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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거머리
baikkj

 

 나는 은퇴 후의 삶을 글로 쓰면서 살고 싶다. 오래 전 토론토 어느 주간지에서 운영하는 산문교실에 학생들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게 됐다. 찾고 있던 교실이라 나는 두번도 생각하지 않고 전화를 걸어서 글을 쓰는데 흥미가 있는 사람이라 전하고 등록을 했다. 


 이 강의는 매달 두 번째 토요일에 열리는데 기대하는 첫 강의를 듣기위해서 시작 10분전 도착하였는데 이미 도착한 연령과 관계없이 와있는 학생들은 새로운 얼굴에 환영으로 맞이해 주었다. 이렇게 나는 어색한 분위를 모면하고 내 인생의 제2의 커리어를 위해서 또 다른 학생이 되었다. 


 첫 강의에 선생님은 사고의 진화가 우리 안에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설명해 주었다. 오랜만에 듣는 기쁜 말이었다. 글을 잘 쓰기위해서는 이 단계가 반드시 필요하고 이것은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는 길밖에 없다 한다. 


 나는 평소에 그런 대로 이 세가지를 최대한으로 하려고 노력하면서 살아왔는데도 내가 잃어버린 어휘력은 글을 쓰는데 많은 제한을 가져다준다. 왜냐하면 너무 오랫동안 머리에서 조국어를 삭제하는 작업을 해왔기에 그렇게 귀한 내 나랏말을 상실했다.


 그런데 언어의 활동에 대해서 강의가 끝나면서 사고는 남의 글을 모방하면서 내 사고에 접목시켜 거기서 사고의 진화를 하도록 노력하란다. 이런 작업은 나에게는 상실한 언어들을 다시 찾아내는 일이기에 얼마나 긴 시간이 소요될지 모르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사고 속에 따라다니는 “찰거머리” 를 제거하는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이 나에게 극복하기 힘든 과제이기도 했다.


 찰거머리의 의미란 “잘 달라붙고 떨어지지 아니하는 거머리”라 사전에 나와 있다. 이곳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일인데 나는 중학교 시절 농업수업시간이었다. 선생님은 철부지 남녀 학생들을 데리고 논으로 갔었다. 쌀이 어떤 경로를 거쳐서 우리들의 밥상까지 오르는지의 과정과 농부들이 벼를 어떻게 심고 가꾸는지를 보여준다면서 우리를 모두 논으로 집합 시켰다. 그런 후 우리 모두에게 모를 심으라고 지시했다. 


 우리는 흙탕물이 무릎까지 오는데도 아무런 장비 없이 들어가 모를 심고 할당이 끝나면서 밖으로 나왔는데 거무스름하고 미끈덕 거리고 찐덕찐덕한 지렁이 같은 기생충들이 우리 종아리에 붙어서 따라 나왔는데 그때 그것들을 떼어 내느라 얼마나 고생하고 무서웠던지 평생 잊지 못할 나의 어린시절 에피소드로 남았다.


 그런데 내가 이 교실에 온 이후 한 번도 빠짐없이 선생님은 그 찰거머리란 단어를 빼놓지 않고 우리 머릿속에 되새겨 준다. 이 연습을 해야만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한다. 이것이 사고의 전환이란다. 나는 학생이 된 후에 평생동안 함께 껴안고 살아온 내 언어의 찰거머리가 나를 매일같이 지배하도록 허락하고 살아왔음을 보게 되었다. 


 일상생활에서 직장에서 굳어져 버린 사고, 편하게 입고 살아온 내 속에 잠재해 있는 생각들은 그런 떼려야 뗄 수 없는 기생충으로 성장한 나의 일상의 친구들이다.


 매일같이 글을 쓰면서 내 언어를 제한시키고 붙들고 있는 이 사고의 기생충들을 제거하는 일을 호흡하듯 해야 한다. 그래서 그 흔적들을 내 글을 통해서 조금씩 보는 날이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내 육신의 근육을 단련하듯 사고의 찰거머리가 소멸될 때까지 단련하고 Ep버리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날이 언제 올지 모르지만 나는 다시 걸음마를 배우는 어린아이처럼 사고의 걸음마를 다시 시작해야 먼 훗날 내가 아름다운 글을 쓸 때 우리 선생님의 공이 얼마나 지대하였는가를 보게 될 것이다. 그때 그 찰거머리란 단어는 나의 사고의 전환에 감사함으로 다가올 것이라 생각을 하면서... (2011, 0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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