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mYul
노삼열 칼럼

토론토대학교 정신의학과 석좌교수(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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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ced Retreat(5) -문턱에서 서성이는 이방인
SamYul

 

(지난 호에 이어)

우리 부부가 이민한 후 2년이 지나지 않아 모친과 동생 부부가 토론토에 왔다. 당시 나는 공장에서 매우 힘든 노동을 하면서 살고 있었다. 그러면서 다세대 주택에서 다른 세인들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 부엌과 욕실과 세탁실은 서로 눈치를 보아가며 시간을 나누어 사용했다.

아내가 내가 입고 신는 작업복과 작업화를 세탁실 한 구석에 놓아두곤 했는데, 어느 날 어머니와 동생이 물었다. "세탁실에 먼지가 심한 노동복과 작업화가 있는데 누구거야? 여기 막노동 하는 사람이 살고 있는 모양인데 고생 많이 하네." 그날 밤 아내는 많이 울었고 나는 아랫입술을 물었다.

어머니나 동생은 그것이 나의 것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다음 날 아침 그것들을 입고 커다란 점심통을 들고 버스를 타는 나의 모습에서 모든 것을 알게된 어머니와 동생은 모든 것이 무너지는 낙심을 겪었다고 훗날 말했다.

한국에서 spoiled 청년으로 살던 때와 너무나 다른 나의 모습이 모친과 동생에게는 너무 낯설었다. 한국에서 책임이나 의무는 피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주위에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예를 들면 가까운 친구들 중 ROTC 장교입대 외 일반병으로 입대한 친구가 흔하지 않았다. 대부분이 이런저런 이유로 군복무 의무를 피해갔다. 그런 국민적 의무는 불행한 자들의 몫이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꼭 집어 내놓고 주장하지는 않지만 크게 잘못된 것이라는 의식도 없었다. 당연한 것이라도 여겼다.

그때는 자신에 뚜렷한 목표도 없었고 미래를 위한 계획도 없이 지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큰 걱정 없이 그냥 잘 될 것 같은 막연한 생각으로 살았다. 돌아보면 참으로 어이없는 철부지였다. 이렇게 살던 내가 말로 다하기 힘든 정도의 생활을 마다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동생에게 낯설었는지 "엄마 내가 알던 그런 오빠가 아니야. 신경질도 없고 불평도 하지 않고 철저하게 사는 게 완전 딴 사람이야"라고 했다.

 그 시기에 나는 내면에 전연 다른 경험을 하고 있었다. 마치 No Exit의 막다른 골목에서 새로운 생존을 위한 지혜를 갈구하는 발가벗겨진 모습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우선 내가 한 성인과 가장이 되기에 얼마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는지 자신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주위의 이민자들이 나름 자신의 책임에 대비와 준비가 되어있고 목표와 계획을 갖추고 있음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실력의 뒷받침이 없는 자존심이란 허구일 뿐이며 부끄러운 것이라는 것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었다.

동시에 공장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왜 빈곤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 의문하기 시작했다. 예전에 나는 모친의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빈곤과 고난을 이해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내 자신이 No Exit의 막다른 골목 끝에 갇히고 보니 절대빈곤의 실존적 현실은 이념적 표현이 아니라 너무나 처절한 현실이었다.

우선 그들에게 빈곤에서 헤어나기 위한 노력을 할 기회가 많지 않다. 당장 생존을 이어가기 위한 영양가 없는 노력에 소모가 크다. 창조적 아이디어도 없고 후원도 결핍되어 있어 도전적 생각 자체에서 피로를 느낀다. 그저 don't worry, be happy를 노래하는 것이 오히려 편하다. 어쩌다 부딪쳐 보면 아예 대응이 없거나 "싫으면 말고. 네가 떠나면 돼" 처럼 잔인함으로 되돌아 오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같은 경험이 되풀이 되는 동안에 이들에게 헤어나오기 힘든 심리적 현상이 자리잡게 된다. Helplessness syndrome 혹은 무기력감으로 자신의 노력이나 능력에 대한 포기를 말한다. 이 상태에 빠지면 도전을 생각하게 되지 않는다. 그리고 미래에 대하여 비관적이 된다. Helplessness와 hopelessness는 우울증의 증세만이 아니라 근본 원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일단 이 syndrome에 빠지면 심리적 downward spiral의 길고 깊은 늪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런데 내가 막다른 골목에 갇혀 있을 때 helplessness 수렁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몇 가지 행운 때문이었다. 그 중 가장 critical한 것은 지속적 사회적지지(social support)의 힘이었다. 특히 교인들 중심으로 잘 짜여있는 support network의 힘은 엄청난 것이었다. 새로운 기회에 대한 정보를 나누어 주었고, 자신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주저하지 않고 나누어 주었다.

