잃었나? 어째 이런 일이. 퇴근한 남편 말에 의하면 밤 12시쯤 영수증을 읽으면서 “여보, 동파였대요?” “당신은 몇 시에 왔나요?” 하면서 자꾸 물어봤단다. 침실에 가서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집에 혼자 있을 수 없어서 남편 가게로 같이 출근하고, 침착하게 보험회사에 연락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24일 응급실에 갔다. 머리 사진을 찍느라 5시간을 기다렸다. 결과는 괜찮았다.
그런 일도 때로 있다는 듯 젊은 한국인 의사가 얘기했다. 
충격의 여파인 듯 두통, 복통까지. 다시 응급실에선 심장 조사(심전도)와 CT촬영까지 하였다. 4시간의 검사 후에 결과는 정말 괜찮았다. 그런 와중에 H S 아우가 소천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충격에 빠졌다.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아팠다.
카톡으로 소식을 알린 Y S 아우도 뇌졸중으로 사망. 이 소식은 너무 가혹한 벌인듯했다. 정신이 멍한 채로 일손이 안 잡히던 2~3일간의 내 모습이다. 오늘 두 후배와 작별했다. 하얀 종이만큼 내 머리도 하얘진다.
어찌해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자녀를 두고 남편을 뒤에 두고 한 많게 떠난 두 후배. 더구나 혹독한 추위와 눈발이 성성한 겨울에 당신들은 훌쩍 떠났구려. 땅속이라 춥지는 않은지 걱정이 되네.
날이 풀리는 대로 꼭 찾아갈게, 기다려 주게나. 허무한 인생길에서 우린 서로 사랑했지. 언니 노릇도 제대로 못한 점 부끄럽소. 용서하오. 내가 조금 불편했던 것, 두 아우의 죽음 앞에선 견딜만한 고통이었지만 나도 힘이 드네.
지금도 내 살을 꼬집어 보면서 무슨 일이 얼마큼 있었던 건지, 사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다고 다부지게 물어오는 이가 있는걸 알았다. 
새벽이나 늦은 밤 가게에서 돌아온 남편이 피곤함 중에서도 말없이 응급실을 4번이나 들락거리면서 1주일 사이 나를 간호했던 무던한 남편의 성실함에 주님이 감동한 듯 회복되어 가는 나를 보면서 아이처럼 “그래, 내가 말했지? 좋아질 거라고”. 웃음 섞인 주름이 있는 당신의 수고가 고마워요.
충격의 여파인 듯 팔도 목도 어깨도 견딜만하게 고통스럽다. 기운 차린다고 매일 식당을 찾는다. 겨우 월남 국수인데 입맛이 아직은 연명을 위한 식사다. 밖엔 너무 어둡다. 하루 종일 혼자 있어 보긴 내 평생 처음이다. 조금씩 마음을 추스르자. 설날에 과로로 사망한 한국 의사 얘기가 남의 일이 아니다. 
충청향우회 대보름 잔치가 2월 23일 저녁 6시에 신라회관에서 있다. 정다운 고향 사람들 모두 모여 쌓인 정과 덕담을 나누고, 다양한 상품과 게임도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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