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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enscollege
조주연 (Joyoon Cho)
현 퀸즈칼리지어트 학장, 문학박사 (사회언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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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언어장벽: 교차문화의 이해와 이질언어에의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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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언어장벽: 교차문화의 이해와 이질언어에의 동화

한국에서 온 유학생들이 겪는 어려움은 한국과 캐나다의 차이 (difference) 를 극복하는 과정에
있다. 이 차이는 주로 언어 (language) 와 문화 (culture) 에서 온다. 언어학적으로 볼 때
국가간의 문화적 차이는 대략 50%정도로 여겨진다. 즉, 문화적 보편성 (culture universal)
이 50%이고 문화적 특수성 (culture specific) 이 50%로 보고 있다. 이는 문화가 반영된 각
나라의 속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언어와 문화의 이질성 (heterogeneousness) 은
어떤 것이며 과연 어떻게 이겨내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교차문화의 이해 (cross-cultural
understanding) 와, 이질언어와의 동화 (assimilation to a different language) 에 있다.
문화는 이해 할 대상이고, 언어는 동화해야 할 대상이라는 얘기가 된다.

 

언어의 차이는 동족언어들 (homogeneous-stem languages) 간 에도 있지만, 한국어와
영어는 그 뿌리가 전혀 다른 총체적 이족어들 (totally heterogeneous-stem languages)
이기에 더 하다. 영어는 인도유럽언어 (Indo-European Languages) 에 속하고 한국어는
우랄알타이어 (Ural-Altai Languages) 어에 속한다. 언어구조가 인간의 사고를 규범화한다
(categorize) 고 가정한 소위 “사피어-월프 가설 (Sapir-Whorf Hypothesis)” 은 언어구조의
차이가 사고의 차이를 가져오고, 자연히 사고가 다르면 문화의 차이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언어와 문화는 이렇듯 분리되어 논의 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고 언어의 이질적 요소에 동화할 수 있을까 간략히 생각해보기로
하자.

 

첫째로, 문화의 차이는 과장하지도 말고 축소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순리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상술 (stated above) 한 바와 같이 문화의 50%는 보편적 (universal)
이다. 보편적인 문화와 사회적 가치가 오해되는 예를 보자. 캐나다나 미국에 오면 한국과
달리 나이나 관계를 떠나 버릇 없이 해도 되고, 상대방을 생각하지 않고 할 말 다 하고, 누구의
간섭을 받지도, 누구를 의식하지도 않아도 된다고 잘 못 이해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참으로 이상한 오해이다. 서양은 마치 아무런 사회적 규범이 없는 듯 과장하여 말하는 경우가
있다. 성숙하지 않은 아이들이 혹은 자기가 속한 사회의 규범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사람들의
자기편의식 해석이다. 서양의 문화는 한국과는 달리 단어의 차이를 가지고 예의를 말하는
사회나 언어가 아니고, 화체 (speech style) 나 화 행위 (speech act) 로 예절을 지키고
비언어적 행동 (non-verbal behavior) 로 상대방을 존중하는 문화이기에, 위와 같은 오해는
전적으로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몰라서 나오는 얘기이다. 서양의 문화는 간섭을 받고 안 받고의
상대방에 의한 문화가 아니라, 내가 남을 배려 (consideration for others)하고 남을 간섭하지
않는 (avoid gossiping others) 문화이다. 서양문화는 남을 험담하거나, 자기의 생각으로
남을 일반화 (generalization) 하는, 그리고 나의 방법으로 남을 재단하는 일방적 흑백논리가
아니다. 이번 버지니아 공과대학 (Virginia Polytec and State University) 의 참상을 놓고도
한국의 언론들이 보여준 혼란스럽고 성급한 그리고 부정확하며 신중하지 못한 조승휘 가족에
대한 보도는 사뭇 충격적이다. 한국언론들은 부모의 자살보도 (아버지 사망, 어머니 중태)
에서부터 재혼보도 (어머니 강도에 피살, 아버지 재혼) 에 이르기까지 확실하지도 정확하지도
않은 얘기를 마치 사실인 양 앞 다투어 보도하는 유치함을 드러냈다. 심지어는 관련 없는
친척들의 이름까지 밝히며 보도하는 태도는 가족을 피해로부터 보호하려는 미국의 언론과는
사뭇 달랐다. 마치 모든 한국인들이 오해 받을 것으로 일반화하여 가족을 희생양으로 삼아
자기들을 방어하려는 못난 심리가 아닌가 두렵기 까지 하다. 남을 배려하지 않고 자식과 부모를
일치시키며 개인의 일을 집단의 방어적 심리로 둔갑시키는 것은 이제 청산해야 할 대상이라고
믿는다.

