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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스브르그 쁘띠 프랑스 - 마지막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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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프랑스령이면서도 오히려 소수민족이 되어서일까? 프랑스 사람들이 운하 주변에 모여 프랑스풍으로 살던 작은 동네를 요즈음에는 ‘작은 프랑스’ 곧 ‘쁘띠 프랑스’라고 부른다. 아직도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해서 유럽에서 가장 아기자기한 도시로 알려지고 있는 도시 속의 도시다.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에 나오는 도시가 바로 이곳이다.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의 ‘마지막 수업’은 어떤 배경에서 쓰여 졌을까? 영주들 중에서도 더욱 힘 있는 영주들이 왕으로 등극하며 나라가 되고, 국토가 정해지던 중 프랑스에서는 혁명이 성공하여 왕정이 무너지며 대 혼란이 일어나게 되자 나폴레옹이 출현하여 정복전쟁을 시작하며 프랑스의 영토를 넓혀 가기 시작하였다.

 

 

 


나폴레옹 출현 이후, 독일어를 사용하던 사람들이 더 많던 이 지역에 대한 프랑스의 언어 통제 정책이 바뀌면서 더욱 강화되어 학교에서는 프랑스어를 강제로 가르치며 프랑스로의 귀속을 확실하게 추진하였던 것이다. 즉 독일어 사용을 허락하던 프랑스 국민들에게 프랑스어만을 사용하라고 공권력을 사용하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1861년 보불전쟁에서 프랑스가 패배하자 알자스지방은 다시 프로이센에게 넘어갔고, 이로써 이 지방 주민들은 다시 일상 언어, 즉 독일어를 되찾게 되며 새로운 세력이 공권력을 사용하여 나폴레옹 집권시절 학교에서 프랑스어만을 사용하게 하던 정책을 바꾸어 학교에서 프랑스어 사용을 금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중학교 때 배운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은 바로 이 때 일어난 사건을 배경으로 하여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면서 알자스는 독일 땅일 수 없으며 세계 언어 중에 오직 프랑스어가 가장 아름다운 언어임을 소설 속에서 강변했던 것이다.

 

수없이 주인이 변하고 또 변하는 격변의 시기 중의 한 단면에서 학교에서 일어나던 일을 단편소설로 써 내며 읽는 사람들의 감정에 호소하였던 것이니 그 ‘읽는 사람이 어느 쪽에 속하였느냐?’에 따라서 이 이야기의 진가는 상반되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운명적인 소설이 되고 말았나 보다.

 

 

 


‘마지막 수업’을 배우던 우리들에게 도데는 '서정적 작가'로 알려졌지만 평론가들에 의하면 실제로 프랑스 혁명 당시의 사회적 혼란 속에서 그는 극렬한 왕당파였으며 그의 아버지 또한 우익 왕당파였다고 한다. 


왕당파라고 서정적인 작가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을 터인데 막상 도데가 당시 알자스 주민 대부분이 프랑스어를 모르는 독일계였음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의 소설 ‘마지막 수업’은 알자스 주민들을 대상으로 프랑스어 교사가 독일의 강권에 의하여 마지막 수업을 진행하는 장면을 설정하면서 칠판에 '프랑스 만세'라고 쓰고 마지막으로 "나라를 빼앗겼어도 말을 지키면 나라는 다시 찾을 수 있다"라는 말로 끝맺음을 하고 있기에 아마도 세계의 문단에서는 그의 ‘마지막 수업’이 양측으로부터 서로 상반된 극단적인 평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들에게는 일제의 강점기에 한국어와 한글을 말살당했던 아픈 역사적 배경과 너무나도 비슷한 상황이었기에 더욱 가슴에 와 닿는 서정적인 단편 소설이 되어, 배운 지 5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이 지역을 걸어 다니면서 가슴 뭉클하게 되새김이 되는 이야기다. 

 

 

 


나는 캐나다에 50년 넘어 살면서 아직도 한국어를 사용하여 이 글을 쓰고 있는 한국 사람이니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서 어떤 한 순간의 상황을 소설로 설정할 때, 문인은 어느 쪽의 사상이나 행동에 동조하며 써야 할까?


스트라스브르그는 물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운하역할을 하는 ‘일 강’이 도심을 구비구비 흐르고 있다. 이 운하 주변의 아름다운 거리를 ‘작은 프랑스’ 곧 ‘쁘띠 프랑스’라고 부른다. 프랑스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해서다. 


관광 명소인 나무 골조 가옥 사이를 ‘일 강’이 흐르고 있고, 그 수로를 따라 관광용 잔교가 늘어서 있는 이 구역은 한때 악취가 나는, 풍기문란한 곳이었단다.


많은 물을 필요로 하는 피혁 공장들이 일 강 주변에 들어서자 가죽을 염색, 가공하는 과정에서 나는 심한 악취와 공장의 직공들을 유혹하는 거리의 매춘부들이 늘어나면서 성병 환자들이 많았었단다. 


당시 이 성병을 치료하려면 많은 수은이 필요했는데, 수은은 피혁업자가 업무상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 지역에 성병 치료 전문병원이 들어서자 더욱 환자들이 몰려 들었단다.


하지만, 지금은 ‘쁘띠 프랑스’가 유럽에서 가장 아기자기한 도시로 알려지며,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최고의 매력 포인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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