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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이트는 25세의 젊은 나이에 카나다에 유학와 귀와 입이 뚫리지 않은 상태에서 알버타 주립 대학에 들어가 기계공학 학사를 마치고 워터루 공대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현재 토론토 인근 원자력 발전소 연방정부 감독관으로 일하고 있는 한 남자와 그의 가족이 걸어온 발자취를 소개하고, 두드리면 열린다는 그의 신조를 바탕으로 이룩해 놓은 그의 발자취를 실어본다. 현재까지 그의 삶의 발자취는 에드몬톤->워터루->미시사가->대전->밴쿠버->오타와->리치몬드 힐이다. 현재 그는 다음 삶의 목적지는 어디일까? 궁금해 하면서 다람쥐 체바퀴처럼 열심히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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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사고 팔면서 느낀 점
nhok

아이들 대학이 토론토와 근교라 토론토에 내려와 산지 7월 12일이면 정확히 5년이 되어 간다. 그간 두딸이 훌쩍 대학을 졸업하여 아내와 나는 지난 2월부터 아니, 작년 12월부터 오타와 본사로 되돌아가면서 집을 바꾸는 계획을 추진해 왔었다. 그러나, 본사는 내게 되돌아 갈 기회를 주지않아 그당시는 기분이 좋지 않았으나, 지금은 하늘이 내 처지를 보살피셔서 계속 토론토에 남아 살라는 계시라고 받아들인다. 만약, 오타와로 되돌아갔으면, 정해진 월급으로 딸들을 미국 법대에, 영국 대학원에 보내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말한다면, 아이들이 우리 부부를 드라이브하여 토론토에 내려와 살게 되었고, 여기 살다보니 아내도 할일을 찾아 가계에 보탬이 되고 그러다보니 이젠 여기에 우리를 더 주저않게 하곤 자기들은 또 다른 나라로 교육을 받으러 떠나는 것이다. 나와 아내는 5월에 부풀은 기대감(우리집이 좋아 오타와 집처럼 8일내에 팔릴거라는 기대감)에 부동산 에이전트인 처형을 통해 시장에 내 놓았다. 그다음날부터 집을 보러 중국 사람들이 밀려오는 데 몇일만에 팔릴것 같았다. 그중 몇몇은 두 서너번 다녀갔고, 이란 부부는 리노베이션 견적을 알아본다고 기술자도 데리고 다시와 마루, 지하실 크기를 재어갔다. 그런데, 전화로 마지막 바닥 가격을 물어는 왔으나, 정작 오퍼가 접수된 것은 없었다. 어떤 중국인 가족은 우리 집과 다른집을 저울질하고 있어 그게 끝나야 결정된다고 하였다. 우린 업그레이드 된 그 집보다 가격면에서 10만불이나 낮아 싼 것 좋아하는 중국인이 우리집을 찍을거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몇 일후 그 집앞에 Sold 간판이 붙여 있었다. 참 어처구니없었다. 1주일이 지나니 초조해지고, 집보러 온다고 전화오면 하루 두, 서너 차례도 아내는 꼭 집을 청소해 놓았고, 에이전트가 가르쳐 준대로 1,2, 지하층 곳곳에 전등을 켜 놓았다. 그래선 우린 역할 분담을 해 놓았다. 2층은 내가 준비하고 1층은 아내, 지하는 학생이 맡으니, 10분안에 청소및 viewing 준비가 되었다. 2주가 되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밥먹는 시간에 오는 사람, 냄새때문에 김치를 꺼내놓고 먹을 수 없었고, 맨 몸 샤워도 할 수 없었다. 언제 문열린 화장실을 보러 들어올지 모르므로..... 3주가 되니, 많은 중국인들이 자식명의로 투자를 위해 우리가 사는 좋은 동네안에 파격적인 싼 집을 보물찾는 것처럼 찾아, 막 이사를 해야할 급한 사람들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4주가 되니, 집보여주고 청소하는 것에 시달려, 자포자기를 하기시작했다. 5주가 되니, 보러 오건 말건, 신경도 쓰지않게 되었다. 가끔 간난아기 안고 오는 중국인 젊은 부부의 정체도 알수있을 것 같았다. 돈많은 부모에게 기대어 사달라는 것일게다. 자식들 명의로 집을 사주어 투자를 하려는 중국인 부모들을 보고 중국인 커뮤니티에 비해 아직도 한인 커뮤니티는 그 만큼 재력면에서 성장을 하지는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그런데 6주째, 이상한 일이 발생하였다. 지나가다 For Sale 간판을 보고 들어온 인도인 부부가 있어, 아내는 물에 빠진 지프라기를 잡을겸, 우리 집에 오신 손님을 대접하는 식으로 부엌 식탁에 앉히고, 뒤뜰에서 작년에 딴 포도로 담은 포도주를 대접하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남편이 인도 여객기 조종사임을 알게되었다. 