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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골프 정복한 김하늘 “엄친딸 아니에요”
lucasyun

여자골프 정복한 김하늘 “엄친딸 아니에요” 기사입력 2011-11-29 09:11 |최종수정 2011-11-29 09:24 ▲ 김하늘이 이데일리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한대욱 기자) [이데일리 스타in 김인오 기자] “안녕하세요.” 누구인지 한참 쳐다봤다. 맙소사!!! 짙은 화장에 묶지 않은 긴 생머리를 찰랑거리며 여의도에 나타난 20대 초반의 숙녀는 바로 프로골퍼 김하늘이었다. ‘모자라도 쓰고 왔어야지’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아침 일찍 미용실 다녀왔나 봐요?” 프로의 손길이 느껴지는 화장술에 당연하다는 듯 첫 질문을 던졌다. 이어지는 김하늘 선수의 알 듯 모를듯한 표정. “아이, 이 정도는 기본이에요. 오늘은 시간이 없어서 조금 하고 왔어요”라고 웃음 지었다. 믿을 수 없었다. 인터뷰 내내 화장에 대한 질문은 계속됐다. 물론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일종의 양념이었지만. 그렇게 김하늘과의 만남은 유쾌한 농담으로 시작됐다. 김하늘은 올 시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상금왕과 다승왕, 그리고 올해의 선수상 격인 대상을 싹쓸이했다. “올해를 돌아보면 그냥 ‘짱’이에요”라는 그의 표현대로 2006년 데뷔한 김하늘에게 2011년은 다시 오기 어려운 최고의 해였다. “골프, 하고 싶어요.” 사업을 하는 부모님 밑에서 부족함 없는 유아 시절을 보낸 김하늘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골프채를 잡았다. 그러나 한 달 만에 골프부는 해체됐고, 어려워진 형편 때문에 김하늘도 골프 생각을 버리게 됐다. 하지만, 그의 재능을 알아본 코치는 아버지 김종현(48) 씨를 설득했다. “진짜 1년 동안 한 달에 한 번씩 전화를 하셨어요. 결국, 아버지 마음을 돌리지는 못했지만….” 형편을 잘 알기에 어린 김하늘도 이해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난 어느 날 아버지는 “골프 배우고 싶으냐?”라고 조용히 물었다. “네, 하고 싶어요.” 고민할 것도 없었다. “아버지가 꿈을 꾸셨는데 당시 최고였던 박세리 프로님이 집에 놀러 온 꿈이었대요. 운명이었나 봐요.” 그렇게 김하늘은 골프채를 다시 잡게 됐다. “많이 힘들어도 참아야 한다.” 아버지는 이 한마디를 시작으로 골프 대디의 힘든 길로 들어섰다. “한번은 주니어 시합을 나갔는데 볼이 딱 2개밖에 없는 거에요. 아버지가 지갑에 있던 3만원을 모두 주셨는데 볼 3개에 3만원인걸 보고 사지 못했어요.” 어려운 집안 사정 때문이었다. 이를 악문 김하늘은 결국 이 대회에서 볼 2개로 우승했다. 그의 백 안에는 2개의 볼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추락, 한순간이에요.” 2007년 정규 투어에 데뷔한 김하늘은 신인왕을 차지했다. 2008년에는 3승을 거두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강력한 경쟁자였던 신지애가 LPGA 무대로 진출하면서 2009년은 김하늘과 서희경의 양강구도가 펼쳐질 것으로 예상했다. “시즌 전에 ‘누가 일인자가 되나?’라는 전망이 모든 매스컴을 장식했어요.” 기분 좋은 부담감이었다. 물론 김하늘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국내 개막전이 열리기도 전에 일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2009년 초에 출전한 두 번의 LPGA 대회에서 모두 컷 탈락했어요.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였죠. 