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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incanada
이 사이트는 25세의 젊은 나이에 카나다에 유학와 귀와 입이 뚫리지 않은 상태에서 알버타 주립 대학에 들어가 기계공학 학사를 마치고 워터루 공대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현재 토론토 인근 원자력 발전소 연방정부 감독관으로 일하고 있는 한 남자와 그의 가족이 걸어온 발자취를 소개하고, 두드리면 열린다는 그의 신조를 바탕으로 이룩해 놓은 그의 발자취를 실어본다. 현재까지 그의 삶의 발자취는 에드몬톤->워터루->미시사가->대전->밴쿠버->오타와->리치몬드 힐이다. 현재 그는 다음 삶의 목적지는 어디일까? 궁금해 하면서 다람쥐 체바퀴처럼 열심히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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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좋은 소식들
nhok

2007년이 밝아오자 마자 좋은 소식들이 우리집에서 터지기 시작한다. 아니, 작년 12월말부터 이미 좋은 일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우선 좋은 소식이란 아내와 내가 그동안 데리고 있던 세 자매중 12학년 둘째가 우리 집에서 3년을 먹고, 자고 공부 지도를 받아오다, 이번에 신청한 미국 대학중 뉴욕주 알바니 약학대학(Albany College of Pharmacy)에서 "Congratulations!" 하는 입학 허가서가 도착한 것이다. 이 대학은 150년 이상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6년 과정을 거치면 약학분야 박사 학위가 수여된다. 큰 언니가 우리 집에서 있다가 작년에 미국 시카고 근처 일리노이주립 대 어바나 샴페인에 입학 허가서를 받은 이후, 이번이 두번째 경사이기도 하다. 갑자기 1월 동이 트자 마자, 한국에 있는 부모로부터 흥분의 목소리로 감사하다는 전화가 연일 폭주하기 시작했다. 이미 그 어머니는 당장 신정 친척 모임에 딸의 입학을 자랑하고 난 터이라, 친척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모양이다. 나와 아내가 한 것은 처음 약속한 것을 최대한 지켜서 변함없이 이들을 돌바준 것 뿐이다. 오히려 한국의 아빠 엄마는 먹고 사느라 바뻐서 못해주는 일들을 아내와 나는 친부모이상 먹여주고 도시락 싸주고, 데려다 주고 공부시키고 감시한 의무를 성실히 해준 결과라 생각한다. 옆에서 보는 나도 아내가 아침 6시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도시락을 푸짐히 싸주는 것에 나도 감동했다. 대개가 너무 많아 친구들과 나눠먹는 모양이었다. 덕분에 나는 항상 점심 도시락이 푸짐해서 회사일하러 가는 게 아니고 매일 어디 소풍가는 것 같았다. 처음에 나는 아내가 집 주인인(최고 수입자인?) 나를 제치고 자기 일에 대한 보수를 받는사람의 입장에서 그아이들을 먼저 대접하였다. 한 마디로 아내는 나와 내 두딸들은 제쳐놓고, 양심상 100% 그들에게 총력을 기울였다. 이때문에 나와 내 딸들은 불만이 많았고, 나는 자주 "이집의 주인이 누군데..." 떠들기 시작하니, 아내는 중간에서 마음이 갈라져 힘들어 해곤 했다. 아이들도 다 큰 처녀들인데, 밥상에 같이 먹는 것을 어색해하고, 엄마가 다른 아이들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을 이해하질 못했다. 그러다, 아이들이 더 싼 집으로 옯기고, 거기서 고통을 당하고, 우리집에 다시오게 되었다. 다행히 우리 집에는 계속 공부하러와 지켜보고 있었으며 어느 날 와서 우리 앞에 눈물을 퍼부어 사연을 물어본 즉, 주인 아저씨의 멸시, 아줌마의 무책임으로 친구집에 가서 자고, 먹지도 않고, 공부에도 지장이 있어 우리 집으로 다시 데리고 것이다. 착한 아이들이 홈스테이 어른들의 무책임에 고생을 하여 내가 도와줄수있는 일을 하기로 마음을 결정한 이후로 나는 우는 아이의 모습이 눈앞에 항상 어려, 지금은 마음을 고쳐 먹고 그런 점에서 양보한 편이다. 이 아이가 언니뒤를 이어 부모들이 원하는 미국 대학에 조기 입학 허가를 받은 것이다.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는 뉴 질랜드에서 몇년 학교 다니다 카나다 교육 과정과 달라 많은 갭이 있었다. 그러던 아이가 우리 집에서 나에게 지도를 3년 받다보니, 그 갭이 다 메꾸어지고, 수학은 평균 95점을 받았고, 다른 과목도 평균이 높다. 게다가 입학 신청시 제출하는 자기 소개 에세이를 매년 우리 둘째 딸이 교정을 해주어 그것도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아뭏든 우리 식구 멤버가 조화를 이루어 각자 특기를 발휘해 도와주어 큰 작품이 나온 것이다. 물론 당사자도 하라는 데로 착실히 따라 주었다. 연이은 두 자매의 미국 대학 진학이 성공리에 이루어지고, 이젠 남은 남동생인 9학년 아이가 역시 미국 MIT 대학을 위해 내게 각 과목 지도를 받고 있다. 다른 또 좋은 일들은 지난 연말 이미 시작되어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우연히 소개받은 새로운 자매를 한국서 방문한 어머니와 같이 만나, 우리집의 시설과 우리 부부의 성실함을 보고, 미국 및 카나다 대학 진학 성공담을 목격하고 자기 아이들을 지금있는 아이가 빠지는 시점인 6개월후부터 맡아달라고 하고 한국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다시 말해 다음 학기에 들어올 학생이 대기중인 것이다. 이 모두가 나는 아내의 변함없는 정성과 남과의 약속을 철저히 지키려는 아내의 노력 때문이라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 말과 끝이 서로 다르고 언행이 서로 다른 데 내 아내는 처음과 끝이 같고 언행이 항상 일치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그때마다 나는 아내에 비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해 얼마나 창피한 지 모른다. 2007년 새해부터 좋은 소식들이 터진다. 그 다음은 둘째 딸의 영국이나 미국 대학원 입학 허가에 대한 소식을 기다리는 중이다. 과연 말로만 듣던 명문 대를 갈 지... 이게 터지면 우리 부부는 감사의 뜻을 표하는 행사를 개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