이부부는 우리집의 가구가 맘에 들었고, 집을 사면 가구까지 몽땅 줄수있느냐고 물었다. 아내도 물론 인도인치고 점잖은 부부이기에 서로가 통했던 모양이다. 아내는 파는 가격에 가구를 다 포함하고 사인을 그 다음날 친척을 데리고 와 집을 한번 더 보고 한다고 약속하고 그들은 되돌아갔다. 그 다음날 알고보니 우리동네에사는 친구집에 그들이 임시로 묵고있었으며 카나다 이민 정착을 곧 하기에 집이 필요하고 우리동네사는 친구가 지나가다 사인을 본것이었다. 이 친구는 여기에 오래산 친구로 여기 실정을 알기에 인도에서 갖 오는 이들부부에게 집값을 더 깍으라고 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다음날 친구가 와서 보더니, 사인을 안하고, 그냥 가버렸다. 역시나 인도사람했다. 그러나 아내는 본국에서온 진정 집을 살 부부는 참 좋다고 했다. 현지인 친구가 중간에서 파토를 놓은 것이다. 얼마후 이들 부부가 원하는 가격을 전화로 알려왔고 우린 우리 기대치와 차이가 너무 많아 거절하였고, 중간에서 낀 친구를 야속하다고 생각하였다. 이젠 집팔기를 포기하고, 업그레이드를 해서 살자고 아내와 이야기를 나눈 후, 우리 집을 다시 살펴보니, 같은 가격에 이처럼 좋은 집을 살수 없는 것이 뻔했다. 자재값이 뛰었고, 수속하는 데 여기저기 돈이 낭비되기 마련이다. 많은 동양인들이 들어와 살기를 원하는 베이뷰와 16 에버뉴 북쪽 마을 Bayview Hill 단지인데, 왜 팔고 나갈 생각을 했을까 했다. 인도인을 잊을 만할 몇일후, 전화가 왔고, 새 가격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우린 우리쪽 가격에 근접한 가격을 받아들였다. 워낙 우리 가구가 좋았나 보다. 이들은 걸어서 들어 온 buyer이라 에이전트비 2.5% 가 판매가격에서 절감되는 것이다. 파는 사람, 사는 사람이 다 덕을 보게된다. 5일간의 시간을 거쳐 드디어 mls 리스팅에서 우리집의 사진이 없어져 버렸다. 덩치가 큰 집이라 6주에 들어서 마침내 팔린 것이다. 오타와 집은 3500 스퀘어. 이집은 4300 스퀘어이니 우린 타운 하우스를 안거치고 곧바로 큰 집으로만 이동한 것이다. 오타와 집은 이집의 절반 미만이되는 가격이기에 8일만에 팔린것이지, 이젠 집파는 일이 머리 썩이는 일임을 뻐저리게 느꼈다. 우린 그 긴 터널이 얼마나 긴지 알지 못하고 법썩 들어갔고, 지쳐서 아슬아슬하게 빠져나온 것이다. 그런데 터널을 빠져나와 한숨을 쉰 뒤, 오래전부터 찍어놓은 살 집을 바라보니, 이미 몇일 전 사라져 버렸다. 아내는 정말 낙심했다. 그 인도인들이 몇일만이라도 서둘렀으면 이텔리언이 아름답게 지은 궁궐같은 고풍의 집을 살텐데.. 8월 24일이 현재집에서 이사가는날이라, 우린 갈 집을 찾지못하면 길바닥에 나가 앉게 된다. 하루하루가 초조하고, 나오는 매물은 휴가철이 다가와 일주일 고작 1개정도 였다. 없으면 그 다음 주를 기다려야 했다. 가격대가 높은 집들이라 많지도 않았다. 매일 퇴근하자마자, 저녁에 한두개 집을 보았고 마음에 드는 집은 쉽사리 나타나지않았다. 아, 하늘이 우리에게 시련을 주시려나... 그게 말고는 없기에 망설이다가 가격을 더 높이고 찾아보니, 우리가 원하는 지역에 한인이 소유한 저택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모든 집이 결점이 있듯이 이집은 10년된 저택이고, 가격이 200,000 $가 높고, 대신 독립된 3개 차고에 돌아나오는 주차장이 있으나, 2층방과 화장실이 작은 결점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 집이 영 스트리트에 붙어있고, 저택이 주위에 있어 투자가치가 높았다. 딸들에게 보여주니, 아빠 앞에서는 불만을 얘기 못하고, 꿍꿍 거리고 있었다. 이걸 알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손에 쥘수있겠는 가? 그러기를 2-3주 지나니, 3년된 이텔리언 custom builder가 아름답게 지은 집을 찾을 수있었다. 그러나 그 동네 줄에서는 가장 가격이 높아, 손해보는 일이 아닌가 싶었다. 비싼 동네에서는 싼 집이 팔때 도움을 받는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젊은 이탈리언 부부는 짐안을 최고급자재로 꾸며놓아 우리 딸둘이 그걸 잡으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그래서 오퍼를 넣었눈 데 yes, no 에 대한 대답이 전혀 없었다. 