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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김영환 장군과 팔만대장경-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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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김영환 장군과 팔만대장경 김태익 논설위원 [email protected] 입력 : 2009.11.13 23:14 6·25 전쟁 중인 1951년 8월 말 경남 가야산 상공에 F-51 전투기 4대가 떴다. 편대장은 공군 10전투비행전대장 김영환(31) 대령. 해인사를 거점으로 한 인민군 패잔병 900여명을 소탕하라는 명령을 받고 출동한 길이었다. 전투기마다 230㎏짜리 폭탄 2개, 로켓탄 6개, 기관총 1800발씩을 장착하고 편대장은 250㎏짜리 네이팜탄까지 무장했다. 먼저 출동한 미 공군 정찰기가 해인사 마당에 연막탄을 떨어뜨렸다. 그걸 표적 삼아 폭탄을 투하하라는 신호였다. ▶김영환 편대장의 훈령은 달랐다. "각 기는 내 지시 없이 폭탄을 사용하지 말라." 대원들은 사찰 주변 능선을 향해 기관총 공격만 해댔다. 미군 정찰기에서 독촉이 빗발쳤다. "해인사를 네이팜과 폭탄으로 공격하라. 편대장은 뭐하고 있나." 김영환은 못 들은 척 다시 지시했다. "각 기는 폭탄 공격하지 말라." 대원들은 해인사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인민군을 향해 폭탄을 떨어뜨렸다. ▶그날 저녁 정찰기 조종사 미군 소령과 김영환 사이에 설전이 벌어졌다. "연막탄의 흰 연기를 보았는가?" "봤다." "왜 엉뚱한 곳을 공격했는가." "거긴 사찰 아닌가." "국가보다 사찰이 중요하단 말인가?" "사찰이 국가보다 중요할 리는 없다. 그러나 공비보다는 중요하다. 무엇보다 그 사찰에는 공비와 바꿀 수 없는 팔만대장경이라는 우리 민족의 정신적 지주가 있다. 공비 몇백 죽였다고 전쟁이 끝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김영환의 용기있는 결정 덕에 해인사 팔만대장경(국보 32호)과 장경판전(52호)은 전화(戰火) 속에 살아남았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까지 지정됐다. 전쟁 와중의 문화재란 광풍 앞 촛불 같은 운명이지만 지휘관의 현명한 판단으로 기적처럼 살아남는 경우가 있다. 1951년 5월 지리산 빨치산토벌대장 차일혁 총경은 남부군 근거지인 구례 화엄사를 불태우라는 명령을 받고 고민했다. 그는 각황전(국보 67호) 문짝을 뜯어내 불태우고는 "문짝을 태우는 것도 태우는 것이니 명령을 이행한 것"이라며 돌아갔다. ▶영화 '빨간 마후라'의 실제 인물이기도 했던 김영환 대령은 1954년 장군으로 진급한 직후 비행 중 악천후로 순직했다. 해인사는 법보(法寶)를 지켜낸 김 장군의 공을 기려 오늘 '고 김영환 장군 호국 추모재(齋)'를 연다. 김영환 장군과 차일혁 총경 같은 이가 있어 오늘 우리가 국보급 문화재들을 누리고 있다. 문화훈장을 추서해도 모자랄 일이다.