 

둘째로, 문화의 50%는 특수적 (specific) 이다. 한국인들이 오랜 이민생활 후에도 그리고
시민권자로 된 후에도 주변 사람들 (marginal people) 로 남아있는 것은 이민생활을 하는
나라의 문화적 특수성을 이해하여 받아들이지 않고 내 것을 너무 고집하는데 있는 것 같다.
로마에 살면 로마인들이 하는 대로 하라 (“When in Rome, do as Romans do.”) 라는 아주
평범하지만 불변의 진리가 있다. 이민자이든 유학생이든 그리고 캐나다국적의 한국인 (Korean
Canadian) 이나 미국국적의 한국인 (Korean American) 이든 마찬가지이다. 캐나다에
살려고 왔는데, 혹은 공부하러 왔는데, 현지의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이해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내 것을 고집하고 남의 것을 배타하여 항상 국외자 (outsider) 로
외롭게 살기보다는, 상대방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해주며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여 사회 속의
참여자 (insider) 로서 존재해야 한다. 학생들도 모든 인종집단 (all ethnic group) 과 어울려
다 인종 또래집단 (multi-ethnic peer group) 속에서 숨 셔야 한다. 이럴 때 문화적 차이를
최소화 하고 주류사회 속에서 당당히 역할 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로, 언어의 문제는 적극적인 태도에 달려있다. 언어가 사뭇 다르기에 열심히 익혀야 되는데
이를 위해서는 적극성이 필요하다. 체면과 관계없고, 지식과 관계없고, 인격과 관계없고,
자기 본인과 관계가 있다. 자기를 버려야 영어를 배운다. 영어를 기초부터 접근하고, 도움을
청하고, 질문을 하고, 영어로 듣고, 말하고, 쓰고, 읽는 것을 적극적으로 시도해야 한다. 영어를
말하는 사회에 와서 공부를 하거나 아니면 거주해야 하는 상황에 무슨 주저함이 필요한가
자문하여 볼 일이다. 자기처럼 자기를 잘 아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아는 사람 또한 드물다. 자기를 겸허히 받아들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자기를
알면 자기의 현재를 그리고 자기의 실력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고 또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계획을 세워야 한다. 1년이면 될 영어를 10년이 되어도 안 되는 분들이 있다. 나를 솔직히
받아들여 계획을 세워서 행동을 위해 나서지 않아서 그렇다. 영어를 배울 때 좋은 책, 좋은
교사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솔직한 자기 자신이다. 자기한테
솔직한 사람은 영어를 근본적으로 처음부터 시작하게 되고, 배우는데 적극적이 되고, 아주 빠른
속도로 그리고 놀라운 결실을 얻을 것이다.

 

인간은 언어적 능력을 타고 태어난다. 그래서 인간의 타고난 능력 (innate faculty) 은 ‘말하는
능력 (speaking ability)’ 이다. 마치 새는 나는 능력 (flying ability) 을, 포유동물은 걷는
능력 (walking ability) 을 갖고 태어나듯, 인간은 말하는 능력을 타고난다. 언어학에서는
인간에게 LAD (Language Acquisition Device), 즉 언어습득장치가 있다고 한다.
언어습득장치를 갖고 태어난 우리 인간은 우리가 노력하는 한, 세계 어느 곳에 살든지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영어를 배우려면 발음을 의식하지 말고, 틀리는 것을 두려워
말고, 솔직하게 쉬운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신문도 읽고, 일기도 쓰고, 소설도 읽고, 작문도
해 보고, 큰 소리로 읽고, 부단히 새로운 영어를 접해야 한다. 그러면 자기의 능력을 확인 할
수 있고, 자신 있게 외국인들과 친구가 될 수 있고, 주류사회의 일원으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영어만 유창하게 되면 여러분만큼 많이 배우고 또 많이 아는 사람들도 드물 것이기에
그렇다.

 

캐나다 혹은 미국, 그리고 어떤 다른 나라에 유학이나 이민으로 와서 살더라도 문화적 언어적
충격은 있게 마련이다. 이것은 누구나 경험하는 문화와 언어의 차이에서 나오는 자연스런
충격이다. 이들을 극복하는 것은 자기를 받아들이고, 남을 이해하는데 있는 것이다. 문화의
차이는 내가 이해해야 할 일이고, 언어의 차이는 내가 상대 언어에 동화되어야 할 일이다. 이것
이외에 다른 방도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