몇일후 알아보니, 금액이 당치않다고 대꾸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4만불을 높여서 사인해 보내니, 또 모자르다고 중간에 선 에이전트 들에게 말해 두 에이전트가 자기네 커미션 조금 손해보고 딜을 성사시키겠다고 하여, 원하는 금액을 맞춰 주었고 그 아내로부터의 구두 확인을 받아왔다. 우리는 다 성사된줄 알고, 정식 계약서를 보내니 함흥차사였고, 전화도 꺼져 있어 연락을 못하겠느라고 상대편 에이전트가 알려왔다. 퇴근시간에 맞투어 그 집에 쳐들어간 에이전트 전화하길, 이건 왠걸, 그 남편이 1만불을 더 요구했다고 한다. 우린 그간 참았던 분통을 터트렸다. 기다림의 연속에다, 전화도 끊는 행위, 부인은 가격에 동의했으나, 남편은 그렇지 않았다. 알고보니, 거기엔 사연이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그간 별거중으로 이혼을 진행하고 있었고, 남편은 집을 팔면 자식부양비로 아내에게 많은 돈을 빼았기게 되어 그걸 막판에 원치 않았던 것이다. 물론, 여자는 난폭한 남편에게서 하루 빨리 빠져나가고 싶었을 걸이다. 아무리 집이 아름다워도 이런 처지의 집은 계속 골치 아플것같아, 곧바로 계약을 파기하고, 에이전트한테 계약서를 찾아오라고 하여 찢어버렸다. 그리곤 그다음 가격 레밸의 집을 찾아 보니 그동네 살려는 집 뒷줄 동네에 역시 이탈리언 빌더의 85 피트 x 180 피트의 큰 땅에 2년된 저택으로 돌로 뒤까지 뒤덮은 티끌만한 결점이 없는 집을 찾아 모두들 좋아했다. 문제는 은행이 우리가 좋아하는 집을 융자해 줄지가 의문이었다. 처형도 처형 나름대로 자기일같이 생각하셔서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겠다고 나서셔 우린 얼마나 고마왔던가. 돈이 모자라 해결 못하고 있는 일이 가장 쉬운일이라고 반복하시면서 우릴 돕기로 나서셨기에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 과연 우리도 저런 처지라면 아무것도 재보지않고 나서겠는가. 이젠 은행의 승인만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승인이 떨어지면 우린 카나다에서 제일 큰 은행에서 파격적인 모기지율에 상당한 돈을 받게 된다. 그 이유는 지만 70년대 후반부터 아내는 이 은행에 결점하나없는 신용을 쌓아와, 프리미엄 고객명단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부부가 쓰는 월 경비에 대해 그만한 비용을 벌어들이고 있다고 믿는 것이었다. 계산기로 공식에 따라 산출하는 그런 방법이 아닌, 홍콩에서 온 부유한 중국인이 사는 이지역 리치몬드 힐 소재 은행이기에 그 나름댜로의 환산법이 있었던 것이다. 상담원은 고객의 80%가 국세청에 보고하지않은 수입원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나를 놀라게 하였다. 음성적으로 버는 수입도 무시 못하고 이들 인구가 많으니 은행도 여기에 맞추는 것이 아닌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말이다. 참, 집은 결혼 상대 여자와 비슷한 점이 있다. 자기가 좋아해도 안 되고, 그 많은 집중 인연이 닿는 집과 거래가 성사된다. 외모가 뛰어난 여자에게 맘이 있어도 그여자가 자기에게 feel을 느끼지 않으면 아무런 관계가 엮어지지 않는다. 길거리에 수많은 여자들이 있다. 수수한 여자, 매력있는 여자, 생활력있는 여자, 게으른 여자, 외모에 비해 내면이 부족한 여자, 속이 꽉 찼으나, 못생긴여자 등등.. 집도 그렇다. 밖에서 보면 멋있는 데 들어가보면 냐부 구조가 조잡하고 싼 재료로 꾸민 집, 어떤 집은 밖에 비해 안이 훨씬 실하고 활용성있게 게 짜여진 집들이 있다. 이번에 집구경하면서 배운 교훈은 절대 집밖 모습으로 집을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역시 마찬가지이다. 외모로 그 사람을 판단할 수없다. 오래 사귀어보아야 그 사람의 본질을 파악할 수있는 것이다. 그래서 옛말에 사람 속을 알고 싶으면 같이 여행을 가 보면 안다고 하지않는 가. 우리 큰 딸이 고교 친구와 인도 여행에 갔다가 2주만에 혼자 돌아온 적이있다. 그토록 친절하고 nice한 친구아이가 그렇게 게으르고 자기만 아는줄은 몰랐다고 한다. 집을 처분하고 새 집을 사는 데 쏟은 아내의 정성에 다시 한번 감사한다. 옛말에 어느 가문에 시집온 여자에 따라 그 다음 세대 가문이 번창할지, 창고에 곡식이 넘칠지, 자식들이 흥망할 지가 결정된다고 하지않았는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