근데 이게 문제였어요. 시차 적응도 없이 곧바로 국내 대회에 출전했는데 겨우 컷 통과했어요.” 첫 대회에서 40위권으로 밀려난 김하늘에게 슬럼프가 찾아왔다. 경쟁자 서희경이 다음 대회에서 바로 우승을 차지한 것도 중압감으로 다가왔다. “우승에 대한 압박이 심하다 보니 더 망가졌어요. 그렇게 1년을 허송세월했죠.” 결국, 김하늘은 일곱 번의 톱 10에 만족해야 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성적표였다. 지난해 부진은 2009년과 달랐다. ‘관심’이 ‘무관심’으로 한순간에 바뀐 것이다. “그 누구도 나에게 기대를 하지 않았어요. 희경 언니는 꾸준한 성적을 올렸고, 유소연과 양수진 그리고 안신애 등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면서 관심 밖의 선수가 됐죠. 나의 이미지는 ‘한 때 잘 쳤던 선수’ 그 이상도 아니었어요.” 결국, 김하늘은 상금 랭킹 21위라는 최악의 한 해를 보내고 말았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다.” 올 시즌을 맞으면서 김하늘은 새로운 다짐을 했다. “지인들이 ‘너는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다. 신인이라 생각하고 다시 시작해라’는 조언을 많이 해줬어요. 자존심이 상했지만 생각해보니 진짜 내려갈 곳이 없었어요. 받아들였어요. 그리고 이를 악물고 연습했어요.” 효과가 있었다. 김하늘은 중국에서 열린 시즌 개막전에서 전성기 시절의 기량을 선보이며 2위를 차지했다. 기분 좋은 출발이었다. 샷이 안정되니 멘탈까지 돌아왔다. “국내 개막전이 열리기 전인 4월 초에 우연히 협회 홈페이지를 들어가 봤어요. 그런데 기록 부문에서 제 이름이 모두 상위권에 있는 거에요. 그때 다짐했어요. ‘지금 최고다. 절대 5위권 밖으로 떨어지지 말자!’ 라구요.” 소박한 목표였지만 김하늘에게는 절실한 소망이었다. 김하늘은 시즌 세 번째 대회에서 2년7개월 만에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가족 모두가 울었다. 무뚝뚝한 아버지 김종현 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저는 아버지가 그렇게 우시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 진짜 펑펑 우셨어요.” 당시를 회상하던 김하늘의 눈에 잠시 이슬이 맺혔다. “은퇴, 시드전까지 가면 그만둬야죠.” “국내 시드전까지 가면 은퇴합니다.” 매사에 똑 부러진 성격답게 김하늘의 대답도 명쾌했다. 물론 미국 무대에 대한 기대도 저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것이 자신의 운에 달렸다고 믿고 있다. “내년에는 상금왕 자격으로 LPGA 대회에 5~6번 정도 출전해요. 지금 생각으로는 우승컵을 들고 당당히 미국에 진출하고 싶어요. 우승이 없다면 2년 정도는 국내 투어에 집중할 생각이에요.” 당분간은 LPGA 시드전을 치르지 않겠다는 뜻이다. 친구인 신지애가 밟은 길을 자신도 걷고 싶다고 덧붙였다. “남자친구 있느냐고 물어보실 거죠?” 슬슬 인터뷰가 정리됐다고 느낄 즈음 김하늘이 물었다. 최근 한화 류현진 투수와의 스캔들때문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한발 더 나아가 “결혼은 언제쯤?”이라고 물었다. “28살이요. 서른 넘기면 결혼 사진이 예쁘지 않잖아요.” 역시 명쾌했다. 이어 "현진 오빠와는 그냥 친한 사이에요. 절대 아닙니다"라고 손사래를 쳤다. 시종일관 인터뷰는 유쾌했다. 간간이 화장 얘기도 계속됐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미래의 모습까지 딱 정해놓은 김하늘을 보면서 ‘애정남’이 필요 없어 보였다. 그는 진정한 ‘프로페셔널’이었다. ▲ 김하늘(사진=한대욱 기자) <저작권자ⓒ함께 만들고, 함께 즐기는 엔터테인먼트 포털 이데일리 스타in (스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