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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 트레일을 걸어 마추피추(Machupicchu)까지(3)
chojungdae

 

 


쿠스코(Cuzco), 잉카의 ‘배꼽’을 찾아서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해온 고산병약 Diamox 반 알을 챙겨 먹고 리마공항으로 이동하여 8시 30분에 쿠스코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는 인디오들의 말로 ‘배꼽’이란 뜻인데, 아마 잉카제국의 중심지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 같았다.


우리가 이곳에서 무려 3일 동안이나 머물게 되는 이유는 이 도시가 잉카의 오랜 수도였기 때문에 볼만한 유적들이 많다는 점과, ‘마추피추’로 가는 길목이면서 해발 3400m의 고원지대에 위치해 있어 고산병에 적응하는 기간을 갖기 위해서인 듯했다.


1시간 30분 정도면 도착하는 거리다 보니 비행 고도가 높지 않아 창밖 풍경들을 선명하게 내려다 볼 수가 있었는데, 한없이 건조해 보이는 험한 민둥산들의 끝없는 연속일 뿐이었다.


공항에 도착한 우리 일행들의 표정을 보니 서로 말은 하지 않지만 조금씩은 다른 증상으로 나타나는 ‘고산병 증세’에 당혹감을 느끼지 있는 듯했다.


그런 중에 처음 대하는 낮 선 도시의 분위기는 침울하고 그늘진 흙갈색이었다.


‘리마’를 ‘정복자 스페인의 도시‘라고 한다면 이곳 ‘쿠스코’는 ’패배자 잉카의 도시‘라는 선입감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잉카제국이 한창 번창할 때는 상주인구가 20만이 넘었다는데, 지금은 10만 미만의 인구가 주로 관광수입에 의존하여 살아가고 있는 실정이란다.


이어 가이드가 들려준 ‘쿠스코 최후의 날’에 일어난 일들은 너무나 충격적인 한민족의 한맺힌 역사 이야기라 듣는 내 가슴이 다 떨렸다.


잉카의 마지막 왕은 침략자들에 의해 완전히 함락당하기 직전에 잉카문명에 대한 모든 자료들을 불사르고, 여자와 아이들을 자신들의 손으로 모두 죽인 다음, 남자들은 최후까지 항전하다 작렬하게 전사했다고 했다.

 


13세기 초부터 320여 년간 중앙 안데스의 전 지역을 통치하면서 찬란한 문화를 일으켰던 잉카제국은 농업, 직물, 도자기, 금은 세공과 함께 돌을 다듬는 석공 일이 특히 발달하였는데, 그 당시에 지어진 궁전과 신전을 비롯한 성벽을 돌로 쌓는 기술은 너무나 정교하고 웅장하여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우리 일행들은 3일 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옛 잉카시대에 만들어진 길들을 걷는 1일 하이킹도 하고, 고급 식당에 초대되어 저녁 만찬과 함께 그들 고유의 민속음악과 무용도 즐기는 귀한 시간들을 보냈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이곳에서도 잉카의 궁전과 신전들을 헐고, 그 위에 성당을 세우는 등 지나칠 정도로 잉카의 흔적들을 지우기에 바빴지만, 현재 인디오들이 믿고 있는 종교는 아이러니하게도 태양신과 기독교를 함께 믿고 있다는 기이한 사실이다. 


성당 내부에 조각되어 있는 성인 상과 성화들 속에도 잘 들여다 보면, 눈에 잘 안 띄는 곳에 잉카의 문양들이 새겨져 있는 것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잉카 조각가들이나 화가들이 임의로 새겨 넣고 그려 넣은 것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에 설명하는 이 놀라운 그림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대성당 제대(祭臺) 가까운 오른쪽 벽면에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만찬’을 연상케 하는 큰 규모의 벽화가 걸려 있는데, 큰 식탁 위에는 빵과 포도주 대신에 예수님 앞 쟁반에 큰 쥐를 닮은 동물 기니아 픽 구이(Roasted Guinea Pig)가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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