때론 information and emotional support만이 아니라 실용적 tangible support 공세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외국에 나오면 모두 애국자가 되고 외국에서 외로우면 누구나 사랑을 배우게 된다고 생각했다.

훗날 내 생애 처음으로 받은 연방정부의 연구비의 중심주제가 한국 이민자들의 우울증 경험과 사회적 지지(experience of depressive symptoms and salience of social support)였다. 당시 대학 신문은 내게 나온 연구비가 우리 대학에서 연방정부 사회인문학 분야 연구위원회(Social Sciences and Humanity Research Council)로부터 받은 연구비 중 가장 큰 액수였다고 보도했다.

Dr. V는 Assistant President of Research였는데 나는 그의 대학원 연구방법론을 수강한 적이 있다. 그는 나에게 미리 전화로 사실을 알려 줬는데 두 가지 면에서 크게 칭찬했다.

 우선 내가 시도한 첫 연구비 신청에서 $1도 깍지 않고 그대로 나온 것이 놀랍다고 했고, 다음으로는 주제가 Mainstream Canadian들에게 전연 "sexy하거나 appealing" 하지 않고, 오히려 무시당하기 쉬운 immigrant and minority mental health에 관한 것이어서 인상적이라고 했다. 교수 식당에서 점심을 사주면서 후원했다.

이 연구를 시작으로 나는 이민자들의 건강과 안녕에 미치는 social support의 영향에 대한 연구를 오랫동안 계속했다. 한번은 한인 이민자들이 이용한 social support 중에서 support 제공자가 한국인인 경우와 비한인인 경우를 비교 분석을 했다.

 예상했던 것처럼 한국인이 Korean network으로부터 제공받은 support가 그들의 정신건강에 매우 중요한 것을 발견했다. 비한인들이 제공한 support의 영향은 상대적으로 미약했다. 특히 높은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한국인과 비한국인의 support가 두드러지게 달랐다.

나는 이런 연구 결과를 상황의 동질성에 근거하여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Thoits 교수는 social support가 예방과 치유의 힘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empathy가 중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우선 도움을 제공하는 사람과 수혜자가 현재 처하고 있는 상황과 역사적 경험의 내용을 공유하고 있을 때 그들이 나누는 social support의 역할이 상승한다는 주장이다.

언어가 다른 사회에서 인종과 문화적 소수인으로 산다는 그 상황 자체가 평범하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 이민자들은 이같은 상황을 함께 겪고 있고, 또 같은 역사적 배경과 문화를 나누고 있다는 점이 한인들이 제공하는 사회적 지지가 엄청난 힘을 보일 수 있는 까닭이다.

이런 연구 결과에 근거해 나는 오랫동안 한인 커뮤니티에 social support system과 network을 만들고 후원하는 것을 내 자신의 당연한 의무와 과업으로 알고 지내온 것이다.

돌아보면 나는 준비되지 않은 이민이라는 막다른 골목에서 뜻밖의 지나친 도움으로 심리적 syndrome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우리의 이민 스폰서 L 목사님과 가까운 친척들의 협력도 큰 힘이 돼 주었다. 가장 값진 것은 어려운 중에도 아무 불평 없이 나의 판단과 결정을 존중해준 아내의 배려와 사랑이다.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나는 개인들이 소유하고 있는 풍요로움과 여유 그리고 다른 자들이 견뎌내야 하는 결핍과 구속이 결코 개인만의 능력이나 책임만이 아님을 깨닫게 됐다.

삶의 막다른 No Exit 현장에서. 후에 사회학을 공부하면 내가 거친 그 변화가 바로 C. Wright Mills 교수의 가르침이었음을 알게 됐다. 개인들의 personal troubles를 social problems로 객관화 할 수 있는 sociological imagination이다.

한 이민 커뮤니티가 비교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하거나 아니면 빈약한 모습으로 자리잡게 되는가는 운명적 결과가 아니라 의도적 노력에 근거한다고 믿는다. 특히 집단의 형성 초기에 mutually supportive networks를 만드는 것이 critical issue라고 믿는다. 그리고 나 개인에게 날아든 마지막 경고장을 열어 이웃과 공유하여 collective wisdom을 자극하는 것도 그 중 일부라고 생각하여 이 담소를 이어가려 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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